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께 받은 사명(使命) (행20:22-35)
본문
구원은 개인적입니다만, 성경에서 성도님들을 가리킬 때는 우리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구약에서도 이스라엘이라 하면, 한 사람 야곱을 지칭하기보다, 유대민족을 구별하는 말로서 더 나 아가서는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지칭하는 말로서 씌어지고 있습니다.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 교회는 신앙의 유익을 위하여 사람들이 만든 수단과 방법이 아 닙니다.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댓가를 지불하고 세우신 교회라고 하지만 어떻습니 까 문제 투성이 입니다.때로 교회의 직분자들이상식 이하 의 행동을 함으로서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가로막기도하고, 29 절에 보시는 바와 같이 흉악한 이리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그 양 떼를 헤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이 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불안하게 보이는 교회 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오셨고 또 이루어 가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이 하나님께서피로 값주고 사신 이 교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이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깨달아 교회로 부름받고 있는 성도의 사명을 어떻게 바로 감당할 수 있을까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1. 교회는 훈련장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 어져 가느니라. (엡 2:20-22) 믿음은 분명히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출발합니다.그러나 나는 또 다른 성도인 너와 함께 하나님의 거하실 처 소인 건물을 세워가야 한다는 부름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믿음은 공동체적인 사명을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결국 혼자의 싸움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내는 향기로운 삶을 통하여 내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허락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게 되면, 나보다 믿음생활이 앞서고 믿음이 좋은 성도들이 가득한 교회란 천국같은 곳이 려니하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저 세상보다 더 못하게 보일 때가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교회는 그래도 세상사람들 보다는 낫겠지 했는데 오히려 상처를 주는 원수같은 사람들과 말도 안되는 상식이하의 사건들이 널려진 교회를 보게 되더라는 것이지요.처음 예수를 믿은 성도들은 여기에서 당황하고 교회를 떠나가거나 교회를 부정하는 무교회주의로 가버 리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교회란 아무 것도 안하고 푹 쉬는 휴 식처도 아니요, 여러분의 심부름센터도 아닙니다.여러분이 영광 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예수님의 신부답게, 성도답게 다듬어져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훈련장으로서의 교회를 허락 하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는 믿음의 고백이 진실인지 가짜인지 어떻 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나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다른 성도와 교회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싶을 때가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제자(首弟子)인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요.다른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더라 도 자기 만을 죽는 데 까지라고 함께 하겠다고 칼을 빼어 들고 자 신만만한 맹세를 했습니다.그러나아직 그 맹세가 귓전에 생생 한 데, 예수의 잡히시던 밤에 자기만 살겠다고 예수님을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했던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큰 소 리치시기 전에 우리의 믿음의 자리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원수 를 만나보아야 정말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교회 안에는 원수같은 사람들과 사건들이 준비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어 마땅한 우리들을 사랑하사 우리가 있는 자리 까지 오셔서 우리와 함께 울고 고난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 을 얻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거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고전 9:12)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 로라. (고전 9:18) 성도 여러분은 갖고 계신 권(權)을 복음을 위하여, 그리스도 의 영광을 위하여 다 쓰시지 아니하시고, 손해보고 참아내는 자리 까지 가야 한다는 것으로 부름받고 있는 것입니다.아휴, 난 누구 꼴보기 싫어서 교회가기 싫어. 저런 사람이 어떻게 목사를 하며 전도사를 할까저런 사람이 어떻게 장로가 되며, 안수집사 가 될 수 있을까 이러시면 안됩니다.그러지 말고 왜 나는 아 직도 원수를 사랑할 수 없을까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물과 피 를 쏟아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는 근처에도 못갈까 하면서 자신을 쳐야 합니다.내가 예수는 떠나서 못살지만,교회가면 꼴보기 싫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교회나가기는 싫다는 투의 말은 삼가야 합니다.이는 마치 학교에는 가고 싶은데 숙제 때문에 학 교에 못가겠다는 말과 같습니다.숙제해 가는 것이 고달파 보여 도 결국 여러분을 위한 선생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실력이란 공부잘 하는 학생을 구경하다 왔다고 해서 향상되는 것이 아닙니다.