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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 충만 (행19:1-13)

본문

신앙의 첫걸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는데 부터 시작이 됩니다. 당연히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끔 부름을 받았습니다. 성도는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알 수 있게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똑같은 하나님의 능력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믿을때 성령님을 받았느냐”는 이 질문은 당연한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신자는 주의 일을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능력을 먼저 알고, 행해야 됩니다. 인격도 물론 훌륭해야 되겠고, 공부도 많이 배워야 되겠습니만, 또 무슨 행정이나 재정도 잘 할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먼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의 최고가는 헤스페리오 제국 대학을 졸업한 모세를 쓰지 아니하시고, 왕궁에서 법도를 잘 배운 모세를 쓰지 아니하시고, 미디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은 모세를 부르사 노인된 그에게 지팡이 하나로서 그를 불러서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큰 일을 맡기기 이전에 먼저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 이름을 부르면서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며 증거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그때부터 모세는 40년 동안 능력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브라함도 언제부터 하나님의 큰 능력을 받았는가 하면, 자기 아들 이삭이 100세에 기적적으로 태어나는 것을 보고, 그때사 ‘진짜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구나!’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삭을 바치라고 할때, 참으로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히11장에서는, 아들 이삭이 죽더라도 살려 줄 것을 믿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기드온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기 전에는 움직이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담대히 움직인 것입니다.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 보고도 그랬습니다. 시위대 뜰에 갇힌 것이 문제가 아니고, 기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일을 행하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를 아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능력의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문제인 겁니다. 그러면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고 기도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 깨달음 없이 기도하면 허공을 메아릴칠 뿐입니다. 다윗이 고백하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나의 요새요! 방패요! 힘이시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았기 때문에 도와주는 사람도 적은데, 군대를 가지고 있는 사울을 이기게 되었고, 이스라엘에서는 최고가는 임금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 유다 다 합쳐서 전무후무한 임금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어릴때 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이사야를 불러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고 하면서 그것이 비밀이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바벨론에 포로 된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네가 무슨 대책을 세우고 일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왜냐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기”때문이라는 겁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광야에도 길을 내고, 사막에도 생수가 나게 하시는” 능력의 주님이시므로 이 사실을 알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 아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입니다. 모든 행정의 시작이 하나님의 능력 아는 것입니다. 교회 안의 위계질서도 하나님의 능력 알고난 이후 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우리는 모자라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우리는 간혹 가다가 실수하지만,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아는 자에게서 부터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조건 하나님의 능력 모르고 그냥 자꾸 믿을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본문에서도 보니까, 바울이 현장에 가서보니, 모여서 사람들이 믿기는 한데, 안다고 하는 것이 요한의 세례! 그것밖에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거기에서 정확하게 다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다시 설명합니다. 성령님으로 역사하는 능력의 하나님을 다시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이지만,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이 있는데 가보니, 요한의 세례밖에 모릅니다. 예수 이름으로 세례받고, 성령님세례 이런 것을 모릅니다. 거저 안다는 것이 요한의 세례, 그 정도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바로 깨닫는 길이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을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혹시 이 중에서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이 부분을 확인해야 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약 성경을 완전 성취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사단의 세력을 완전히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지옥으로 가는 사망의 문을 깨뜨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제사장, 왕 이 세가지 기능을 합친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참 선지자, 참 제사장, 참 왕이 십니다. 이 세가지 이름의 기능을 합친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 안되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최고 문제중 문제가 사탄입니다. 바로 그것을 깨뜨리는 힘을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여러분 집에 오신다면 무슨 일이든 다 되겠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우리 마음 속에 와 계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누구 이름으로요 예수 이름으로!입니다. 예수 이름을 부를때,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세상 방법으로 써서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빠져 나와야 됩니다. 해방받는 방법이 그리스도입니다. 재앙과 저주와 세상 법에서 우리는 빠져 나와야 됩니다. 사업하는 분들은 잘 기억하시고, 세상살이 하는 사람은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머리를 많이 쓰고, 열심히 하고, 너무 열심히 하다가 변칙도 쓰고, 너무 열심히 하다가 굉장히 이상한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고 그럽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를 못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공합니까 하나님의 능력 믿는데 아주 순진하면서도 자기 분야에는 전문가가 성공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를 바로 평가할줄 아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러나, 머리는 잘 쓰는데 어려움을 계속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머리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머리 쓰는 것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성공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바로 알면 세상의 모든 저주에서 해방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이 이름이 보통 이름이 아닙니다. 뿐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이 현장에 가서 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합니다. 이것이 다락방 전도의 비밀입니다. 다락방이란 무엇이냐 엡2:1절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사람 살리는 것입니다. 무엇을 살립니까 영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냥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살려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면 그 산사람은 생명 있는 곳으로 오기 마련입니다. 전도지 천장 만드는 것보다, 현장에 가서 사람을 살려 버리면 그냥 자꾸 오는 것입니다. 않그렇습니까 다락방에서나 설교에서 아무리 사람 살려 놓아도, 지역에서 만나가지고 사람 죽여 버리면 이상하게 헤메어 버립니다. 강단 에서 아무리 사람을 살려 놓아도 구역이나 현장에서 사람 죽여 버리면 일이 되어지지 않는 겁니다. 복음은 무엇이냐 다락방은 무엇이냐 이것은 현장을 살려버리는 것입니다. 예수 영접하면 살아나버립니다.
