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양성에 전념하는 바울 (행18:23-19:41)
본문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제자양성에 전념하여 에베소 교회를 개척한 사건입니다. 에베소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로서 인구 30만 명이 넘은 큰 항구도시였습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 때 약 3년 동안 에베소 에서 일대일 제자양성에 전념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 여러 도시를 개척하고, 온 아시아에 복음을 전파했 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자를 양성하는 바울의 믿음과 지혜를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제자들의 믿음을 견고케 한 바울(19:1-7) 19:1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윗 지방을 다녀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에베소는 로마에서 동방에 이 르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소아시아 전체의 중심이 되는 도시였습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무역의 중심지 였습니다. 헬라클리토스와 같은 철학자를 낳은 학문의 도시요, 예술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 소에서 몇몇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복음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볼로의 영향을 받아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믿을 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바울은 "그러면 무슨 세례를 받 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 를 알 뿐 성령님의 세례를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였을 뿐 죄 사함의 세례는 아니였습니다. 성령님 세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죄의 은혜를 덧입은 자에게 주시는 죄사 함의 세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죄를 회개했으나 사죄의 은혜를 덧입지 못했습니다. 도덕적으로는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으나 그들의 심령에 사죄의 은혜와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내면에 참된 평안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이들은 아볼로의 제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23에 보면 아볼로는 알렉산 드리아 출신으로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였습니다. 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웠습니다.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존경하고, 그의 교훈을 좋아했습니다. 열심히 가르 쳤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알 뿐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회개한 사람들에게 주는 세례요, 오실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를 시키는 회개였습니다. 아볼로는 이 요한의 세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성령님의 세례 곧 죄 사함의 세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는 예수님의 복음 역사가 한창 활발히 일어날 때 유대를 떠난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역이나 교훈 등은 정확히 알고 있었으나 부활과 승천, 성령님 강림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 볼로는 제자들을 양성했으나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이상으로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볼로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이를 볼 때 목자의 신앙이 제자들의 신앙을 좌우함을 알 수 있습니다. 목자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양들도 성장하지 못합니다. 저는 어제 10명 의 캠퍼스 목자들의 목자 투쟁기를 들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투쟁기를 들으면서 이분들의 공통점이 양들을 도우면서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투쟁하며 성장하는 분들임을 발견했습니다. 신세대, X 세대가 문제가 아니라 목자 자신의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자가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으 면 성령님의 세례에 대해서는 가르칠 수 없습니다. 목자가 중생의 체험이 없으면 양에게 중생의 진리를 가르 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목자가 정과 욕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과 욕심에 매여 있는 양을 분명 히 도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치는 생활은 곧 목자 자신의 신앙에 달린 문제이며, 양의 영적 성장은 목자 자신의 영적 성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양들의 생명을 짊어진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투쟁해야 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이들을 어떻게 도왔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이들에게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 풀며,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분이 바로 예수라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자기는 물 세례를 주지만 오실 그분 은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요한이 증거한 '오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 실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요한의 말대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 주셨으며,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다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는 그들에게 오순절 성령님 강림과 성령님 세례에 대해서 증거했습니다. 복음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심령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주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그들은 그제서야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고, 영적인 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영접하자 사죄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어 린 양 예수님의 보배 피로 그들의 모든 죄가 사해졌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은혜와 기쁨이 충만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이 그들의 심령에 충만케 되었습니다. 이들은 열두 사람쯤 되었습니다. 