자신의 피와 땀과 눈물의 댓가를 치루면서 자 기 것이 되어야 실력인 것처럼 믿음도 훈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고 이 훈련은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교회는 신령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부흥되어야 합니다.그러나 부흥의 목적이 일차적으 로 봉사와 구제, 전도와 선교 등이라고 말 해서는 안됩니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 라. (딤전3:15)교회는 모일 때 마다 어떤 좋은 일을 할까를 계획하기 전에 무엇이 진리인가 우리가 죽어도 좋을 삶의 이유와 목적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가 논의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의 선하고 좋은 일을 통해서 오는 기쁨과 만족함 으로 쉼을 얻는 것이라기 보다는 좋은 일을 해 놓고도 실컷 욕을 얻어먹는 곳이요, 그래서 갈등이 있는 곳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 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저가 이스라엘의 왕 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러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 27:40-42). 죄인된 그들을 위해서 지신 십자가의 형벌이건만 오히려 그들 로 부터 감사와 찬양대신 희롱을 당하시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십시요. 너희가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마 5:43-47)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교회로 부름받고 있음은 바로 이런 자 리입니다.믿음이 좋으면 이 세상에서 말하는 소위 출세가 보장 되고, 앞길이 순탄하며, 대적할 자가 없고, 마음먹은대로 형통할 것이라고 오해하지 마십시요.믿음만 있으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좋은 학교에 붙게 되더라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환경을 우리의 마음먹은 대로 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에 믿고 의지한다는 것으로 신앙이 고백되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이란 이 세상의 환경과 조건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얻는 방법이 아닙니다.신앙은 비록그 믿음이 하나밖에 없는 나의 목숨을 요구하더라도 기꺼이 내놓으면서까지 증명해야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의 크기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 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 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 3:17-19) 성도는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들이요,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기고 작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들입니다.종교적인 자리에서만 예수 믿는 표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신앙적이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입니다.이런 성도들이 모여서 이룬 하나님의 교회는 그 자체가 신령한 공동체 일 수 밖에 없답니다.
3. 주 예수께 받은 나의 사명 교회는 밖으로부터 오는 핍박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스스 로의 내적인 부패로 썩습니다.여러 성도님들의 힘과 재주로 여러분이 어떤 존재인지를 사람과 하나님 앞에 보여주기 위하여 부 름받고 있지 않습니다.철저하게 항복하고 나서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고 넓고 강력하게 나타나시는 가를 보여주어 야하는 것입니다.성도는 자신이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기에 하나님이 지키지 않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교회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닙니다.바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성도님들이 교회입니다.여러분이 거하시는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태도와 자세가 문제입니다.그래서 앞서간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찬양했답니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많은 이 세상도 기쁨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믿음의 사람은 세상의 위협에 담대하며, 갖은 유혹을 멀리하 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습니다.믿음 의 사람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하나님을 위하고, 저 세상을 향한 불타는 사랑과 전도의 열정으로 타오르는뜨거운 가슴으로 삽니다.믿음의 사람은 환경을 개선시켜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더좋은 환경을 달라고 어거지를 쓰지 않습니다.주어진 자리를 불평하지 아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하나님의 영광을 어 떻게 드러낼 것인가만 생각합니다.그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복음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어 놓습니다. 세상의 불신자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시퍼런 날이 선 칼을 들 이대고 나아온다하더라도 나를 찌르고 당신 제발 예수 믿고 구원을 받으시요. 를 외칠지라도너 나를 찌르면 지옥갈테니 찌 를테면 찔러보아라 이 마귀의 자식아 !로 나서지를 않습니다. 다른 성도보다 더 큰 능력을 받음으로서 나는 너희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종이라는 식의 교만을 대적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권을 하늘나라를 증명하는 일에는 아낌없이 쓰셨으나, 자신에 대하여는 섬기러 왔다고 외치시며 바보처럼 십자가에 올라가셨음을 잊지 않 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인 십자가라는 방법으로만 나아갑니다.져주는 방법입니다.철저하게 당해도 변명 한마디 하지 않는 방법입니다.