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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행1:4-8)

본문

유대인들은 자기 자녀들에게 자주 여우와 물고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어느 산중에 사는 여우가 어느 날 바닷가에 갔습니다. 여우는 바다에서 많은 물고기를 보았습니다. 은근히 물고기가 먹고 싶었던 여우는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하다가 물고기를 불러 육지로 유인해 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서는 물고기들에게 물고기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아주 위험한 지경에 있습니다. 보세요.저 깊은 바다의 큰 고래 상어 떼들이 여러분을 잡아먹기 위해 떼를 지어 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빨리 이 안전한 육지로 나오십시오. 그러자 물고기들은 회의를 했습니다. 찬성, 반대, 양론이 생겼습니다. 그런 끝에 물고기들은 불안하지만 물 속에서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물고기 대표가 얼굴을 밖으로 내밀고 여우에게 말했습니다. 여우님 우리를 생각해 준 것은 감사하지만 우리는 육지로 가지 않고 물 속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어요. 물을 떠나면 모두 말라죽게 되거든요. 유대인들은 이 이야기를 자기 자녀들에게 자주 들려주면서 그렇다 유대인은 유대인으로 살아야 한다. 어떤 유혹이 있고 핍박이 있어도 유대인은 유대인이란 생각에서 떠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이처럼 성도가 예수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제자들도 성령님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 시간에 같이 생각하고자 하는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적어도 11번 이상 각각 다른 장소에서 각각 다른 사람에게 각각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셨고 또 승천하시기 직전에는 11사도를 모아 두시고 전도의 지상 명령을 내리신 내용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1장 4절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본래 예루살렘은 멜기세덱이 통치했던 도성으로 평화(샬롬)의 성이었습니다(창 14:18). 예루살렘은 여호와이레(창 22:14)와 샬롬의 도성이었습니다. 또 이 도성은 수천년 동안 지상에서 종교화된 종교적 이상입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세계적으로 순례자들의 행렬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금요일부터 상가는 철시하고 사원들은 성시가 됩니다. 금요일은 회교의 성일(聖日)이요, 토요일은 유대교의 성일이며, 일요일은 기독교의 성일이 됩니다. 이 곳에 3대 종교가 모여 제각기 이곳 예루살렘을 자기들의 성지라고 주장하고 세계가 시끌시끌하도록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도성은 수천년 동안 많은 선지자들을 돌로 쳐죽이고 자기에게 파손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율법의 도시요, 살인의 도시요, 정죄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이 도시를 보시고 우셨으며, 제자들도 이 도시를 깊이 했습니다(눅 13:34). 베드로가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이곳에 세워 하나는 주님을 하나는 모세를 하나는 엘리야를 있게 하고 저 예루살렘에는 다시 가지 말자고 했습니다(마 17:4).
2. 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1) 사도들의 강력한 단결력과 구심력 형성을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구심력 형성과 제자들의 단결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버리면 기독교는 구심점을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던 예수의 제자들은 주님이 로마 병정들에게 잡히자 마자 모두 구심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씩 빠져 도망치고 마지막에는 수제자 베드로마저도 예수를 모른다고 같은 자리에서 세번씩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어떤 제자들은 자기들의 본래의 생업을 위해 자기의 고향 갈릴리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강력한 단결력과 구심력 형성을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교회가 구심력을 상실하면 원심 작용이 일어나 교인들은 뿔뿔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 십자가의 구속의 꿈을 이 곳에서부터 실천하자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옛날부터 예루살렘은 많은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종들을 돌로 쳐죽이고 마지막에는 자기들에게 파송된 하나님의 독생성자까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도시였습니다. 이 율법의 도시, 정죄의 도시, 저주와 살인의 도시를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속하자는 복음의 강력한 의지가 들어있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의 도시를 복음의 도시로 살인의 도시를 생명의 도시로 정죄의 도시를 용서의 도시로 저주의 도시를 기필코 축복의 도시로 만들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라도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서는 안되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3)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장차 세계 복음화의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도 이곳을 떠나지 말고 이 곳에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님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세 가지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두뇌의 힘, 수고하는 노동의 힘, 그리고 사람의 심성과 사람의 의지를 움직이는 성령님의 힘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성령님의 힘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님은 성경의 여러 곳에 많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특히 욘 2:28-32의 예언이 행2:16-21절에 응답되었습니다. 욘 2:28-32절에는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하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내가 기적을 하늘과 땅에서 베풀리는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을 복음화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려면 성령님을 받아야 하고 유대를 복음화 하려면 성령님을 받아야 합니다. 사마리아를 복음화하려면 능력의 성령님을 받아야 하고 로마를 복음화 하고 세계를 복음화 하려면 성령님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가정, 내 이웃, 내 남편, 내 아내, 내 사랑하는 자녀. 내 사랑하는 부모를 예수 믿게 하려면 무엇보다 성령님을 받아야 하며 성령님을 받으려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립시다. 어느 여 집사의 남편은 예수를 믿기 전에 그토록 악독하고난폭하고 포악했으나 어느 날 예수를 믿고 갑자기 아내를 천사처럼 대했다 합니다. 아침마다 모닝 커피를 타다주는 남편의 모습에 그 여집사는 감동이 되어 아!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내가 지금 눈을 뜨고 꿈을 꾸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답니다. 정치를 잘하려면 하나님의 의지하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님을 받아야 합니다. 요즈음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의 관운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두분 다 모두 명색의 기독교인이지만 기도하는 교인이 아니고 아침마다 기도는 하지 않고 체력만 있으면 된 줄 알고 츄리닝을 입고 운동을 합니다. 그러니 공중에서 지상에서 해상에서 땅속에서 여러가지 대형 사고가 일어납니다. 체력도 중요하고 지력도 중요하고 재력도 중요하고 국력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기도하고 성령님 받아야 국태민안 정치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성령님의 능력, 죄인을 회개시켜 성자가 되게 하는 성령님의 역사, 탕자가 변화여 효자가 되게 하는 성령님의 권능을 체험하려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아버지의 성령님을 받는 일 뿐입니다. 이 약속과 명령을 지켰던 사도들은 주님이 승천하신 지 불과 70년 정도의 기간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로마 전역을 복음으로 가득 채웠던 것입니다.
