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주를 섬깁니까? (행20:17-31)
본문
사도 바울은 밍레도에서 지도자들을 불러 놓고 그 동안 자기가 에베소에서 복음 사역을 한 것에 대해서 말했 습니다. 바울의 복음 사역을 보면 그는 한 곳에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러 있 지 않았습니다. 한 곳에 복음이 들어가고 믿는 사람이 생겨 그곳에 복음이 계속 전파될 수 있다고 생각되면 그곳에 지도자를 세우고 교회를 세운 다음 다른 곳으로 옮겨가곤 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선교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선교 사역이 가장 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의 선교 시역은 에베소 도시 를 복음화시켰을 뿐 아니라 그 주변에도 복음을 전하는 데 중요한 역 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9장 8절 이하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이 회 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 하되 어떤 사람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 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 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 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라는 도시의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들을 따로 세워 그 들에게 전도 요원으로 훈련을 시켰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2년 남짓하 게 훈걸시킨 것 같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비 단 에베소라는 그 도시에 층격이 되었을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영 향을 끼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 2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바울이 에베소 뿐만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이 그 당시의 중동아시아와 소아시아 전역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신 말씀에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이렇게 성공적이고 효율적인 선교 사역을 함으로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비결을 발 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바울이 어떻게 사역했기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를 놀랍게 쓰셨습니까 그의 사역은 복음 전파를 위하여,그리고 주를 섬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19절을 보세_9_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 고 주를 섬긴 것과' 했습니다. 여기 세 가지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1. '모든 겸손과'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겸손의 자세로 주를 섬겼습니다. 여기 그냥 겸손이라 하지 않고 진든 손'이라고 말한 것은 무슨 말일까요 이것은 온전한 겸손 이라는 말입니다. 왜 이런 말을 썼을까요 그것은 바울이 어느 한 순간 에만 겸손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의 복음 사역 전반에서 겸손하려고 힘썼던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언제나 모든 방면에 겸손하게 살려고 노력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큰일을 하고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에게 주님을 겸손히 섬기는 자세가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의 사역을 받아 들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보면 이 원리를 체험하 게 됩니다.우리는 전도할 때 '논쟁에는 지고 전도에는 이기라'는 말 을 합니다. 논쟁에 이기려면 이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자세로 복음을 전했을 때 상대방은 '네 말이 맞아, 그러나 내가 믿나 봐라.' 하는 자세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이 정말 열매 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 겸손의 덕이 얼마나 필요한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겸손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여겼습니다. '섬긴다'는 말을 영어로는 'serve'라고 하는데 이것은 종이라는 말 'servant'와 어근이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종이 되지 않고는 섬길 수가 없 습니다. 이 종의 자리는 겸손의 자리입니다. 종은 그 당시 로마에서 가장 비참한 대우를 받으면서 가장 잔인하 게 학대를 받으면서 살았던 노예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께서 이 노예된 자리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형편없이 좋지 않은 노예, 종이라는 말로 자기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된 나 바뚤'이라 했 습니다. 바울은 다른 데서는 종이 되기를 절대로 거부했지만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만은 철저하게 종의 자리에 서기를 원했습니다. 종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날은 그런 사회제도가 없기 때문에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종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종은 철저하게 주인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주를 섬긴 다는 의식이 없이는 종이 될 수가 없습니다. 다른 말로 주인을 발견하 지 않은 사람은 종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종이라는 말을 좋게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처한 것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인이 되셨다는 것을 철저하게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정말 나의 주님이시라면 나는 그분의 종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세대를 자기 중심의 세쌔라고 부릅니다.철저하게 이기주의 적인 시대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자기 중심의 삶은 종과는 거리 가 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의 주가 되신다는 것을 철저하게 각성하면 할수록 우리는 종의 자리에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 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여러분, 왜 우리가 교만합니까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내 가 더욱 자랑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 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지식이 좀 더 있 으면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돈이 좀 더 있으면 교만 해집니다. 권력이 남보다 좀 더 있으면 교만해집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받 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든. 재물이 든, 권력이든. 그것을 주님께서 얻을 수 있게 해 주신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버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을 가진 것처럼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삶을 '주를 섬기는 '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구 를 섬겨요 주를 섬긴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먼저 예수님이 자기의 주 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주를 섬기는 삶이 자기가 서 있어야 할 삶 의 자리인 것올 깨달았습니다. 바울이 끝까지 겸손의 자리에 머물러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올 언제 나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주님이 주신 것인데 무 엇 가지고 내 것인양 자랑할 수가 있is습니까 주님이 주신 것을 가지 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무 엇을 자랑할 수가 있습니까. 사도행전 20장 33절을 보세요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탐심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철저하게 주님을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종이 욕심을 품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종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에게 돌아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만 주님만 바라보고 계속 사역 할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종의 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어느 정도까지 종의 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24절을 보시면 바울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 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까지 라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의 정신입니다. 