결국 죽어주는 방법 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메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님이 각 성에 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 (행 20:22-24)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댓가를 지불하고 세우신 교회라고 하지만 어떻습니 까 문제 투성이 입니다.때로 교회의 직분자들이상식 이하 의 행동을 함으로서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가로막기도하고, 29 절에 보시는 바와 같이 흉악한 이리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그 양 떼를 헤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이 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 불안하게 보이는 교회 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오셨고 또 이루어 가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이 하나님께서피로 값주고 사신 이 교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이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깨달아 교회로 부름받고 있는 성도의 사명을 어떻게 바로 감당할 수 있을까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1. 교회는 훈련장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 어져 가느니라. (엡 2:20-22) 믿음은 분명히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출발합니다.그러나 나는 또 다른 성도인 너와 함께 하나님의 거하실 처 소인 건물을 세워가야 한다는 부름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믿음은 공동체적인 사명을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결국 혼자의 싸움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내는 향기로운 삶을 통하여 내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를 허락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게 되면, 나보다 믿음생활이 앞서고 믿음이 좋은 성도들이 가득한 교회란 천국같은 곳이 려니하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저 세상보다 더 못하게 보일 때가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교회는 그래도 세상사람들 보다는 낫겠지 했는데 오히려 상처를 주는 원수같은 사람들과 말도 안되는 상식이하의 사건들이 널려진 교회를 보게 되더라는 것이지요.처음 예수를 믿은 성도들은 여기에서 당황하고 교회를 떠나가거나 교회를 부정하는 무교회주의로 가버 리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교회란 아무 것도 안하고 푹 쉬는 휴 식처도 아니요, 여러분의 심부름센터도 아닙니다.여러분이 영광 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예수님의 신부답게, 성도답게 다듬어져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훈련장으로서의 교회를 허락 하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는 믿음의 고백이 진실인지 가짜인지 어떻 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나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다른 성도와 교회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싶을 때가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제자(首弟子)인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요.다른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더라 도 자기 만을 죽는 데 까지라고 함께 하겠다고 칼을 빼어 들고 자 신만만한 맹세를 했습니다.그러나아직 그 맹세가 귓전에 생생 한 데, 예수의 잡히시던 밤에 자기만 살겠다고 예수님을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했던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큰 소 리치시기 전에 우리의 믿음의 자리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원수 를 만나보아야 정말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교회 안에는 원수같은 사람들과 사건들이 준비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어 마땅한 우리들을 사랑하사 우리가 있는 자리 까지 오셔서 우리와 함께 울고 고난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 을 얻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거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고전 9:12)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 로라. (고전 9:18) 성도 여러분은 갖고 계신 권(權)을 복음을 위하여, 그리스도 의 영광을 위하여 다 쓰시지 아니하시고, 손해보고 참아내는 자리 까지 가야 한다는 것으로 부름받고 있는 것입니다.아휴, 난 누구 꼴보기 싫어서 교회가기 싫어. 저런 사람이 어떻게 목사를 하며 전도사를 할까저런 사람이 어떻게 장로가 되며, 안수집사 가 될 수 있을까 이러시면 안됩니다.그러지 말고 왜 나는 아 직도 원수를 사랑할 수 없을까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물과 피 를 쏟아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는 근처에도 못갈까 하면서 자신을 쳐야 합니다.내가 예수는 떠나서 못살지만,교회가면 꼴보기 싫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교회나가기는 싫다는 투의 말은 삼가야 합니다.이는 마치 학교에는 가고 싶은데 숙제 때문에 학 교에 못가겠다는 말과 같습니다.숙제해 가는 것이 고달파 보여 도 결국 여러분을 위한 선생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실력이란 공부잘 하는 학생을 구경하다 왔다고 해서 향상되는 것이 아닙니다.자신의 피와 땀과 눈물의 댓가를 치루면서 자 기 것이 되어야 실력인 것처럼 믿음도 훈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고 이 훈련은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교회는 신령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부흥되어야 합니다.