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 강림과 다락방 (행2:1-4)
본문
우리가 기독교를 말할 때 꼭 말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령님이 이 땅에 강림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보게 되면 거기에 많은 약속들이 나타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많은 약속들은 사실 알고 보면 모두가 예수 탄생에 대한 예언들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은 그만큼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복음 중의 복음이고, 은혜 중의 은혜이고, 축복 중의 축복인 것입니다. 이것 못지 않게 또 중요한 사건은 성령님 강림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승천하게 되면 몇 날이 못 되어 성령님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렸다가 성령님을 받으라.” 그래서 15개국에서 모여든 120명의 제자들은 다락방에 모여서 성령님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성령님이 마침내 다락방에 임했습니다. 그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래서 오늘이 성령님 강림 주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땅에 임한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다락방이라는 곳이고 또 하나는 열흘이라는 기간입니다. 열흘 동안 120명의 제자들은 다락방에서 무엇을 했고, 또 다락방은 어떤 곳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곳은 제자들이 몸부림을 친 후 성령님을 받은 곳입니다. 그 곳은 120명의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앉아서 성령님을 받기 위해서 뜬 눈으로 밤을 세워가며, 기도한 곳입니다.
사람이 뜬 눈으로 밤을 새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열흘 동안이나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아마 그들은 거기서 몸부림을 쳤고, 해산의 고통을 느끼며, 진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열흘 만에 그 곳에 성령님이 임해서 제자들은 성령님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세상 만사가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에 중요하다는 일들은 모두 그냥 되는 일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온갖 수고가 들어가야 하고 땀이 들어가야 이루어집니다. 어린 아이 하나가 세상에 태어나는 데도 그냥 저절로 태어납니까 잉태하는 과정을 거쳐서, 열 달 동안 모태에 머물러 있다가 어머니의 생명을 위협하고는 이 땅에 태어납니다.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는데 데도 그냥 나옵니까 수백 장의 원고지가 찢겨지고, 버려지고, 수정괸 후에 비로소 한 권의 책이 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한 덩어리의 금이 나오기까지도 그렇습니다. 돌을 깨고 부수고 가루를 만들어서 다시 용광로에 넣어 녹이고 제련한 후에 아주 조그만 금덩어리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 땅에 강림하시고 신약 교회가 이 땅에 탄생되기까지에도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10일 동안 120명의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그곳에 성령님이 강림하였고, 기적이 일어났고, 은혜를 모두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인에게는 이 다락방의 경험이 중요합니다. 신앙인은 모두 한 번쯤 이 다락방에 들어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귀로 듣고, 글로 보고, 남의 이야기나 듣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내가 직접 성경과 씨름해서 진리를 터득하고, 내가 직접 말씀과 부딪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내가 직접 갈등하고, 번민하고, 몸부림을 쳐서 성령님을 만나고, 체험해서 비로소 신앙을 수용하게 될 때 그 신앙이 바로 참된 신앙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인다운 신앙인이 되려고 하면 모두 다락방에 한 번씩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다락방은 어떤 곳입니까 그 곳은 몸부림을 친 곳입니다. 몸부림을 치고 나서 성령님을 받은 곳, 그 곳이 다락방입니다. 또 다락방은 확신을 얻은 자리입니다. 지금 제자들이 얼마나 다급한 상황입니까 스승은 죽었고, 죽음의 위협은 가해 오고, 내일은 불안하고, 그렇다고 문을 박차고 나갈 만한 용기는 없고, 그래서 모두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서 고민하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지만 이런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고 용기가 있어서 밖으로 나가서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런데 다락방은 그런 용렬한 제자들에게 기적을 안겨준 곳입니다. 그 날 제다들이 성령님을 받고 나서 모두 다 확신 있는 사람들로 바뀌었습니다. 모두 마음속으로부터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담력이 생기고, 자신감과 확신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다락방을 박차고 나가서 입을 열어 부활을 전하고, 십자가를 전하고 예수를 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게 되면 맨 먼저 나타나는 외형적인 모습이 하나 잇습니다. 그것이 이런 용기와 담력과 자신감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먼저 이 같은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인의 모습이 갖추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겁한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 세례도 받고, 집사도 되었는데 이런 확신이 없는 신앙인은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용기가 없어서 성경책 하나를 들고 다니지를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놓고 떳떳하게 기도 한 번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직장에 가서도 자신이 신자인 것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용기도 없고, 자신감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십자가를 말하고, 예수를 말하고, 신앙인의 삶을 효과 있게 살 수 있습니까 어떤 집사님이 “저는 평생 소원이 남편이 예수를 믿는 일입니다. ” 하고 말합니다. 어찌 그 집사님뿐이겠습니까 그래서 이 집사님이 남편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이 남편이 나올 듯하면서도 나오지를 않습니다. 하루는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이 급성 신장염으로 입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병원으로 가서 간절히 기도를 하고 나니까 남편이 회개를 합니다. “목사님, 회개합니다. 저는 세례를 두 번이나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군 복무 때는 군목사님 출장 중에는 제가 설교도 했던 구종 사병 출신입니다.” 그럽니다.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부인이 깜짝 놀랍니다.