그러므로 일대일로 붙어서 살리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일대일 맡겨줄 때까지 기다리지 마시고, 전도 대상자를 정해놓고 집중 기도하고, 가서 정확한 복음으로 현장에서 허덕이는 영혼들을 살리시기 바랍니다. 살리는 일이라면 모든 자료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예수 영접하면 그 사람에게서 사단은 떠나가버립니다. 어마어마하지요 그것이 복음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오늘 바울이 복음의 능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엡2:2절에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하였습니다. 왜 우리가 현장에 가서 말해야 됩니까 가면, 현장에서 사단의 권세에서 눌려 있는 자들이 해방받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우상숭배하고 있어도, 사실은 사단에게 잡혀 있는 것이라고 엡2:2절에 말합니다. 그 사람이 제사지내는 것이, 알고보면, 악한 영에 잡힌 것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앞에다 무엇을 놓고 절하고 그러는데, 그것이 알고보면, 사단에게 잡힌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서 살리는 예수 이름 이야기하면, 그 사람을 해방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어디에 앉힌다고요”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있는 자에게 참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또한, 엡2:7절에 보니까,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증거들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분이 사업처에서 진짜 예수 운동을 하게되면, 몇년 안에 여러분 밑에 일하는 사람 가운데 사명자가 나오게 됩니다. 어떤 무역을 하는 집사님은 자기 사업처에서 예수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정도 역사가 일어나는가 하면, 거래하는 사람이 오지요 오는 사람을 붙잡고 얼마나 예수님을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 놓았던지, 이 사람이 거기서 회개하고, 또 어떤 사장이 볼일 보러 왔다가 거기서 또 회개하고 하는 이런 일이 많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사람이 사기쳐서 이 사람을 이용하러 왔다가 거기서 회개해버리는 역사까지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제대로 예수 운동을 편다면, 여러분의 현장에서 많은 증거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행9:1-9절에 바울이 주님을 참으로 알게 되었는데, 왜 우리가 은혜를 못받느냐 하는 것을 행9장의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느냐 지금, 부활하신 주님이 살아계셔서 교회와 주의 백성들과 산업을 세밀하게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몰라서 문제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니까, 염려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지금 같이 계시지 않으면 염려할 것이 자꾸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성령님이 여러분과 함께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여러분이 자꾸 염려하고 걱정하고 시기할 것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과 같이 다닙니다. 막 사람 찾아다니면서 내사람 만들고 할것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는 겁니다. 답답하십니까 지금 부활하신 주님이 속이 답답한 여러분과 이야기 하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를 안믿는 겁니다. 그래서 문제가 오는 겁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바울에게 나타나셨고, 마가 다락방에 나타나셨고, 어려움 가운데 있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셨고, 오늘 다락방 교회에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어떻게 오셨습니까 성령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진짜로 예수 믿느냐’는 겁니다. 그러자, ‘우리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입니다.’고 합니다. ‘아니, 어찌 처음 들어보느냐 성령님세례 못받았느냐’ ‘아, 우리는 요한의 세례를 받았을 뿐이다!’고 하자, “그러면, 지금 성령님세례 받아라!”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어렵고 흔들립니까 거기에 주님의 성령님은 와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아는날 여러분에게 역사가 일어나고 눈이 열리고 그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고 다락방이 어렵고’ 그럽니다. 아니, 주의 성령님께서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여러분이 말씀을 이루도록 따라 다니면서 모든 것을 다 도와주는데 뭐가 어렵습니까 각도가 안맞고, 생각이 틀리니까 하나님이 보실때 아직 아니라서 안주고 있기 때문에 그럴 뿐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 이 말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느냐’는 말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서 성령님으로 지금 모든 교회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부활행전입니다. 이것을 이해해야 성령님행전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해되어야 전도를 이해하는 겁니다. 지금 예수님이 어디 계십니까 눅16:19-20절에 “주께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그러면서 20절에는 “주께서 저들과 함께 역사하사.” 했는데, 바로 이 두가지가 비밀입니다. 주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동시에 잡아버리는 것입니다. 그 말이 이해되어야만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가 가졌다!’는 말이 이해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버렸는데, 하늘의 권세를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으로 모든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이래서 무엇을 잡았습니까 땅의 권세를 잡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마지막날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게 될때에 그때 오시게 될 것입니다. 