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자 (행2:1-4)
본문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과 더불어 끝까지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겨우 120명이었습니다. 그들이 모 두 예루살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마지막으 로 하신 그 말씀을 믿고, 성령님을 받기 위해 열흘 동안 한 곳에서 합심기도 를 하였습니다. 요즘 말로 사도 베드로를 중심으로 해서 부흥회를 한 것입니다. 하루, 이틀, 성령님강림이 있을 때까지 그들의 기도는 쉬지 않고 계속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열심으로 기도했 습니다. 오직 성령님, 오직 예수가 그들의 기도 목표였습니다. 드디어 오순절날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여 있을 때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 눈에 보였 습니다. 그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내렸습니다. 동시에 저희가 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1단계 약속이 그들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 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난 중에 초대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님충만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는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충만은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면 누구나 꼭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적극적인 명령이기 때문입니다(엡 5:18). 우리가 왜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합니까 구약시대는 성부 하나님께서 다 스리는 때였고, 그 후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셔서 다스리셨고, 예수님 승천 이후에는 바로 성령님께서 다스리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이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직접 따라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 웠습니다. 복음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잡히시게 되니, 그렇게 큰 소리를 치던 베드로가 아주 하찮은 비자에게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 하는 비겁한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님충만을 받고난 후, 베드로의 마음은 180도로 달라졌습니다. 큰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붙들어서 이단자로 처형한 대제사장과 바리 새인들 앞에서 예수가 메시야시며, 당신들이 십자가에서 죽인 예수가 죽은 지 3일 만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셨으며, 당신들도 예수를 믿어 야 구원을 받는다고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우리도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충만 을 받을 때, 비로소 오직 예수, 오직 성령님 하고 기쁨으로 전도를 할 수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알 게 하고, 또한 전하게 하며,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허락하신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말세에 하나님께서 남녀 종에게 성령님을 물붓듯이 충만히 부어 주시겠다고 예언하였습니다. 지금은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그 말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떤 특별한 선지자들이 왕에게만 성령님의 충만을 허락하셨습니다. 또 성령님이 오 셨다가 가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말세시대, 믿는 자가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성령님충만을 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성령님충만한 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난 뒤부터 언제나 혼자서는 일하시지 아 니하시고,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충만한 베드로를 통해서 큰 일을 하셨습니다. 회개운동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루에
3,000명의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큰 일 입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성령님충만을 주셔서 합작으로 한 일입니다. 또 성전 문앞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 이 사람의 직업은 거지입니다. 장애자요, 거지니까, 최고 불쌍한 자입니다. 이 사람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이 사람을 고쳐서 건강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사도 요한과 베드로, 두 사람이 한 일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그들과 함께 했 기에,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이 이런 큰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뿐만이 아닙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빌립 집사도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광야로 가 이디오피아 간리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전도해 그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했습니다.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대제사장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말만 믿고 예수를 이단자로 생각하여 예수 믿는 자를 크게 핍박하고 없애 고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 그의 잘못을 깨닫고 즉시 회개한 뒤부터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되 어 이방의 여러 곳을 다니며 갖은 고생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하고 교회 를 세웠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전도 에 성공하고, 신약성경을 그의 손으로 반이나 기록하기까지, 이러한 큰 일 을 하게 된 것은 오직 그가 성령님이 충만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함께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바울 사도는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령님충만한 자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성령님충만은 우리 한국 교인이 받아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시작한 기독교가 유럽으로 가서 유럽인을 문화인으로 만들었고, 아주 잘사는 민족으로 만들었습니다. 잘산다는 것은 물질적인 풍 요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건전한 생활, 삶의 질을 말합니다. 그 다음, 기독교가 동아시아로 와서, 극동인 한국으로 와서 아주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한국은 비록 기독교가 전래된 역사가 일세기를 겨우 넘 겼지만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받는 교회에서 지금은 주는 교회로 바뀌어졌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 수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또 선교지에 많은 학교를 세우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는 우수한 우리의 선교사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 은 사계절이 있기 때문에 더운 나라, 추운 나라, 어떤 나라에 가서도 선교 가 가능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은 먹지 못하는 음식이 없습니다. 