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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의 깊은 세계 (행16:25-26)

본문

사람들은 같은 찬송가를 한 번 하고 두 번 하면 재미가 적고 또 세 번 거듭 찬송하면 재미가 적어서 찬송 소리가 차차 작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슨 연고인가 찬송 안에 들어있는 가사의 내용을 생각지 않고 껍데기 그 곡음에만, 곡과 소리 그 곡음에만 치 중하고 속에 들어있는 그 찬송이 나타내고 있는 그 뜻을 그 사람이 생각지 않기 때문에 외식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이 된 것입니다. 바로된 찬송은 그 정도를 넘어서 찬송을 한 번 하니까 더 은혜가 되고 두 번 하니까 더 은혜가 되고 세 번 하니까 더 은혜가 되고 그 저 밤새껏 그 찬송을 하니까 더 은혜가 되는 것은 찬송하는 가운데 에 그 곡과 음이라는 그 곡음은 어찌 됐는지 상관도 없이 찬송이 그 만 저절로 되고, 곡음에 대해서는 관심을 하나도 가지지 않고, 안 가 질려 해서 안 가지는 것이 아니라 곡음에 대해서는 그만 자연히 관 심을 가지지 않게 되고 그 찬송의 뜻의 내용을 자기가 생각하면서 찬송을 하니까 찬송을 해 갈수록 자기에게 주관적 깨달음이 있으니 까 그 주관적인 기쁨도, 또 열심도, 확신도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정도를 넘어서 자꾸 그 뜻을 생각하면서 그 뜻과 자기와 일치 가 됩니다. 찬송 가사의 뜻과 자기 주관이라는 그 자기라는 것이 일 치가 되어 가지고 찬송을 이렇게 하니까 이제는 차차 차차 샛별이 떠올라서 그 찬송을 받으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이 되어 하늘 에서부터 자기에게 비춰주시는 빛이 있어서 자기 주관적인 깨달음만 아니라 객관의 그 성신의 깨달음의 도우심이 자기에게 건너오고, 또 그 빛이 건너오니까 자기도 차차 더 보여서 처음에는 무심히 찬송했는데 자기의 외식인 것도 보니까 외식을 자꾸 피해서 진실되이 하고, 또 찬송하는데 자꾸 성령님이 빛으로 비추어 주시니까 자꾸 자기의 부족한 것이 이제 나와서 자꾸 굴하고 회개를 하면서 찬송을 하고, 또 성령님이 빛을 계속해서 비추어 주시니까 자기에게 대한 그 회개 의 고개를 넘으니까 소망이 자기에게 생겨지고, 소망으로 인해서 이 제는 기쁘고 즐겁고 담대함으로 찬송을 하니까 그 다음에는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 옥중의 찬송 사도행전 16장에 빌립보교회에서 사도 바울이 그 어려움을 당해 가지고 그 옥중에 여러 모로 착고에 채여 가지고 깊은 옥속에 지금 갇혀 있는데, 거기에서 찬송을 이렇게 하는데 자기가 기도하는 가운 데에서 찬송이 터져 나왔으니까 그 기도로써 고만 벌써 곡음에다가 치중했던 그것은 벌써 초월했습니다. 지나갔습니다. 이 찬송가의 곡이라든지 음이라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 있는 거라 그 곡이 우리에 게 필요없고 음이 우리에게 필요없습니다.
