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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 (행9:1-18)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울이 변하여 사도 바울이 되는 놀라운 사건을 보여 주고 있다. 큰 자라는 의미의 사울이 지극히 큰 자 주님 앞에 서 고 보니 너무도 작아 보이는 자신을 발견하고, 더 이상 큰 자의 노릇을 버리고 작은 자 바울로 변화된다. 주의 제자들에 대해 살기가 등등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던 사울이다. 당시 최고의 율법 학사인 가말리엘 문 하에서 수학한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뜨이요, 최고의 스타였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특별한 열심을 가진 그,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체포 하라는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을 오늘 본문은 "여 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당한 모습으로 다메섹으로 향하던 길에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자타가 공인하는 그 시대 최고의 스타 큰 자 사울, 그는 정말로 큰 자 이신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된다. 부활의 주님의 그 찬란한 영광 그 큰 빛(행22:6) 앞에 엎드러질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가 있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신 분의 음성이었다.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 우리는 성경에서 이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다른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잠시 살펴 보면, 마태복음 3:16-17절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 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 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 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 려 오는 소리이었다. 마태복음 17:5절에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 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 하는지라"고 했다.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에 취하여 황홀경에 빠져 있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들려 온 소리이다.
요한복음 12:28절에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 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했다. 십자가를 눈앞에 두신 예수님의 기도에 응답으로 들려 온 소리이다. 출애굽기 3:4-5절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 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 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고 했다. 시내 산에서 양치기하던 모세에게 들려 온 소리이다. 사무엘상 3:10-11절에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 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고 했다.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던 사무엘에게 들려 온 소리이다. 창세기 22:11-1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 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 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했다. 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던 아브라함에게 들려 온 소리이었다. 사도행전 1:11절에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 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했다. 승천하시는 주님을 쳐다보고 있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들려 온 소리이다. 이처럼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는 여러 사람들에게 들려 왔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특별한 소리이었다. 오늘 본문의 사울을 바울로 변화하게 한, 그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도 특별한 뜻이 있다. 다메섹 도상에서 들려 온 주님의 음성,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 에 귀를 기울여 보고져 한다.
1.사울아 사울아 본문 4절에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 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이라고 했다. 그 시대 최고의 스타로서 기새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향하던 사울에게 정말로 큰 자로부터 들려 오는 첫 번째 소리이다.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이다.
⑴.먼저 찾아오신 사랑. 요한일서 4: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 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다. 우리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으나, 하나님은 화목제물로 그 아들 예수를 보내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다. 죄와 허물로 영영 죽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먼저 찾아 주시고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 주신 것, 이 놀라운 사실이 예수님의 사랑이다. 곧 선수적 사랑이다. 우리 인간의 사랑과 같이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주어지는 사랑이 아니다. 나의 조건이나 반응에 상관없이 쏟아 부어 주시는 무조건적 사랑 이다. 자신의 목숨까지 십자가에 내어놓는 희생적 사랑이다. 로마서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 느니라"고 했다.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한 마리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 위에 속죄 제물로 내어놓으심으로 확증하셨다. 이런 선수적인 사랑이 다메섹 도상의 사울을 찾아오신 것이다. 이 사랑이 바로 구원의 은총이다. 나같은 죄인도 속죄함 받아서 하나님 앞에 옳은 사람 됨은 어린 양 예수의 이런 선수적 사랑 때문이다. 이 어찌 놀라운 구속의 은총이 아닌가!
⑵.친히 불러 주신 사랑 요한 계시록 3: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 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 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다.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며 찾아 오셔서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 문 열어 그를 영접하면 나는 그로 더불어, 그는 나로 더불어 함께 먹고 마시는 임마누엘의 삶을 살게 된다는 놀라운 축복이다. 임마누엘의 삶, 주님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 바로 이것이 천국의 삶이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 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바로 우리의 찬송이다. 우리는 생각해 본다. 그가 나를 모르셨다면, 내 어찌 그를 알 수 있었으며 그가 나를 찾지 않으셨다면, 내 어찌 그를 만날 수 있었으며 그가 문을 두드려 날 부르지 않으셨다면, 내 어찌 그를 영접하였으리 요. 이 사실이 은혜이요, 사랑이요, 축복이다. 아무런 자격도 없는 내게 거 저 주시니 선물이다.
