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선택 (행16:1-5)
본문
새해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늘 새해 첫 주일 아침을 맞이하여 가장 먼저 하나님께 나와 예배 드리는 여러분들에게 좋은 출발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람이 살아 가다가 보면 여러 갈래 길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의 마디 마디가 갈래 길을 만나서 결단하고 선택하는 일의 연속입니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람을 만나고 장래를 결정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결단하고 선택하는 일입니다. 그 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행, 불행이 결정되고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금년 한 해를 살아 가다 보면 우리 앞에 분명히 이와 같은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는 여러 갈래의 길들이 여러 번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 길이냐 저 길이냐, 이것이냐 저것이냐, 이 때 우리는 어느 것을 선택하여야 하고 어느 길을 선택할 것입니까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을 보면 이 같은 경우에 아주 잘 선택하고 결단 내리고 인생 운영을 잘 해낸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신앙의 사람입니다. 디모데는 “하나님을 높이는 자.”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라는 뜻을 지닌 이름입니다. 이렇게 보면 디모데는 태어날 때부터 깊고 경건한 신앙적인 환경의 가정에서 출생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사도 바울이 가장 아끼던 제자로 활약하다가 결국 기원 90년에 순교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젊은 디모데의 고뇌스러웠던 결단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1. 디모데는 세속이냐 신앙이냐의 갈래길에서 신앙의 길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 사람입니다. 또 그의 어머니는 유대 여자입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는 헬라 사상과 유대 사상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며 자라난 젊은이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헬라의 영향을 받고 자랐습니다. 당시 헬라는 오늘의 서구 사회처럼 인간 중심 사상으로 흠뻑 젖어 있었던 사회입니다. 올림픽이 헬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문에 부흥도 헬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올릭픽과 문예 부흥은 다같이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을 선언한 운동이고, 사상입니다. 신적 권위를 무시하고 인간 만능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 문명, 세속주의, 다신교 중심, 이것이 헬라 문화의 중심입니다. 디모데는 그런 곳에서 자랐습니다. 개방 문화, 자유 문화, 물질 문화의 영향을 흠뻑 받고 자랐습니다. 이것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와 정반대로 유대 영향을 흠뻑 받은 여자입니다. 유대 문화는 하나님 중심 문화입니다. 하나님이 우선이고 절제 생활과 규범 생활과 경건 생활이 유구되는 문화입니다. 수많은 계명의 수칙을 요구하고 물질 문화와 세속주의와 자유 분발한 생활의 헬라 문화와는 정반대입니다. 아버지에게서 디모데는 물질 문명을 배웠고, 인본주의를 배웠고, 개방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서는 정반대로 정신 문화를 배웠고, 신본주의와 절제와 경건을 배웠습니다. 디모데는 이 두 영향과 사상의 중간에서 갈등했고 고민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문명을 따르자면 자유스럽고, 살아가기에 편리하고, 즐길 수 있고, 쾌락도, 낭만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문명을 따르면 절제 생활과 신앙 규범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자유가 속박되고 경건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디모데는 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야 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여야 할 것입니까 이것이 디모데의 고민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들 특히 그 중에서도 젊은이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이냐 신앙이냐, 세속이냐 하나님이냐, 자유함이냐 절제함이냐, 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까지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세속을 택하지니 신앙 생활을 못하겠고, 하나님을 택하자니 즐기지를 못하겠고, 두 가지를 다 병행하자니 이 것도 저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금년 한 해를 살아가다 보면 이와 같은 결단을 요구하는 경우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 일을 하게 되면 돈은 벌겠는데 신앙 생활을 못하겠고, 저 일을 하면 신앙 생활은 하겠는데 돈은 못 벌겠고, 이 같은 경우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렇다면 이 둘을 모두 만족스럽게 해 줄 방법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세상에서 만족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멀리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려면 세상에서의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양다리를 걸쳐 놓고 둘 다 만족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젊은이들이 그래도 신앙 안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기도 생활을 하려고 힘쓰고 있는 것은 가상히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디모데의 결단을 주목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이 같은 갈등 속에서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어머니를 선택하였습니다. 