그런데, 그 음과 곡은 그 속에 있는 가사의 뜻을 우리에게 더 알려 주고 우리의 감정에 더 느 끼게 하고 더 깨닫게 하게 해서 가사의 내용을 우리로 하여금 알고 느끼는 데에, 감상하는 데에 돕는 역사를 하는 것이 그것이 찬송가 곡이요 소리입니다. 그러기에, 은혜가 와 가지고 찬송을 할 때에, 혼자 하든지 혹은 단체로 하든지 해서 그 경험을 해 봤다면 알 것입니다. 은혜가 와서 찬송하기 시작하면 그 찬송가의 곡이 어떻게 됐는지 그거 모르나 그 찬송가의 곡과 같은 곡이 되어지고, 그 작곡한 사람이 참으로 기도 가운데에서 작곡을 잘한 사람이라면 은혜가 와 가지고 영감으로 찬 송할 때에 그때에 그 영감으로 찬송하는 사람이 생각지도 않았는데 나오는 그 작곡과 그 작곡해서 찬송가에 기록해 놓은 그 곡이 같이 되어지고, 어떤 찬송은 얼토당토 안 합니다. 그때에 은혜받아 가지 고 자기가 찬송할 때에 나오는 그 곡과 작곡한 사람의 그 곡과는 아 주 그거는 아무것도 아닌 그렇게 고 아주 인간 임의적으로, 인간 기 술로, 인본으로만 해 놓은 것 있고, 바로 된 것은 은혜가 오면 그곡 이 자연히 되어지고, 또 그 가사를 보지 않고 그 찬송을 처음에 이렇 게 해도 찬송 못할 찬송이 없습니다. 다 곡이 됩니다. 그거는 아마 여러분들도 많이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뭐 그럴 때에는 찬송의 곡을 모르는데 이 곡도 찬송하면 찬송이 되는데 자기는 뭐 작곡가가 해 놓은 그 작곡에야 맞는가 안 맞는가 상관도 없이 그저 자기는 찬송하는데 제삼자가 들을 때에 그 작곡한 찬송가의 발표해 놓은 그 곡과 맞은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맞지 않은 것은 그 사람 찬송의 곡이 조파로 되어 있고 이 작곡가들이 해 놓은 그 곡이 삐뚤어진 그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찬송을 이렇게 옥중에서 그 한 찬송은 벌써 곡이냐 음이냐 그런 것은 생각이 없었고, 벌써 그거 지나가 버렸고, 초월해서 가사의 그 만 뜻을 생각하면서 찬송하는 그 단계를 지나가 버렸고 벌써 자기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사의 찬양으로서 성신의 감동이 와 가 지고 그렇게 자기 입에서 찬송이 터져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가 지금 감사하는 사은의 찬송이요, 또 하나님이 자기를 첩첩이 보호하고 역사하고 계시는 그 희망이 무한히 청청함을 자기가 느끼는 가운데에서 아픈 것도 간 곳이 없고 옥중인지 뭐인지도 그런 것 을 다 초월한 그럴 때에, 그만한 신앙을 가지고 그만한 소망과 그만 한 의지와 그만한 복종이 똘똘 뭉친 그 믿음의 사람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에 와 역사해 가지고 땅이 진동하고 옥문이 열 리고 모두 다 붙들어 매여 있는 것이 다 해방이 되어졌던 그런 역사 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찬송이란
1. 찬송의 알맹이 그러기에 찬송에 대해서 제일 껍데기가 뭐인고 하니 음이요, 그 안 에는 곡이요, 또 그 안에는 노래의 그 내용인 가사요, 가사 안에는 자기의 그 주관입니다. 자기가노력하지도 않았는데 마음도 뜻도 성 품도 감정도 자기의 심신의 요소가 차차 차차 단체가 되어서 뭉쳐 가지고 그 찬송을 불러 자기의 심신의 요소 전부가 합해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 찬송이 되어지는 고것이 그 알맹이요, 그 알맹이 안이 알맹이가 되면 이제자기의 심령이 밝아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빛을 비추어 주는 그 빛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때사 빛을 비추어 주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은 언제든지 빛을 비추고 있지만 자기가 어두워서 받지 못하다가 단합 이 돼 가지고 찬송을 하게 되니까 주님께서 영감시켜 주시는 그 영 감의 빛이 자기에게 오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와 주님과의 일체화되어서 주님의 형상으로 자기는 변해지고 또 하나님은 나를 통해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게 되어서, 라오디게아교회에게 문을 열 면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나는 너를 통해 가지고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또 그 뜻을 행하게 된다. 또 너는 나를 힘입어 가지고 내가 네게 명하는 모든 명 령인 곧 내 뜻 곧 너의 영생이 되어지는 그 영생을 네가 하게 된 다 하는 그 단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2. 찬송의 목적 찬송하는 목적은 주님과 나와 결합된 그 결합으로 말미암아 그 빛의 생활, 영생이 이루어지는 그것이 목적인데, 찬송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또 하나님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에게 구원을 이루는 역사가 아니라면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 구원을 이루는 이 일을 돕는 그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전능한 그 능력을 가진 말씀이요 또 성령님도 우리의 구원을 이루게 하는 지극히 큰 능력입니다. 