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부탁하고 (행14:19-28)
본문
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l-12장은 예루살렘 을 증심으로한 유대인 상대의 전도로 지도자는 베드로이고 13-28장은 안디옥을 증심으로한 이방인 전도 기사로 지도인물은 바울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양대산맥은 베드로와 바울 입니다. 본문은 세계선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실시한 바울사도의 세번의 전도여행기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바울의 전도는 가는 곳마다 극단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환영하고 영접하고 결신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반대하고 대적하고 심지언 죽이려고 덤비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걸었습니다. 환영한다고 쉽게 흥분하지 않았고 죽이려든다고 절망하지 않 았습니다. 세상 인기라는건 물거품과 같습니다. 연예인, 운동선수 등 인기 에 승부를 걸고 사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두 가지 힘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신앙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약물(환각)의 힘 이라고 합니다. 언제 물거품처럼 사라질지 모르는 인기를 유지하려 면 불안, 초조, 긴장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유명 인기인들 대부분은 신경성 불면증, 위궤양, 소화불량 등에 걸려 있으며 불안심리를 약물로 달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실한 신자들일 경우 그런 증세가 없다는 것입니다. 힘들면 기도하고 기쁘면 찬송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바울은 그 당시 명문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석학이었던 가말리엘 선생 밑에서 을법을 공부했고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해 헌납헤 버렸습니다.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 것들을 바라보며 웃고 울고 들뜨고 가슴 조리며 살던 자신의 삶속에 그리스도라는 거목을 모셨습니다. 그날 이후 바울은 웃어도 예수님때문에 울어도 예수님때문에 그리고 죽어도 예수님 때문에 죽기로 결심하고 전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린 그런 맥락에서 본문을 조명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해 세 가 지 큰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1. 믿음에 거하라 22절을 보면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 고'라고 했습니다. '거한다'는 것은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흔들리지 압는다, 자리를 잡다, 믿음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긴 하는데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부부생활을 하긴 하는데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하긴 하는데 자리를 잡지 못하 고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람직한 일들이 아닙니다. 믿음에 거하라는 것은 흔들리지 말고 자리를 잡아 살라는 것입니다. 건물은 기초가 중요하고 나무는 뿌 리가 증요하고 신앙은 그 중심이 증요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예수증심으로 사는 사람은 흔들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아닌 다른 것들을 증심으로 삼는 사람들은 흔들 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2월 24일은 전례없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고 라디오와 텔레비젼이 뉴스시간에 보도했습니다. 횐눈이 내릴 것이기 때문에 하얀 눈 덮인 성탄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기상예보를 들으면서 '눈내릴 분은 따로 있는데'라며 실소를 머금었 습니다. 바람의 방향을 바꾸시고 천등과 비를 내리시고 횐눈과 단 비를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날 눈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은 실망할 필요가 없지만 사람믿고 과학믿고 지 혜믿는 사람은 그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에 거하라는 것은 믿음으로 살아라는 뜻입니다.
하박국서 2:4을 보면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했습니다. 믿음은 신앙생활의 절대조건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의 경우도 믿음이 없으면 곤갈합니다 저는 결흔식 주례를 할 때마다 봉독하는 성경본문과 주례사의 내용을 동일한 것으로 사용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결흔 당사자인 신랑과 신부는 처음 듣는 주례사가 되지 만 결흔식을 축하하러 오는 교인들의 경우는 같은 이야기를 세번 다섯번 때로는 열번썩 들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같은 주례사를 되풀이 하는 것은 주례사를 축하객들보다는 신랑, 신부가 들어야 할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신차리고 경청을 해야하기 때문에 주례사를 하는 동안에는 사진촬영도 못하게 합니다. 주례사의 내용이 약간씩 변형되긴 합니다만 그러나 변치 않는 골격은 세 가지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결정과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살 것, 서로 믿고 살 것, 사랑하며 살 것입니다. 믿고 살아야 부부지 믿지 못하면 부부이기가 어렵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사람과 함께 30초나 40초 동안을 함께 올라가는 그 순간의 정적도 숨막힐 지경인데 함께 살면서 믿지 못 한 채 살아간다면 그 모습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믿는다면서도 믿 지 못하고 믿기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선진국일수록 보험제도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보험제도가 다양한 것은 물론 선진국에 뒤떨어지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머잖아 외국보험회사가 한국시장에 상륙하게 되면 치열한 경쟁시대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자동차보험, 생 명보험. 건강보험. 여행보험 등 그 가지수도 다양합니다 보험이잘 불의의 재난이나 사고 등을 대비하여 경제적 보상장치 를 미리 해두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보험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가장 안전한 보험에 대해선 무관심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를 믿고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모 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안전한 보험은 없습니다. 예수 를 믿고 흔들리지 맙시다. 그리고 믿고 맡기고 삽시다.