눈에 보이도록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에는 성령님으로 정확하게 교회와 여러분들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남에게 안좋은 소리 좀 들으면 속이 상하지요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십니다!’ 남이 안알아 주니까, 그렇게 힘이 안납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시는데, 왜 힘이 안납니까 그럴리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여러분을 복주실려고 따라 다니고 계십니다! 그것도 그냥 따라 다니시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을 동원해서 여러분을 밀면서, 할일을 전부 도와주면서 세밀하게 따라 다니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멘!’ 안해도 사실입니다. 전 교회가 모여서 아니다!고 해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확실히 깨닫는 것을 가리켜 성령님충만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사업과 현장에 나타나는 것이 성령님충만입니다. 이것이 교회에 나타납니다. 그것이 성령님충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아무것도 아닌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성령님충만입니다. 여러분 산업을 놓고, 복음 전하기 위해서 기도했더니, 얼토당토 않게 하나님의 역사가 자꾸 일어나는데, 이렇게 간증거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성령님충만입니다. 다락방에 역사가 자꾸 일어나고, 일대일 양육에 역사가 자꾸만 일어나는 것이 성령님충만입니다. 이것이 현장에 일어나면 아무 걱정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과 같이 계신 증거입니다. 사도 바울이 풍랑 속에서 14일동안 배에서 먹지 못하고, 배 밑에 앉아서 기도하였는데, 주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주의 사자를 보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게 된 그 주님이 역시 나타났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었는데, 거기 나타나셨던 그 주님이 또 역시 그 풍랑의 와중 속에 오셔서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시말해, ‘네가 세계 복음화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세계의 황제인 가이사 앞에 서야 될 것이 아니냐 네가 왜 두려워 하느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모든 사람은 네 손에 다 맡겼다!’고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사업을, 내 일을, 주님의 손에 완전히 드리겠다!고 할때에 그 뒤에 일어나는 성령님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락방 교회만을 위해 일 안해도 괜챦습니다. 여러분이 동서남북에서 주 예수를 선포하면, 주의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집에 역사하시고, 우리 다락방 교회에 역사하는 겁니다. 안디옥 교회가 최고의 인물 바울과 바나바를 마게도냐로 내어 보내는데, 하나님은 안디옥 교회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매”라고 하였고, 안디옥 교회에 와보니, “주의 은혜가 보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올바른 복음을 말한다면, 주의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일터에, 자녀들에게 주의 성령님은 분명히 역사할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복음을 바르게 말했는데, 주님의 능력이 도무지 없다면 우리는 생각을 다르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연약해도 주님은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 주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고, 그 주님으로 말미암아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깨달아져야 성부, 성자, 성령님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말씀을 절대로 이루시는 성부 하나님, 하나님의 모든 멧세지를 성취시키시는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지금 우리와 같이 계시고 교회를 다스리고 계시는 성령님 하나님이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 ‘네가 믿을 때에 정말 하나님의 능력을 아느냐’ ‘부활하신 주님이 보혜사 성령님으로 역사하는 줄을 아느냐’는 겁니다. 구약 시대 때의 성령님은 거저 감화를 입히고 가고, 능력만 베풀고 가버리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속에 들어가 세례를 주고, 네 영을 살리고, 네게 힘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느냐’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설명하는데, 사람들이 듣고는 ‘우리가 몰랐다!’고 합니다. 지금 교회들이 ‘정말 복음 전하려고 한다면,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신 주님이 그 교회와 같이 계셔서 엄청난 역사를 주실 것이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야 될 것이며, 무엇이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그 성령님은 완전한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무엇을 받고” “권능을 받고!”했습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어렵습니까 괜챦습니다. 여러분 환경이 지금 어렵습니까 괜챦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지금 다 알고 계시고,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우리가 그 성령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주님은 그 다음날 일을 행할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바라보라! 여호와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내가 능한 손을 들고 네 원수를 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시험은 올 수도 있습니다. 다락방 교회는 주님 오시날 까지 도전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면, 복음 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눈감고 무덤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단은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각오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것을 못깨달으면 큰일 납니다. 