이들은 후에 에베소 교회개척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여 에베소 개척 동역자들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만난 제자들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들의 신앙이 어리다거나 구신자들이라고 구박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동역자들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신앙문제를 잘 알고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이 열심은 있었으나 복음 신앙이 부족한 것을 알고 온 마음을 다해서 그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복음의 핵 심을 깨닫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개척 역사는 독불장군과 같이 기발한 방법으로 자기 역사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연약한 형제들을 키우고, 그들을 동역자로 얻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 가운데도 사도 마리아가 되고, 목자가 되어도,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깨닫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탐장 목자님은 자기 주위에는 연약한 동역자들만 있기 때문에 팀 역사가 안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분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이분이 믿음이 어린 제자들을 키우는 믿음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키워서 동역자로 얻을 생각은 하지 않 고, 키워 놓은 동역자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서는 언제까지나 영적인 중풍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일대일 목자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서 훌륭한 제자감이 떨어지도록 기다리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캠퍼스에 나가 제자를 얻어야 합니다. 캠퍼스 양들은 예수님에 관해서 조금씩은 알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를 미션 스쿨에 다녔기 때문에 예수님에 관해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들은 성령님이 있음도 모릅니다. 또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으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하면 거듭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 심판의 하나님이 두려워서 율법적으로 마지 못해 교회에 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에는 다니지 않지만 기독교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을 영접하고, 이분들의 신앙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복음신앙이 부 족한 사람에게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명감을 심어 주 어야 합니다. 인간 기초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인간기초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현재 주어진 양들과 동역자들을 키우고, 영적인 동역자로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캠퍼스를 개척하고자 할 때 없는 것을 찾지 않고, 현재 있는 동역자들을 하나님께서 하락하신 소중한 제자들로 영접하고, 정성 을 다해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성령님의 충만함을 덧입을 때 소중한 동역 자들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Ⅱ.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는 바울(19:8-20) 8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하며 권면했습니다. 당시 에베소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대 회당에 들어가 담대히 '하나님 나라' 에 대해 강론했습니다. 여기서 강론했다는 말은 공개강좌를 한 것을 말합니다. 또 권면했다는 말은 '논하 고 설득시켰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 회당에 들어가서 열정적으로 천국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었음과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증거했을 것입니다(요 3:3-5). 그리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촉구 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 음을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그것도 석 달 동안 담대히 강론하며 권했습니다.
그런데 9a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습니다.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다는 것은 공개적으로 바울을 대적하고 복음 진리를 비방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파하는 천국 복음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믿음으로 구원 받는 진리를 우습게 여기고 천국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들은 율법 문제, 할례 문제, 성전 문제,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문제, 민족적인 우월감 문제 등으로 바울을 헐뜯고, 그가 전하는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비방했습니다. 이들의 비 난하는 말을 통해서 순수하게 자라던 양들까지도 마음에 상처를 받고, 떨어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사단은 완악한 유대인들을 통해서 복음역사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3개월 동안 열정적으로 공개강좌 를 했으나 결과는 처절한 실패 뿐이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어떤 새로운 역사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까 9b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 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떠났습니다. 바울이 회당을 떠났다는 것은 중요한 사건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디 를 가든지 유대 회당을 중심으로 동족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대인의 본거지인 회당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방인 복음 역사에 전념하고자 방향을 잡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제자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이들은 3개월 동안 바울의 공개강좌를 듣고, 또 비판하는 많 은 유대인들의 말을 듣고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 남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바울을 목자요, 훈련관으로 모시 고,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는 소원이 간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에베소에 왔을 때 만난 열두 명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영접하고 성령님 세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복음적인 기초가 튼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바울과 같은 목자요,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소원 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영적 소원이 충만한 이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바울이 제자들을 따로 세운 목적은 이들을 유대인들의 불신과 악영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이들을 구별 시켜 집중적으로 훈련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많은 사람을 얻으려 하기보다 소수의 정예부대를 키우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들을 따로 세우고 무엇을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 했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두란노라는 철학자의 사설학원이었습니다. 이곳은 에베소 사람들의 문화 시설로 토론도 하고, 강의도 듣고, 취미 생활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두란노 서원은 에베소 시민들에게 아주 친근한 장소였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대개 낮 11시가 되면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 식사 후에는 낮잠(siesta)을 잤습니다.