2. 환란을 격어야 하리라. 22절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 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밤 자고 났더니 성공이 다가 온 사람은 없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있고 수고 끝에 영광이 있고 환난후에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크기는 다릅니다만 인간은 환란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환란은 누구나 환란을 겪기 마련입니다. 환란은 세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환란은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17을 보면 '우리의 잠시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 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환란은 잠시라는 것과 경하다는 것을 밝 혀주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리고 영원히 환란이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환란은 잠깐이고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4번 사법시험에 도전하여 실패하고 5번째 도전하여 합격한 법조 인을 만났습니다. 네번째 떨어졌을 때 그 참담한 심정은 말로 형언 할 수가 없었답니다. 때려치울까, 상처받은 자존심을 어떻게 달랠까 절망. 좌절, 실의 에 빠져 자신을 가누기가 어렵더랍니다.
그런데 5번째 도전에 성공 하던 날 4번의 실패는 생각도 나지 않고 그 환희와 감격을 가누기 가 어렵더라고 했습니다. 환란이 환갇만으로 끝난다면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만 그리스도인의 환갈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둘째 환란은 영광의 관문입러다. 환란없이 얻는 영광은 값져보이지 않습니다. 마라톤에 우승한 선수가 상는 월계관과 등산하다가 월계수가지 꺽어 자기가 만들어 쓰는 월계관의 가치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30여년 길고 긴 세월동안 국방에 진력하고 군인의 길을 걷다가 어깨에 다는 그 별과 길 지나가다 자기가 돈주고 견장집에서 사서 다는 별과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전남 강진에서 18년동안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억울하고 한맺힌 18년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18년 유배생활동안 230권의 저술을 남겼습니다. 환란이 남긴 위대한 유산 이었습니다 에베소서 3:13을 보면 '환란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회의 영광이니라'고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입니다. 히브리서 12:6을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했고 8절을 보면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죄 값으로 치루는 환란이 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닌데 겪는 환란 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겪는 환란은 하나님의 자녀 이며 사랑하는 자녀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내 자식은 매를 때린 일이 있습니다만 남의 자식 은 매를 때린 일이 없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을 때린 일은 있 어도 길가는 사람을 때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환난을 겪는다면 그것은 사랑의 징표 이며 영광의 보장인 것입니다.
