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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변화되자 (행9:1-8)

본문

I. 20 세기의 가장 큰 문명의 이익을 둘 들라고 하면 하나는 컴퓨터이고, 또 하나는 자동차 입니다. 이 두 문명의 발달은 인류 사회에 커다란 이익 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동차 문명은 사람들의 활동범위를 넓혀 주었습니다. 거리의 이동을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추운 겨울밤에도 따듯하게 한 시간에 200리 300 리를 이동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시원하게 이동하게 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큰 문명의 이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동차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널판지에 물건을 올려놓고, 사람이나 짐승이 그것들을 끌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바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바귀 위에 널판지를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끌었습니다. 그러자 힘이 훨씬 적게 들었습니다. 넓은 널판지 밑이 다 땅에 닿으면, 마찰면이 많아서 힘이 많 이 듭니다.
그런데 바귀를 만들어 마찰면을 수십배로 작게 만들자 힘이 훨씬 적게 들었습니다. 이 바귀의 발명이 오늘날 자동차의 발달을 가능하게 했고, 인류의 역사 에 물건을 나르고 이동하는데 큰 유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널판지에 올려 놓고 끌고 다니던 데서 바귀 위에 놓고 굴리고 다니는 역사로 바뀌었 습니다. 이 변화가 인류 문명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렇게 변화는 우리의 생활에 놀라운 차이와 이익을 가져다 줍니다. 힘든 삶이 쉬운 삶으로 바뀝니다. 짜증 나던 삶이 기쁨의 삶으로 바뀝니다. 절망의 삶이 기쁨의 삶으로 바뀝니다. 나에게서 변화가 일어나면 우리의 삶은 이렇게 바뀌게 됩니다. 널판지에 바귀를 달자, 땅도 그 땅이요, 널판지도 그 널판지요, 그 널판 지를 끄는 짐승도 그 짐승이요, 실은 물건도 그 물건인데, 물건을 나르는데 전혀 다른 변화를 가져온 것과 같이, 우리 자신이 변화되면, 세상도 그 세상이요, 가정도 그 가정이요, 직장도 그 직장이요, 나도 똑같은 나지만, 살아가는 인생에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들판에 애벌레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애벌레들이 사는 마 을에는 조그만 시내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시내 한쪽은 애벌레들이 살기 에 좋은 곳이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애벌레들이 살기가 힘든 곳 이였습니다. 그러나 시내가 그 두 곳을 갈라 놓았기 때문에, 살기 어려운 곳에서 태 어난 애벌레들은 더 좋은 곳이 있어도 그곳에 가지 못하고, 살기 어려운 곳 에서 힘들고 어렵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애벌레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고치가 되고, 후에 나방이 되었 습니다. 나방이 된 애벌레들은 날개가 달려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 다니 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지난 날에는 건너 갈 수 없었던 그 시내를 건너서 살기 좋은 땅으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벌레가 날 수 있는 나방이 되자, 그에게는 전혀 다른 삶의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에게 변화의 역사만 일어나면 우리 들의 삶이 전혀 새로워 집니다. 불가능하던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힘 들던 것이 쉬워집니다. 고통스럽던 것이 즐거워집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되는 역사가 나와 있읍니다. (행26:14)의 말씀을 보면 변화되기 전의 사도 바울의 삶의 모습이 나 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도 바울에게 변화되기 전의 그의 삶을 "가시채 를 뒤발질 하기가 네게 고생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변화되기 전에는 그의 삶이 가시채를 뒤발질 하는 것는 같이 고통스러운 삶이였읍니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하나님을 위하여 산다고 노력을 했지만, 결국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과 같은 고통 뿐이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되고 나자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 되었읍니다. 감사하는 삶, 희망의 삶, 평화의 삶,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삶,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정과 형편은 이전 보다 훨씬 더 나빠졌지만, 그의 삶은 전혀 다른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삶이 되었읍니다. 이렇게 변화는 우리 삶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문제는 환경 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시절을 잘못 만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내 자신이 변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내일 부터 15일간 축복의 새해를 준비하라는 전교인 특별새 벽기도회를 합니다. 전교인이 하나도 빠짐없이 참여해야 합니다. 그뿐 만 아니라, 이웃에 사는 새벽기도 하지 않는 다른 교인들도 권하여서 같이 참여해야 합니다. 