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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나라의 회복 (행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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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 79주년이 되는3.1절입니다. 한국교회가 이 날을 기념하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은 한국 기독교가 이3.1 만세운동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3.1운동에 한국교회가 앞장섰다는 것은 여러 객관적인 자료로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 지도자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시대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3월 7일부터 3월 15일까지의 매일신보 보도를 종합해 보면 관서지방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서울을 거쳐 전국으로 확산되었는데 이 운동의 각 지방 거점은 교회와 미션스쿨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된 지 겨우 30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교세도 미약했고, 아직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보잘것없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나라의 위기를 결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분연히 일어나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민족에 용기와 소망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 대가를 톡톡히 지불해야 했습니다. 수많은 교계 지도자들이 살해되거나 투옥됐고,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게 됐고, 미션스쿨이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민족의 고난에 온 몸으로 동참했던 것입니다. 이 시간3.1절 기념예배를 드리며 이런 빛나는 한국교회의 나라사랑 전통을 되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 나라사랑하는 길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나라의 현실은 어둡고, 힘겹기만 합니다. 남북으로 분단된 채 50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지만 통일의 그날은 멀기만 합니다. 이산 가족들은 한을 가슴에 묻은 채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대내적으로 경제위기시대라는 초유의 경제적인 국난의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자칫 국가가 부도가 나고, 경제적으로 파산할 위기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신임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목이 메여 국민에게 호소해야 할 절박한 상황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나라사랑의 전통을 되살려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국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고, 이 나라와 민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라사랑을 실천할 때 잊어서는 않될 중요한 교훈을 말씀해 줍니다. 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나라의 독립을 소망하고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일에 앞장 서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본문 6절에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7절에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하나는 나라의 장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운명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1919년 한국교회가 주도했던3.1만세 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갔습니다. "기미년 3월 1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나라 잃은 지 10년, 한이 되고 피 눈물이 되었던 민족의 찢어지는 가슴이 터지는 함성이 되어 온 천지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러나 온 민족이 한마음 되어 만세를 부르고,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일어섰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일본의 철권 통치는 더욱 강화됐고, 민족의 고난은 더욱 깊어만 갔습니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조국을 등지고 만주로, 상해로, 하와이로 망명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토록 온 민족이 한마음 한뜻으로 독립을 위해 일어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라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독립을 이룬 것은3.1운동이 일어난 후 26년이 지나서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게 되고, 일본과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게 되어 그 결과로 8.15해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8.15 해방은 사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입니다. 그 누구도 8.15 광복을 기획하고 도모하고 추진하지 못했습니다. 꿈도 꾸지 못하던 일입니다. 이 사건은 나라의 미래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을 말해 줍니다. 오늘도 우리가 경제위기시대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관심은 언제 우리가 이 경제위기시대를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2년, 또 어떤 사람은 5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고, 또 우리 생각보다 늦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섣불리 시기를 예상해서 방정맞게 행동한다면 그 시기는 더 늦어질 것이고, 오히려 낭패를 겪게 될 것입니다.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참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오늘을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경제위기시대를 벗어날 대책을 수립할 때 일반적으로 경제 논리를 앞세웁니다. 그래서 대기업 구조조정이니, 노동의 유연성 확보니, 소비의 거품제거니. 한편으로 볼 때 필요한 대책이고, 옳은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장래가 하나님의 장중에 있기 때문에 경제논리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논리입니다. 신앙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나라의 장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시 144:1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신앙 논리로 볼 때 문제 해결의 지름길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을 믿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면 됩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의지하면 됩니다.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둘째, 힘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본문 8절이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힘은 바로 성령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로마가 당시 전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정치력, 군사력, 경제력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고 통치했습니다. 