이 철저한 종 의 정신이 바울을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하게 만들었고 그의 사역을 겸 손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2.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눈물로 주를 섬겼습니다.사도행전 20장을 읽어보면 눈물이 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것은 바울이 주를 섬기는 일이 얼마나 진 지했나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오늘 주신 말 31절을 보세요 '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S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련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농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눈물로 사람에게 호소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S7절 이하에 보면 바울과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들이 헤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이 복음을 위해서 얼마 나 친근하게 지내면서 사역했었나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 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염려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들의 관계는 복음 안에서 맺어진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만난 사람은 그 관계가 없어지면 그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권력으로 만났던 사람도 그 자리에서 떠나면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영원한 복음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끈끈한 관계는 세상적인 만남과의 관계와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지방이나 외국에 나가 집회를 인도할 때 오래 전에 섬기던 교회의 성도들을 만납니다. 어느 형제가 그렇게 가깝게 사랑으로 대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저 대접하지 못해서 안타까꺼하고 헤어지는 것을 그렇게 아쉬워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관계가 얼마나 강한 것 인지 확인하게 됩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도 기뻐하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주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입니다. 주께서 눈물 홀리시는 장면이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세마네 동산에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 셨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친구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홀리 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홀리셨습니다. 바울의 경우도 세 번 눈물을 흘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빌럽보 3장 18절에 보면 '내가 여러 번 너회에게 말하였거니와 이 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로 행하느니라' 했습니다. 바울은 그 당시의 종교인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거역하고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홀렸습니다. 로마서 9장 1절에 보면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님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한다' 고 했습니다. 복음 없이 살고 있는 동족을 향해서 가슴 아파하며 눈물 을 홀렸습니다. 여러분, 멸망을 향해가고 있는 내 이웃들의 모습을 바 라보면서 바울처럼 마음의 고통을 느끼면서 눈물을 흘리십니까. 고런도후서 2장 4절에 보면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 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 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눈물로 고도서를 썼습니까 신앙의 연륜은 있는데 그에 따르는 변화와 충만함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많은 눈물로 이 편지를 쓴다'고 했 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31절을 다시 보세요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생각하라' 고 했습니다.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3o절에 보면 '또한 너회 중에서 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쫓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탈선하게 할 수 있는 이단의 유흑은 언 제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나는 자신 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성장의 가장 증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순결한 신 앙을 가지고 바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도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모여 앉기만 하면 잡담이나 하고 비판과 중상을 일삼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영향을 받습니다. 사실 이것은 노골적인 교리적 이단보다 어떤 의미에 서는 터 경계해야 할 위험한 요소입니다. 바울은 3년 동안이나 정성껏 가꾸어 놓은 나무가 잘못된 영향을 받 아서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너무나 가슴 아파했습니다. '눈물로 여러분에게 권했던 말씀을 기억하세요' 하는 것입니다. 데일리가 D. L. 무디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옥에 관해서 설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무디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무디는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한번도 끝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D. L. 무디는 지 옥에 관한 메시지가 나오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끊어져 죽음을 향해 가는 그 영흔들을 바라볼 때 무디는 더 이상 메시지를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도 이런 심정에서 눈물 을 흘렸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눈물이 있습니까
3.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습니다.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다'고 오늘 주신 말씀 19절에 말했습니다.바울이 전도 사역을 시작할 때 그의 사 역을 가로막는 방해자는 뜻밖에도 자기 동족 유대인이었습니다. 놀라 운 것은 우리가 주님께 참으로 헌신하기 시작하면 우리 주변에서 방해 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나 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비판하고 조롱합니다. 그때 우리는 고독을 느끼고 고통을 당합니다. 마귀는 꼭 그떻게 역사합니다. 바울 이 바로 그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을 참았다. 이 시험을 참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할 때 고난은 가까운 사람에게서 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섬기기로 결심하면 마귀는 우리 중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방해합니다. 바울이 모든 고난을 극복하면서 인내하고 주를 계속 섬길 수 있었 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울에게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기 때문이 라고 믿습니다.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바울을 사 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시험을 인내하고 주를 섬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24절에 고백하지 않았어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니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 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했습니다. 바울은 지급 어디에 갑니까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바울에게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면 체포당하여 죽을 것을 미리 알려 주 셨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 바울의 고독과 고통을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도 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 고 가는 바울의 길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허락하신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어떤 고난도, 어떤 상처도, 어떤 오해도, 어떤 배신도. 어떤 모멸도 이겨내고자 하는 결의 가 있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생명을 걸었습니다. 