3. 주께 부탁하고 23절 끝을 보면 저회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전도하던 곳을 떠나기 전 자기가 전도한 사람들을 주님 께 부탁했습니다. 주님께 부탁했다는 것을 26절에서는 하나님의 은 혜에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20여년 전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 남 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45세였고 예비역 증령이었습니다. 그의 유언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제 아내와 두 아이 들을 도와주십시오. 주님 의지하고 교회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도와 주십시오. 주님께 부탁드럽니다'라며 그는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주님께 부탁한다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기 때문이며 신용이 성럽 되기 때문이며 안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탁하면 그 부 탁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린 그 동안 무엇을 맡겼으며 무엇을 부탁하며 한해를 살아나왔 습니까 어떤 남자 교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동안 설교를 들을 때 마다 기도해라 기도해라 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제 아무리 하나님이 머리가 좋으시다고 해도 그 수 많은 사람의 기도 를(부탁을) 다 기억할 것같지 않아서였고 또 하나는 내 힘으로 하다 가 안되면 부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부도사건이 터진 후 신경성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나서부터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부탁드리고 사는 편히 훨씬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주님도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린 주님께 부탁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동안 주님께 부탁드리고 도움받고 살아온 것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날 동안 수를 셀 수 없는 일들을 주님께 부탁드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내 영혼을 부탁드립시다. 내 가정과 사업과 자녀를 부탁드럽시다. 핑화와 안정과 번영을 부탁드럽시다 주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 습니다. 부탁드리는 것은 곧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말씀드리고 기도로 부탁드립시다. 한해를 지키신 주님 새해에도 나와 가정 과 교회와 나라를 지켜주옵소서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소서 아멘
1. 믿음에 거하라 22절을 보면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 고'라고 했습니다. '거한다'는 것은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흔들리지 압는다, 자리를 잡다, 믿음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긴 하는데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부부생활을 하긴 하는데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하긴 하는데 자리를 잡지 못하 고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람직한 일들이 아닙니다. 믿음에 거하라는 것은 흔들리지 말고 자리를 잡아 살라는 것입니다. 건물은 기초가 중요하고 나무는 뿌 리가 증요하고 신앙은 그 중심이 증요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예수증심으로 사는 사람은 흔들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아닌 다른 것들을 증심으로 삼는 사람들은 흔들 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2월 24일은 전례없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고 라디오와 텔레비젼이 뉴스시간에 보도했습니다. 횐눈이 내릴 것이기 때문에 하얀 눈 덮인 성탄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기상예보를 들으면서 '눈내릴 분은 따로 있는데'라며 실소를 머금었 습니다. 바람의 방향을 바꾸시고 천등과 비를 내리시고 횐눈과 단 비를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날 눈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은 실망할 필요가 없지만 사람믿고 과학믿고 지 혜믿는 사람은 그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에 거하라는 것은 믿음으로 살아라는 뜻입니다.
하박국서 2:4을 보면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했습니다. 믿음은 신앙생활의 절대조건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의 경우도 믿음이 없으면 곤갈합니다 저는 결흔식 주례를 할 때마다 봉독하는 성경본문과 주례사의 내용을 동일한 것으로 사용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결흔 당사자인 신랑과 신부는 처음 듣는 주례사가 되지 만 결흔식을 축하하러 오는 교인들의 경우는 같은 이야기를 세번 다섯번 때로는 열번썩 들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같은 주례사를 되풀이 하는 것은 주례사를 축하객들보다는 신랑, 신부가 들어야 할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신차리고 경청을 해야하기 때문에 주례사를 하는 동안에는 사진촬영도 못하게 합니다. 주례사의 내용이 약간씩 변형되긴 합니다만 그러나 변치 않는 골격은 세 가지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결정과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살 것, 서로 믿고 살 것, 사랑하며 살 것입니다. 믿고 살아야 부부지 믿지 못하면 부부이기가 어렵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사람과 함께 30초나 40초 동안을 함께 올라가는 그 순간의 정적도 숨막힐 지경인데 함께 살면서 믿지 못 한 채 살아간다면 그 모습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를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믿는다면서도 믿 지 못하고 믿기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선진국일수록 보험제도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보험제도가 다양한 것은 물론 선진국에 뒤떨어지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머잖아 외국보험회사가 한국시장에 상륙하게 되면 치열한 경쟁시대의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자동차보험, 생 명보험. 건강보험. 여행보험 등 그 가지수도 다양합니다 보험이잘 불의의 재난이나 사고 등을 대비하여 경제적 보상장치 를 미리 해두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보험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가장 안전한 보험에 대해선 무관심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를 믿고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모 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안전한 보험은 없습니다. 예수 를 믿고 흔들리지 맙시다. 그리고 믿고 맡기고 삽시다.