그러므로 두란노 서원도 낮 시간에는 강의실이 비었습니다. 바울은 이 빈 강의 실을 빌려 제자 양성을 했습니다. 이곳은 회당보다 훨씬 학구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성경을 자유롭게 가르 칠 수 있었습니다. 또 에베소 사람들은 너그러워 종교 문제로 비방하지도 않았습니다. 유대교회당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매 안식일마다 강론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매일 제자들을 모이게 하여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제자들을 날마다 모이게 하여 집중적으로 강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체계적인 성경 공부를 시킬 수 있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날마다 도울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강론했다는 말 은 일방적인 강의도 하지만, 질문하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discussion을 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20:19에 보면 바울의 고별사 중에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를 섬겼다'고 했습니다. 또 31에 보면 다음과 같은 고백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이 고백을 근거로 생각해 보면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다는 말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는 것이었습니다. 각 사람을 훈계했다는 것은 일대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가르쳤음을 말합니다. 훈계했다는 것은 양들의 죄 문제와 내면 문제에 강력하게 도전하여 회개하도록 도왔다는 것입니다. 완악한 자를 붙들고 밤이 맟도록 눈물로 훈계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의 목자 생활에는 밤낮이 없었습니다. 밤낮 쉬지 않고 삼 년 동안 제자 양성에 전념했습니다. 오전 시간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천막회사에서 근무해야 했습니다. 앞 치마를 두르고 이마에 수건을 두르고 땀을 흘리며 천막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평신도 목자요, 선교사로서 자립하며, 주는 생활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20:34). 뿐만 아니라 바울은 센타 임대로도 지불해야 했 습니다. 또 양떼들을 섬기려면 많은 물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낮잠 자는 시간에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또 저녁에는 여러 집을 심방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20:20). 바울의 하루 생활은 오직 제자양성이라는 한 가지 기도제목을 이루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우리 목자님들처럼 사랑스러운 아내와 재롱을 부리는 아기도 없습니다. 이미 나 이는 50이 넘었습니다. 그때 나이 오십이면 할아버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루도 쉬지 않고, 제자 양성 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같이 줄기차게 제자양성에 힘썼을 때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 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복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골로새 교회가 개척되고(몬
1,2),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골 4:13). 또 소아시아의 서머나, 버가 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피아 교회들이 개척되었습니다(계
1,2장; 고전 16:19). 이 교회들은 그후 몇 세기 동안 초대 기독교를 이끌어 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제자 양성의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바울 은 제자들을 훈련시켜 가까운 여러 도시에 개척자로 파송했습니다. 바울은 양들에게 복음을 심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을 제자로 삼고, 목자요, 선교사로 키워서 끊임없이 개척자로 파송했습니다. 삼 년 동안 눈 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며 키웠을 때 그들은 훌륭한 성경 선생이요, 목자요, 선교사들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온 아시아가 들썩거렸습니다. 일대일 제자양성의 역사는 참으로 미미한 역사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일대일 제자 양성의 역사는 큰 댐을 무너뜨리기 위해 작은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이 위력이 있습니다. 이 역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때가 되면 큰 댐을 무너뜨리고 온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게 하는 누룩과 같은 역사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줄기차게 제자 양성에 힘쓰고, 선교사를 파송할 때 세계 187개 국 캠퍼스에 있는 모든 양떼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을 믿습니다. 올 한 해 바울과 같이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여 복음을 심고, 목자요, 선교사로 키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또 바울의 손을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이 머리에 둘렀던 손수건이나 천막 기울 때 쓰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자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 도 떠났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역사였습니다. 그러자 돌아다니며 마술을 행하던 유대인들이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내고자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14-16절을 보십시오.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시도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 그러자 악귀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 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대들었습니다.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하 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도망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에베소에는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첫째,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둘째, 믿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죄를 자복하고 행한 일을 고했습니다.
셋째, 마술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마술책을 모아 모든 사람 앞에서 불태웠습니다.