지금까지 결혼해서 10년을 같이 살았는데 자기 남편이 세례를 두 번씩이나 받았다는 말은 지금에야 처음 듣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남편이 사람들 앞에 서서 설교까지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 처음 알았던 것입니다. 감쪽 같이 속이고 있다가 이제 침대에 누워서 너무 힘겨우니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례를 두 번씩이나 받았고, 옛날에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했으면 뭘 합니까 지금 확신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생명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능력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생명입니다. 제자들이 온갖 두려움과 허전함과 장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모두 다락방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열흘 동안 몸부림을 쳤습니다. 거기서 모두 진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열흘 만에 다락방을 나올 때는 모두 분명한 얼굴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분명한 신앙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나가서 예수를 전하는 용기 있는 전도자들로 바뀌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모두 다락방에서 성령님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모두 생명 있는 신앙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모두 이 다락방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가끔씩 우리들로 하여금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놓을 때가 있습니. 거기서 고민하게 하시고, 몸부림을 치게 만드시고, 눈물을 흘리게도 만들어 놓으십니다. 그게 다락방이기 때문입니다. 그 곳을 거치는 동안에 모두 사람이 되고, 신앙이 바로 서게 되고, 분명해지기도 하고, 변화를 받게도 되는 것입니다. 다락방은 어떤 곳입니까 그 곳은 확신을 얻는 자리입니다. 또 다락방은 제자들로 하여금 성숙하게 만든 곳입니다. 제자들이 다락방을 거치는 동안 아주 성숙해졌습니다. 생각이 성숙해졌고, 신앙이 성숙해졌고, 무엇보다도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제자들이 다락방에 들어갈 때는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이었고, 어린 아이같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다락방을 거치는 동안에 이 제자들이 아주 성숙해졌습니다. 아주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내가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헌신을 할 것이냐 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다락방을 나오자마자 거리로 나가서 예수를 전하는 사람들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무엇을 얻어 먹을까, 어떻게 하면 높아질까 그것을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서로 누가 높으냐 하고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제자들이 다락방을 거치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내가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이냐를 생각하는 사람들로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은사이고, 이것이 축복이고, 이것이 성숙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인이라고 하면 이 같은 성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모두 한 번씩 다락방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귀여웠겠습니까 심방을 갔다 오면 얼른 나와서 받아 들고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가방 속에 과자며 사탕이며 초콜릿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심방을 갔다 올 때는 으레 사탕과 과자를 가방에 꼭 넣어 가지고 오십니다. 그것을 받아 먹는 딸을 보는 재미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딸이 커서 시집을 갔습니다. 딸이 보고 싶어서 아버지는 가방에 과자를 많이 사 넣어 가지고 딸네 집을 갔습니다. 딸이 반갑게 나와 맞아 줍니다. 그리고 가방을 받아 들고 들어가더니 가방은 응접실에 놓고 부엌에 들어가서는 열심히 무엇인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가방을 거들떠보지도 않아 너무 서운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딸에게 “저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딸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무엇을 얻어 먹을까 이것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제가 아버지를 위해서 무엇을 해드릴까 이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고 대답하더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이것을 “철이 들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 곁을 떠나서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철이 나고, 생각이 바뀌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신앙은 다락방을 거치는 동안에 철이 나고, 변화가 되고,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모두 다락방을 한 번씩 거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그 날 다락방을 거치는 동안 비로소 성숙해졌고, 어른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다락방은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용광로와 같은 곳입니다. 