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바람 (행2:1-4)
본문
교회력으로 볼 때 오늘은 성령님강림주일입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뒤에 약속하신 대로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강림하셨습니다. 전세계교회가 이것을 기리기 위해 오늘을 성령님강림주일로 지킵니다. 성령님강림의 의미 신학에서는 성령님강림 사건을 새생명을 주는 사건이라고 설명합니다. 특별히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은 성령님강림 사건을 재창조 사건이라고 보았습니다. 죄로 인해 훼손되고, 망가지고, 일그러진 인간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셔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성도란 성령님의 능력 안에 있는 성도이고, 진정한 교회란 성령님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찬송 172장 1절에 보면 "빈들에 마른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님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님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라고 노래했습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메말라 죽어 가는 대지 위에 단비가 내려 새생명을 베풀 듯이, 성령님이 우리 위에 강림하시면 죽어 가는 우리의 영혼이 새생명을 찾을 수 있게됩니다. 그래서 성령님강림은 새생명을 주는 새로운 창조 또는 재창조 사건인 것입니다. 창 2:7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셔서 생령이 됐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미 인간이 창조될 때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불어넣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짓게 되자 인간 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은 점점 소멸되기 시작하고,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루터의 말처럼 범죄한 인간 안에 하나님의 영은 흔적만 남게 됐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성령님강림이란 바로 이런 인간들에게 다시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이 불어넣어지는 사건입니다. 성령님을 충만히 받은 인간은 새생명을 얻게 되고, 과거와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고 했습니다. 이제 성령님강림으로 전혀 새로운 인간, 신인류가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 받은 우리가 바로 새로운 피조물, 신인류인 것입니다. 성령님강림 Story 본문 말씀은 성령님이 최초로 강림하신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행 1:4절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셨고 또 당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제자들이 이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두려웠지만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고,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 수가 1:15절에 보면 120이나 됐다고 했습니다. 기다리며 기도하던 이들에게 오순절 날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이들 모두가 다 성령님 충만함을 받게 됐습니다. 성령님의 은사도 받고,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놀라운 체험을 했겠습니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류 역사상 초유의 사건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 체험을 2절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이들이 그 놀라운 체험을 표현하기 어려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성령님과 바람 당시 예루살렘에 이제까지 인간에 겪어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바람이 분 것입니다. 성령님의 바람이요 거룩한 바람입니다. 바람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자연계에 부는 물리적 현상으로서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 뺨을 스치고, 나뭇잎을 떨게 하고, 태극기를 휘날리게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인간사에 부는 바람이 있습니다. 정치바람, 치맛바람, 투기바람, 춤바람 등등. 이걸 세상풍조라고도 부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세상 한 복판에 부는 이런 바람에 능수버들처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바람들 말고 전혀 다른 바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특히 요 3:8절에 보면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 성령님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영적 세계에 불어오는 바람입니다. 즉 성령님의 바람입니다. 그러면 왜 바람일까요 우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 실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시절 읽었던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영시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다만 나뭇잎 하나의 흔들림에서 바람이 지나는 것을 느끼는 것을." 그렇습니다. 누구도 성령님을 눈으로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나뭇잎 떨리듯이 흔들려 흐느낄 때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를 느낍니다. 저 높은 곳에 세찬 바람맞아 깃발이 펄럭이는 것처럼 내 영혼이 새 힘을 얻게 될 때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를 느낍니다. 다음으로 바람은 강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름철 태풍은 바닷물을 치켜올려 해일을 일으킵니다. 수십 년 된 고목도 쓰러뜨리고, 지붕도 날리고, 건물도 무너뜨립니다. 미국 중부를 강타하는 회오리바람 토네이도는 자동차도, 황소도, 통나무집도 하늘 높이 날려버립니다.