그런데 그 값이 은 오만 냥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은 마술로 살아 온 죄악 된 삶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살고자 결단했습니다. 마술쟁이들이 회개하고 마술 책을 불태우는 것을 볼 때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동양의 신비주의 세력이 복음 의 능력 앞에 굴복하고, 정복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저자는 이러한 모든 역사의 원동력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이 모든 역사는 바로 주의 말씀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힘 있게 자라나고 널리 전파되는 역사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양떼들의 마음 속에 뿌 리운 말씀이 힘 있게 자라는 역사요, 말씀이 널리 전파되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말씀이 힘 이 있어 흥왕하여 우리 가운데 세력을 얻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들이 능력 있는 말씀의 종들로 성장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묵상함으로 우리 마음 속에 주의 말씀이 세력을 얻게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대일 말씀 공부 역사에 전념해야 합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바울이 처한 환경보다 백배나 낫습니다. 우리에게는 전국에서 제일 좋은 센타가 있습니다. 이제는 캠퍼스 내에도 써클룸이 생겼습니다. 또 학교에는 빈 강의실이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비방하는 유대인들 도 없습니다. 바울처럼 막노동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우리에게는 강의안이 있습니다. 매주 은혜 받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은혜에 취해서 즐기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양 들의 마음 속에 뿌리운 말씀이 힘 있게 자라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이 캠퍼스 구석구석에 전파되 고, 세계 각국에 전파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임이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모임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올해는 누가복음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어 제자양성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Ⅲ. 세계 선교 비전에 넘치는 바울(21-41) 21절을 보십시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 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바울은 에베소에서 집중적인 제자 양성을 통해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후 로마 선교 비전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는 아시 아의 로마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제자 양성을 통해서 에베소에서 성공적으로 감당했습니다. 이처 럼 세계의 수도 로마에서도 제자 양성에 힘쓰면 땅끝까지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당시 로마는 누구나 보고자 했습니다. 정치가는 권력을 잡기 위해 로마를 보고자 했습니다. 군인은 천하를 손에 넣기 위해 로마를 보고자 했습니다. 상인은 세계의 경제권을 잡기 위해서 로마를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코자 하는 비전에 넘쳤습니다. 나아가 로마를 통해서 땅 끝 스페인까지 복음으로 정복코자 했습니다(롬 15:23). 바울이 이런 로마 선교 비전에 넘쳤던 것은 영웅주의나 이상주의에서 나온 발상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 한 데서 나온 확신이요, 비전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가끔 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한 사람의 제자도 키우지 못한 사람이 선교사로 가겠다고 이상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외국에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비행기만 탄다고 선교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있는 이곳에서 사도 바울과 같 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제자 양성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말이 통하고, 사상과 감정이 통하는 한국에서 제자양성을 하지 못하면 이방 땅에 가서 어떻게 제자양성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일대일 역사에 목자 생활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이는 마게도니아와 아시아에 있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보내는 구제헌금을 모아 전해 주기 위함이었 습니다. 이를 통해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 습니다. 이를 위해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냈습니다(22). 그리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23-41절에 있는 사건은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 동업자들을 충동하여 바울을 추방하려는 운동을 벌였 습니다. 에베소에는 유명한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 신전은 넓이가 130m, 길이가 68m가 되는 거대 한 대리석 건물로 지어진 세계7 대 신비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에는 열두 개의 유방이 달린 아데미 라는 여신을 모셨습니다. 이 여신은 인간이나 동물들의 모든 생식을 장악하는 다산의 모신이었습니다. 또 이 신전에는 여 사제들이 많이 있었으며, 예배 순서에 sex 파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데미 숭배 사상이 500년 이상 내려 왔기 때문에 에베소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뿌리 박혀 있었습니다. 또 데메드리오와 같은 은장색들은 아데미 여신상을 만들어 막대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온 아시아에 복음이 전파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회개하므로 장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데모를 주동했 습니다. 25-27절을 보십시오. 직공들과 동업자들을 불러 모아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그 내용은 바울이 온 후 장사가 안 되며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는 것과 우상 숭배라 하여 자기들을 천하게 되었 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500년 이상 내려온 미풍양속을 해치고, 전통 문화를 파괴한다고 열변을 통했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은 분이 가득하여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하며 소리질렀습니다. 또한 바울과 같이 다니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연극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 연극장 은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극장으로 시민재판을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때 백성 가운 데로 들어가 말씀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권유로 그만두었습니다. 무리들은 두 시간 동안 이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하며 외쳤습니다. 그러나 31절을 보십시오.