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일꾼 (행1:6-8)
본문
사도행전의 시작은 갑작스러운 홍두깨식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새로운 부흥과 큰 역사를 앞두곤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다. 사도행전 출발의 삼중 요소는, 주님의 계획, 성령님의 역사, 준비된 사람, 이렇게 세가지 이다.
1. 주님의 계획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6절이 말해준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큰 기적의 역사로 이어지길 소망했다. 제자들의 생각은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 자신의 말씀 증거와 기적의 역사는 곧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주님의 부활은 그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한 제자들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 그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 부활한 주님의 power. 그 놀라움(충격)은 사실상 그 어느 때보다도 그런 회복/해방 역사를 이룰만 했다. 제자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그러나, 그런 것인가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능력이 신장되신 것인가 아니면, 본래 예수께서는 언제라도 역사를 뒤집을 능력을 갖고 계시는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님은 그 능력이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날 때와 결과를 염두에 두고 마음에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 계획을 따라 역사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는 이 일을 사람을 키움으로 그리 하셨다.) 제자들이 이런 말하기 전에 주님은 이미 4절에 말씀한 것이 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주님의 계획이 있었다. 주님의 생각은 그 당시 제자들의 생각과는 달랐지만, 분명한 역사를 꿈꾸고 있으셨다. (그러나, 제자들의 생각이 항상 주님의 뜻과 달랐다고는 볼 수 없다. 주님은 오히려 우리 마음에 선한 뜻을 두시는 분이시다.) 주님의 계획은 영적 이스라엘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길이었다. 그건 자신이 직접 육체로 뛰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주인되어 뛰는 역사를 의도하신 것이었다. 주님은 그걸 원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그 때는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직(그러나, 그 징조는) 성령님이 임하시면(어떤 하나님의 때에 성령님의 역사가 임하여) 너희가(나의 육체적인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훈련받고 또 그들에 의해 훈련받은 너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내가 보내는 그 모든 곳, 모든 부분에 가서) 내 증인이 되리라(너희가 하나님 나라를 일으키는 주역이 될 것이다. 너희의 증거와 섬김을 통하여 복음화의 역사가 일어나리라)." 제자들은 자신들이 그 사역을 담당하는 것보다는 주님이 직접하시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님은 부활하신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계획하시지 않으셨다. 주님은 그의 사람들을 통해 그 역사를 담당하시길 원하셨다. 그건 또 사람을 키워 성장시키시며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게 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2. 성령님의 역사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제자들은 약속대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즉 성령님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곤 놀라운 사도행전의 역사를 시작한다. 복음화의 큰 역사, 세계의 변혁이 이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이 성령님 세례의 실체는 무엇인가 갑작스럽게 임하는 무슨 홍두깨같은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도 이런 역사가 다시금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도 그걸 원한다. 그래서 이런 역사를 받고 힘있게 뭔가를 해보기를 원한다. 같은 맥락에서 물을 것이 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님은 그 역사를 처음으로 시작하신 것인가 과거에는 성령님이 없었는가 살펴보면, 주님의 역사가 성령님의 역사였다. 구약의 시대에도, 주님의 생전에도 성령님은 있었고, 성령님의 역사는 있었다. 또 우리가 주를 믿고 그를 그리스도라 부를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성령님을 받은 증거다.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전12:3)
그렇다면, 오순절 성령님의 역사는 무엇인가 이것은 성령님의 시대, 본격적인 성령님 역사의 시대임을 알리는 "팡빠레"인 것이다. 성령님이 새롭게 이같이 임한 것은 이제 육체로 오신 주님의 모습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온전히 의뢰함으로 우리가 복음화의 주체가 되어 살아갈 것을 원하신, 주님의 계획때문이었다. 성령님은 주님의 사람을 강하게 하여 성령님의 사역을 하게 한다. 성령님의 역사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없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가 힘들다. 성령님의 역사없이는 우린 무기력해진다. 그러나, 예수님의 육체 시대와 성령님의 시대와는 사역방식이 달랐다. 주님이 육체로 거하실 때에는, 주님이 모든 사역을 도맡아 하셨다. 복음을 전하시고, 훈련을 시키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오병이어를 통해 먹이기까지 하셨다. 그러나, 성령님의 시대에는 주와 성령님을 의지하며 순종하는 제자들이 그 일을 했다. 주님은 이젠 그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요14:12). 성령님의 시대에는 우리가 놀라운 사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주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역사하심으로 주님의 사역을 행하신다. 이렇게 볼 때, 이 사회와 이 지역(직장)을 변혁시키는 주체는 누구인가 누구여야 하는가 주님은 일꾼이 없는 곳에 역사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 말은 주님이 그같이 하실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같이 하신 적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주님은 주님의 사역방식을 주님의 사람들을 통해 성령님의 힘으로 이루시는 방법으로 하신다는 것이다. 준비된 일꾼, 그들의 순종하는 사역을 통하여 주님은 오늘날, 성령님의 생명의 큰 역사를 이루신다.