우리가 올바른 복음을 전한다면, 우리가 무덤 속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단은 집중 공격할 것인데, 그것을 못깨달으면 그 중직자는 큰일 날 중직자입니다. 그것을 못깨달은 교역자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하나님도 우리를 집중적으로 도울 것입니다. 왜냐면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령님충만이라고 합니다. 이 베드로가 고난 당할때 기도하기를 ‘주여 우리의 위협 당함을 하감하옵시며, 우리가 담대히 주의 말씀을 전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지요 그때 누가 임했습니까 “빌기를 다하매,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학생들이 주일날 어떻게 하며, 월요일 보는 시험은 어떻게 합니까 그 답은 너무 간단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믿는 학생들과 같이 계신다는 사실만 안다면, 됩니다. 남이 알아주는 것보다, 본인이 알아야 됩니다. 지혜의 신이신 주의 성령님이 우리 학생들과 같이 계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문제는 끝날 것입니다. 안그렇습니까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다락방은 말씀으로 치료하고 성령님으로 역사 일으키는 곳입니다. 지금 큰 교회들이 예수님 이야기를 잘 안합니다. 그러면 인기 없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회운동 이야기하고, 무슨 윤리나 환경운동, 시사성 있는 이야기 많이하고 끝에가서 예수님 이야기 조금하고 끝내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러니 교회 신자들이 다 말라 죽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야기를 확실하고 똑똑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이 보혜사 성령님으로 우리와 같이 다니기 때문에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성령님의 능력은 언제 나타납니까
1) 믿는 자의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행19:6)“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꼭 안수에다 촛점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안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의 진짜 촛점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바울이 지금 부활하신 예수 이름으로 기도했다는 겁니다. 기도하는데 안수로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성령님이 임해버린 것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안수하면 아무 역사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이 중요합니다.
2) 믿는 자의 증거를 통해서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행19:8-10)“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9)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10)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믿는자의 증거를 통해서입니다.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주님은 어떻게 역사합니까 우리가 기도할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입니다. 믿는 자가 증거할때 그때 역사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언제 은혜 받습니까 말씀 듣다가입니다. 말씀 듣다가 ‘아, 그렇다!’하면서 깨달음이 오지요 그래서 그 깨달음으로 막 기도했더니, 은혜받고, 어떤 때는 병도 낫기도 하고, 어떤 때는 기도 응답이 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행19:11-12)“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사람이 볼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볼때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것을 악용해가지고, 어떤 사람은 서울에 어떤 사람은 손수건을 보내 주어서 덮어서 기도해라!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얼마나 믿음이 역사하든지, 바울 옆에만 가면 믿음이 역사하는데, 그때 누가 역사합니까 주님이 역사해버리는 것입니다. 믿음있는 주의 백성이 가서 믿음 이야기를 자꾸하니까, 거기에 누가 역사하느냐 하면, 성령님이 역사하는 겁니다. 그러니, 수건 아니라, 볼펜을 던져도 되겠지요 그러나, 믿음 없는 사람이 자꾸 가서 시험 주어버리면, 악령이 역사하는 겁니다. 믿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새신자에게 가서 이상한 이야기만 자꾸하면, 이 사람에게 이상한 영이 들어가버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확실히 있는 사람,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한 사람이 가서, 말씀을 말하고 기도하니까, 거기에 역사가 일어나버리는 겁니다. 어떤 때는 기적이 일어나버리고, 병이 떠나가 버리고 그러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3절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행19:13)“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지금 악신 들려서 예수도 안믿으면서 예수 이름으로 말합니다. 반드시 마귀는 역사합니다. 여러분 마귀는 이 복음 전하는 일을 얼마나 시기하며 시험을 많이 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 복음 전하는 자에게 얼마나 축복을 많이 주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빨리 눈치채야 합니다. 우리가 큰 복음의 사역을 하고자 시도하고 진행될 것을 사단이 알기만 하면, 반드시 공격해 옵니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헛점을 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지금 우리가 현장에 들어가서 예수 이야기를 똑바로 해서 증거를 보고 말하자!는 운동을 본격적으로 펴고 있는 겁니다. 마귀가 비상걸린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비상 걸었습니다. 그래서 복을 받는 겁니다. 하나님이 비상 거는 때는 우리가 복음 바로 전하는 그때입니다. 잘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염려할 것도 없고, 흔들릴 것도 없습니다. 이 마술사가예수 이름을 빙자하여서 할려고 하는데 됩니까 안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완전히 승리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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