중국 고비사막에 부는 바람은 황사를 하늘 높이 들어올려 수천 키로 떨어진 우리나라에까지 날려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의 바람도 힘이 있습니다. 아무리 강퍅한 사람도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넘어집니다. 아무리 교만한 사람도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꼬꾸라집니다. 성령님의 바람은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람이 지나간 뒷자락에는 언제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남쪽에서 봄바람이 소리 없이 불어오면 얼어붙은 강물이 풀리고 눈 녹은 대지 위로 새싹이 돋아납니다. 열기를 가득 품은 한 여름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과수원 포도송이가 탐스럽게 영글어 갑니다. 가을이 깊어 소슬바람이 불어오면 나뭇잎은 한 잎 두 잎 낙엽 되어 길 위를 뒹굽니다. 겨울 문턱을 넘어 북쪽에서 삭풍이라도 불라치면 온 세상은 그만 꽁꽁 얼어붙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개인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나라와 민족이 변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요 우선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납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어느 날 에스겔 골짜기에 이 성령님의 바람이 불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가득히 쌓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그곳을 지나가게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에스겔이 대답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께서 이 뼈들을 향해 대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에스겔이 그 명하신 대로 대언했더니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와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갔습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뼈 저 뼈 힘을 얻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살아난 뼈들이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납니다. 잃어버렸던 생명을 되찾게 됩니다. 오늘 이 땅에 수많은 뼈들이 뒹굴고 있습니다. 거리거리 나뒹구는 뼈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집안에도 뒹굴고, 동네에도 뒹굴고, 학교에도 뒹굴고, 직장에도 뒹굽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받지 못한 채 여기 저기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이 민족 위에 불어야 하고, 이 상도동 골짜기에 불어야 하고, 우리 집안에 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 불었던 그 바람, 1907년 원산 평양을 중심으로 전국에 불었던 그 바람, 성령님의 바람 거룩한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새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뒤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흩어지는 제자들의 마음에는 허탈감이 가득 차여 있었습니다. 3년 동안 공들여 주님을 따랐건만 그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되 버린 것입니다. 허탈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었습니다. 패배감도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주님과 함께 몸부림 쳐봤지만 그 결과는 이렇게 참담한 실패로구나! 가슴 가득 패배감이 넘쳤습니다. 절망감도 있었습니다. 이제 잡히면 자기들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릴 것이라는 두려움과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 근심이 어우러져 감당키 어려운 절망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을 받아 예루살렘에 모였지만 이런 마음들은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을 걸어 잠그고 기도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던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 바람이 허탈감도, 패배감도, 절망감도 다 날려버렸습니다. 문을 활짝 열고 예루살렘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이런 마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바람으로 우리 마음 가득 허탈감, 패배감, 그리고 절망감이 넘쳐납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태풍이 서울 시내 오염된 공기를 한꺼번에 씻어 내듯이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우리 안에 있는 허탈감, 패배감, 절망감을 한꺼번에 씻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새 힘을 얻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각 가정에, 이 나라 민족 역사 위에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서 달리고 뛰어야 합니다. 또 하나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님강림절이 구약의 오순절과 같은 날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 심장합니다. 구약의 오순절은 유월절 지난 50일째 되는 날 지키는 명절이라 해서 오순절이라 합니다. 다른 말로는 맥추절이라 하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식인 밀을 추수합니다. 추수한 알곡을 거둬들인 다음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절기가 바로 오순절입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오순절에 불었다는 것은 바로 영적인 추수와 연관됩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영적인 추수를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에 성령님의 바람이 불자 행2:41에 보면 그 날에 삼천 명이 예수믿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말씀합니다. 놀라운 영적인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영적 결실이 주춤해 졌습니다. 특히 95년을 기점으로 한국교회 부흥이 멈췄다고들 합니다. 이 땅에 다시 한번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이 민족 위에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민족 복음화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려면 우선 기도할 때 성령님의 바람이 붑니다.
