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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령 운 동 (행1:4-8)

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예수운동 재현을 위한 필수적인 한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바로 성령님운동입니다. 성령님 운동은 새로운 형태로 역사상에 나타난 예수 운동입니다. 그것은 예수 자신의 예언이요, 약속이었습니다. 성령님이 무엇인가 성령님은 하나님 자신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라고 하였습니다(요15:26). 아버지께로 나오는 보혜사라고 하였습니다(요15:26). 또한 성령님은 예수로부터 보냄을 받은 보혜사라고 하였습니다(요16:7). 예수님은 그가 세상에서 속죄 사역을 성취하고 떠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육체로 세상에 계시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신 후, 대신으로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하였습니다.그는 승천하시기 직전 성령님 세례를 약속한바 있습니다(행1:5). 바로 그 성령님께서 예수 세계화 운동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예수 세계화 운동은 성령님이 주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사도행전은 성령님께서 친히 주도하시는 예수 세계화 운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I. 예루살렘의 성령님운동 본문 1장 8절에 예루살렘과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성령님운동은 오순절의 성령님 강림과 함께 나타났습니다(행2:1-3).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10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50일째 되던 날입니다. 오순절 성령님 강림의 역사적 현장은 실로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는 장(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교회 탄생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님운동은 어떠하였습니까
1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고 있던 무리들에게 임했습니다(행2:1).
2 홀연히 하늘로부터 임했습니다(행2:2). 전혀 객관적인 역사였습니다.
3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바람으로 임했습니다(행2:2). 그것은 마치 욕조에 물이 가득찬 것처럼 느끼도록 기도하고 있던 다락방의 사람들을 주장하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소리’는 파도가 우는 소리와 같이 난폭하고 거친 바람을 뜻함인데 세차게 지나가면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말합니다.
4 눈으로 볼 수 있게 불로도 임하였습니다(행2:3). 그것은 마치 한 덩어리 큰 불덩이가 고기를 조각 내듯이 불의 혀로 나타났습니다. 5 각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행2:3). 개인 개인을 상대하고 인격적으로 임하였습니다. 6 충만하게 임하였습니다(행2:4). 저희가 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홀연히 귀로 들을 수 있게 바람으로, 눈으로 볼 수 있게 불로, 각 사람에게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사람의 눈이, 귀가, 입이, 마음이, 인격 전체가 아예 성령님 충만으로 포로가 되어버리게 임하였습니다. 바람같이 세차게, 불 같이 뜨겁게 임하였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신 목적은 너무 분명합니다. 사도행전 2장 11절에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큰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두말할 여지없이 대속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입니다. 성령님은 이것을 말하고, 전하고, 믿게 하고, 구원얻게 하기 위해서 임했습니다. 이 때 성령님은 ‘방언’이라고 하는 수단을 동원하였습니다. 본문 2장 4절에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모인 모든 자들은 사도들의 전도(선교)가 자국의 방언(다른 방언)으로 들려졌습니다(행2:6, 8, 11) 그것은
1 언어의 이적이고
2 청취의 이적이고
3 신령한 방언의 이적입니다. 중대한 것은 방언이 성령님을 주장한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방언을 주장했다는 사실입니다. 또 중대한 것은 그 방언의 목적은 하나님의 큰 일(행2:11)을 증거함에 있었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의 성령님 설교는 마침내 예루살렘의 교회를 탄생시키고 새로운 예수 운동이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세계 선교의 본부가 되고, 명실공히 복음의 성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마침내 예루살렘 교회는 거룩한 순교의 피로 교회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행7:54-60).
Ⅱ. 유다와 사마리아 성령님 운동 우리 본문 1장 8절은 유다와 사마리아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만날 때 성령님께서 신자들을 유다와 사마리아로 흩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님은 ‘빌립’으로 하여금 사마리아 선교를 점화시켰습니다(행8:4-8). 여기에 예루살렘에 있던 베드로와 요한이 합세하였습니다. 마침내 사마리아에 성령님의 바람이 일어났습니다(행8:15, 17). 성령님은 빌립더러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의 사람 ‘내시’에게 복음 선교를 명하였습니다(행8:29). 성령님은 빌립더러 그에게 달려가게 하였습니다(행8:30).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접근하게 하고(행8:29), 성경 말씀으로 접하게 하였습니다(행8:30). 그리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게 하였습니다(행8:31-35). 그 결과 마침내 세례를 받게 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버렸습니다(행8:38). 그리고 성령님은 다시 빌립을 다른 곳으로 인도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성령님은 아프리카를 복음으로 점화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님은 기독교 박해자 사울을 충만케 하였습니다(행9:15).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예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할 준비를 시켰습니다(행9:15). 이렇게 성령님은 세계 선교를 위하여 바울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유대인이요, 예루살렘의 사도였던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 선교의 문을 열도록 역사하였습니다. 저 지중해 바다 해변가에 자리잡은 욥바의 피장 시몬의 집에 머물러 있던 베드로에게 네 보자기 환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환상을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반복시켜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이 환상 때문에 고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침내 가이사랴에서 이방 로마 장교 고넬료가 또 환상을 보고 베드로를 청하러 보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 때 성령님께서 베드로에게 그 사람을 따라 의심치 말고 가라고 하였습니다(행10:10). 그 결과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 가게 되고 거기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설교를 듣던 중 성령님이 임하여 모두가 그리스도인이 되어버렸습니다(행10:44-48). 성령님은 이렇게 세계 선교를 예수 이름으로 주도하였습니다. 이런 경우 성령님은 국경을, 민족을, 사상을, 언어를, 주의(主義)를 초월하였습니다. 고넬료 장교는 로마인이었습니다.