징그러운 뱀까지 몸 보신한다고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뱀을 식용으로 먹는 아프리카 원시족, 어떤 종족에 가서도 그들과 같이 먹고, 자 고, 선교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국 사람은 양순한 민족이어서 한 번도 외 국을 침략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과거 19세기에 남의 나라를 침략하 고 복음을 전한 서구인들과는 다릅니다. 한국인은 세계 어느 나라라도 가서 복음을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회교권 나라에 가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니, 이런 곳에 가서는 전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회교권에 속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회교국인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지금 우리 나라에 노무자로 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적은 숫자의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외국인 노무자 선교회에서는 그들에게 열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많은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또한 머잖아 남북이 통일될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세계 사람들이 지금 그렇게보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북한에 들어가서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하는데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그래야 북한을 복음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북한 전도는 외국 선교사들의 몫이 아니고 우리의 몫입니다. 여러분, 이 민족을 복음화시킬 사명을 지금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열심히 기도해서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결론 지금 세계는 이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구촌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로 여행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물건들이 국경없이 팔려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발전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복음 전도입니다. 우리 민족의 살 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일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민족을 문화민족으로, 세계의 자랑거리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직 이 나라에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남북한 합쳐서 4천만 명이나 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절 대로 안 됩니다. 우리 모두 오순절 교인들처럼 오직 예수, 오직 성령님충만을 목표로 기도함으로 성령님충만을 받아 남북한 뿐만 아니라,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지 못한 수십 억이나 되는 세계 여러 나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 동참합시다. 이것이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주님 의 지상명령입니다. 요즘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어서 여름을 방불케 합니다. 주위의 곳곳에서는 모내기에 한창입니다. 더욱이 인력이 극히 부족한 시골에서는 동네별로, 친인척별로 서로 서로 상부상조하는 품앗이를 합니다. 서로 돕자는 것이지 요.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유언과 같은 긴 설교를 하시고 이어서 하신 그들을 위한 기도의 끝부분으 로서 "하나되게 하소서"라고 간구하신 곳이다. 여기서 주님은 하나됨의 표 본을 제시하신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내가 하나된 것 같이 이 사람들 도 하나되게 하옵소서"(23절)라는 것입니다.
1.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안에서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하나됨을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주님 안에서의 하 나됨의 범위는 실로 우주적인 하나됨을 말합니다. 그는 제자들로 인하여 복음을 전하여 듣고 믿게 될 모든 사람들도 그 속에 포함 시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됨의 범위에는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바로 그날까지의 모 든 믿는 성도들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이 하나님 을 위한 기도는 바로 오늘 우리들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주적인 성도의 교제를 말하는 것임과 동시에, 이 하나됨의 공동체는 하늘나라에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가 하늘 나라에서 다시 만 나는 그 하나됨까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2.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영광과 사랑속에서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됨을 위하여 살 수 있을까 주님께서는 하나됨을 본 으로 성부와 성자의 하나됨을 제시하십니다.(17:21-23)
그렇다면 성부와 성 자의 하나됨의 관계는 무슨 관계였는가 먼저 그 관계는 영광스러운 관계 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부 에 의해 예수님께 주어진 영광이 교회에 주어졌고, 교회의 하나됨의 표시 가 되었습니다.(22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재의 계시자였고, 이제 교회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의 교통을 위한 도구입니다. 그 다음 에 사랑은 더욱 중요한 개념입니다. 자녀들을 향한 부모들의 사랑은 예수님께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성육신의 사랑과 연결이 되며(17:24),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안에 있는 공동 체에게 알려졌습니다.(17:26). 사실 이 사랑은 예수님의 자기 희생의 행위에 의해서 재정리 되었습니다.(요한13:34) 성도의 공동체가 이 사랑을 실천함을 통하여 성부와 성자 사이의 상호 관계성과 하나됨을 보이는 것은 진실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3.