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때 서기장이 지혜롭게 무리를 안돈시키고, 정식으로 재판을 청구하도록 하여 무 리를 해산시켰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양들을 영접하고, 그들의 마음 속에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확실히 심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여 제자양성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어찌하든지 요회별 12사도 마리아들을 세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제자들의 믿음을 견고케 한 바울(19:1-7) 19:1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윗 지방을 다녀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에베소는 로마에서 동방에 이 르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소아시아 전체의 중심이 되는 도시였습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무역의 중심지 였습니다. 헬라클리토스와 같은 철학자를 낳은 학문의 도시요, 예술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 소에서 몇몇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복음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볼로의 영향을 받아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믿을 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바울은 "그러면 무슨 세례를 받 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 를 알 뿐 성령님의 세례를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였을 뿐 죄 사함의 세례는 아니였습니다. 성령님 세례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죄의 은혜를 덧입은 자에게 주시는 죄사 함의 세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죄를 회개했으나 사죄의 은혜를 덧입지 못했습니다. 도덕적으로는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으나 그들의 심령에 사죄의 은혜와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내면에 참된 평안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을 보면 이들은 아볼로의 제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23에 보면 아볼로는 알렉산 드리아 출신으로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였습니다. 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웠습니다.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존경하고, 그의 교훈을 좋아했습니다. 열심히 가르 쳤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알 뿐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회개한 사람들에게 주는 세례요, 오실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를 시키는 회개였습니다. 아볼로는 이 요한의 세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성령님의 세례 곧 죄 사함의 세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는 예수님의 복음 역사가 한창 활발히 일어날 때 유대를 떠난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역이나 교훈 등은 정확히 알고 있었으나 부활과 승천, 성령님 강림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 볼로는 제자들을 양성했으나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이상으로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볼로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이를 볼 때 목자의 신앙이 제자들의 신앙을 좌우함을 알 수 있습니다. 목자가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양들도 성장하지 못합니다. 저는 어제 10명 의 캠퍼스 목자들의 목자 투쟁기를 들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투쟁기를 들으면서 이분들의 공통점이 양들을 도우면서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투쟁하며 성장하는 분들임을 발견했습니다. 신세대, X 세대가 문제가 아니라 목자 자신의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자가 세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으 면 성령님의 세례에 대해서는 가르칠 수 없습니다. 목자가 중생의 체험이 없으면 양에게 중생의 진리를 가르 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목자가 정과 욕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과 욕심에 매여 있는 양을 분명 히 도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치는 생활은 곧 목자 자신의 신앙에 달린 문제이며, 양의 영적 성장은 목자 자신의 영적 성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양들의 생명을 짊어진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투쟁해야 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이들을 어떻게 도왔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이들에게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 풀며,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분이 바로 예수라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자기는 물 세례를 주지만 오실 그분 은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요한이 증거한 '오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 실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요한의 말대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 주셨으며,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사함을 받고,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다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는 그들에게 오순절 성령님 강림과 성령님 세례에 대해서 증거했습니다. 복음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심령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주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그들은 그제서야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고, 영적인 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영접하자 사죄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어 린 양 예수님의 보배 피로 그들의 모든 죄가 사해졌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은혜와 기쁨이 충만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이 그들의 심령에 충만케 되었습니다. 이들은 열두 사람쯤 되었습니다. 