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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 (행20,35)

본문

1,자신으로부터 해방된다.
2,형제들과의 참된 결합이 된다
3,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게된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다시 봅니다. "범사에 너히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간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함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런데 오늘의 이 말씀은 4 복음서에는 없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소개 하면서 강조하는 부분이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친히라는 말을 힘주어 강조 했던 것입니다. 4 복음서에 없는 말이라고 해서 이상해 할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21;25절에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하신 일들을 다 기록하지 못했음을 말함입니다. 4 복음이 기록하지 못한 귀중한 말씀인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는 이 말씀을 오늘의 제목으로 삼아 함께 은혜와 복을 받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러나 실지로 우리들은 이 말의 참 뜻을 알지를 못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 말씀과 반대대는 삶을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이 복이 아니라 받는 것이 복인줄로 알고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할때도 우리들은 뭔가를 자꾸 달라고만 하게됩니다. 고요히 하나님 앞에 나아와 겸손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 오늘은 내가 형제들에게 무었을 주어야 하겠습니까"라고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하여 남을 주어야 할 것이 무었인가를 위한 기도를 들이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를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은 그 말씀을 하신 분의 삶 전체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하신 주님께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으로 말하면 주님이 가장 복되신 분이신 것입니다.
1,자신으로부터 해방이 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말씀은 주는 것만이 복이고 받는 것은 복은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는 것도 복이고 받는 것도 복인데 이 두가지의 복 중에 참 더낳은 복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옛 말에 "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말은 돈을 모으는 비결을 말함입니다. 돈을 모을려면 굳은 땅과 같은 마음가짐이 되지 않으면 모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돈을 모으자면 먹을 것도 먹지 않고 입을 것도 입지 않고 쓸것도 쓰지 않고 구두쇠가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결과 그 모은 자산을 통해서 그 쌓아져가는 재산을 보면서 자기 삶에 얻는 교훈은 무었일까요 굳은 땅에 물이 고이는 것은 틀림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고인 물은 반듯이 썩는다는 것도 불변의 지리입니다. 재산이 쌓아져가는 것을 보면서 살다보면 그 쌓이는 재미속에 모든 것을 잃게된다는 말입니다. 나중엔 자기 자신도 잊어 버리게되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게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두 호수를 알고 있습니다. 이 호수들이 하도 커서 사람들은 바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헐몬산에서 쌓인 눈이 녹으면서 이 두 호수로 물이 흘러 들어 옵니다. 위에 있는 것은 갈릴리 호수이고 그 밑에 있는 것이 사해 바다 입니다. 크기로 말하면 갈릴리는 사해에 비교가 아니될만큼 작은 호수입니다. 그러나 사해는 크기만 컷지 거기에는 생물이 살지를 못하는 이름 그대로 죽은 죽음의 바다 즉 사해인 것입니다. 위에 있는 갈릴리 호수는 비록 작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각종 물고기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리들은 간단합니다. 살아 있는 갈릴리 호수는 헐몬산으로부터 받은 물을 저장만함이 아니고 다시 밑으로 흘러 보내는 일을 합니다 그 결과 갈릴리 호수는 살아 있고 반면에 사해바다는 위로부터 잔득 욕심스럽게 받기만 받았지 한 방울의 물도 절대로 흘려 보내는 일이 없습니다. 결국 풍성해야할 것같은데 사해는 죽고 말았습니다. 받기만 하고 줄줄을 모르면 의타심이 생겨서 자립의 정신을 잃게됩니다. 우리들의 사회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들의 가정 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들의 교회 안에 기관들의 운영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들의 것으로 아니 순수한 나의 것으로 뭔가를 주면서 살려고 할 때 우리는 순수한 나를 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다운 나를 참으로 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내가 뭔가를 주면서 살때 발견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주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2,형제들과의 참된 결합이 된다. 우리들이 주 안에서 형제라는 사실을 언제 느낄 수 있을까요 나와 내 곁에 있는 분과의 형제라는 사실을 언제 느낄 수 있습니까 곁에 있는 자체로 형제를 느끼실 수 있습니까 함께 찬송하고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느끼는 것입니까 성경에 형제라는 말이 무려 696번이나 기록되 있습니다. 이 말은 일년에 거의 하루에 두번 정도는 형제가 누구인지를 느껴야하는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데 형제는 형제인 것 같은데 형제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음은 무었때문일까요 서로를 향한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감사가 없습니까 감사가 없는 것은 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것만을 말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줄수 있습니다. 