그러면, 이 성령님과 진리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고 하니 도성인 신하셔 가지고 영원히 우리의 중보자가 되고 하나님의 그 형상을 우리에게 전달시켜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 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이제는 하나님과 연합되는 예수님의 이 대속을 우리에게 입히는 역사를 하시는 것이 성령님과 진리의 하시는 일이요, 또 예수님과 연결을 시켜 가지고는 예수님 안에 서 역사하시던 그 영감과 진리가 이제 우리에게 건너와 가지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그 능력의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어디까지나 진리도 보조를 하는 보조 역할을 하고 있고, 영감도 보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영감과 진리가 보조 역할 하는 것은 우리 의 대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서 곧 예수님과 연합이 되고난 다음에는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고,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면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연합이 돼 가지고 이제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모든 것을 다 하나님 앞에 유업으로 받고, 유업으로, 예수님께서 이제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을 다 내게 주셨다 말씀하신 대로 유업으로 받고, 또받은 것을 영 원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가지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직접 그 은 혜 베푸시던 그 역사하는 것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은 혜 베푸는 역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당신의 그 몸으로, 지체로 삼으 셔 가지고 우리를 통해서 만물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고로,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리 되면 모든 만물이 다 너희 것이 된다 하는 것을 성경에 말씀 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찬송하는 목적은 예수님과 연결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이 요 온전한 사람으로서 한 격위를 이룬 예수님이 우리 하나님이신데, 예수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찬송인 것 입니다. 이래서, 찬송이라는 이 방편으로 주님과 우리와의 연결하고, 주님 과 우리와의 연결이 되면 필연적으로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연결이 되고 또 진리와 연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찬송도 그러하 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하나님 말씀도 이 진리는,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안으로 인도하고, 이 진리는 또 성령님과 함께 우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해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예수님을 우리로 하여금 영접하게 하고 예수님을 우리가 모시게 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예수님에게 왔는데 예수님에게 온 것을 그것을 우리가 상속받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와 진리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찬송을 그렇게 자꾸 하면서 하나씩 둘씩 소극적으 로는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이 모든 이 세상을 벗어 버리고, 또 자 기를 차차 자기 아닌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속으로는 자꾸 차차 새 사람을 찾게 되고 이제 나는 새사람이 되고 새사람을, 잊어버렸던 새 사람을 찾고,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된 진리와 성령님으로 거듭난 새사람 자기의 중생된 영을 찾아 영은, 영으로 통해서 주님을 만나게 되 고, 또 주님을 통하여서 하나님,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모든 우리가 은혜에 접할 수 있도록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능력있는 자가 얻는 것 아니오. 능력있는 자가 얻는 것 아니고 어쩌든지 열심있는 자, 이렇게 부지런히 노력하는 자가 천국은 얻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힘센 자가 얻는 것이 아니고 계속 힘쓰는 자가 얻는 것이 하늘나라의 얻는 그 방 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자꾸 거듭하고 거듭하고 거듭하고 이러는 가운데에서 우리는 하나씩 씻습니다. 그래서 찬송으로 자기에게 때 와 같고 더러운 것, 자기에게 모든 피부병 같은 것 이런 것을 찬송으 로 자꾸 씻어서 깨끗하게 하고 그 속에는 들어있는 암병 같은 그런 것을, 비유컨대 그런 것을 이제 이 찬송을 함으로 자꾸 치료가 되고 자꾸 잡탱이가 치료가 되어서 깨끗하게 됩니다. 찬송, 기도, 말씀 우리는 이렇게 자꾸 씻습니다. 찬송으로 자기를 씻는 사람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찬송으로 씻는 것을 연습을 해서 자기를 잘 씻는 사람도 있고, 또 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잘 씻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또 기도로 가지고 자기를 잘 씻는 사람도 있습니다.