즉 신앙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잠시 쾌락의 삶은 누리지 못하지만 그는 과감히 신앙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선택입니다. 디모데가 젊은 사람이었기에 그의 선택은 더욱 돋보이는 것입니다. 그의 선택은 오늘은 비록 화려한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해도 먼 훗날 그에게 무한한 빛을 안겨주는 그런 선택이었습니다. 먼 훗날 아픔을 주는 선택일수록 선택시에는 화려함과 만족을 줍니다. 그러나 먼 훗날 깊은 기쁨과 보람을 주는 일일수록 당장에는 빛이 없습니다. 영광도 없습니다. 찬송가 102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의 작사자는 밀러(Miller)라는 목사의 부인입니다. 그리고 작곡자는 쉐아(G, Shea)라는 사람입니다. 쉐아는 한 때 가수로서 명성을 날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화려한 무대 위의 생활을 동경해 왔고 또 그 같은 꿈이 이루어지져서 인기 있는 가수가 된 것입니다. 그는 그 같은 화려한 생활에 만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어머니가 늘 애송하고 있던 밀러 부인의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시를 발견하고 나서 그 곳에 곡을 붙여 부르는 순간 굉장히 뜨거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감동이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화려하고 달콤했던 인기와 노래 부르는 일을 과감히 청산하고 그때부터 주께만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찬송이 102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송입니다. 얼마나 대견한 결단입니까 그것이 젊은이이기 때문에 더욱 가상한 결단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단입니까 여기에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결단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결단은 오늘은 손해인 것 같으나 장래에는 천만금보다 더 값지고 오늘은 초라하고 실패하는 것 같으나 장래에는 무한히도 빛나는 화려함과 승리가 주이진다는 것입니다. 금년 한 해를 살아가시면서 이 같은 결단이 요구될 때마다 이 사람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 디모데는 평안이냐 희생이냐의 갈림 길에서 희생의 길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평안해지려고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내용이 거의 다 평안을 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좀더 나은 평안의 방법을 강구하느라 분주합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평안의 길을 놓아 두고 오히려 희생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귀하게 자라난 젊은이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곱게 자라난 사람입니다.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의 수완으로 부족함이 없이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자라난 그는 어느날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바울에게서 어려 가지 불가사의한 모습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바울은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로부터는 질시의 대상이었습니다. 마침내 유대인들로부터 그는 돌에 맞았습니다. 곧 실신했습니다. 죽은 줄 알고 동구 밖 돌무더기에 버려졌습니다. 그 곳이 아골 골짝입니다. 한참 후에 바울은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돌무더기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시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다른 지방으로 떠나갑니다. 이 같은 모습이 수많은 사람들의 눈으로 목격되고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사도 바울은 그야말로 불사조 같은 전도자로 알려지게 됩니다. 디모데는 이 같은 사도 바울을 눈여겨 본 것입니다. 그의 마음소에는 서서히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다는 당대의 위대한 바울은 그 해박했던 학문성 하나만 가지고서도 헬라 청년들의 정신을 휘어 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그의 깊은 헬라 철학 사상 하나만 가지고서도 헬라 대학의 강단에 서면 누구보다도 인기가 있었을텐데, 그 풍부한 재질, 역량, 인격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영광을 누리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인데도 어떻게 해서 저렇게 고난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이것이 디모데가 느낀 바울에 대한 연민입니다. 디모데는 비로소 바울의 모습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지금 얼마나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자신이 헤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는 지금 자신의 어머니가 그토록 줄기차게 오직 한 길로만 고집하며 걸어가고 있는 모습의 이유를 알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귀공자 생활을 청산하고 평안과 안락의 생활을 포기하고 바울의 뒤를 따라 그 험난한 희생의 길을 걸어가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이것이 디모데의 위대한 선택인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까 바울이나 디모데는 왜 자청해서 스스로 가시밭 길을 택한 것입니까 특히 청년, 대학생,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돈 많이 벌어서 집을 사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의 꿈입니까 대학생들의 의식 구조를 조사한 것에 의하면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장차 졸업 후 돈 벌어서 집을 사고 즐기며 살 것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한국의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오늘의 젊은이들의 꿈이라고 하면 여러분들으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금년 한 해를 살아가시다 보면 반드시 디모데가 처하였던 그 같은 결단이 요구되는 순간들을 여러 번 만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때 어느 쪽을 선택하실 것입니까 어떤 길을 걸을 것입니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러분들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오면 반드시 디모데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좀더 다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좀더 오랜 후에 얻어질 결실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단추가 잘 끼워지면 나머지 단추는 저절로 잘 끼워집니다. 