본문 1:14를 보면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120명이나 되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한마음으로 기도했을 때 성령님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은 아무 때나 불지 않습니다. 불만한 조건과 상황이 갖춰질 때 붑니다. 매서운 한겨울 북서풍은 저 시베리아 지역에 거대한 한랭기단이 형성됐을 때 불어옵니다. 지루한 장마 뒤에 불어오는 태풍은 필리핀 동남방 북태평양 상공에 고온 다습한 기단이 형성됐을 때 불어옵니다. 이제 우리도 기도의 기단을 마련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바람은 얼마나 기도하느냐에 따라 그 세기가 달라집니다.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기도의 기단을 만들면 솔솔 바람, 산들바람밖에 불지 않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뜨겁게 기도하면 태풍과 같은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리고 혼자서 기도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기도하면 더 효과적입니다. 온 교회가 함께 합심해서 기도하면 놀라운 기도의 기단이 형성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진원지가 돼서 이 상도동 골짜기에 성령님의 바람이 불 것입니다. 이 민족 역사 위에 성령님의 바람이 불 것입니다. 다음으로 회개할 대 성령님의 바람이 붑니다.
행 2:37-8을 보면 베드로가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 성령님의 바람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면 그 사람에게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부는 현상도 따지고 보면 기압 차에서 생겨난 현상입니다. 공기의 밀도가 높고, 공기의 압력이 높은 곳에서 공기의 밀도가 낮고, 공기의 압력이 낮은 곳으로 공기가 이동해 가는 현상이 바로 바람입니다. 그러니까 기압 차기 클수록 바람은 세게 붑니다. 마치 높이가 높은 폭포가 높이가 낮은 폭포보다 물이 세차게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우리를 낮추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나는 마른 막대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나는 만물의 찌꺼기 같은 존재입니다.' 고백한 사람들에게 성령님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경고를 받고도 회개는커녕 주님을 비난하고 정죄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성령님의 바람이 미풍도 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철저하게 회개하느냐에 따라 성령님의 바람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얼마나 낮추느냐에 따라 성령님의 바람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끝으로 영국의 찬송작가 몽고메리의 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목은 성령님이여 오소서 입니다. 주 하나님, 거룩한 영이시여 지금 허락된 이 시간에 오순절 그 날처럼 당신의 권능으로 내려오소서. 우리가 정한 장소에 한 마음으로 만나 우리 주의 약속인 은혜의 성령님을 기다리나이다. 파도치는 바다의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저마다의 마음속에 한 영으로 하나의 숨결로 한 가지 감격으로 내려오소서.
그런데 인간이 죄짓게 되자 인간 안에 있던 하나님의 영은 점점 소멸되기 시작하고,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루터의 말처럼 범죄한 인간 안에 하나님의 영은 흔적만 남게 됐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성령님강림이란 바로 이런 인간들에게 다시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이 불어넣어지는 사건입니다. 성령님을 충만히 받은 인간은 새생명을 얻게 되고, 과거와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고 했습니다. 이제 성령님강림으로 전혀 새로운 인간, 신인류가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 받은 우리가 바로 새로운 피조물, 신인류인 것입니다. 성령님강림 Story 본문 말씀은 성령님이 최초로 강림하신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행 1:4절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셨고 또 당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제자들이 이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두려웠지만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고,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 수가 1:15절에 보면 120이나 됐다고 했습니다. 기다리며 기도하던 이들에게 오순절 날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이들 모두가 다 성령님 충만함을 받게 됐습니다. 성령님의 은사도 받고,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놀라운 체험을 했겠습니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류 역사상 초유의 사건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 체험을 2절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이들이 그 놀라운 체험을 표현하기 어려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성령님과 바람 당시 예루살렘에 이제까지 인간에 겪어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바람이 분 것입니다. 성령님의 바람이요 거룩한 바람입니다. 바람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자연계에 부는 물리적 현상으로서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 뺨을 스치고, 나뭇잎을 떨게 하고, 태극기를 휘날리게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인간사에 부는 바람이 있습니다. 정치바람, 치맛바람, 투기바람, 춤바람 등등. 