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순교자 (행1:6-11)
본문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지어낸 픽션이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 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그때 천국에서 예수님을 맞이한 천사들 중 하나가 질문을 드렸습니다. "예수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와 부활을 세상 사람들에게 다 알려 주고 오셨습니까아니, 예루살렘과 갈릴리 사람 소수만 알고 있네.그러면 헛 수고하신 것 아닙니까아냐, 내 제자들에게 맡기고 왔는걸.아니 예수님, 그 사람들은 형편없는 자들 아닙니까 실패하지 않을까요어쨌든 나는 다른 계획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네." 여러분, 그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독교 2천년 역사가 증거합니다. 천사의 우려처럼 제자들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통해 십자가 복음은 전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복음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교회가 곳곳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교회는 왕성하게 확장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사실 예수님 승천 당시 남아 있던 제자들은 인간적으로 볼 때 부족하다 못해 천한 사람들인데 .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등은 생선 비린내가 풍기고 불학무식한 갈릴리 어부들이었고, 마태는 매국노로 낙인 찍힌 세리였고, . 대충 이런 인물들인데 이들이 도대체 무슨 재간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그 정확한 이유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이적을 목격했고,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물론 이런 것도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지만 이런 것만으로는 불충분했습니다. 요21:1 이하 보면, 부활을 목격한 후에도 그들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갈릴리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갔던 것입니다. 또 본문 6절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언제 이스라엘이 회복되느냐 즉 정치적인 회복, 로마에서 독립해서 왕국를 건설하느냐 이겁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입니다. 3절 보면 주님이 부활해서 40일간 뭘 하셨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설명했는데 . 이래서 주님이 승천 이전에 누누히 강조한 게 있습니다. 뭐죠 4절-5절. 성령님 강림을 기다리라!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신 후에야 비로소 변화된 것입니다. 모든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능력있는 일꾼이 된 것입니다. 그들의 변화된 모습이 2장 이후에 나타납니다. 본문 보니까 승천하시기 직전 예수님은 그들의 변화될 미래를 예상하면서 8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지상에서 마지막 남기신 유언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최상 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마28:18-20과 더불어 흔히 지상 명령(Great Commission)이라 부릅니다. 다같이 암송합시다! 바로 이 말씀을 붙들고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 ’98/05/31 주일낮예배(성령님강림절) 2 이 세계 각처의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했고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110여년전 땅끝과 같았던 이 땅에 사는 우리까지 .
그러므로 이 말씀은 비단 그 당시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를 인생의 목적이요, 삶의 스타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고 승천하실 때 당시 제자들은 아직 어리둥절해서 예수님이 아득히 사라져 가는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흰옷 입은 천사둘이 말합니다. 11절. 하늘만 쳐다 보지 말고 주님이 재림할 때까지 그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백성이 됩니다. 당장이라도 천국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분명히 천국이 이 세상보다 좋을진대 왜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 두십니까 우리는 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 남아 있어야 됩니까 바로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단순하게 헹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더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 이야깁니다. 이것을 꼭 명심해야 됩니다. 그래야 정말 의미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먹고 마시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산다면 무슨 의미있는 인생이 되겠습니까 풀과 같이 시들고 사라지는 인생일 뿐입니다. 벧전1:24-25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 요일2:15-17 " .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영원히 후회없고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까 행1:8 말씀을 꼭 붙드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장차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우리가 자랑할 게 무엇입니까 오직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함께 살펴봅니다.