3.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던 성도들에게 어떤 은혜가 임했습니까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10일 동안 전혀 기도에 힘쓰고 마침내 약속의 성령님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 때 주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120명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120이란 숫자는 12사도의 10배에 해당하는 숫자요, 또한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 예수의 승천을 목격했던 500명(고전15:6)의 1/4에 해당되는 숫자입니다. 물론 120이란 숫자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본문에 기록된 120명의 사람은 다수 가운데서 선택된 사람들이며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한 심지가 곧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엡6:24).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고 소경이 눈을 뜨게 하시고 벙어리가 말을 하게 하시고 귀머거리로 하여금 듣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또 그분은 앉은뱅이로 걷게 하시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5병 2어로 5000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종려 주일에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앞서고 뒤서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며 환호했던 많은 유대 군중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자 철새처럼 다 떠나고 불과 몇 사람만이 예수의 최후를 슬퍼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감람산에서 그의 승천을 지켜보았던 500여 관중도 다 흩어지고 그 중 1/4만이 주님의 명령을 지켰습니다. 이 사람들은 바로 모두 믿음의 심지가 곧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 성령님을 충만히 받을 수 있으며 누가 은혜를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까 더 말할 필요없이 심지가 곧고 변함이 없이 주님을 사랑한 사람일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요(마 7:21). 영국의 존 뉴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죽어서 천당에 가면 세번 놀랄 것이다. 천당에 갔을 것이다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천당에 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될 때 한 번 놀랄 것이며 죄인이 회개하고 천당에 있는 것을 볼 때 두 번 놀랄 것이며 내가 구원받은 것을 알게 될 때 세 번 놀랄 것이다. 누가 성령님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까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한 자, 그리고 심지가 곧아 백절불굴의 의지를 주님을 따른 자 입니다.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합시다! 백절불굴의 의지로 주님을 따릅시다!
4. 약속의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은 어떤 일을 했습니까 그들은 먼저 성령님 받은 그 장소부터 복음화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43-47절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으며 믿음의 천국이 되었습니까 이 율법의 도시를 복음의 도시로 만들었고 이 지옥과 같은 삼엄한 살인의 도시를 천당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도가 한 자리에서 사랑의 떡을 떼고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눠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칭송을 받으며 날마다 믿는 자가 더하고 교회가 날로 부흥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지상천국이었습니다. 사람은 지상에서 삼중천국을 체험해야 합니다. 마음의 천국, 가정의 천국, 교회의 천국을 체험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만일 예수님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고 베드로는 갈릴리로 가고 나사로는 베다니로 가고 글로바는 엠마오로 가고 삭개오는 여리고로 가고 마태는 세관으로 가고 다 흩어졌다면 오늘의 기독교가 과연 존재하겠습니까 우리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맙시다. 우리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고 찬미하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게 되면 아버지의 약속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를 변화시키는 파죽지세의 막을 수 없는 능력을 받게 되고 땅 끝까지 주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권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느 수도사가 매일처럼 지나다니는 길목에 교회가 있었는데 성전 지붕에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서 어떤 때는 너울 너울 춤을 추고 어떤 때는 맥이 없고 기가 죽어 의기 소침하게 앉아 있곤 했답니다. 교인이 아무렇게나 살면 마귀가 좋아서 너울 너울 춤을 추고 반대로 교인이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 공부하면 마귀도 의기 소침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사탄이 춤을 추지 못하게 하고 울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단결하여 기다리며 기도하다가 약속하신 아버지의 성령님을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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