이번 새벽기도회는 "우리도 변화되자"는 주제로 새벽기도회를 하려고 합니다. 1999년도를 축복의 새해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변화 되어 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으면 1999년도 1998년도와 다를 바가 전 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만 변화되면 1998년도나 1999년도가 다를 바가 없어도, 1999년도는 놀라운 축복의 해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나의 형편 을 비관하거나, 형편이 나쁘다고 절망하지 말고, 먼저 여러분 자신이 변화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이 달라질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새해를 준비하라는 이번 전교인 특별새벽기도회에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다 참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본 론 저는 이 시간 우리가 어떻게 변화 되어야 하는 가를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변화를 통하여 살펴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 기독교의 변화란 무엇인가 학문적으로 변화에는 두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물리적인 변화 입니다. 나무를 가지고 책상을 만드는 것 같은 변화를 가리켜 물리적인 변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는 화학적인 변화입니다. 어떤 두 물질이 만나서 전혀 새로운 물질을 만듭니다. 나트륨과 염소가 만나서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소금을 만듭니다. 이러한 변화를 화학적인 변화라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의 변화는 물리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화학적인 변화입니다. 물리적인 변화는 온전한 변화일 수 없습니다. 잠간 일시적으로 변화된 것 같이 보일 뿐입니다. 우리는 옷이 날개라고 합니다. 그러나 거지가 임금이 입는 어의를 입 었다고 해서 그 거지가 임금이 됩니까 아닙니다. 거지는 아무리 다른 옷을 입어도 거지에 불과 합니다. 겉의 옷은 변했으나, 속의 사람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물리적인 변화라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삶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속 에는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나가 있기 때문에 나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변화는 우리의 삶을 더욱더 피곤하게 만듭니다. 속은 하나도 변화되지 않았는데, 겉만 변화 되었으니,억지로 새로운 생활을 할 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한 형식적인 변화는 우리 들의 삶을 더욱더 피곤하게 만듭니다. 요즘 담배을 많이 피우는 자들이 있는데, 그 담배을 피우는 자들이 나 오늘 부터 담배 끊었다고 해서 담배가 끊어집니까 속에 있는 내가 담 배를 끊지 않았는데, 겉에 있는 내가 담배을 끊었다고 해서 담배가 끊어집 니까 그렇게 담배을 끊으면 담배를 피울때 보다 더욱더 나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억지로 담배를 안피우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우리 기독교의 변화는 화학적인 변화 입니다. 완전히 속까지도 새로워 지는 변화입니다. 속까지도 완전히 새로게 변화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 게, 전혀 힘이 들지 않게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의 모든 속성까지도 완전히 새롭게 변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화학적으로 새롭게 변화된 사도 바울은 그래서 자기 자신 의 변화된 삶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딤전1:13) 말씀을 보면 "내가 전 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으나,"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 은 전에는 기독교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완전히 변화 되어 서 기독교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변화 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그의 삶에 놀라운 화 학적인 변화가 일어 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다 이런 화학적인 변화가 자기에게서도 일어 나기를 원 합니다. 그러나 잘 되지를 않습니다. 제정신이 돌아 오면 이 내 모습을 새롭게 바꾸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제 정말로 새로워 져야지 하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곧 자기 자신이 변화되지않아 또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 갑니다. 삶에 온전한 화학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그럼 어떻게 완전한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 날 수 있을까요 (고후 5:17) 말씀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읍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때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새로워 질 수가 없습니다. 새로워 졌다고 해 도 겉으로만 새로워집니다. 물리적인 변화만이 있을 뿐입니다. 온전한 화학적인 변화는 예수님을 만날때 일어 납니다. 