1. 찬송,기도,말씀의 장단점 그래서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한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 말씀대로 찬송을 함 으로 쓸데없는 욕심과 쓸데없는 감정과 쓸데없는 그 분노와 쓸데없는 모든 그 관심 그런 것들이 차차 차차 없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씻는다 이렇게 말하는데, 찬송으로 씻는 사람은 정서면을 타고 들어오는 악령의 역사를 막기가 좀 힘이 듭니다. 그게 좀 찬송 으로 씻는 것은 그점이 단점입니다. 또 기도로 가지고 자기를 씻는 그 사람은 자기의 주관을 통해 가 지고 들어오는 악령의 그 역사를 막기가 어렵고, 그 유혹을 받아서, 씻었으나 나중에, 깨끗하게 씻었는데 보니까 하나도 씻긴 것은 없고 그만, 그것을 가리켜서 불건전한 신비주의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가장 객관주의로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같이 말을 하나 들어볼 때 에 그 본인은 순전히 자기 주관이 하나님이 돼 가지고 자기 주관대 로-하나님은 어지러운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은 무비판 무평가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하나님은 반 사회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하나님은 반 물리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람들이 몰라 그렇지 속에 뚫고 들어가면 속에 진짜는 다 하나님의 복음과 딱 들어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러모로 모든 것을 사색해서 연구해서 들어가 고, 한말로 말하면 그 모든 연구 전부가 다 자기를 깨끗게 해서 주님 의 그 깨끗하심을 영접해 들일 수 있는 깨끗게 하는 것이 그것이 목 적이오. 그래서, 자기가 완전히 주님의 지체화되는 것, 하나님의 형상 을 완전히 입어 하나님의 형상과 같이 되는 것, 하나님의 그 속성과 자기 속성이 일치되어서, 자기의 속성 곧 하나님의 속성, 곧 하나님 의 형상 자기의 형상인데, 그 자기의 형상 자기의 모든 본질과 본성 과 그게 커 나가면 자기의 모든 지식과 비판과 관념들, 모든 소원들, 소욕들, 취미들 그런 것으로 퍼져 나가는 것인데, 그런 것이 세상에 서 나오는 것들이 있으니, 세상에서 나오는 것들은 과거에는 좋아서 못견뎠는데 이제자기가 변화가 되고 보니까 세상에서 나오는 것은 꼭 오늘 아침에 맡는 연기와 같습니다. 연기와 같아서 그거는 그렇게 좋던 것이 텁텁하고 참 공해가 많 아서 그것을 맡기가 싫고 맡으니까 못견디고 이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만 자기가 신성하고 참 마시니까 건강해지고 아주 쾌활해지 고 자기에게는 모든 것이 다 새로와지고 깨끗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찬송으로도 목적이 뭐이냐 주님 만나는 것이오. 주님 만나려고 하면 자기가 깨끗해지는 것이 주님 만나는 것이오. 또 어떤 사람은 기도로써 주님을 만나는 일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경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잘못하면 그만 지식주의 자가 돼 가지고, 하나의 율법주의자가 되어서 결국은 자기를 변화는 시키지 못하고 자기를, 하나님의 말씀인 이 진리가 율법이 돼 가지고 이 진리에게, 율법에게 자기를 붙들어 매어서 자꾸 정죄하는 사람만 돼져 버렸고, 이러니까 자기도 모르게 이제자기가 정죄받았는데, 실 상은 자기가 정죄받았으나 그 겉으머리로 나타나는 것은 다른 사람 을 정죄하는 사람으로 나타나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지식은 교만케 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2. 찬송,기도,말씀의 균형 그러기 때문에 찬송이 좋으나 우리는 조심해야 되고, 기도가 좋으 나 조심해야 되고, 우리는 성경이 좋으나 조심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찬송 기도 성경 말씀 이 셋인데, 찬송은 반드시 찬송으로 시 작했으나 찬송은 이 기도와 성경을 영접해서, 영접해서 성경과 기도 를 높이 평가하고 대우하면서 이 성경과 기도를 대접하는 찬송이 되 어야만 그 찬송이 찬송의 목적을 속히 달성할 수 있습니다. 또 기도로 이렇게 주님을 만나는 그 방편으로 시작한 사람은 기도에만 주력하고 하면 탈선됩니다. 기도에서 성경 말씀과 찬송을 영 접해야 됩니다. 찬송을 영접해서 성경 말씀으로 자기를 분석하고, 자기를 모두 다 정리 정돈하고, 기도하면서 또 찬송으로써 자기의 모 든 주관이나 감정이나 이런 것을 자꾸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 도록 깨끗게 하는 사람 되어져야 합니다. 