2. 환란을 격어야 하리라. 22절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 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밤 자고 났더니 성공이 다가 온 사람은 없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있고 수고 끝에 영광이 있고 환난후에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크기는 다릅니다만 인간은 환란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환란은 누구나 환란을 겪기 마련입니다. 환란은 세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환란은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17을 보면 '우리의 잠시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지 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환란은 잠시라는 것과 경하다는 것을 밝 혀주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리고 영원히 환란이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환란은 잠깐이고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4번 사법시험에 도전하여 실패하고 5번째 도전하여 합격한 법조 인을 만났습니다. 네번째 떨어졌을 때 그 참담한 심정은 말로 형언 할 수가 없었답니다. 때려치울까, 상처받은 자존심을 어떻게 달랠까 절망. 좌절, 실의 에 빠져 자신을 가누기가 어렵더랍니다.
그런데 5번째 도전에 성공 하던 날 4번의 실패는 생각도 나지 않고 그 환희와 감격을 가누기 가 어렵더라고 했습니다. 환란이 환갇만으로 끝난다면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만 그리스도인의 환갈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둘째 환란은 영광의 관문입러다. 환란없이 얻는 영광은 값져보이지 않습니다. 마라톤에 우승한 선수가 상는 월계관과 등산하다가 월계수가지 꺽어 자기가 만들어 쓰는 월계관의 가치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30여년 길고 긴 세월동안 국방에 진력하고 군인의 길을 걷다가 어깨에 다는 그 별과 길 지나가다 자기가 돈주고 견장집에서 사서 다는 별과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전남 강진에서 18년동안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억울하고 한맺힌 18년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18년 유배생활동안 230권의 저술을 남겼습니다. 환란이 남긴 위대한 유산 이었습니다 에베소서 3:13을 보면 '환란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회의 영광이니라'고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입니다. 히브리서 12:6을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했고 8절을 보면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죄 값으로 치루는 환란이 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닌데 겪는 환란 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겪는 환란은 하나님의 자녀 이며 사랑하는 자녀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내 자식은 매를 때린 일이 있습니다만 남의 자식 은 매를 때린 일이 없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을 때린 일은 있 어도 길가는 사람을 때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환난을 겪는다면 그것은 사랑의 징표 이며 영광의 보장인 것입니다.
3. 주께 부탁하고 23절 끝을 보면 저회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전도하던 곳을 떠나기 전 자기가 전도한 사람들을 주님 께 부탁했습니다. 주님께 부탁했다는 것을 26절에서는 하나님의 은 혜에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20여년 전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 남 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45세였고 예비역 증령이었습니다. 그의 유언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제 아내와 두 아이 들을 도와주십시오. 주님 의지하고 교회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도와 주십시오. 주님께 부탁드럽니다'라며 그는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주님께 부탁한다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기 때문이며 신용이 성럽 되기 때문이며 안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탁하면 그 부 탁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린 그 동안 무엇을 맡겼으며 무엇을 부탁하며 한해를 살아나왔 습니까 어떤 남자 교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동안 설교를 들을 때 마다 기도해라 기도해라 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제 아무리 하나님이 머리가 좋으시다고 해도 그 수 많은 사람의 기도 를(부탁을) 다 기억할 것같지 않아서였고 또 하나는 내 힘으로 하다 가 안되면 부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부도사건이 터진 후 신경성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나서부터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부탁드리고 사는 편히 훨씬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주님도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린 주님께 부탁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동안 주님께 부탁드리고 도움받고 살아온 것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날 동안 수를 셀 수 없는 일들을 주님께 부탁드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내 영혼을 부탁드립시다. 내 가정과 사업과 자녀를 부탁드럽시다. 핑화와 안정과 번영을 부탁드럽시다 주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 습니다. 부탁드리는 것은 곧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말씀드리고 기도로 부탁드립시다. 한해를 지키신 주님 새해에도 나와 가정 과 교회와 나라를 지켜주옵소서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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