'1' 예수님의 증인 성경에 나오는 '증인'이란 말은 본래 법률 용어입니다. '듣고 본 내용을 증거, 보고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이 배경이 된 로마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고 증거한다는 것은 곧 목숨을 바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래서 증인이란 단어는 성경 원어 헬라어로 '말튀스'인데, 여기서 순교자라는 영어 단어(martyr)가 생겼습니다. 즉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의 십자가 죽음이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요, 부활하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을 전파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진리이기에 . 우리 자신에게 중요하고,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고, . 이런 삶을 위해 초대 교회 당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에, 증거에 목숨을 ’98/05/31 주일낮예배(성령님강림절) 3 바쳐 죽음으로써 순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예' 12제자(가룟 유다 대신 들어간 맛디아 포함)-사도 요한 제외하고 모두 순 교. 한국에 찾아왔던 선교사들-토마스 선교사 등 . 절두산 . 기독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통해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계 도처에 이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슬렘권, 공산권, . 1년에 15만 정도의 순교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엄청나죠
그런데 우리는 평화의 시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처럼 순교하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순교가 무섭게 느껴져서 그렇지 어차피 한번 죽는 법인데 감당할 수만 있다면 가장 영광스런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도 다른 방식의 순교의 길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산 순교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단번에 바쳤습니다. 즉 죽음으로써 '짧고 단회적인 순교'를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나 대신 그런 각오와 결단, 즉 순교자 정신을 가지고 일생을 산다면 그 역시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바치는 셈이 됩니다. 말하자면 '길고 지속적인 순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이 순교를 했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순교를 하는 것입니다. 롬12: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시대상을 통해 주신 것일 뿐 같은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증인의 사람을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의 순교도 상황이 되면 가능합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예수 증인이 되지 못하면 위험한 상황에서 순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 공산당이 밀고 내려오면 .목사, 장로, 성도부터 잡아갑니다. 그때 나는 과연 그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다만 주어진 인생의 여건 속에서 예수 증인의 삶을 살아 가기를 바랍니다.
'2' 구체적인 산 순교자의 삶
1 구체적인 방법 직접적인 증거-입술의 증거, 기타 여러 가지 통신 수단을 통해서(편지, 문서, 방송, 인터넷 등 각종 통신을 통해서 .), 직접 선교사로 나가는 등 . 간접적인 증거-전도, 선교 지원을 통해, 인격과 삶의 본을 보임으로써 마5:13-16 소금과 빛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이것은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98/05/31 주일낮예배(성령님강림절) 4 사랑은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 때문에 손해보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손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우리 나라처럼 이미 복음이 상당히 많이 증거된 곳일수록 아주 절실합니다. 우리의 믿는 것과 말하는 것, 살고 있는 것이 차이가 날 때 세상 사람들은 귀를 막고 등을 돌립니다. 결국 진리가 거부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말을 안 듣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정죄할 권리도 없습니다. 세상이 어둡다고 비난할 게 아닙니다. 세상은 늘 그런 겁니다. 다만 우리가 빛나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일 뿐입니다.
2 어디서-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가까운데서(예루살렘)-가족, 가까운 이웃, 동족, . 먼데서(땅끝까지)-예루살렘 다하고 다음에 유대, . 이런 식이 아닙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외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만일 차근 차근 다 하고 다음 지역으로 간다면 아직도 우리에게 복음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오늘 이 시대는 세계화 시대(Globalization)입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 부를 정도입니다. 이것은 일견 무역이나 산업을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복음을 위한 것입니다. 마치 로마 시대에 잘 발달된 군용 도로망이 복음을 위해 쓰였듯이 .
3 언제-주님 오시는 날까지(세상 끝날까지-우주적 종말), 나를 부르시는 그날까지(개인적 종말)
'3' 오직 성령님이 임하시면 . 되리라 8절을 다시 보면, "성령님이 임하시면 . 증인이 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증인의 삶, 순교자적인 삶은 사람이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 사람들이 보기에 매력적인 것도 못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권능이 임합니다. 헬라어로 '뒤나미스'인데, 이 단어에서 다이너마이트, 다이내믹 등의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어떤 능력이 나타나는가
1 믿어집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천국이, 영생 부활이 믿어집니다.
2 담대해집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영생과 부활, 천국이 있으니까 .