서로를 위하여 기도로 더 큰 것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짐사님들이여 한주에 한 번 정도라도 같은 집사님들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기도를 하십니까 권찰님들이여 구역에 속한 가정들의 식구들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기도를 해 주고 있습니까 교사 선생님들이여 여러분들이 맡은 반의 생도들을 위하여 언제 기도를 하십니까 성도들이여 여러분의 곁에 있는 형제를 위하여 기도해 보십니까 새벽기도들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멀면 가까운 교회에서도 얼마든지 하실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교회를 세우는 일을 위하여 부유한 성도의 가정을 방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말했더니 쾨히 승락을 하고 필료한 금액을 주었습니다. 너무도 고마워서 감사의 말을 할려고 하는데 그분이 말을 가로 막았습니다. "형제여 제발 제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말아 주십시요 오히려 저는 제자신을 위하여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형제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그 말씀을 생활로 체험케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들리고 있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번 교회 안에 여러 기관들의 여름 행사때 많은 분들의 물심양면의 도우심으로 많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청년들이 금번 봉사 활동을 통하여 헌신한 것도 많치만 가르치면서 주면서 주는 것을 통하여 배운 것도 상당히 많은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주면서 아 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저들이 나의 형제 였구나 하는 것도 배웠을 줄로 압니다. 이것을 남의 도움이 없이 순수하게 전적으로 우리네 힘만으로 봉사를 할 수 있었다면 더 만ㄶ고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서로 형제인 것을 느끼는 것은 주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3,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게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몸소 실천함으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있는 동안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되어서 젖을 먹이면서 비로서 " 어머니의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아니 둘 사이에서 늘 주는 편은 어머니 쪽입니다. 그리고 늘상 받기만 하는 쪽이 어린 아이 편입니다. 이 둘 사이에서 어느쪽편이 만족을 더 느끼면서 삽니까 이 줄 사이에서 어느쪽편이 더 풍족함을 느끼면서 삽니까 말한 것도 없이 주고 있는 어머니의 쪽입니다. 우리들에게 줄 수 있는 기회가 오거든 가능한한 물리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들이 주면서, 많이 더 많은 것을 주면서 살때 그 주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은혜도 받기만 하고 줄줄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릅니다. 눅10;25-37절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행적이 있습니다. 36절에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다 마치시고 주님께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무렀습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삼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그대 37절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저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그럼 사마리아 사람이 무었을 했단 말입니까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산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거반 죽게될 정도로 매를 맞고 재물을 다 약탈 당했습니다. 죽어가는 중에 길을 지나는 행인의 걸음걸이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때마침 한 제사장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자기도 어려움에 휩싸일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냥 지나쳐 갑니다/. 다음엔 레위인이 지나 갑니다. 역시 제사장과 같이 그냥 지나쳐 갑니다. 마지막으로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 갑니다. 사마리아라고함은 천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몸을 돌볼 생각은 없고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고 치료를 해 주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 중에도 제사장과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레위와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 중에 누구를 닮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의 목표가 무었입니까 "선고양육"'"봉사" ''사랑"입니다. 이 네가지는 다 주는 것들입니다. 여러분들이 건강하십니까 약하고 병든자를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것이 있습니까 헐벗은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는 것이 있습니까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고인 물은 언젠간 썩게됩니다. 그러나 샘물은 퍼 낼 수록 더 많은 물이 솟아 납니다. 주시는 자들이 다 되시어서 자신이 물질에서 해방이 되시고 주시는 자들이 다 되시어서 형제애를 느끼시며 주시는 자들이 다 되시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느끼시면서 더 풍족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는 자의 복을 다 누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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