이걸 세상풍조라고도 부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세상 한 복판에 부는 이런 바람에 능수버들처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바람들 말고 전혀 다른 바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특히 요 3:8절에 보면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 성령님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영적 세계에 불어오는 바람입니다. 즉 성령님의 바람입니다. 그러면 왜 바람일까요 우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 실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시절 읽었던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영시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다만 나뭇잎 하나의 흔들림에서 바람이 지나는 것을 느끼는 것을." 그렇습니다. 누구도 성령님을 눈으로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나뭇잎 떨리듯이 흔들려 흐느낄 때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를 느낍니다. 저 높은 곳에 세찬 바람맞아 깃발이 펄럭이는 것처럼 내 영혼이 새 힘을 얻게 될 때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를 느낍니다. 다음으로 바람은 강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름철 태풍은 바닷물을 치켜올려 해일을 일으킵니다. 수십 년 된 고목도 쓰러뜨리고, 지붕도 날리고, 건물도 무너뜨립니다. 미국 중부를 강타하는 회오리바람 토네이도는 자동차도, 황소도, 통나무집도 하늘 높이 날려버립니다.
중국 고비사막에 부는 바람은 황사를 하늘 높이 들어올려 수천 키로 떨어진 우리나라에까지 날려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의 바람도 힘이 있습니다. 아무리 강퍅한 사람도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넘어집니다. 아무리 교만한 사람도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꼬꾸라집니다. 성령님의 바람은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람이 지나간 뒷자락에는 언제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남쪽에서 봄바람이 소리 없이 불어오면 얼어붙은 강물이 풀리고 눈 녹은 대지 위로 새싹이 돋아납니다. 열기를 가득 품은 한 여름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과수원 포도송이가 탐스럽게 영글어 갑니다. 가을이 깊어 소슬바람이 불어오면 나뭇잎은 한 잎 두 잎 낙엽 되어 길 위를 뒹굽니다. 겨울 문턱을 넘어 북쪽에서 삭풍이라도 불라치면 온 세상은 그만 꽁꽁 얼어붙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개인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나라와 민족이 변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요 우선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납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어느 날 에스겔 골짜기에 이 성령님의 바람이 불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가득히 쌓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그곳을 지나가게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에스겔이 대답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께서 이 뼈들을 향해 대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에스겔이 그 명하신 대로 대언했더니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와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갔습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뼈 저 뼈 힘을 얻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살아난 뼈들이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납니다. 잃어버렸던 생명을 되찾게 됩니다. 오늘 이 땅에 수많은 뼈들이 뒹굴고 있습니다. 거리거리 나뒹구는 뼈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집안에도 뒹굴고, 동네에도 뒹굴고, 학교에도 뒹굴고, 직장에도 뒹굽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받지 못한 채 여기 저기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이 민족 위에 불어야 하고, 이 상도동 골짜기에 불어야 하고, 우리 집안에 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 불었던 그 바람, 1907년 원산 평양을 중심으로 전국에 불었던 그 바람, 성령님의 바람 거룩한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새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뒤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흩어지는 제자들의 마음에는 허탈감이 가득 차여 있었습니다. 3년 동안 공들여 주님을 따랐건만 그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되 버린 것입니다. 허탈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었습니다. 패배감도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주님과 함께 몸부림 쳐봤지만 그 결과는 이렇게 참담한 실패로구나! 가슴 가득 패배감이 넘쳤습니다. 절망감도 있었습니다. 이제 잡히면 자기들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릴 것이라는 두려움과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 근심이 어우러져 감당키 어려운 절망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을 받아 예루살렘에 모였지만 이런 마음들은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을 걸어 잠그고 기도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던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 바람이 허탈감도, 패배감도, 절망감도 다 날려버렸습니다. 