3 예수님을 나타내게 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으로부터 오시는 영으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그룰 수밖에 없는 것이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거하러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요15:26, 16:14)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자동으로 예수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님강림절!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님을 환영합시다! 그리고 예수 증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산 순교자가 됩시다! 이러 인생은 기쁩니다. 순교하면서도 기뻐할 정도로 큰 기쁨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영광스런 삶입니다. 부디 이런 산 순교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십자가와 부활을 세상 사람들에게 다 알려 주고 오셨습니까아니, 예루살렘과 갈릴리 사람 소수만 알고 있네.그러면 헛 수고하신 것 아닙니까아냐, 내 제자들에게 맡기고 왔는걸.아니 예수님, 그 사람들은 형편없는 자들 아닙니까 실패하지 않을까요어쨌든 나는 다른 계획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네." 여러분, 그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독교 2천년 역사가 증거합니다. 천사의 우려처럼 제자들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통해 십자가 복음은 전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복음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교회가 곳곳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교회는 왕성하게 확장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사실 예수님 승천 당시 남아 있던 제자들은 인간적으로 볼 때 부족하다 못해 천한 사람들인데 .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등은 생선 비린내가 풍기고 불학무식한 갈릴리 어부들이었고, 마태는 매국노로 낙인 찍힌 세리였고, . 대충 이런 인물들인데 이들이 도대체 무슨 재간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그 정확한 이유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며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이적을 목격했고,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물론 이런 것도 대단히 중요한 요소였지만 이런 것만으로는 불충분했습니다. 요21:1 이하 보면, 부활을 목격한 후에도 그들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갈릴리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갔던 것입니다. 또 본문 6절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언제 이스라엘이 회복되느냐 즉 정치적인 회복, 로마에서 독립해서 왕국를 건설하느냐 이겁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입니다. 3절 보면 주님이 부활해서 40일간 뭘 하셨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설명했는데 . 이래서 주님이 승천 이전에 누누히 강조한 게 있습니다. 뭐죠 4절-5절. 성령님 강림을 기다리라!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신 후에야 비로소 변화된 것입니다. 모든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능력있는 일꾼이 된 것입니다. 그들의 변화된 모습이 2장 이후에 나타납니다. 본문 보니까 승천하시기 직전 예수님은 그들의 변화될 미래를 예상하면서 8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지상에서 마지막 남기신 유언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최상 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마28:18-20과 더불어 흔히 지상 명령(Great Commission)이라 부릅니다. 다같이 암송합시다! 바로 이 말씀을 붙들고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 ’98/05/31 주일낮예배(성령님강림절) 2 이 세계 각처의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했고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110여년전 땅끝과 같았던 이 땅에 사는 우리까지 .
그러므로 이 말씀은 비단 그 당시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를 인생의 목적이요, 삶의 스타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고 승천하실 때 당시 제자들은 아직 어리둥절해서 예수님이 아득히 사라져 가는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흰옷 입은 천사둘이 말합니다. 11절. 하늘만 쳐다 보지 말고 주님이 재림할 때까지 그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백성이 됩니다. 당장이라도 천국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분명히 천국이 이 세상보다 좋을진대 왜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 두십니까 우리는 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 남아 있어야 됩니까 바로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단순하게 헹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더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 이야깁니다. 이것을 꼭 명심해야 됩니다. 그래야 정말 의미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먹고 마시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산다면 무슨 의미있는 인생이 되겠습니까 풀과 같이 시들고 사라지는 인생일 뿐입니다. 벧전1:24-25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 요일2:15-17 " .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영원히 후회없고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까 행1:8 말씀을 꼭 붙드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장차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우리가 자랑할 게 무엇입니까 오직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함께 살펴봅니다.