Ⅲ. 땅 끝까지 이르는 성령님 운동 우리 본문 1장 8절은 땅 끝까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운동은 마침내 당시 국제 도시었던 안디옥에 복음선교의 기지를 잡게 되었습니다. 당시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의 환난 때문에 피난온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행11:19-21).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여기에 파송하였고, 다시 바나바는 바울을 초청하여 함께 사역하므로 교회가 왕성하고 있었습니다(행11:22-29). 성령님은 안디옥 교회를 향하여 세계 선교를 명하였습니다. 선교사까지 지명하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지목까지 하였습니다(행13:2). 교회는 지체없이 순종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성령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계 선교의 장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불가분 안디옥 교회는 세계주의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성령님은 아시아 선교지에서 구라파로 향하는 선교의 코스를 조정하였습니다(행16:6-10). 그래서 선교사 바울 일행은 드로아 항구에서 떠나 에게해 바다의 물결을 가르면서 저 구라파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것이 구라파 선교의 처음 코스였습니다. 역사가 토인비 교수는 ‘바울을 싣고 가던 배는 구라파를 싣고 가던 배라고 하므로 예수 복음이 인류의 문명을 선진(先進)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을 거쳐 구라파에 도착한 예수 운동은 마침내 로마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처럼 300년 세월 동안 예수의 대적이었던 로마는 마침내 복음으로 무너져 버리고 세계 선교의 기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인류 문명의 선진을 창도하였습니다. 다시 그 복음은 중세기에 독일에서 폭발이 되고, 그 후에 영국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마침내 그 복음이 역사상의 대영제국을 창조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다시 복음은 대서양을 건너가 아메리카 합중국을 해산하고, 오늘 20세기 요셉의 창고를 이룩하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한국으로 건너와서 세계 선교의 종주국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마지막 코스의 세계 선교 주자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무대입니다. 이 세계 역사는 위대하신 예수 운동이 전개되는 선교의 현장이라는 사실에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세계는 우리 선교의 교구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와 세계 선교 운동을 수행하시는 중재자요, 동력이십니다. 예수 운동은 바로 성령님운동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요3:5).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죄를 자백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을 주(主)라고 시인하게 하고 고백하게 합니다.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가 없습니다(고전12:3). 성령님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게 하고(롬8:16), 하나님 앞으로 인도를 받게하고(롬8:14),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합니다(롬8:15). 성령님이 우리에게 천국 실존의 보증이 됩니다(고후5:5). 성령님은 우리에게 ‘권능’을 주는 세력입니다(행1:8). 성령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의 보장입니다(마28:20). 성령님 받은 사람만이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땅 끝까지 가게 됩니다. 마음이 가고, 기도가 가고, 물질이 가고, 심지어는 눈물과 땀과 피가 갑니다. 육탄으로 선교사가 되어 좇아갑니다. 성령님은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 받은 사람은 한 교회요, 한 가족이요, 한 울타리입니다. 한 주님이요, 한 믿음이요, 한 세례입니다. 한 목적이요, 한 방향이요, 한 즐거움입니다(엡4:3-6). 성령님은 모든 시대,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족속, 모든 방언들이 사용하는 공통적인 언어입니다. 공통적인 호흡입니다. 공통적인 소망입니다. 모든 시대, 모든 장소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성령님 안에서 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고, 한 아버지를 섬기게 합니다(엡2:17). 그래서 성령님은 진정 한 의미의 상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세계화 운동은 정치적인 조직이나 연맹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님입니다. 예수 세계화 운동은 이데올로기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님입니다. 예수 세계화 운동은 어떤 문화적 예술적 언어적인 통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님이십니다. 예수 세계화 운동은 혈통이 아니고, 피부 색깔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이십니다. 예수 세계화 운동은 역사가 아니고 전통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입니다. 결코 W.T.O 시대가 세계화 운동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잠깐동안 나타난 세계사의 흐름일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 성령님을 받은 자만이 영원히 하나입니다. 성령님을 받은 자만이 진정한 세계인이 됩니다. 영원한 세계인입니다. 이유는 성령님이 세계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령님 받은 자는 예수를 받은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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