그렇다면, 누가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의 일꾼으로, 그리고 성령님의 힘으로 이 사회와 이 지역(직장)의 복음화와 변혁을 위해 뛸 것인가
3. 준비된 일꾼 13-14절을 보면, 120명 가량의 사람들이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에 힘쓰고 있다. 그들은 성령님이 오신다는 것의 의미(어떻게, 어떤 모습으로인지)를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에 힘쓰고 있다. 그들은 그 후의 결과도 모르고 있었다. 단지 그들은 주님의 계획을 신뢰했고, 그대로 하나되어 기도에 힘쓰며 기다렸다. 10일쯤 후로 알려진다. 성령님의 임재가 있었다. 놀랍게 있었다. 그들은 능력을 받았다. 그리고 참 증인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생각해 볼 점은, 성령님의 능력이 이 때부터 있던 것은 아니란 점이다. 성령님은 본래 능력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분이지 않는가 그럼 무슨 차이인가 능력의 성령님이 본래 존재했다. 다만, 그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는 일들이 아직 없었다. 이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주님의 때(계획)와 사람들의 준비"라 할 수 있다. 주님의 계획이 없었다면, 주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우린 아무리 노력해도 성령님의 능력을 받을 수 없고, 그 능력을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이제 그 성령님의 임재는 그 때부터 완전히 시작되었다. 다만, 이젠 성령님 충만을 받는 것이 우리에게 덧붙여 주어진 명령이 되었다. 성령님 충만을 받아 사역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여전히 우리가 있는 사회와 가정과 지역(직장)이 주님께로 복음화되며 정의와 사랑의 문화가 펼쳐지기를, 하나님과의 사랑, 그리고 이웃과의 사랑, 나 자신과의 사랑이 새롭게 피어나기를, 아름답고 강한 사랑의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 온전히 세워지고 확장되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그의 비젼을 보신다. 그리고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또한 아직도 복음이 심기워지지 않은 복음의 소외지역을 보고 계신다. 내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매일 만나 주님을 증거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내가 다니는 직장(캠퍼스)의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몇 몇 사람과 먼저 주님을 나눌 수 있다. 내가 지금은 세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 선교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주님의 사랑과 의를 하나씩, 하나씩 드러낼 수 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추수할 것은 많되 추수할 사람이 없다. 사람을 보내 달라고 구하라." 문제는 한가지다. 주님께서 역사하기 싫어서도 아니고, 주님의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문제는 이곳에 "준비된 사람"이 있고 없음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미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하고 있고, 주님은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씩 모아 훈련 시키려 하신다. 그래서 헌신을 요구하신다. 함께 하기를 구하신다. 부르신 주님의 제자들이다. 주님은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전에는 변화된 모습이 없다가, 오순절 성령님을 통하여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보는가 그리고 그저 함께 며칠 있다 보니까, 성령님의 압도하시는 역사로 주체할 수 없는 증인이 된건가 부득이하게, 그저 체면차려 주려다가, 그냥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하다가 그들이 능력을 받아 놀라운 복음화의 주체가 되는가 그건 아니다!
(1) 능력있는 증인이 되기까지 그들에게 중요한 과정이 있었다. 그들은 약 이 삼년 정도 집중적으로 주님을 따라 다니며, 교훈을 받는 과정이 있었다. 이때도 많은 비용을 드려야 했다. 주님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도록 했기 때문이다. 주님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주님을 따를 권리가 주지 아니했다.