또 성경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필요합니다. 성경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찬송과 비슷합니다. 기도는 감정 을 움직여 가지고 역사하는 것이고, 성경은 이성을 움직여 가지고 역 사하는 것인데, 성경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기도가 필요 하고, 또 기도만 하면 자기에게 있는 그 전체의 감정으로 말하면 빠 지는 감정이 많습니다. 기도할 때에 활용하는 감정이 있고 찬송할 때에 활용하는 감정이 있어서, 찬송을 전혀 안 하고 기도만 하면 그 사람은 활용하는 그 감 정의 요소 중에 참예 못하는 감정이 많기 때문에 이것이 들어서 다 른 구원을 지장을 합니다. 자기 전부가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주님과 결합될려고 할 때에 이 지저분한남은 것들이 다 한테 뭉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3. 실행으로 수정하며 나갈 것 그래서, 이 찬송과 기도와 성경으로 이렇게 주님을 찾아 만나가게 되는데 이 셋으로 주님을 향하여 찾아갈 때에 그것이 잘못돼 가지고 탈선되기가 쉽습니다. 탈선되어서 마지막에 객관인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만 그것이 잘못하면 돌아서 가지고, 돌아서 가지고 찬송과 기도와 성경이 자기만 자꾸 소개해 가지고 자기가 똘 똘 뭉쳐 가지고 찬송과 기도와 성경으로써 주님을 만나러 앞으로 전 진해야 되는데 전진하는 것이 그만 그것이 중단돼 버리고 이제 전진 하는 것이 뒤로 돌아서 가지고 자기로 기어 들어와 가지고 자꾸 자 기를 소개하고 자기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이 탈선이 돼 가지고 거꾸로 돌아오기가 쉬운 데, 그 병을 치료하는 것은 뭘로 치료해야 되느냐 하면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을, 자기가 자꾸 기도하면 영감이 오는데, 기도할 때에 영감이 와서 요렇게 해야 되겠다 이렇게 작정한 것을 또 성경 말씀을 가지고 또 할려고 하니까, 성경 말씀 가지고 성경 말씀 이 하라는 것과 기도에서 하라는 것과 둘이 일치될 때도 있고 둘이 일치되지 아니하고 서로 상충될 때도 있습니다. 상충된 것은 무슨 고 장으로 상충이 됐느냐 하면 성경도, 자기의 주관이 주체가 돼 가지 고, 성경에 속하지 않고 자기 주관이 성경을 자기 주관 중심에 따라서 분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되어진 그 자기 주관의 방해로써 그렇게 혼란이 생겨진 것이고 또 기도도 자기 주관이 들어서 혼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그럴 때 이 고장을 고치는 것은 무엇이냐 어제 말하는 대로 이제 실행하는 것입니다. 실행하는 것. 실행을 하면 그 모든 것이 바로 수정이 됩니다. 마치 발명가들이 앉아서 이 명상으로 써, 명상으로 그 발명을 합니다. 야. 이리하면 됐다 됐다. 이래 가지고 발명을 해서 자기가 잊 어버리지 않도록 자꾸 글을 씁니다. 글을 써 가지고, 발명을 해서 이렇게 글쓴 그것이 나중에는 논문이 되는 것인데 자꾸 이래 글을 씁니다. 이래 글을 써 가지고 아, 요것이다. 이거는 됐다. 됐다 하고 그 사람은 그대로 그것으로 발표하면 큰 수치를 당합니다.
그러고난 다음에는 무엇이 따라야 되느냐 하면 되는가 안되는가 내 가실험해 보자. 실험을 해 보자. 실지로 한번 실지로 행해 보자. 실험을 해 보니까 안됩니다. 꼭 자기가 아는 대로의 논리는 꼭 됐는 데 실험을 하니까 안돼요. 그러니까 아는 대로 논리의 된 것은 그것은 자기 주관적 논리이지 과학적 논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실제 에 가 보니까 틀리더라 그거요. 그래서, 자기가 명상적인 그 발명을 해 가지고는 실험적인 발명이 되어서 둘이 일치가 되어져야 비로소 그게 바로 되는 거와 마찬가지 로 우리가 실행하는 것은 실험하는 거와 같습니다. 우리가 실행하는 것은 실험하는 거와 같기 때문에 자기가 성경에서 작정한 것, 기도에 서 작정한 것, 찬송에서 작정한 것을 실행을 할려고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잡탱이들은 그게 다 벗겨지고 없어집니다. 그 잡탱이가 어디서 벗겨지고 없어집니까 이 모든 물질에서 물 질이 벗겨주고 이 사회가 벗겨주고 원수가 벗겨주고 이 모든 하나님 이 나열해 놓은 이것이 들어서, 이 장애물 같지마는 이것이 들어서 꼭 바로 된 것은 물질도 통과, 예, 수고했습니다. 통과하십시오. 물질도 통과, 모든 이 사회도 통과, 세상도 통과, 마귀도 통과, 죄도 통과, 사망도통과 전부 다 통과요, 전부.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일차전으로 다 전쟁해서 승리해 놓으셨기 때문에 승리한 세상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승리하시고 주님이 전투하신 거와 같은 그 전투를 연습하게 하실려고, 그 승리를 우리들이 체험하고 경험하 게 하실려고, 이래서 우리들을 이 세상에, 대속받은 자들을 세상에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속받은 자들이 세상에 있는 것은 그 대속받은 것을 실 지로 자기가 입고 살아볼려고 하는 것인데, 입고 살아보니까 불편하 니까 벗어내 버립니다. 