뉴욕에 있는 워터 스트리트 선교회(Water Street Mission)의 설립자인 제리 멕코리(Jerry McAuley)는 19살에 무서운 죄를 범하여 16년 6개월의 선 고를 받고 싱싱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 감옥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어느날 그가 감옥에 들어오기 전에 알았 던 악명 높은 권투선수요, 만능(all-round)의 악한이였던 오플 가디너 (Awful Gardiner)가 설교를 하였다. 가디너가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는데,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 내렸다. 가디너는눈물을 흘리면서 그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설교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설교를 듣는 가운데 멕코리는 처음으로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 었다. 가디너는 몇몇 구절의 성경을 인용하였고, 그 성경 구절이 멕코리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예배가 끝이나고, 예배드리러 왔던 자들은 다 돌아갔다. 멕코리는 쓸 쓸한 자기의 감방으로 돌아 왔다. 멕코리가 예배 드리던 때를 생각하며 통풍구멍을 보다가 그는 그곳에서 성경책을 하나 발견했다. 먼지가 수북 하게 쌓인 성경을 꺼내서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경 읽기가 매우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전에 자기 손에 한 번도 성경책을 들어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성경책을 가지고 정처없이 가디너가 설교할 때 인용했던 성경구절을 찾으려고 읽었다. 그러나 그는 그 성경구절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열심히 그 성경구절 을 찾다가 보니, 성경을 다 읽게되었고, 그러는 가운데 그는 예수님이 죄인 들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령님이 그가 죄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멕코리는 너무나 기뻐서 "나는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오 !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하고 소리쳤다. 이 이상한 소리에 간수가 왔다. 간수는 캄캄한 방에 전등을 비추었다. 멕코리가 쓸쓸하고 외로운 방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간수는 밤늦께 시끄럽게 했다고 퉁명스러운 소리로 "무슨 일이야"하고 물었다. 그러자 멕코리는 "나는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하고 대답을 했다. 간수는 시끄럽게 밤에 떠들어 규칙을 어겼다고 내일 아침 멕코리를 더 추운 방에 넣어 주겠다하고는 그의 번호를 적어 갔다. 멕코리는 다음날 더 추운 방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 난 후에 그의 삶을 변화 되었습니다. 전같으면 추워서 견딜 수 없을 터인 데, 더 추운 밤에 와도 전혀 춥지가 않습니다. 완전히 화학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멕코리는 그때의 자기 상황을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더 추운 방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나는 결코 더 추운 방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하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고 나니, 더 추운 방에 있었지만 결코 더 춥게 느껴지 지 않았다. 제리 멕코리가 변화되었기 때문이었다. 화학적인 변화를 했기 때문에 물리적인 더 추위가 그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우리에게 화학적인 변화만 일어나면 우리에게는 이렇게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놀라운 부흥운동이 씽씽감옥에서 일어났다. 많은 목사님들이 각처에 서 와서 그 감옥에서 집회를 인도했다. 그리고 제리 멕코리가 언제나 그 운동의 중심이였다. 드디어 주지사 죤 딕스(John
A. Dix)는 그의 형기를 8년이나 감해 주었다. 예수님을 만나 화학적인 변화를 하고 나니, 그 힘든 감옥 생활이 8년이 나 단축 되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 우리 자신이 변화되고 나면 우리 들의 어려운 생활은 반으로 줄어 들게 된다. 이런 놀라운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나 자신이 만 나서 결합하는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결합하는 시간이 없으면 절대로 변 화되지 않습니다. 모든 화학적인 변화는 두가지 이상의 물체가 서로 만나는 시점이 있습니다. 이번 전교인 15일 특별 새벽기도회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은 것은 예수님을 만날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누구나 다 변화 됩니다. 변화되지 않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을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의 삶에 화학적인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서 나의 삶이 완전히 새 로워 지기를 원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주저하지 마시고 열심히 이번 전 교인 15일 특별 새벽기도회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주님이 어려 분을 만나 주시고 여러분을 완전히 변화 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 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이번 전교인 15일 특별 새벽기도회가 바로 여러분이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인생에 화학적 변화가 일어날 때인 줄 믿 습니다.