또 다락방은 모든 사람이 함께 은혜를 받은 곳입니다. 그 곳에 15개국에서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언어가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는 성격이 괴퍅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믿음이 적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구경삼아 온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 곳에 모인 사람 모두가 성령님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것은 그 곳이 은혜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있는 자리는 신앙이 좀 부족한 사람이 앉아 있어도 쉽게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잘 타는 장작불 속에는 마르지 않은 생나무를 집어 놓어도 잘 타는 법입니다. 이 말은 신앙이 좋은 사람들만 모인 곳에는 신앙이 좀 부족한 사람이 들어가도 얼마 안 가서 신앙이 좋아진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좋은 구역에 새 신자 한 사람이 들어가면 오래 가지 않아서 신앙의 틀이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 “봉생마중이면 불구이자직”이라고 했습니다. 쑥이 길가에서 자라면 제 멋대로 구부러지고 곧게 자라지를 못합니다. 길가라는 환경이 쑥으로 하여금 곧게 자라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쑥이 삼 밭에서 자라면 쑥도 삼처럼 덩달아 곧게 다란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천성이 악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이 처한 환경이 마치 길가와 같으니까 길가의 쑥처럼 곧게 자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다락방입니다. 그 곳에 은혜가 있으니까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성령님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은혜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교회에 모이는 사람이 모두 은혜를 받게 됩니다. 구역도 은혜 있는 구역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구역에 속한 사람은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도 은혜가 있어야 모두가 삼 밭의 쑥처럼 곧게 자라고 성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다락방의 역사입니다. 다락방은 제자들이 모여 몸부림을 쳐서 성령님을 받은 곳이고, 확신을 얻어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문을 박차고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힘 입은 곳이고, 모두 성숙해져서 생각이 바뀐 곳이고, 다 함께 은혜를 받고 성령님을 체험해서 모두가 전도자로 새롭게 출발한 동기를 마련해 준 훈련장입니다. 오늘은 성령님 강림 주일입니다. 그 때 임했던 그 성령님이 오늘 여기에도 임하셔서 여러분들에게 함께하시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람이 뜬 눈으로 밤을 새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열흘 동안이나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아마 그들은 거기서 몸부림을 쳤고, 해산의 고통을 느끼며, 진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열흘 만에 그 곳에 성령님이 임해서 제자들은 성령님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세상 만사가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에 중요하다는 일들은 모두 그냥 되는 일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온갖 수고가 들어가야 하고 땀이 들어가야 이루어집니다. 어린 아이 하나가 세상에 태어나는 데도 그냥 저절로 태어납니까 잉태하는 과정을 거쳐서, 열 달 동안 모태에 머물러 있다가 어머니의 생명을 위협하고는 이 땅에 태어납니다.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는데 데도 그냥 나옵니까 수백 장의 원고지가 찢겨지고, 버려지고, 수정괸 후에 비로소 한 권의 책이 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한 덩어리의 금이 나오기까지도 그렇습니다. 돌을 깨고 부수고 가루를 만들어서 다시 용광로에 넣어 녹이고 제련한 후에 아주 조그만 금덩어리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 땅에 강림하시고 신약 교회가 이 땅에 탄생되기까지에도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10일 동안 120명의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그곳에 성령님이 강림하였고, 기적이 일어났고, 은혜를 모두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인에게는 이 다락방의 경험이 중요합니다. 신앙인은 모두 한 번쯤 이 다락방에 들어가는 경험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귀로 듣고, 글로 보고, 남의 이야기나 듣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내가 직접 성경과 씨름해서 진리를 터득하고, 내가 직접 말씀과 부딪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내가 직접 갈등하고, 번민하고, 몸부림을 쳐서 성령님을 만나고, 체험해서 비로소 신앙을 수용하게 될 때 그 신앙이 바로 참된 신앙의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인다운 신앙인이 되려고 하면 모두 다락방에 한 번씩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다락방은 어떤 곳입니까 그 곳은 몸부림을 친 곳입니다. 몸부림을 치고 나서 성령님을 받은 곳, 그 곳이 다락방입니다. 또 다락방은 확신을 얻은 자리입니다. 