이들은 후에 에베소 교회개척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여 에베소 개척 동역자들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만난 제자들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들의 신앙이 어리다거나 구신자들이라고 구박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동역자들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신앙문제를 잘 알고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이 열심은 있었으나 복음 신앙이 부족한 것을 알고 온 마음을 다해서 그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복음의 핵 심을 깨닫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개척 역사는 독불장군과 같이 기발한 방법으로 자기 역사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연약한 형제들을 키우고, 그들을 동역자로 얻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 가운데도 사도 마리아가 되고, 목자가 되어도,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깨닫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탐장 목자님은 자기 주위에는 연약한 동역자들만 있기 때문에 팀 역사가 안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분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이분이 믿음이 어린 제자들을 키우는 믿음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키워서 동역자로 얻을 생각은 하지 않 고, 키워 놓은 동역자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서는 언제까지나 영적인 중풍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일대일 목자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서 훌륭한 제자감이 떨어지도록 기다리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캠퍼스에 나가 제자를 얻어야 합니다. 캠퍼스 양들은 예수님에 관해서 조금씩은 알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를 미션 스쿨에 다녔기 때문에 예수님에 관해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들은 성령님이 있음도 모릅니다. 또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으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하면 거듭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 심판의 하나님이 두려워서 율법적으로 마지 못해 교회에 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에는 다니지 않지만 기독교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을 영접하고, 이분들의 신앙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복음신앙이 부 족한 사람에게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명감을 심어 주 어야 합니다. 인간 기초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인간기초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현재 주어진 양들과 동역자들을 키우고, 영적인 동역자로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캠퍼스를 개척하고자 할 때 없는 것을 찾지 않고, 현재 있는 동역자들을 하나님께서 하락하신 소중한 제자들로 영접하고, 정성 을 다해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성령님의 충만함을 덧입을 때 소중한 동역 자들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Ⅱ.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는 바울(19:8-20) 8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하며 권면했습니다. 당시 에베소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대 회당에 들어가 담대히 '하나님 나라' 에 대해 강론했습니다. 여기서 강론했다는 말은 공개강좌를 한 것을 말합니다. 또 권면했다는 말은 '논하 고 설득시켰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 회당에 들어가서 열정적으로 천국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되었음과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증거했을 것입니다(요 3:3-5). 그리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촉구 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 음을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그것도 석 달 동안 담대히 강론하며 권했습니다.
그런데 9a절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습니다.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했다는 것은 공개적으로 바울을 대적하고 복음 진리를 비방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파하는 천국 복음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믿음으로 구원 받는 진리를 우습게 여기고 천국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들은 율법 문제, 할례 문제, 성전 문제,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문제, 민족적인 우월감 문제 등으로 바울을 헐뜯고, 그가 전하는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비방했습니다. 이들의 비 난하는 말을 통해서 순수하게 자라던 양들까지도 마음에 상처를 받고, 떨어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사단은 완악한 유대인들을 통해서 복음역사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3개월 동안 열정적으로 공개강좌 를 했으나 결과는 처절한 실패 뿐이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어떤 새로운 역사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까 9b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 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떠났습니다. 바울이 회당을 떠났다는 것은 중요한 사건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디 를 가든지 유대 회당을 중심으로 동족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대인의 본거지인 회당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방인 복음 역사에 전념하고자 방향을 잡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제자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이들은 3개월 동안 바울의 공개강좌를 듣고, 또 비판하는 많 은 유대인들의 말을 듣고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 남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바울을 목자요, 훈련관으로 모시 고,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는 소원이 간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 에베소에 왔을 때 만난 열두 명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영접하고 성령님 세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복음적인 기초가 튼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바울과 같은 목자요,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소원 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영적 소원이 충만한 이들을 따로 세웠습니다. 바울이 제자들을 따로 세운 목적은 이들을 유대인들의 불신과 악영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이들을 구별 시켜 집중적으로 훈련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많은 사람을 얻으려 하기보다 소수의 정예부대를 키우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이들을 따로 세우고 무엇을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 했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두란노라는 철학자의 사설학원이었습니다. 이곳은 에베소 사람들의 문화 시설로 토론도 하고, 강의도 듣고, 취미 생활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두란노 서원은 에베소 시민들에게 아주 친근한 장소였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대개 낮 11시가 되면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 식사 후에는 낮잠(siesta)을 잤습니다.