2. 변화되기 위해서는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변화되기 위해서는 버릴 것을 버려야하며, 변화되었다면 또한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버릴 것을 버리지 않고는 새롭게 변화 될 수가 없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변화 된 후에는 버려야 할 것을 아낌 없이, "배설 물"과 같이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적으로 자랑할 것도,신뢰할 것 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태어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 습니다. 그는 택한 선민인 이스라엘 족속이요, 유대 나라에 속한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 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무엇이든지 그에게 유익 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배설물과 같이 버렸습니다.(빌3:5-8) 우리가 변화 되었다고 하나, 옛것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는 온전히 새로 워 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히 새로워 지기 위해서는 버 려야 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아낌 없이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도 지난 날에는 다 나에게 유익하던 것들 입니다. 내게 좋던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버리기가 아깝습니다. 버리 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옛것을 버리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힘써서 버려야 합니다. 새로워 진 것의 더 귀함과 유익함을 깨닫고, 옛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마13:45-46)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이런 비유가 나옵니다. 좋은 진 주를 구하는 장사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극히 값진 진주를 하 나 보았습니다. 그 장사군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가 다 귀하지만, 더 귀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아낌없이 팔아 버렸습니다. 마찬하기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되면 놀라운 축복이 우리에게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가 아끼던 것들, 좋아하던 것들을 아낌 없이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옛 것을 버리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만난 예수님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우리가 좋아하던 것들,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과 사귀는 참으로 변화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제자들은 그들의 모든 것을 다 버 리고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들은 생명과 같이 아끼던 배, 그물, 부 친까지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럴때 그들은 바닷가에서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인생에 전혀 다 른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 났습니다. 옛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새로운 자가 될 수 있읍니다. 어느 젊은이가 생일 날 이웃집과 친척들을 청하여 식사를 같이 하자고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식사준비가 늦어져서 기다리는 동안에 눈깔 사탕이 든 골동품 항아리를 갖다 놓고 잡수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조 반상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할아버지가 골동품 항아리에 들어민 손 이 빠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어 청년이 항아리와 할아버지의 손 을 잡고 당겨 보았으나, 우지직 소리만 날뿐 빠지질 않았습니다. 할아버 지는 자기 손이 빠지지 않는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할 수 없이 그 골동 품을 깨뜨릴 수 밖에 없어서 골동품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골동품을 깨뜨리고 할어버지의 손을 보니, 손엔 사탕이 한 웅큼 쥔 채로 있었습니다. 원래 욕심이 많은 할아버지라 자기 손의 물건을 놓을 줄 모르고 꼭 쥐고 있 어서 귀중한 항아리만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고 꼭 쥐고 있으면, 귀한 것만 깨뜨리고 맙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으면, 교회를 깨뜨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깨뜨립니다. 나 자신을 깨뜨리고 맙니다. 축복을 깨뜨립니다. 이번 특별새벽기도회에 예수님을 만날 것을 사모하면서, 우리의 버릴 것 을 다 버립시다. 나에게 유익하던 것, 나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던 것, 꿀보다도 더 단 새벽잠, 이 모든 것을 이 모든 것보다 더 귀한 예수님을 만 나기 위하여 과감하게 버리시고, 열심히 새벽제단에 참여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다메섹을 향하여 가던 사울에게 갑자기 하늘로 부터 빛이 사울을 둘러 비췄습니다. 그 때 사울은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때 하늘로 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 박하느냐 " 사울이 대답을 했습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 하 늘에서 음성이 들려 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 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이 하나님의 음성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같이 가던 자 들은 그냥 소리로만 들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들은 사울은 변화를 받았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을 소리로만 들은 자들은 변화되지를 못 했습니다. 우리가 변화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의 말씀에 우리를 변화 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보헤미아(Bohemia)에 살고있는 한 종교서적 행상인이 로마 카돌릭 지역을 여행하다가 자물쇠 제조공을 만았다.
그런데 놀게도 그는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성경 말씀을 그렇게 잘 아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자물쇠 제조공이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지금으로 부터 17년 전에 한 천주교 신부가 천주교 신도들이 성경을 읽 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 모든 성경을 다 빼앗아서 불태워 버렸다. 그런데 그성경책들이 타고 있을 때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어서 그 중에 불타고 있는 성경 두장을 날려 보냈다. 그 자물쇠 제조공은 우연히 그 종이를 주 워 들었다. 그리고 그 글을 읽어 보는데, 처음 그의 눈에 들어 온 말씀이 "하늘과 땅은 다 없어진다고 해도 나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마24:35) 말씀이였다. 그 말씀에 큰 감동을 받은 그 사람은 그의 아버지하고 성경이 불타고 있는 곳으로 가서, 불속에서 온전한 성경 하나를 구해 냈다. 그 후로 그는 그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자가 되었다. 불타고 있는 성경 두장이 한가 족을 완전히 변화 시켜 구원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이 부족한 종이 전하는 하나님 말씀은 타다남은 종이와 같이 볼품없고, 부족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아멘으로 받아들일때 여러분의 삶에 놀라 운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킬 줄 믿습니다. (살전2:13) 말씀을 보면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속에서 역사 하여 우리들을 변화 시킴니다. (벧전1:23) 말씀을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 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됩니다. (딤후3:1) 말씀을 보면 "또 네가 어려서 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를 변화 시키는 지혜의 능력이 있습니다. (요17:17) 말씀을 보면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 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변화 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우리가 변화 됩니다. 이번 전교인 15일 특별 새벽기도회에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다 참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종이 전하는 부족한 말씀이 지만 정성을 다하여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인 생의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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