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됨으로 이 세상에 증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주안에서 하나됨에는 분명히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온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됨을 통하여 온 세상에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우리는 서로 를 사랑함으로써 비록 우리가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하나될 수 있으며 아 버지의 사랑안에서 우리는 온전히 하나됨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나됨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너무나도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개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있으며, 심지어는 교인들조차도 진 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됨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부 와 성자의 하나됨 같이 온전히 하나됨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부르시고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됨을 이루어 주 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우리는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충만은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면 누구나 꼭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적극적인 명령이기 때문입니다(엡 5:18). 우리가 왜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합니까 구약시대는 성부 하나님께서 다 스리는 때였고, 그 후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셔서 다스리셨고, 예수님 승천 이후에는 바로 성령님께서 다스리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이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직접 따라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 웠습니다. 복음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잡히시게 되니, 그렇게 큰 소리를 치던 베드로가 아주 하찮은 비자에게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 하는 비겁한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님충만을 받고난 후, 베드로의 마음은 180도로 달라졌습니다. 큰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붙들어서 이단자로 처형한 대제사장과 바리 새인들 앞에서 예수가 메시야시며, 당신들이 십자가에서 죽인 예수가 죽은 지 3일 만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셨으며, 당신들도 예수를 믿어 야 구원을 받는다고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우리도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충만 을 받을 때, 비로소 오직 예수, 오직 성령님 하고 기쁨으로 전도를 할 수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알 게 하고, 또한 전하게 하며,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허락하신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말세에 하나님께서 남녀 종에게 성령님을 물붓듯이 충만히 부어 주시겠다고 예언하였습니다. 지금은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그 말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어떤 특별한 선지자들이 왕에게만 성령님의 충만을 허락하셨습니다. 또 성령님이 오 셨다가 가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말세시대, 믿는 자가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성령님충만을 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성령님충만한 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난 뒤부터 언제나 혼자서는 일하시지 아 니하시고,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충만한 베드로를 통해서 큰 일을 하셨습니다. 회개운동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루에
3,000명의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큰 일 입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성령님충만을 주셔서 합작으로 한 일입니다. 또 성전 문앞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 이 사람의 직업은 거지입니다. 장애자요, 거지니까, 최고 불쌍한 자입니다. 이 사람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이 사람을 고쳐서 건강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사도 요한과 베드로, 두 사람이 한 일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그들과 함께 했 기에,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이 이런 큰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뿐만이 아닙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빌립 집사도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광야로 가 이디오피아 간리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전도해 그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했습니다.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대제사장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말만 믿고 예수를 이단자로 생각하여 예수 믿는 자를 크게 핍박하고 없애 고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 그의 잘못을 깨닫고 즉시 회개한 뒤부터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되 어 이방의 여러 곳을 다니며 갖은 고생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하고 교회 를 세웠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전도 에 성공하고, 신약성경을 그의 손으로 반이나 기록하기까지, 이러한 큰 일 을 하게 된 것은 오직 그가 성령님이 충만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함께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바울 사도는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령님충만한 자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성령님충만은 우리 한국 교인이 받아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시작한 기독교가 유럽으로 가서 유럽인을 문화인으로 만들었고, 아주 잘사는 민족으로 만들었습니다. 잘산다는 것은 물질적인 풍 요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건전한 생활, 삶의 질을 말합니다. 그 다음, 기독교가 동아시아로 와서, 극동인 한국으로 와서 아주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한국은 비록 기독교가 전래된 역사가 일세기를 겨우 넘 겼지만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받는 교회에서 지금은 주는 교회로 바뀌어졌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 수천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또 선교지에 많은 학교를 세우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는 우수한 우리의 선교사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 은 사계절이 있기 때문에 더운 나라, 추운 나라, 어떤 나라에 가서도 선교 가 가능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은 먹지 못하는 음식이 없습니다. 징그러운 뱀까지 몸 보신한다고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뱀을 식용으로 먹는 아프리카 원시족, 어떤 종족에 가서도 그들과 같이 먹고, 자 고, 선교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국 사람은 양순한 민족이어서 한 번도 외 국을 침략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과거 19세기에 남의 나라를 침략하 고 복음을 전한 서구인들과는 다릅니다. 