지금 제자들이 얼마나 다급한 상황입니까 스승은 죽었고, 죽음의 위협은 가해 오고, 내일은 불안하고, 그렇다고 문을 박차고 나갈 만한 용기는 없고, 그래서 모두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서 고민하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지만 이런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고 용기가 있어서 밖으로 나가서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런데 다락방은 그런 용렬한 제자들에게 기적을 안겨준 곳입니다. 그 날 제다들이 성령님을 받고 나서 모두 다 확신 있는 사람들로 바뀌었습니다. 모두 마음속으로부터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담력이 생기고, 자신감과 확신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다락방을 박차고 나가서 입을 열어 부활을 전하고, 십자가를 전하고 예수를 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게 되면 맨 먼저 나타나는 외형적인 모습이 하나 잇습니다. 그것이 이런 용기와 담력과 자신감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먼저 이 같은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인의 모습이 갖추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겁한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 세례도 받고, 집사도 되었는데 이런 확신이 없는 신앙인은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용기가 없어서 성경책 하나를 들고 다니지를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놓고 떳떳하게 기도 한 번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직장에 가서도 자신이 신자인 것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용기도 없고, 자신감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십자가를 말하고, 예수를 말하고, 신앙인의 삶을 효과 있게 살 수 있습니까 어떤 집사님이 “저는 평생 소원이 남편이 예수를 믿는 일입니다. ” 하고 말합니다. 어찌 그 집사님뿐이겠습니까 그래서 이 집사님이 남편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이 남편이 나올 듯하면서도 나오지를 않습니다. 하루는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이 급성 신장염으로 입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병원으로 가서 간절히 기도를 하고 나니까 남편이 회개를 합니다. “목사님, 회개합니다. 저는 세례를 두 번이나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군 복무 때는 군목사님 출장 중에는 제가 설교도 했던 구종 사병 출신입니다.” 그럽니다.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부인이 깜짝 놀랍니다.
지금까지 결혼해서 10년을 같이 살았는데 자기 남편이 세례를 두 번씩이나 받았다는 말은 지금에야 처음 듣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남편이 사람들 앞에 서서 설교까지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 처음 알았던 것입니다. 감쪽 같이 속이고 있다가 이제 침대에 누워서 너무 힘겨우니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례를 두 번씩이나 받았고, 옛날에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했으면 뭘 합니까 지금 확신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생명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능력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생명입니다. 제자들이 온갖 두려움과 허전함과 장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모두 다락방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열흘 동안 몸부림을 쳤습니다. 거기서 모두 진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열흘 만에 다락방을 나올 때는 모두 분명한 얼굴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분명한 신앙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나가서 예수를 전하는 용기 있는 전도자들로 바뀌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모두 다락방에서 성령님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모두 생명 있는 신앙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모두 이 다락방을 거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가끔씩 우리들로 하여금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놓을 때가 있습니. 거기서 고민하게 하시고, 몸부림을 치게 만드시고, 눈물을 흘리게도 만들어 놓으십니다. 그게 다락방이기 때문입니다. 그 곳을 거치는 동안에 모두 사람이 되고, 신앙이 바로 서게 되고, 분명해지기도 하고, 변화를 받게도 되는 것입니다. 다락방은 어떤 곳입니까 그 곳은 확신을 얻는 자리입니다. 또 다락방은 제자들로 하여금 성숙하게 만든 곳입니다. 제자들이 다락방을 거치는 동안 아주 성숙해졌습니다. 생각이 성숙해졌고, 신앙이 성숙해졌고, 무엇보다도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제자들이 다락방에 들어갈 때는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이었고, 어린 아이같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다락방을 거치는 동안에 이 제자들이 아주 성숙해졌습니다. 