세상에 생명을 걸 리 훈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여, 우리도 바울처럼 겸손한 자세로, 뜨거운 눈물로 어떤 시험도 인내하면서 주님을 섬기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선교 사역이 가장 효율적이었다고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의 선교 시역은 에베소 도시 를 복음화시켰을 뿐 아니라 그 주변에도 복음을 전하는 데 중요한 역 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9장 8절 이하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이 회 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 하되 어떤 사람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 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 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 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라는 도시의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들을 따로 세워 그 들에게 전도 요원으로 훈련을 시켰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2년 남짓하 게 훈걸시킨 것 같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비 단 에베소라는 그 도시에 층격이 되었을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영 향을 끼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 2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바울이 에베소 뿐만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이 그 당시의 중동아시아와 소아시아 전역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신 말씀에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이렇게 성공적이고 효율적인 선교 사역을 함으로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비결을 발 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바울이 어떻게 사역했기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를 놀랍게 쓰셨습니까 그의 사역은 복음 전파를 위하여,그리고 주를 섬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19절을 보세_9_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 고 주를 섬긴 것과' 했습니다. 여기 세 가지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1. '모든 겸손과'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겸손의 자세로 주를 섬겼습니다. 여기 그냥 겸손이라 하지 않고 진든 손'이라고 말한 것은 무슨 말일까요 이것은 온전한 겸손 이라는 말입니다. 왜 이런 말을 썼을까요 그것은 바울이 어느 한 순간 에만 겸손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의 복음 사역 전반에서 겸손하려고 힘썼던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언제나 모든 방면에 겸손하게 살려고 노력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큰일을 하고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해도 그에게 주님을 겸손히 섬기는 자세가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의 사역을 받아 들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보면 이 원리를 체험하 게 됩니다.우리는 전도할 때 '논쟁에는 지고 전도에는 이기라'는 말 을 합니다. 논쟁에 이기려면 이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자세로 복음을 전했을 때 상대방은 '네 말이 맞아, 그러나 내가 믿나 봐라.' 하는 자세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이 정말 열매 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 겸손의 덕이 얼마나 필요한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겸손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여겼습니다. '섬긴다'는 말을 영어로는 'serve'라고 하는데 이것은 종이라는 말 'servant'와 어근이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종이 되지 않고는 섬길 수가 없 습니다. 이 종의 자리는 겸손의 자리입니다. 종은 그 당시 로마에서 가장 비참한 대우를 받으면서 가장 잔인하 게 학대를 받으면서 살았던 노예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께서 이 노예된 자리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형편없이 좋지 않은 노예, 종이라는 말로 자기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된 나 바뚤'이라 했 습니다. 바울은 다른 데서는 종이 되기를 절대로 거부했지만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만은 철저하게 종의 자리에 서기를 원했습니다. 종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날은 그런 사회제도가 없기 때문에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종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종은 철저하게 주인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주를 섬긴 다는 의식이 없이는 종이 될 수가 없습니다. 다른 말로 주인을 발견하 지 않은 사람은 종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종이라는 말을 좋게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자처한 것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인이 되셨다는 것을 철저하게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정말 나의 주님이시라면 나는 그분의 종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세대를 자기 중심의 세쌔라고 부릅니다.철저하게 이기주의 적인 시대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자기 중심의 삶은 종과는 거리 가 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의 주가 되신다는 것을 철저하게 각성하면 할수록 우리는 종의 자리에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 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여러분, 왜 우리가 교만합니까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내 가 더욱 자랑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 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지식이 좀 더 있 으면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돈이 좀 더 있으면 교만 해집니다. 권력이 남보다 좀 더 있으면 교만해집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받 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든. 재물이 든, 권력이든. 그것을 주님께서 얻을 수 있게 해 주신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버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을 가진 것처럼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삶을 '주를 섬기는 '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구 를 섬겨요 주를 섬긴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먼저 예수님이 자기의 주 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주를 섬기는 삶이 자기가 서 있어야 할 삶 의 자리인 것올 깨달았습니다. 바울이 끝까지 겸손의 자리에 머물러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올 언제 나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주님이 주신 것인데 무 엇 가지고 내 것인양 자랑할 수가 있is습니까 주님이 주신 것을 가지 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무 엇을 자랑할 수가 있습니까. 사도행전 20장 33절을 보세요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탐심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철저하게 주님을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종이 욕심을 품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종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에게 돌아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만 주님만 바라보고 계속 사역 할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종의 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어느 정도까지 종의 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24절을 보시면 바울의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 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까지 라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의 정신입니다. 이 철저한 종 의 정신이 바울을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하게 만들었고 그의 사역을 겸 손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2.