(2) 또 우리는 제자들이 10일간쯤 하나되어 열심히 기도하는 농축된 준비기간을 보게 된다. 더욱이 딱 십일이라 말한 적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힘을 합치어 기도의 노동을 감내해 내었다. 언제일지는 모르나 그들이 단지 알고 있는 것은 주님의 계획대로 하면 그들에게 성령님을 통한 능력-주님이 가지셨던 그 복음화의 능력이 그들에게도 있게 될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그들은 10일정도의 농축된 준비기간을 거쳐 성령님의 능력으로 거듭 태어났다. 그들에게 있어 이 10일간은 이제까지 주님을 뒷따르던 기간처럼 중요한 기간이었다. 만일 이런 기다림이 없었다면, 성령님의 임재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준비된 사람들이 없는 곳에 아무런 역사도 없다. 그럼, "개인적으로 혼자 기도하면서 능력을 공급받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있을 수 있다. 주님은 한 개인의 기도와 준비를 중요시하시지만, 보통 그 시대의 획을 긋는 일에는 함께 하는 헌신된 무리들의 준비기간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그래서 이 제자들도 "더불어, 같이하여"(14절) 준비한 것이다. 이렇게 준비하는 것 자체가 주님의 planning이었다. 이것을 무시할 때, 우리는 많은 시간을 그저 낭비하며 주님의 쓰임을 받지 못한 채, 도리어 복음의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되고 만다. 쓰임받기 위해 주님의 뜻을 따르라. 성령님의 능력 임재와 순종하여 준비하는 사람들을 분리시킬 수 없다. 주님의 뜻, 그리고 준비하며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 이 세가지는 항상 중요하다. 이제 이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있으라 하신다. 그리고 함께 준비하라 하신다. 기도로 준비하라 하신다. 말씀을 통하여, 성경공부를 통하여, 서로의 그리스도의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라 하신다. 때가 되면 주님은 역사하실 것이다. 이제 그 때가 되었다. 말씀과 기도와 믿음의 교제를 통해 이곳이 복음화되며 새롭게 시작할 때다. 영적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선 먼저 필요한 것이 있었다. 그건 제자들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준비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셔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곳에 새생명의 역사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크게 펼쳐지기 위해선, 주님을 새롭게 만난 사람들이 그 얼굴에 빛이 나며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빛과 사랑이 열매맺어지게 되기 위해선, 그래서 우리가 모두 함께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게 되며, 서로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섬김으로 우리 안에 "의와 사랑과 기쁨"이 가득하게 되기 위해선, 우린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모여 기도해야 한다. 모여 사랑해야 한다. 모여 말씀 나눔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훈련받아야 한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게 될 때, 주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에게 넘치게 되며, 주님의 크신 비젼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 질 것이다. 여기에 있는 사랑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바로 이 사역을 시작할 분들이다. 우리 함께 모이자. 그리고 주님의 뜻을 이루자!
1. 주님의 계획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6절이 말해준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큰 기적의 역사로 이어지길 소망했다. 제자들의 생각은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 자신의 말씀 증거와 기적의 역사는 곧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주님의 부활은 그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한 제자들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 그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 부활한 주님의 power. 그 놀라움(충격)은 사실상 그 어느 때보다도 그런 회복/해방 역사를 이룰만 했다. 제자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그러나, 그런 것인가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능력이 신장되신 것인가 아니면, 본래 예수께서는 언제라도 역사를 뒤집을 능력을 갖고 계시는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님은 그 능력이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날 때와 결과를 염두에 두고 마음에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 계획을 따라 역사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는 이 일을 사람을 키움으로 그리 하셨다.) 제자들이 이런 말하기 전에 주님은 이미 4절에 말씀한 것이 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주님의 계획이 있었다. 주님의 생각은 그 당시 제자들의 생각과는 달랐지만, 분명한 역사를 꿈꾸고 있으셨다. (그러나, 제자들의 생각이 항상 주님의 뜻과 달랐다고는 볼 수 없다. 주님은 오히려 우리 마음에 선한 뜻을 두시는 분이시다.) 주님의 계획은 영적 이스라엘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길이었다. 그건 자신이 직접 육체로 뛰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주인되어 뛰는 역사를 의도하신 것이었다. 주님은 그걸 원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그 때는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직(그러나, 그 징조는) 성령님이 임하시면(어떤 하나님의 때에 성령님의 역사가 임하여) 너희가(나의 육체적인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제까지 훈련받고 또 그들에 의해 훈련받은 너희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내가 보내는 그 모든 곳, 모든 부분에 가서) 내 증인이 되리라(너희가 하나님 나라를 일으키는 주역이 될 것이다. 너희의 증거와 섬김을 통하여 복음화의 역사가 일어나리라)." 제자들은 자신들이 그 사역을 담당하는 것보다는 주님이 직접하시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님은 부활하신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계획하시지 않으셨다. 주님은 그의 사람들을 통해 그 역사를 담당하시길 원하셨다. 그건 또 사람을 키워 성장시키시며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게 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2. 