그러므로 두란노 서원도 낮 시간에는 강의실이 비었습니다. 바울은 이 빈 강의 실을 빌려 제자 양성을 했습니다. 이곳은 회당보다 훨씬 학구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성경을 자유롭게 가르 칠 수 있었습니다. 또 에베소 사람들은 너그러워 종교 문제로 비방하지도 않았습니다. 유대교회당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매 안식일마다 강론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매일 제자들을 모이게 하여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제자들을 날마다 모이게 하여 집중적으로 강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체계적인 성경 공부를 시킬 수 있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날마다 도울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강론했다는 말 은 일방적인 강의도 하지만, 질문하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discussion을 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20:19에 보면 바울의 고별사 중에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를 섬겼다'고 했습니다. 또 31에 보면 다음과 같은 고백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이 고백을 근거로 생각해 보면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했다는 말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는 것이었습니다. 각 사람을 훈계했다는 것은 일대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가르쳤음을 말합니다. 훈계했다는 것은 양들의 죄 문제와 내면 문제에 강력하게 도전하여 회개하도록 도왔다는 것입니다. 완악한 자를 붙들고 밤이 맟도록 눈물로 훈계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의 목자 생활에는 밤낮이 없었습니다. 밤낮 쉬지 않고 삼 년 동안 제자 양성에 전념했습니다. 오전 시간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천막회사에서 근무해야 했습니다. 앞 치마를 두르고 이마에 수건을 두르고 땀을 흘리며 천막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평신도 목자요, 선교사로서 자립하며, 주는 생활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20:34). 뿐만 아니라 바울은 센타 임대로도 지불해야 했 습니다. 또 양떼들을 섬기려면 많은 물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낮잠 자는 시간에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또 저녁에는 여러 집을 심방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20:20). 바울의 하루 생활은 오직 제자양성이라는 한 가지 기도제목을 이루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우리 목자님들처럼 사랑스러운 아내와 재롱을 부리는 아기도 없습니다. 이미 나 이는 50이 넘었습니다. 그때 나이 오십이면 할아버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루도 쉬지 않고, 제자 양성 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같이 줄기차게 제자양성에 힘썼을 때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아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나 헬라 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복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골로새 교회가 개척되고(몬
1,2),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골 4:13). 또 소아시아의 서머나, 버가 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피아 교회들이 개척되었습니다(계
1,2장; 고전 16:19). 이 교회들은 그후 몇 세기 동안 초대 기독교를 이끌어 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제자 양성의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바울 은 제자들을 훈련시켜 가까운 여러 도시에 개척자로 파송했습니다. 바울은 양들에게 복음을 심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을 제자로 삼고, 목자요, 선교사로 키워서 끊임없이 개척자로 파송했습니다. 삼 년 동안 눈 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며 키웠을 때 그들은 훌륭한 성경 선생이요, 목자요, 선교사들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온 아시아가 들썩거렸습니다. 일대일 제자양성의 역사는 참으로 미미한 역사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일대일 제자 양성의 역사는 큰 댐을 무너뜨리기 위해 작은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이 위력이 있습니다. 이 역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때가 되면 큰 댐을 무너뜨리고 온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게 하는 누룩과 같은 역사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줄기차게 제자 양성에 힘쓰고, 선교사를 파송할 때 세계 187개 국 캠퍼스에 있는 모든 양떼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을 믿습니다. 올 한 해 바울과 같이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여 복음을 심고, 목자요, 선교사로 키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또 바울의 손을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이 머리에 둘렀던 손수건이나 천막 기울 때 쓰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자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 도 떠났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역사였습니다. 그러자 돌아다니며 마술을 행하던 유대인들이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내고자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14-16절을 보십시오.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시도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 그러자 악귀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 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대들었습니다.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하 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도망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에베소에는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첫째,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둘째, 믿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죄를 자복하고 행한 일을 고했습니다.
셋째, 마술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마술책을 모아 모든 사람 앞에서 불태웠습니다.