2.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본문 5절에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했다. 그 시대 최고의 스타로 스스로 큰 자로 여겼던 사울, 그래서 체포 영 장을 가지고 다메섹을 향해 살기 등등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달려가는 사울이다. 그러나 그가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듣고, 부활의 주 님 앞에 서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깨닫게 된다. 살기 등등하던 위세와는 달리 죽어지는 목소리로, 기어들어 가는 목 소리로 "주여 뉘시오니까" 묻고 있다. 참으로 궁금할 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그 시대 최고의 스타를 이토록 초라하게 만드는 이 분은 누구 일까 땅에 엎드러져 있을 수밖에 없는 사울에게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 리 그 두 번째 소리는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이었다. 온유하신 주님의 음성이었다.
⑴.나는 예수라 마태복음 1: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이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 할 자"이시다. 물에서 건져내는 것도 아니요, 불에서 살려 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사도행전 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 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다. 천하 인간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의 죄에서 구원해 내는 일 이다.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모두다 자신들의 죄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죽음에서 구원해 내는 "구원자" 예수이시다.
⑵.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도행전 22:4-5절에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 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 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 려고 가더니"라고 했다. 사울은 바리세인들이나 서기관들, 제사장들처럼 예수를 핍박하는 것 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알았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특별한 열심을 가지고 예수를 핍박하고 있다. 사울은 스스로 고백하기를,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고, 죽일 때에 가편 투표를 하였다.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여 군중을 격노케 하여 형벌을 가하였고, 예루살렘에서 한이 차지 않아 외국의 성까지도 갔었 다고 한다.
⑶.그래도 나는 너의 구원자 본문 5절에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했다. 참으로 어마 어마한 말씀이다. 너무도 엄청난 큰 사랑의 말씀이다. 그 시대 최고의 스타로 스스로 큰 자라고 자부하던 사울이지만 도무지 상 상할 수 없는 큰 사랑이요, 정말로 큰 자의 모습이다. 너는 나를 향하여 대제사장의 권세를 받아 가지고 살기 등등하게 덤 비느냐 내 양 떼를 죽이고 옥에 가두느냐 예루살렘에서 속이 차지 않 아 외국까지 쫓아가느냐 그러나 나는 너를 미워할 수 없다. 너를 외면 할 수 없고 버릴 수 없다. 나는 너까지도 구원해야 할 "구원자 예수"이다고 하신다. 그 주님의 온유한 음성, 그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 참으로 놀라운 사랑의 목소리이다. 그 시대 최고의 스타로 당당하던 사울, 그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말씀이다. 그토록 자신을 향하여 핍박의 칼부림을 하였건마는 원수 갚음이 아니라 용서만으로도 할 말이 없는데 용서를 뛰어넘어 "구원"을 주신다니 참으로 큰 사랑이요, 큰 자의 모습이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자신이 감히 쳐다 볼 수도 없는 큰 사람, 하늘의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요(행26:13), 이 세상의 그 어떤 빛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빛이요(행 22:6), 부활의 주님의 영광이 빛나는 그 찬란한 빛 앞에서 자신의 참 모 습, 작은 자 "바울"을 발견하게 된다.
3.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본문 6절에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고 했다. 지극히 큰 자 앞에서 스스로 큰 자라고 여겼던 사울이 자신의 참 모 습 작은 자 "바울"임을 깨닫고난 후에 들은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 리 그 세 번째 주님의 음성이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기록은 사도행전에 3차례 기록되어 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 처음이고, 두 번째는 22:3-16에, 세 번째는 26:9-18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22:10절에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 사대 일어나 다멕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고 했다.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지금까지의 스스로 크게 여겼 던 큰 자로서의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자신의 참 모습인 작은 자 바울 로서의 삶을 주님께 구하고 있다.
⑴.일어나라 본문 6절에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고 했다. 여기서 "일어나라"는 스스로 일어나 서라는 말이다. 사도행전 26:16절 에 "일어나 네 발로 서라"고 했다. 자기 스스로 일어나 서는 것을 우리는 "자립"이라고 한다. 곧 자립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남을 위해서 일하려는 사람은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 의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짐을 나누어 질 수 있겠는가 더욱이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복음을 위해 살려는 사람이면 자신의 신 앙이 굳건한 자라야 한다. 곧 구원받은 자라야 한다.