한국인은 세계 어느 나라라도 가서 복음을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회교권 나라에 가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니, 이런 곳에 가서는 전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회교권에 속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회교국인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지금 우리 나라에 노무자로 와서 일하고 있습니다. 적은 숫자의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외국인 노무자 선교회에서는 그들에게 열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많은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또한 머잖아 남북이 통일될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세계 사람들이 지금 그렇게보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북한에 들어가서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 하는데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그래야 북한을 복음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북한 전도는 외국 선교사들의 몫이 아니고 우리의 몫입니다. 여러분, 이 민족을 복음화시킬 사명을 지금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열심히 기도해서 성령님충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결론 지금 세계는 이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구촌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로 여행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물건들이 국경없이 팔려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발전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복음 전도입니다. 우리 민족의 살 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일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민족을 문화민족으로, 세계의 자랑거리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직 이 나라에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남북한 합쳐서 4천만 명이나 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절 대로 안 됩니다. 우리 모두 오순절 교인들처럼 오직 예수, 오직 성령님충만을 목표로 기도함으로 성령님충만을 받아 남북한 뿐만 아니라,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지 못한 수십 억이나 되는 세계 여러 나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 동참합시다. 이것이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주님 의 지상명령입니다. 요즘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어서 여름을 방불케 합니다. 주위의 곳곳에서는 모내기에 한창입니다. 더욱이 인력이 극히 부족한 시골에서는 동네별로, 친인척별로 서로 서로 상부상조하는 품앗이를 합니다. 서로 돕자는 것이지 요.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유언과 같은 긴 설교를 하시고 이어서 하신 그들을 위한 기도의 끝부분으 로서 "하나되게 하소서"라고 간구하신 곳이다. 여기서 주님은 하나됨의 표 본을 제시하신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내가 하나된 것 같이 이 사람들 도 하나되게 하옵소서"(23절)라는 것입니다.
1.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안에서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하나됨을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주님 안에서의 하 나됨의 범위는 실로 우주적인 하나됨을 말합니다. 그는 제자들로 인하여 복음을 전하여 듣고 믿게 될 모든 사람들도 그 속에 포함 시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됨의 범위에는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바로 그날까지의 모 든 믿는 성도들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이 하나님 을 위한 기도는 바로 오늘 우리들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주적인 성도의 교제를 말하는 것임과 동시에, 이 하나됨의 공동체는 하늘나라에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가 하늘 나라에서 다시 만 나는 그 하나됨까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2.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영광과 사랑속에서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됨을 위하여 살 수 있을까 주님께서는 하나됨을 본 으로 성부와 성자의 하나됨을 제시하십니다.(17:21-23)
그렇다면 성부와 성 자의 하나됨의 관계는 무슨 관계였는가 먼저 그 관계는 영광스러운 관계 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부 에 의해 예수님께 주어진 영광이 교회에 주어졌고, 교회의 하나됨의 표시 가 되었습니다.(22절)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재의 계시자였고, 이제 교회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의 교통을 위한 도구입니다. 그 다음 에 사랑은 더욱 중요한 개념입니다. 자녀들을 향한 부모들의 사랑은 예수님께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성육신의 사랑과 연결이 되며(17:24),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안에 있는 공동 체에게 알려졌습니다.(17:26). 사실 이 사랑은 예수님의 자기 희생의 행위에 의해서 재정리 되었습니다.(요한13:34) 성도의 공동체가 이 사랑을 실천함을 통하여 성부와 성자 사이의 상호 관계성과 하나됨을 보이는 것은 진실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3.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됨으로 이 세상에 증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주안에서 하나됨에는 분명히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온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됨을 통하여 온 세상에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우리는 서로 를 사랑함으로써 비록 우리가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하나될 수 있으며 아 버지의 사랑안에서 우리는 온전히 하나됨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하나됨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너무나도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개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있으며, 심지어는 교인들조차도 진 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됨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부 와 성자의 하나됨 같이 온전히 하나됨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부르시고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됨을 이루어 주 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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