감히 그 누구도 로마의 힘 앞에 맞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강림하고 제자들이 권능을 받자 불과 100년도 못돼서 기독교가 로마 세계를 석권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100여 년이 지나자 로마는 기독교에 항복했고, 국가 종교로 기독교를 공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19년3.1 만세운동은 평화적인 만세시위였습니다. 비폭력독립 운동으로 당시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초창기에 전민족적 의지로 결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갔습니다. 일시적으로 일제와 대항해 승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폭력과 억압 앞에 결국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무력과 폭력에 대항할 만한 힘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금번 경제위기시대를 극복할 힘을 비축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힘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근원이 있는가 당장은 힘이 있어 보입니다. 금 모으기 운동으로 이 힘이 나타났습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기민하게 대처해서 중요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라 밖에서 같은 경제위기의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위기를 이겨낼 정신력이 있는지 매스컴 보도에 의하면 안타깝게도 벌써 우리 삶의 자세가 흐트러지고 있고, 해이해 진 모습이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도심에 차량이 다시 늘고 있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과소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경제위기한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인데.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더 심각하게 물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조리와 거품을 걷어내고 개혁할 도덕성이 있는가 정치권의 당리당략이 여전합니다. 재계의 몰염치가 여전합니다. 심지어 사회의 양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법부의 부패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연일 매스컴 보도에 추악한 판사들의 모습, 검사들의 비리가 들춰지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여인이 해산날이 다가왔는데 해산할 힘이 없어 보여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정신력을 키워야 하고, 도덕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가 앞장서야 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을 보여야겠습니다. 진정 우리가 애국할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 희망을 잃지 말라는 점입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든 것을 다 버린 사람들입니다. 직업도 버렸습니다. 가족도 버렸습니다. 자신의 삶도 다 버렸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따르면서 주님과 함께 할 미래에 대한 소망 하나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소망을 이루어주시지 않은 채 그들 곁을 떠나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그 소망마저도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순간입니다.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습니다.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모르실 리 없으셨습니다. 천사를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온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소망을 잃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실3.1운동 이후 많은 변절자들이 나왔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함께 헌신했던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돌아섰습니다. 많은 애국 지사들이 변절을 했습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선구자를 작사한 조두남은 조국의 광복에 헌신하기 위해 만주로 망명했습니다. 초창기 불같은 애국심으로 만주 일대에서 활약하면서 모든 이의 가슴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선구자를 작사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그가 말년에 변절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 노래를 계속 우리가 불러야 하는가라는 시비가 일기도 했습니다. 조국의 광복이라는 희망이 점차 사라져 가자 그 많은 사람들이 변절을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리 힘써도 불가능하다고 자포자기하게 되면서 변절의 길로 돌아서게 된 것입니다. 소설가 이광수도 육당 최남선도 다 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은 변절하지 않았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내 묘비에 눈을 그려라. 조국의 독립을 보고 말리라"고 했습니다.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는 끝까지 변절치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내 묘비에는 독립, 독립, 독립이라고 쓰라"고 했습니다. 김구 역시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이끌면서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힘썼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적인 일이 됐든지, 개인적인 일이 됐든지 희망을 잃으면 않됩니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바로 주님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다음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모 일간지에 실린 칼럼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논지의 핵심은 경제위기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우리 민족의 특성에서 찾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지 못한답니다. 그리고 스스로 단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유구한 역사가 이를 증명해 준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외부의 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되면 단결하고 변화를 추구한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경제위기는 스스로 변화할 줄 모르고 스스로 단결할 줄 모르는 우리 민족에게 변화하고 단결하게 해 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예기입니다. 이런 관점도 있구나 한 편 놀라기도 했고 한 편 공감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금번 국가적 위기는 아프기는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역설적으로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잊어서는 않될 것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니 더욱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국가적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억세게 기도했습니다. 기도원마다 만원이랍니다. 경제위기시대가 시작되면서 기도원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않되는 상황이랍니다. 골프장이 한산하고, 유흥가가 파리 날리고, 여행지가 장사가 않됩니다만 기도원은 만원 사례랍니다. 많은 교회에 교인들이 늘었답니다. 하나님 보실 때 기뻐하실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기도원에 모여 기도하고, 교회에 모여 기도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모처럼 한국교회에 기도 소리가 커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한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을 잃지 말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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