아주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내가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헌신을 할 것이냐 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다락방을 나오자마자 거리로 나가서 예수를 전하는 사람들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무엇을 얻어 먹을까, 어떻게 하면 높아질까 그것을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서로 누가 높으냐 하고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제자들이 다락방을 거치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내가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이냐를 생각하는 사람들로 바뀐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은사이고, 이것이 축복이고, 이것이 성숙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인이라고 하면 이 같은 성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모두 한 번씩 다락방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귀여웠겠습니까 심방을 갔다 오면 얼른 나와서 받아 들고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가방 속에 과자며 사탕이며 초콜릿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심방을 갔다 올 때는 으레 사탕과 과자를 가방에 꼭 넣어 가지고 오십니다. 그것을 받아 먹는 딸을 보는 재미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딸이 커서 시집을 갔습니다. 딸이 보고 싶어서 아버지는 가방에 과자를 많이 사 넣어 가지고 딸네 집을 갔습니다. 딸이 반갑게 나와 맞아 줍니다. 그리고 가방을 받아 들고 들어가더니 가방은 응접실에 놓고 부엌에 들어가서는 열심히 무엇인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가방을 거들떠보지도 않아 너무 서운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딸에게 “저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딸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버지, 지금까지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무엇을 얻어 먹을까 이것만 생각했지만 지금은 제가 아버지를 위해서 무엇을 해드릴까 이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고 대답하더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이것을 “철이 들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 곁을 떠나서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철이 나고, 생각이 바뀌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신앙은 다락방을 거치는 동안에 철이 나고, 변화가 되고,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모두 다락방을 한 번씩 거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그 날 다락방을 거치는 동안 비로소 성숙해졌고, 어른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다락방은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용광로와 같은 곳입니다. 또 다락방은 모든 사람이 함께 은혜를 받은 곳입니다. 그 곳에 15개국에서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언어가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는 성격이 괴퍅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믿음이 적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구경삼아 온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 곳에 모인 사람 모두가 성령님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것은 그 곳이 은혜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있는 자리는 신앙이 좀 부족한 사람이 앉아 있어도 쉽게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잘 타는 장작불 속에는 마르지 않은 생나무를 집어 놓어도 잘 타는 법입니다. 이 말은 신앙이 좋은 사람들만 모인 곳에는 신앙이 좀 부족한 사람이 들어가도 얼마 안 가서 신앙이 좋아진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좋은 구역에 새 신자 한 사람이 들어가면 오래 가지 않아서 신앙의 틀이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 “봉생마중이면 불구이자직”이라고 했습니다. 쑥이 길가에서 자라면 제 멋대로 구부러지고 곧게 자라지를 못합니다. 길가라는 환경이 쑥으로 하여금 곧게 자라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쑥이 삼 밭에서 자라면 쑥도 삼처럼 덩달아 곧게 다란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천성이 악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이 처한 환경이 마치 길가와 같으니까 길가의 쑥처럼 곧게 자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다락방입니다. 그 곳에 은혜가 있으니까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성령님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은혜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교회에 모이는 사람이 모두 은혜를 받게 됩니다. 구역도 은혜 있는 구역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구역에 속한 사람은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도 은혜가 있어야 모두가 삼 밭의 쑥처럼 곧게 자라고 성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다락방의 역사입니다. 다락방은 제자들이 모여 몸부림을 쳐서 성령님을 받은 곳이고, 확신을 얻어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문을 박차고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힘 입은 곳이고, 모두 성숙해져서 생각이 바뀐 곳이고, 다 함께 은혜를 받고 성령님을 체험해서 모두가 전도자로 새롭게 출발한 동기를 마련해 준 훈련장입니다. 오늘은 성령님 강림 주일입니다. 그 때 임했던 그 성령님이 오늘 여기에도 임하셔서 여러분들에게 함께하시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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