그 현실에서 대속을 입힌, 사죄를 입혔으니 까 죄없이 사는 것, 하나님에게만 피동대로 사는 것이 의요, 또 하나님 모시고 사는 것, 하나님이 자기 중심의 자기 왕이 돼 가지고 자기 마음에 제일 높은 보좌에 주님이 내주하셔서 왕으로 계시고 자기는 성전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는 이렇게 해서 사는 요것이 기독자의 생활인데, 그만 자기도 모르게 탈선되게 된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이 실행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서 모두 다 수정을 해 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참 믿음으로 가지고 바로 수정된 것은, 바 로 이렇게 수정된 것은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바로 수정이 된 것은 마귀도 내것이요 죄도 내것이요 사망도 내것이요 생명도 내것이 요 세상도 내것이요 모두가 다 내것입니다. 내것이라 말은 그의 주 인공이 됐다 그말이오. 이해가 됩니까 사망이 내것이라는 것이 이 해가 돼요 네,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왜 그것들의 주인이 됐어요. 그것들의 주인인, 주인은 이기신 주님이 주인이신데, 마귀 주인이 주 님이시오. 죄의 주인이 주님이시오. 사망의 주인이 주님이시오. 이제는 주님은 사망도 당신 마음대로 통치, 주권으로 통치하시고, 생명도 통치하시고 마귀도 통치하시고 죄도 통치하시고 다 이 죄도 주님 앞 에서는 꼼짝을 못합니다. 주님의 이 주권의 통치 아래에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로 이겨서 점령을 해 가지고 당신 의 부리는 사망으로, 당신이 부리는 마귀로, 당신이 부리는 죄로 이 렇게 다 하셔 가지고, 구속받은 자들을 이 세상이라는 당시의 그 시 련소 연단소를 만들어 놓으시고 여기에 이런 것 저런 것을 다 내 가 지고 너는 죄된 것은, 죄가 있는 것은 붙들어라. 죄가 있는 것은 이 길을 가지 못하고 죄가 있는 것은 붙들어라. 마귀와 동행하는 것은 붙들어라. 이제사망의 요소가 있는 것은 붙들어라. 그러나 완전 히 나와 같이 되어서 내 지체가 되고 내 몸이 되고-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오신 이가 주님이신데, 주님의 형상을 우리로 하여금 덧입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지금 이렇게 연단시키는 것 이기 때문에 내 형상을 완전히 입어서 내 몸 지체가 된 것은 네가 통과시켜라 이러기 때문에 주님의 그 지체가 된, 그리스도는 머리 요 하나님은 머리요 우리는 그의 몸이라. 이렇게 완전히 바로 된 것은 어디든지 자유입니다. 여러분들, 바로 된 것은, 이 세상에 장애물이 가득 있소. 장애물 이 가득 있어서 여기에 걸리고 저기에 걸리고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걸릴 때마다 우리는 잘못하면 원망하는 사람 되기 쉽습니다. 걸릴 때에 원망하는 사람 되기 쉬운데, 그 걸리는 것이 우리를 해칠 려고 방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장애물이 있는 것은 우리에게 장애를 받을 수 있는 그 불완전한 것을 통과시키지 않고 완전케 깨 끗하게 해 가지고 통과시킬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장애의 것들 을 보고 네가 원망하면 심판에 걸린다. 원망하면 너에게 심판을 통과 하지 못할 요소가 거기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원망하지 말고 거기에서 장애 있으면 그 장애에 넉넉히 통과할 수 있는 것으로 자꾸 닦고 빗고 깎고 씻어서 이 부둑살, 부둑 살, 암으로 뚱뚱 혹이 불어난 그 모든 것, 이런 것 그런 것을 다 치 료해서 깨끗이 해서 이래 통과해라. 그것을 가리켜서 기독교는 하늘 나라를 향하여 가는 데에 보니까 그 앞길에 사자가 두 마리가 이래 떡 가로막고 있으니까 갈 수가 없다. 네가 그리 가지 말고 네가 바로 만 가면, 그 사자 속에는 너 하나 들어갈 만한 그런 거리가 있어서, 다리가 이 오른편에도 사자 뒷다리가 매여 있고 왼편에도 매여 있어 앙 소리만 하지 네가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로만 가면 그 가운데 서 서 있어도 사자라는 놈들이 고함만 지르지 네 몸에는 닿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표현을 해 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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