성령님의 역사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제자들은 약속대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즉 성령님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곤 놀라운 사도행전의 역사를 시작한다. 복음화의 큰 역사, 세계의 변혁이 이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이 성령님 세례의 실체는 무엇인가 갑작스럽게 임하는 무슨 홍두깨같은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도 이런 역사가 다시금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도 그걸 원한다. 그래서 이런 역사를 받고 힘있게 뭔가를 해보기를 원한다. 같은 맥락에서 물을 것이 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님은 그 역사를 처음으로 시작하신 것인가 과거에는 성령님이 없었는가 살펴보면, 주님의 역사가 성령님의 역사였다. 구약의 시대에도, 주님의 생전에도 성령님은 있었고, 성령님의 역사는 있었다. 또 우리가 주를 믿고 그를 그리스도라 부를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성령님을 받은 증거다.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전12:3)
그렇다면, 오순절 성령님의 역사는 무엇인가 이것은 성령님의 시대, 본격적인 성령님 역사의 시대임을 알리는 "팡빠레"인 것이다. 성령님이 새롭게 이같이 임한 것은 이제 육체로 오신 주님의 모습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온전히 의뢰함으로 우리가 복음화의 주체가 되어 살아갈 것을 원하신, 주님의 계획때문이었다. 성령님은 주님의 사람을 강하게 하여 성령님의 사역을 하게 한다. 성령님의 역사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없이는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가 힘들다. 성령님의 역사없이는 우린 무기력해진다. 그러나, 예수님의 육체 시대와 성령님의 시대와는 사역방식이 달랐다. 주님이 육체로 거하실 때에는, 주님이 모든 사역을 도맡아 하셨다. 복음을 전하시고, 훈련을 시키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오병이어를 통해 먹이기까지 하셨다. 그러나, 성령님의 시대에는 주와 성령님을 의지하며 순종하는 제자들이 그 일을 했다. 주님은 이젠 그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요14:12). 성령님의 시대에는 우리가 놀라운 사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주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역사하심으로 주님의 사역을 행하신다. 이렇게 볼 때, 이 사회와 이 지역(직장)을 변혁시키는 주체는 누구인가 누구여야 하는가 주님은 일꾼이 없는 곳에 역사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 말은 주님이 그같이 하실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같이 하신 적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주님은 주님의 사역방식을 주님의 사람들을 통해 성령님의 힘으로 이루시는 방법으로 하신다는 것이다. 준비된 일꾼, 그들의 순종하는 사역을 통하여 주님은 오늘날, 성령님의 생명의 큰 역사를 이루신다.
그렇다면, 누가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의 일꾼으로, 그리고 성령님의 힘으로 이 사회와 이 지역(직장)의 복음화와 변혁을 위해 뛸 것인가
3. 준비된 일꾼 13-14절을 보면, 120명 가량의 사람들이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에 힘쓰고 있다. 그들은 성령님이 오신다는 것의 의미(어떻게, 어떤 모습으로인지)를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에 힘쓰고 있다. 그들은 그 후의 결과도 모르고 있었다. 단지 그들은 주님의 계획을 신뢰했고, 그대로 하나되어 기도에 힘쓰며 기다렸다. 10일쯤 후로 알려진다. 성령님의 임재가 있었다. 놀랍게 있었다. 그들은 능력을 받았다. 그리고 참 증인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생각해 볼 점은, 성령님의 능력이 이 때부터 있던 것은 아니란 점이다. 성령님은 본래 능력을 가지고 역사하시는 분이지 않는가 그럼 무슨 차이인가 능력의 성령님이 본래 존재했다. 다만, 그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는 일들이 아직 없었다. 이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주님의 때(계획)와 사람들의 준비"라 할 수 있다. 주님의 계획이 없었다면, 주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우린 아무리 노력해도 성령님의 능력을 받을 수 없고, 그 능력을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이제 그 성령님의 임재는 그 때부터 완전히 시작되었다. 다만, 이젠 성령님 충만을 받는 것이 우리에게 덧붙여 주어진 명령이 되었다. 성령님 충만을 받아 사역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여전히 우리가 있는 사회와 가정과 지역(직장)이 주님께로 복음화되며 정의와 사랑의 문화가 펼쳐지기를, 하나님과의 사랑, 그리고 이웃과의 사랑, 나 자신과의 사랑이 새롭게 피어나기를, 아름답고 강한 사랑의 공동체,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 온전히 세워지고 확장되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그의 비젼을 보신다. 그리고 이루시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또한 아직도 복음이 심기워지지 않은 복음의 소외지역을 보고 계신다. 내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매일 만나 주님을 증거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내가 다니는 직장(캠퍼스)의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기도할 수 있고, 몇 몇 사람과 먼저 주님을 나눌 수 있다. 내가 지금은 세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 선교의 열매를 거둘 수 없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주님의 사랑과 의를 하나씩, 하나씩 드러낼 수 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추수할 것은 많되 추수할 사람이 없다. 사람을 보내 달라고 구하라." 문제는 한가지다. 주님께서 역사하기 싫어서도 아니고, 주님의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문제는 이곳에 "준비된 사람"이 있고 없음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미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하고 있고, 주님은 우리를 한 사람, 한 사람씩 모아 훈련 시키려 하신다. 그래서 헌신을 요구하신다. 함께 하기를 구하신다. 부르신 주님의 제자들이다. 주님은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전에는 변화된 모습이 없다가, 오순절 성령님을 통하여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보는가 그리고 그저 함께 며칠 있다 보니까, 성령님의 압도하시는 역사로 주체할 수 없는 증인이 된건가 부득이하게, 그저 체면차려 주려다가, 그냥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하다가 그들이 능력을 받아 놀라운 복음화의 주체가 되는가 그건 아니다!