⑵.성으로 들어가라 바로 다메섹 성이다(행22:10).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살기 등등하 게 들어가려던 성이다. 주의 양 떼를 사로잡으러 가던 성이다. 그러나 그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게 스스로 걷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사람 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 성 안으로 들어갔다. 초라한 모습이다. 그 시대 최고의 스타로서는 도무지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다. 앞을 볼 수도 없고, 남들의 도움이 없이는 걸을 수도 없는 모 습이다. 바로 작은 자의 모습이다. 주님 앞에 선 사울의 모습이다.
⑶.네게 행할 것을 이를 자 주님이 사울에게 다메섹 성 안으로 들어가라 하심은 그곳에 주님의 예비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거기에 있다고 하신다. 본문 10-12절에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고 했다. 사도 바울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주님이 직접 말씀하실 수도 있는 일 인데 다메섹 성 안의 아나니아를 사용하신다. 곧 이미 존재하는 교회를 (행9:19) 통하여 당신의 일을 추진해 가심을 알게 된다. 소위 말하는 하나님의 직통 계시에 대하여 우리 성도들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울에게 주어진 "직통 계시"도 아나니아라는 또 다른 제자에게 임한 계시와 하나가 될 때 성취되는 모습이다. 곧 "계시"와 "계시"가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모습이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여러 은사들도 말도 많고 탈도 많 지만, 결국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가 되어 합력하라는 말씀이다. 나 혼자만의 은사는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한다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14:19절에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다. 나는 잘 하였으나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못한다면 일만 마디의 방 언도 남을 가르치고 깨우칠 수 있는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다섯 마디의 가르치는 말이 더 낫다는 말씀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직통 계시를 받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받은 계시나 은사 등이 교회를 통하여 또다른 계시에 의해서 성취되고 그로 인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게 된다는 말씀이다. 본문 17-18절에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 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고 했다. 초라한 모습의 사울, 앞을 보지도 못하는 사울, 그에게 임한 계시가 아무리 크다해도 아나니아의 안수로 성령님 충만하게 하심과 다시 보게 하심이 없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나니아에게 임한 주님의 계시가 합동할 때 사울의 다메섹 도상의 변화가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⑷.택한 나의 그릇 본문 15-16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 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 리라"고 했다. 사울, 그는 몰랐지만 그의 한 평생은 이미 주님의 뜻 안에 있었다. "택한 나의 그릇"으로 주님의 선택을 벗어날 수 없었다. 주님의 뜻을 모르고 오히려 주님을 핍박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했으 나, 그의 매인바 끈은 이를 용납지 않았다. 사도행전 20:22절에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 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심령에 매임"을 받아 한 평생 주님의 택한 그릇으로서 살았다. 많은 이방인들 앞에서 주의 이름을 전하였고, 여러 임금들 앞에 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주의 이름을 전하는 것으로 한 평생을 살 아갔다. 그로인하여 수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어야 했으며, 매를 맞기도, 옥에 갇히기도, 돌에 맞기도, 태풍에 휘말리기도 했다. 춥고, 배고프고, 헐벗 고, 굶주리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다메섹 도상은 사도 바울의 삶을 180°바꾸어 놓은 사건 이다. 그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가 완전히 사람을 바꾸어 놓았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BC)의 사울과 예수 그리스도 이후(AD)의 바울은 완전히 변화된 다른 사람이다.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뀐 것이다. 주님의 뜻을 알고 그 주님을 위하여 한 평생을 똑바로 바라보고 똑바로 걸어갔다. 디모데후서 4: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했다. 자신의 떠날 기약이 가까움을 바라보며, 이처럼 자신 있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더욱이 주님 앞에서, 교회 앞에서, 후손들 앞에서, "선한 싸움을 싸웠노라", "나의 달려갈 길 을 마쳤노라", "믿음을 지켰노라"고 외칠 수 있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 보자. 사도 바울의 이 당당함이 어디에서 왔을까 바로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서 왔다. 사도행전에서 보는데로 사도 바울은 힘든 구비 구비에서 "다메섹 도상의 주님"을 떠올리며, 그 핍박과 고난, 환란과 역 경의 고통을 이겨 나가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어려움을 해치고 나갈 힘의 원천이 되는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가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듣고 있는지 그것은 중요하다. 시내 산의 모세처럼, 변화산 산정의 베드로처럼, 모리아 산의 아브라 함처럼, 성전에서 기도하던 사무엘처럼, 다메섹 도상의 사도 바울처럼,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빠져 황홀경에 잠기는 경험이 필요하다.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심령이 매인바 된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겠다. "선한 싸움을 싸웠노 라",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노라", "믿음을 지켰노라" 언제 어디서나 외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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