첫 발이 잘 내디뎌지면 끝도 좋은 법입니다. 금년 한 해의 출발이 이렇게 좋게 시작되고 힘 있게 출발되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 금년 한 해 동안 반드시 여러분들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사도 바울이 가장 아끼던 제자로 활약하다가 결국 기원 90년에 순교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젊은 디모데의 고뇌스러웠던 결단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1. 디모데는 세속이냐 신앙이냐의 갈래길에서 신앙의 길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 사람입니다. 또 그의 어머니는 유대 여자입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는 헬라 사상과 유대 사상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며 자라난 젊은이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헬라의 영향을 받고 자랐습니다. 당시 헬라는 오늘의 서구 사회처럼 인간 중심 사상으로 흠뻑 젖어 있었던 사회입니다. 올림픽이 헬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문에 부흥도 헬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올릭픽과 문예 부흥은 다같이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을 선언한 운동이고, 사상입니다. 신적 권위를 무시하고 인간 만능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 문명, 세속주의, 다신교 중심, 이것이 헬라 문화의 중심입니다. 디모데는 그런 곳에서 자랐습니다. 개방 문화, 자유 문화, 물질 문화의 영향을 흠뻑 받고 자랐습니다. 이것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와 정반대로 유대 영향을 흠뻑 받은 여자입니다. 유대 문화는 하나님 중심 문화입니다. 하나님이 우선이고 절제 생활과 규범 생활과 경건 생활이 유구되는 문화입니다. 수많은 계명의 수칙을 요구하고 물질 문화와 세속주의와 자유 분발한 생활의 헬라 문화와는 정반대입니다. 아버지에게서 디모데는 물질 문명을 배웠고, 인본주의를 배웠고, 개방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서는 정반대로 정신 문화를 배웠고, 신본주의와 절제와 경건을 배웠습니다. 디모데는 이 두 영향과 사상의 중간에서 갈등했고 고민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문명을 따르자면 자유스럽고, 살아가기에 편리하고, 즐길 수 있고, 쾌락도, 낭만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문명을 따르면 절제 생활과 신앙 규범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자유가 속박되고 경건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디모데는 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야 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여야 할 것입니까 이것이 디모데의 고민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들 특히 그 중에서도 젊은이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이냐 신앙이냐, 세속이냐 하나님이냐, 자유함이냐 절제함이냐, 이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까지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세속을 택하지니 신앙 생활을 못하겠고, 하나님을 택하자니 즐기지를 못하겠고, 두 가지를 다 병행하자니 이 것도 저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금년 한 해를 살아가다 보면 이와 같은 결단을 요구하는 경우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 일을 하게 되면 돈은 벌겠는데 신앙 생활을 못하겠고, 저 일을 하면 신앙 생활은 하겠는데 돈은 못 벌겠고, 이 같은 경우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렇다면 이 둘을 모두 만족스럽게 해 줄 방법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세상에서 만족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멀리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려면 세상에서의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양다리를 걸쳐 놓고 둘 다 만족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젊은이들이 그래도 신앙 안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기도 생활을 하려고 힘쓰고 있는 것은 가상히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디모데의 결단을 주목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이 같은 갈등 속에서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어머니를 선택하였습니다. 즉 신앙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잠시 쾌락의 삶은 누리지 못하지만 그는 과감히 신앙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선택입니다. 디모데가 젊은 사람이었기에 그의 선택은 더욱 돋보이는 것입니다. 그의 선택은 오늘은 비록 화려한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해도 먼 훗날 그에게 무한한 빛을 안겨주는 그런 선택이었습니다. 먼 훗날 아픔을 주는 선택일수록 선택시에는 화려함과 만족을 줍니다. 그러나 먼 훗날 깊은 기쁨과 보람을 주는 일일수록 당장에는 빛이 없습니다. 영광도 없습니다. 찬송가 102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의 작사자는 밀러(Miller)라는 목사의 부인입니다. 그리고 작곡자는 쉐아(G, Shea)라는 사람입니다. 쉐아는 한 때 가수로서 명성을 날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화려한 무대 위의 생활을 동경해 왔고 또 그 같은 꿈이 이루어지져서 인기 있는 가수가 된 것입니다. 