문을 활짝 열고 예루살렘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이런 마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바람으로 우리 마음 가득 허탈감, 패배감, 그리고 절망감이 넘쳐납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태풍이 서울 시내 오염된 공기를 한꺼번에 씻어 내듯이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우리 안에 있는 허탈감, 패배감, 절망감을 한꺼번에 씻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새 힘을 얻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각 가정에, 이 나라 민족 역사 위에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서 달리고 뛰어야 합니다. 또 하나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님강림절이 구약의 오순절과 같은 날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 심장합니다. 구약의 오순절은 유월절 지난 50일째 되는 날 지키는 명절이라 해서 오순절이라 합니다. 다른 말로는 맥추절이라 하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식인 밀을 추수합니다. 추수한 알곡을 거둬들인 다음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절기가 바로 오순절입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오순절에 불었다는 것은 바로 영적인 추수와 연관됩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면 영적인 추수를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에 성령님의 바람이 불자 행2:41에 보면 그 날에 삼천 명이 예수믿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말씀합니다. 놀라운 영적인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에 영적 결실이 주춤해 졌습니다. 특히 95년을 기점으로 한국교회 부흥이 멈췄다고들 합니다. 이 땅에 다시 한번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이 민족 위에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민족 복음화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려면 우선 기도할 때 성령님의 바람이 붑니다.
본문 1:14를 보면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120명이나 되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한마음으로 기도했을 때 성령님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은 아무 때나 불지 않습니다. 불만한 조건과 상황이 갖춰질 때 붑니다. 매서운 한겨울 북서풍은 저 시베리아 지역에 거대한 한랭기단이 형성됐을 때 불어옵니다. 지루한 장마 뒤에 불어오는 태풍은 필리핀 동남방 북태평양 상공에 고온 다습한 기단이 형성됐을 때 불어옵니다. 이제 우리도 기도의 기단을 마련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바람은 얼마나 기도하느냐에 따라 그 세기가 달라집니다.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기도의 기단을 만들면 솔솔 바람, 산들바람밖에 불지 않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뜨겁게 기도하면 태풍과 같은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리고 혼자서 기도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기도하면 더 효과적입니다. 온 교회가 함께 합심해서 기도하면 놀라운 기도의 기단이 형성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진원지가 돼서 이 상도동 골짜기에 성령님의 바람이 불 것입니다. 이 민족 역사 위에 성령님의 바람이 불 것입니다. 다음으로 회개할 대 성령님의 바람이 붑니다.
행 2:37-8을 보면 베드로가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 성령님의 바람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면 그 사람에게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부는 현상도 따지고 보면 기압 차에서 생겨난 현상입니다. 공기의 밀도가 높고, 공기의 압력이 높은 곳에서 공기의 밀도가 낮고, 공기의 압력이 낮은 곳으로 공기가 이동해 가는 현상이 바로 바람입니다. 그러니까 기압 차기 클수록 바람은 세게 붑니다. 마치 높이가 높은 폭포가 높이가 낮은 폭포보다 물이 세차게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우리를 낮추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나는 마른 막대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나는 만물의 찌꺼기 같은 존재입니다.' 고백한 사람들에게 성령님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경고를 받고도 회개는커녕 주님을 비난하고 정죄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성령님의 바람이 미풍도 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철저하게 회개하느냐에 따라 성령님의 바람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얼마나 낮추느냐에 따라 성령님의 바람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끝으로 영국의 찬송작가 몽고메리의 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목은 성령님이여 오소서 입니다. 주 하나님, 거룩한 영이시여 지금 허락된 이 시간에 오순절 그 날처럼 당신의 권능으로 내려오소서. 우리가 정한 장소에 한 마음으로 만나 우리 주의 약속인 은혜의 성령님을 기다리나이다. 파도치는 바다의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저마다의 마음속에 한 영으로 하나의 숨결로 한 가지 감격으로 내려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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