(1) 능력있는 증인이 되기까지 그들에게 중요한 과정이 있었다. 그들은 약 이 삼년 정도 집중적으로 주님을 따라 다니며, 교훈을 받는 과정이 있었다. 이때도 많은 비용을 드려야 했다. 주님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도록 했기 때문이다. 주님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주님을 따를 권리가 주지 아니했다.
(2) 또 우리는 제자들이 10일간쯤 하나되어 열심히 기도하는 농축된 준비기간을 보게 된다. 더욱이 딱 십일이라 말한 적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힘을 합치어 기도의 노동을 감내해 내었다. 언제일지는 모르나 그들이 단지 알고 있는 것은 주님의 계획대로 하면 그들에게 성령님을 통한 능력-주님이 가지셨던 그 복음화의 능력이 그들에게도 있게 될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그들은 10일정도의 농축된 준비기간을 거쳐 성령님의 능력으로 거듭 태어났다. 그들에게 있어 이 10일간은 이제까지 주님을 뒷따르던 기간처럼 중요한 기간이었다. 만일 이런 기다림이 없었다면, 성령님의 임재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준비된 사람들이 없는 곳에 아무런 역사도 없다. 그럼, "개인적으로 혼자 기도하면서 능력을 공급받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있을 수 있다. 주님은 한 개인의 기도와 준비를 중요시하시지만, 보통 그 시대의 획을 긋는 일에는 함께 하는 헌신된 무리들의 준비기간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그래서 이 제자들도 "더불어, 같이하여"(14절) 준비한 것이다. 이렇게 준비하는 것 자체가 주님의 planning이었다. 이것을 무시할 때, 우리는 많은 시간을 그저 낭비하며 주님의 쓰임을 받지 못한 채, 도리어 복음의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되고 만다. 쓰임받기 위해 주님의 뜻을 따르라. 성령님의 능력 임재와 순종하여 준비하는 사람들을 분리시킬 수 없다. 주님의 뜻, 그리고 준비하며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 이 세가지는 항상 중요하다. 이제 이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있으라 하신다. 그리고 함께 준비하라 하신다. 기도로 준비하라 하신다. 말씀을 통하여, 성경공부를 통하여, 서로의 그리스도의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라 하신다. 때가 되면 주님은 역사하실 것이다. 이제 그 때가 되었다. 말씀과 기도와 믿음의 교제를 통해 이곳이 복음화되며 새롭게 시작할 때다. 영적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선 먼저 필요한 것이 있었다. 그건 제자들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준비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셔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곳에 새생명의 역사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크게 펼쳐지기 위해선, 주님을 새롭게 만난 사람들이 그 얼굴에 빛이 나며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빛과 사랑이 열매맺어지게 되기 위해선, 그래서 우리가 모두 함께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게 되며, 서로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섬김으로 우리 안에 "의와 사랑과 기쁨"이 가득하게 되기 위해선, 우린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모여 기도해야 한다. 모여 사랑해야 한다. 모여 말씀 나눔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훈련받아야 한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게 될 때, 주님의 능력과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에게 넘치게 되며, 주님의 크신 비젼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 질 것이다. 여기에 있는 사랑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바로 이 사역을 시작할 분들이다. 우리 함께 모이자. 그리고 주님의 뜻을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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