'1' 예수님의 증인 성경에 나오는 '증인'이란 말은 본래 법률 용어입니다. '듣고 본 내용을 증거, 보고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이 배경이 된 로마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고 증거한다는 것은 곧 목숨을 바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래서 증인이란 단어는 성경 원어 헬라어로 '말튀스'인데, 여기서 순교자라는 영어 단어(martyr)가 생겼습니다. 즉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의 십자가 죽음이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요, 부활하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다는 사실을 전파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진리이기에 . 우리 자신에게 중요하고,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고, . 이런 삶을 위해 초대 교회 당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에, 증거에 목숨을 ’98/05/31 주일낮예배(성령님강림절) 3 바쳐 죽음으로써 순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예' 12제자(가룟 유다 대신 들어간 맛디아 포함)-사도 요한 제외하고 모두 순 교. 한국에 찾아왔던 선교사들-토마스 선교사 등 . 절두산 . 기독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통해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계 도처에 이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슬렘권, 공산권, . 1년에 15만 정도의 순교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엄청나죠
그런데 우리는 평화의 시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처럼 순교하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순교가 무섭게 느껴져서 그렇지 어차피 한번 죽는 법인데 감당할 수만 있다면 가장 영광스런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에게도 다른 방식의 순교의 길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산 순교자'가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단번에 바쳤습니다. 즉 죽음으로써 '짧고 단회적인 순교'를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나 대신 그런 각오와 결단, 즉 순교자 정신을 가지고 일생을 산다면 그 역시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바치는 셈이 됩니다. 말하자면 '길고 지속적인 순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이 순교를 했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순교를 하는 것입니다. 롬12: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시대상을 통해 주신 것일 뿐 같은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증인의 사람을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의 순교도 상황이 되면 가능합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예수 증인이 되지 못하면 위험한 상황에서 순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 공산당이 밀고 내려오면 .목사, 장로, 성도부터 잡아갑니다. 그때 나는 과연 그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다만 주어진 인생의 여건 속에서 예수 증인의 삶을 살아 가기를 바랍니다.
'2' 구체적인 산 순교자의 삶
1 구체적인 방법 직접적인 증거-입술의 증거, 기타 여러 가지 통신 수단을 통해서(편지, 문서, 방송, 인터넷 등 각종 통신을 통해서 .), 직접 선교사로 나가는 등 . 간접적인 증거-전도, 선교 지원을 통해, 인격과 삶의 본을 보임으로써 마5:13-16 소금과 빛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이것은 한 마디로 사랑입니다. ’98/05/31 주일낮예배(성령님강림절) 4 사랑은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 때문에 손해보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손해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우리 나라처럼 이미 복음이 상당히 많이 증거된 곳일수록 아주 절실합니다. 우리의 믿는 것과 말하는 것, 살고 있는 것이 차이가 날 때 세상 사람들은 귀를 막고 등을 돌립니다. 결국 진리가 거부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말을 안 듣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정죄할 권리도 없습니다. 세상이 어둡다고 비난할 게 아닙니다. 세상은 늘 그런 겁니다. 다만 우리가 빛나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일 뿐입니다.
2 어디서-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가까운데서(예루살렘)-가족, 가까운 이웃, 동족, . 먼데서(땅끝까지)-예루살렘 다하고 다음에 유대, . 이런 식이 아닙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외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만일 차근 차근 다 하고 다음 지역으로 간다면 아직도 우리에게 복음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오늘 이 시대는 세계화 시대(Globalization)입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 부를 정도입니다. 이것은 일견 무역이나 산업을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복음을 위한 것입니다. 마치 로마 시대에 잘 발달된 군용 도로망이 복음을 위해 쓰였듯이 .
3 언제-주님 오시는 날까지(세상 끝날까지-우주적 종말), 나를 부르시는 그날까지(개인적 종말)
'3' 오직 성령님이 임하시면 . 되리라 8절을 다시 보면, "성령님이 임하시면 . 증인이 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증인의 삶, 순교자적인 삶은 사람이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 사람들이 보기에 매력적인 것도 못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권능이 임합니다. 헬라어로 '뒤나미스'인데, 이 단어에서 다이너마이트, 다이내믹 등의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어떤 능력이 나타나는가
1 믿어집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천국이, 영생 부활이 믿어집니다.
2 담대해집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영생과 부활, 천국이 있으니까 .
3 예수님을 나타내게 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으로부터 오시는 영으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그룰 수밖에 없는 것이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거하러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요15:26, 16:14)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자동으로 예수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님강림절!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님을 환영합시다! 그리고 예수 증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산 순교자가 됩시다! 이러 인생은 기쁩니다. 순교하면서도 기뻐할 정도로 큰 기쁨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영광스런 삶입니다. 부디 이런 산 순교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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