그러나 부흥의 목적이 일차적으 로 봉사와 구제, 전도와 선교 등이라고 말 해서는 안됩니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 라. (딤전3:15)교회는 모일 때 마다 어떤 좋은 일을 할까를 계획하기 전에 무엇이 진리인가 우리가 죽어도 좋을 삶의 이유와 목적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가 논의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의 선하고 좋은 일을 통해서 오는 기쁨과 만족함 으로 쉼을 얻는 것이라기 보다는 좋은 일을 해 놓고도 실컷 욕을 얻어먹는 곳이요, 그래서 갈등이 있는 곳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 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저가 이스라엘의 왕 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러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 27:40-42). 죄인된 그들을 위해서 지신 십자가의 형벌이건만 오히려 그들 로 부터 감사와 찬양대신 희롱을 당하시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십시요. 너희가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마 5:43-47)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교회로 부름받고 있음은 바로 이런 자 리입니다.믿음이 좋으면 이 세상에서 말하는 소위 출세가 보장 되고, 앞길이 순탄하며, 대적할 자가 없고, 마음먹은대로 형통할 것이라고 오해하지 마십시요.믿음만 있으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좋은 학교에 붙게 되더라는 것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환경을 우리의 마음먹은 대로 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에 믿고 의지한다는 것으로 신앙이 고백되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이란 이 세상의 환경과 조건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얻는 방법이 아닙니다.신앙은 비록그 믿음이 하나밖에 없는 나의 목숨을 요구하더라도 기꺼이 내놓으면서까지 증명해야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의 크기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 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 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 3:17-19) 성도는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들이요,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기고 작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들입니다.종교적인 자리에서만 예수 믿는 표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신앙적이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입니다.이런 성도들이 모여서 이룬 하나님의 교회는 그 자체가 신령한 공동체 일 수 밖에 없답니다.
3. 주 예수께 받은 나의 사명 교회는 밖으로부터 오는 핍박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스스 로의 내적인 부패로 썩습니다.여러 성도님들의 힘과 재주로 여러분이 어떤 존재인지를 사람과 하나님 앞에 보여주기 위하여 부 름받고 있지 않습니다.철저하게 항복하고 나서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고 넓고 강력하게 나타나시는 가를 보여주어 야하는 것입니다.성도는 자신이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기에 하나님이 지키지 않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교회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닙니다.바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성도님들이 교회입니다.여러분이 거하시는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태도와 자세가 문제입니다.그래서 앞서간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찬양했답니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많은 이 세상도 기쁨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믿음의 사람은 세상의 위협에 담대하며, 갖은 유혹을 멀리하 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습니다.믿음 의 사람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하나님을 위하고, 저 세상을 향한 불타는 사랑과 전도의 열정으로 타오르는뜨거운 가슴으로 삽니다.믿음의 사람은 환경을 개선시켜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더좋은 환경을 달라고 어거지를 쓰지 않습니다.주어진 자리를 불평하지 아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하나님의 영광을 어 떻게 드러낼 것인가만 생각합니다.그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복음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어 놓습니다. 세상의 불신자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시퍼런 날이 선 칼을 들 이대고 나아온다하더라도 나를 찌르고 당신 제발 예수 믿고 구원을 받으시요. 를 외칠지라도너 나를 찌르면 지옥갈테니 찌 를테면 찔러보아라 이 마귀의 자식아 !로 나서지를 않습니다. 다른 성도보다 더 큰 능력을 받음으로서 나는 너희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종이라는 식의 교만을 대적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권을 하늘나라를 증명하는 일에는 아낌없이 쓰셨으나, 자신에 대하여는 섬기러 왔다고 외치시며 바보처럼 십자가에 올라가셨음을 잊지 않 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인 십자가라는 방법으로만 나아갑니다.져주는 방법입니다.철저하게 당해도 변명 한마디 하지 않는 방법입니다.결국 죽어주는 방법 입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메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님이 각 성에 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 (행 20: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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