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눈물로 주를 섬겼습니다.사도행전 20장을 읽어보면 눈물이 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것은 바울이 주를 섬기는 일이 얼마나 진 지했나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오늘 주신 말 31절을 보세요 '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S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련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농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눈물로 사람에게 호소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S7절 이하에 보면 바울과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들이 헤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이 복음을 위해서 얼마 나 친근하게 지내면서 사역했었나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 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적인 염려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들의 관계는 복음 안에서 맺어진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만난 사람은 그 관계가 없어지면 그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권력으로 만났던 사람도 그 자리에서 떠나면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영원한 복음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끈끈한 관계는 세상적인 만남과의 관계와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지방이나 외국에 나가 집회를 인도할 때 오래 전에 섬기던 교회의 성도들을 만납니다. 어느 형제가 그렇게 가깝게 사랑으로 대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저 대접하지 못해서 안타까꺼하고 헤어지는 것을 그렇게 아쉬워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관계가 얼마나 강한 것 인지 확인하게 됩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도 기뻐하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주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입니다. 주께서 눈물 홀리시는 장면이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세마네 동산에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 셨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친구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홀리 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홀리셨습니다. 바울의 경우도 세 번 눈물을 흘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빌럽보 3장 18절에 보면 '내가 여러 번 너회에게 말하였거니와 이 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 로 행하느니라' 했습니다. 바울은 그 당시의 종교인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거역하고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홀렸습니다. 로마서 9장 1절에 보면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님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한다' 고 했습니다. 복음 없이 살고 있는 동족을 향해서 가슴 아파하며 눈물 을 홀렸습니다. 여러분, 멸망을 향해가고 있는 내 이웃들의 모습을 바 라보면서 바울처럼 마음의 고통을 느끼면서 눈물을 흘리십니까. 고런도후서 2장 4절에 보면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 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 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눈물로 고도서를 썼습니까 신앙의 연륜은 있는데 그에 따르는 변화와 충만함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많은 눈물로 이 편지를 쓴다'고 했 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31절을 다시 보세요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생각하라' 고 했습니다.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3o절에 보면 '또한 너회 중에서 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쫓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탈선하게 할 수 있는 이단의 유흑은 언 제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나는 자신 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성장의 가장 증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순결한 신 앙을 가지고 바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도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모여 앉기만 하면 잡담이나 하고 비판과 중상을 일삼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영향을 받습니다. 사실 이것은 노골적인 교리적 이단보다 어떤 의미에 서는 터 경계해야 할 위험한 요소입니다. 바울은 3년 동안이나 정성껏 가꾸어 놓은 나무가 잘못된 영향을 받 아서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너무나 가슴 아파했습니다. '눈물로 여러분에게 권했던 말씀을 기억하세요' 하는 것입니다. 데일리가 D. L. 무디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옥에 관해서 설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무디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무디는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한번도 끝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D. L. 무디는 지 옥에 관한 메시지가 나오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끊어져 죽음을 향해 가는 그 영흔들을 바라볼 때 무디는 더 이상 메시지를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도 이런 심정에서 눈물 을 흘렸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눈물이 있습니까
3.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습니다.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다'고 오늘 주신 말씀 19절에 말했습니다.바울이 전도 사역을 시작할 때 그의 사 역을 가로막는 방해자는 뜻밖에도 자기 동족 유대인이었습니다. 놀라 운 것은 우리가 주님께 참으로 헌신하기 시작하면 우리 주변에서 방해 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나 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비판하고 조롱합니다. 그때 우리는 고독을 느끼고 고통을 당합니다. 마귀는 꼭 그떻게 역사합니다. 바울 이 바로 그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을 참았다. 이 시험을 참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할 때 고난은 가까운 사람에게서 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섬기기로 결심하면 마귀는 우리 중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방해합니다. 바울이 모든 고난을 극복하면서 인내하고 주를 계속 섬길 수 있었 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울에게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기 때문이 라고 믿습니다.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바울을 사 로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시험을 인내하고 주를 섬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24절에 고백하지 않았어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니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 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했습니다. 바울은 지급 어디에 갑니까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바울에게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면 체포당하여 죽을 것을 미리 알려 주 셨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 바울의 고독과 고통을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도 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 고 가는 바울의 길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허락하신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어떤 고난도, 어떤 상처도, 어떤 오해도, 어떤 배신도. 어떤 모멸도 이겨내고자 하는 결의 가 있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생명을 걸었습니다. 세상에 생명을 걸 리 훈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여, 우리도 바울처럼 겸손한 자세로, 뜨거운 눈물로 어떤 시험도 인내하면서 주님을 섬기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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