그는 그 같은 화려한 생활에 만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어머니가 늘 애송하고 있던 밀러 부인의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시를 발견하고 나서 그 곳에 곡을 붙여 부르는 순간 굉장히 뜨거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감동이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화려하고 달콤했던 인기와 노래 부르는 일을 과감히 청산하고 그때부터 주께만 헌신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찬송이 102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송입니다. 얼마나 대견한 결단입니까 그것이 젊은이이기 때문에 더욱 가상한 결단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단입니까 여기에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결단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결단은 오늘은 손해인 것 같으나 장래에는 천만금보다 더 값지고 오늘은 초라하고 실패하는 것 같으나 장래에는 무한히도 빛나는 화려함과 승리가 주이진다는 것입니다. 금년 한 해를 살아가시면서 이 같은 결단이 요구될 때마다 이 사람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 디모데는 평안이냐 희생이냐의 갈림 길에서 희생의 길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평안해지려고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내용이 거의 다 평안을 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좀더 나은 평안의 방법을 강구하느라 분주합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평안의 길을 놓아 두고 오히려 희생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귀하게 자라난 젊은이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곱게 자라난 사람입니다.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의 수완으로 부족함이 없이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자라난 그는 어느날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바울에게서 어려 가지 불가사의한 모습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바울은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로부터는 질시의 대상이었습니다. 마침내 유대인들로부터 그는 돌에 맞았습니다. 곧 실신했습니다. 죽은 줄 알고 동구 밖 돌무더기에 버려졌습니다. 그 곳이 아골 골짝입니다. 한참 후에 바울은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돌무더기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시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다른 지방으로 떠나갑니다. 이 같은 모습이 수많은 사람들의 눈으로 목격되고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사도 바울은 그야말로 불사조 같은 전도자로 알려지게 됩니다. 디모데는 이 같은 사도 바울을 눈여겨 본 것입니다. 그의 마음소에는 서서히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다는 당대의 위대한 바울은 그 해박했던 학문성 하나만 가지고서도 헬라 청년들의 정신을 휘어 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그의 깊은 헬라 철학 사상 하나만 가지고서도 헬라 대학의 강단에 서면 누구보다도 인기가 있었을텐데, 그 풍부한 재질, 역량, 인격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영광을 누리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인데도 어떻게 해서 저렇게 고난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이것이 디모데가 느낀 바울에 대한 연민입니다. 디모데는 비로소 바울의 모습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지금 얼마나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자신이 헤야 할 일과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는 지금 자신의 어머니가 그토록 줄기차게 오직 한 길로만 고집하며 걸어가고 있는 모습의 이유를 알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귀공자 생활을 청산하고 평안과 안락의 생활을 포기하고 바울의 뒤를 따라 그 험난한 희생의 길을 걸어가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이것이 디모데의 위대한 선택인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까 바울이나 디모데는 왜 자청해서 스스로 가시밭 길을 택한 것입니까 특히 청년, 대학생,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돈 많이 벌어서 집을 사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의 꿈입니까 대학생들의 의식 구조를 조사한 것에 의하면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장차 졸업 후 돈 벌어서 집을 사고 즐기며 살 것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한국의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오늘의 젊은이들의 꿈이라고 하면 여러분들으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금년 한 해를 살아가시다 보면 반드시 디모데가 처하였던 그 같은 결단이 요구되는 순간들을 여러 번 만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때 어느 쪽을 선택하실 것입니까 어떤 길을 걸을 것입니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러분들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오면 반드시 디모데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좀더 다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일시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좀더 오랜 후에 얻어질 결실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 단추가 잘 끼워지면 나머지 단추는 저절로 잘 끼워집니다. 첫 발이 잘 내디뎌지면 끝도 좋은 법입니다. 금년 한 해의 출발이 이렇게 좋게 시작되고 힘 있게 출발되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 금년 한 해 동안 반드시 여러분들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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