그런데 그 값이 은 오만 냥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은 마술로 살아 온 죄악 된 삶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살고자 결단했습니다. 마술쟁이들이 회개하고 마술 책을 불태우는 것을 볼 때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동양의 신비주의 세력이 복음 의 능력 앞에 굴복하고, 정복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저자는 이러한 모든 역사의 원동력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이 모든 역사는 바로 주의 말씀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힘 있게 자라나고 널리 전파되는 역사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양떼들의 마음 속에 뿌 리운 말씀이 힘 있게 자라는 역사요, 말씀이 널리 전파되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말씀이 힘 이 있어 흥왕하여 우리 가운데 세력을 얻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들이 능력 있는 말씀의 종들로 성장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묵상함으로 우리 마음 속에 주의 말씀이 세력을 얻게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일대일 말씀 공부 역사에 전념해야 합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바울이 처한 환경보다 백배나 낫습니다. 우리에게는 전국에서 제일 좋은 센타가 있습니다. 이제는 캠퍼스 내에도 써클룸이 생겼습니다. 또 학교에는 빈 강의실이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비방하는 유대인들 도 없습니다. 바울처럼 막노동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우리에게는 강의안이 있습니다. 매주 은혜 받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은혜에 취해서 즐기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양 들의 마음 속에 뿌리운 말씀이 힘 있게 자라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이 캠퍼스 구석구석에 전파되 고, 세계 각국에 전파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임이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모임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올해는 누가복음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어 제자양성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Ⅲ. 세계 선교 비전에 넘치는 바울(21-41) 21절을 보십시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 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바울은 에베소에서 집중적인 제자 양성을 통해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후 로마 선교 비전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는 아시 아의 로마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제자 양성을 통해서 에베소에서 성공적으로 감당했습니다. 이처 럼 세계의 수도 로마에서도 제자 양성에 힘쓰면 땅끝까지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당시 로마는 누구나 보고자 했습니다. 정치가는 권력을 잡기 위해 로마를 보고자 했습니다. 군인은 천하를 손에 넣기 위해 로마를 보고자 했습니다. 상인은 세계의 경제권을 잡기 위해서 로마를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코자 하는 비전에 넘쳤습니다. 나아가 로마를 통해서 땅 끝 스페인까지 복음으로 정복코자 했습니다(롬 15:23). 바울이 이런 로마 선교 비전에 넘쳤던 것은 영웅주의나 이상주의에서 나온 발상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 한 데서 나온 확신이요, 비전이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가끔 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한 사람의 제자도 키우지 못한 사람이 선교사로 가겠다고 이상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외국에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비행기만 탄다고 선교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있는 이곳에서 사도 바울과 같 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제자 양성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말이 통하고, 사상과 감정이 통하는 한국에서 제자양성을 하지 못하면 이방 땅에 가서 어떻게 제자양성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일대일 역사에 목자 생활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이는 마게도니아와 아시아에 있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보내는 구제헌금을 모아 전해 주기 위함이었 습니다. 이를 통해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 습니다. 이를 위해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냈습니다(22). 그리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23-41절에 있는 사건은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 동업자들을 충동하여 바울을 추방하려는 운동을 벌였 습니다. 에베소에는 유명한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 신전은 넓이가 130m, 길이가 68m가 되는 거대 한 대리석 건물로 지어진 세계7 대 신비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에는 열두 개의 유방이 달린 아데미 라는 여신을 모셨습니다. 이 여신은 인간이나 동물들의 모든 생식을 장악하는 다산의 모신이었습니다. 또 이 신전에는 여 사제들이 많이 있었으며, 예배 순서에 sex 파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데미 숭배 사상이 500년 이상 내려 왔기 때문에 에베소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뿌리 박혀 있었습니다. 또 데메드리오와 같은 은장색들은 아데미 여신상을 만들어 막대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온 아시아에 복음이 전파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회개하므로 장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데모를 주동했 습니다. 25-27절을 보십시오. 직공들과 동업자들을 불러 모아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그 내용은 바울이 온 후 장사가 안 되며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는 것과 우상 숭배라 하여 자기들을 천하게 되었 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500년 이상 내려온 미풍양속을 해치고, 전통 문화를 파괴한다고 열변을 통했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은 분이 가득하여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하며 소리질렀습니다. 또한 바울과 같이 다니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연극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 연극장 은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극장으로 시민재판을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때 백성 가운 데로 들어가 말씀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권유로 그만두었습니다. 무리들은 두 시간 동안 이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하며 외쳤습니다. 그러나 31절을 보십시오.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때 서기장이 지혜롭게 무리를 안돈시키고, 정식으로 재판을 청구하도록 하여 무 리를 해산시켰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양들을 영접하고, 그들의 마음 속에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확실히 심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여 제자양성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금년에는 어찌하든지 요회별 12사도 마리아들을 세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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