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들어 밭을 보라 (요4:36-42)
본문
예수께서 보신 세계의 영계는 종말의 추수기였습니다. 희어져 추수하 게 된 시기라고 하였습니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즐거워하는 수확 의 계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I. 이는 영적 추수의 비전(vision)을 제시하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4장 35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이러한 추수 비전의 환상은 사마리아에 일어나고 있던 일련의 영적 상황을 내다보고 하신 복음 운동의 환상(vision)입니다. 사마리아 땅에 무르익어가고 있는 영적 구원의 때를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사 마리아 여자의 말을 듣고(전도를 받고) 예수께로 나오는 수많은 영혼들 을 쳐다보신 예수님은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사마리아 통행의 필요를 느꼈습니다(요 4:4). 예수 당시의 팔 레스틴 땅은 남북의 길이가 120마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당시 의 팔레스틴은 세 부분으로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남쪽은 유다 지방이 고, 북쪽은 갈릴리지방, 그 가운데가 사마리아 지방이었습니다.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7백 수십 년이 지나도 록 이어져 오는 적대적 관계의 비극적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치 아니하고 적대시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북쪽 갈릴리로 가려고 하면 사흘밖에 걸리지 않는 가 까운 사마리아도를 거쳐가지 아니하고 요단강을 건너서 강 동쪽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사마리아 경내가 지나는 북쪽에서 다시 요단강을 건너서 갈릴리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이 길은 사마리아로 통행하는 여 로보다 두 배 이상이나 멀었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지리적 공간의 장벽을 뚫고 사마리아로 직행하였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은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까웠고, 또 거기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요 4:5,
6). 예수는 그 우물곁에 앉게 되었고, 거기에서 물길러 나온 한 사마리아 여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때는 우리 시간으로 정오(육시)쯤 되었습니다. 벌써 전지하신 예수는 그녀가 인생의 어떠한 불행을 씹으며 살고 있는 사람인가를 알았습니다. 주님은 먼저 그녀에게 "물 좀 달라."고 하시며 자기의 목마른 처지를 나타냄으로 그녀의 영적 목마름을 상기시키려고 하였습니다(요 4:7). 이 때 예수의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기 때문에, 한 유대 남자와 한 사마리아 여자의 단독적인 만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독설적이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 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요 4:9)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무서운 혈통의 도전(유대인, 사마리아인)과,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성(性)의 도전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는 그녀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과 '생수'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요 4:10). 그때 그녀는 그러한 생수를 인간적인 어떤 외적 수단이나 조 건으로 얻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런 생수는 불가하다고 하였습니다. 물길 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다는 것이었습니다(요 4:11). 그러면서 그 녀는 자기 조상의 우물을 자랑하면서, 당신이 감히 우리 조상인 야곱보 다 큰 사람이냐고 반문하며 도전하였습니다(요 4:12). 그때 주님은 조상의 우물은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다고 하였습니다 (요 4:13). 역사의 전통이 인생을 만족하게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 하였습니다(요 4:14). 마침내 그녀는 그 샘물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요 4:15). 그때 예수님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고 하였습니다(요 4:16). 실로 뜻 밖의 내용으로 대화는 비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연적인 목마름에서 이제 도덕적 단계로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역문은 그녀의 중심을 흔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자기에게 남편이 없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요 4:17). 예수님 은 그녀의 인생고백을 인정했습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 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라고 하였습니다(요 4:17, 18). 그녀의 가슴은 이제 종교적인 차원으로 더 올라갑니다. "주여 내가 보 니 당신은 선지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 4:19-20)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벌써 자기에게 있는 인생의 영원한 불 행의 수수께끼는 종교적인 예배 문제로만 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 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참된 예배는 사마리아의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의 성 전 같은 장소 문제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참 예배의 본질과 대상은 아 버지 하나님이고, 예배의 내용은 성령님과 말씀(진리)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고 있다고 하였습니다(요 4:21-2
4). 이때 그녀의 입에서 갑자기 '메시야'라는 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메시 야 곧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라고 메시야 소망을 피력했습니다(요 4:25). 그렇게 혈통 문제로, 남녀 차별의 성(性) 문제로, 역사와 전통의 문제 (야곱의 우물)로, 남편과 아내의 문제 그리고 예배의 정통성 문제 등으 로 온통 짓밟혀 버린 죄인일지라도, 메시야가 오시는 그날에는 모든 것 이 해결된다고 하는 메시야 신앙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실로 캄캄한 절 망의 밤중에 소망의 아침을 기다리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요 4:26)고 답 변하는 순간, 그녀의 마음 깊은 인격의 지성소에는 생수가 터지고 말았 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자기가 살던 사마리아 동네 에 들어가서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라고 소리치고 말았습니다(요 4:28-29).
그 시간 이후 사마리아에는 실로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입에서 토해져 버린 메시야 복음의 소식은 1 마침내 수다한 사 마리아인들이 예수에게 나오게 되고(요 4:30),2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게 되고(요 4:39), 3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초청하게 되고(요 4:40),4 사마리아인이 예수의 말씀(복음)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 많아 지게 되고(요 4:41) 5 마침내 사마리아인들의 신앙은 예수를 세상의 구 주로 고백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요 4:42). 실로 무서운 복음의 폭풍이 사마리아 땅에 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는 지역적, 공간적 장벽만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영적 장벽까지 무너뜨리 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복음의 사마리아, 믿음의 사마리아, 구원의 사 마리아, 찬송의 사마리아, 은혜의 사마리아 아니 예수의 사마리아가 되 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마리아의 영적 대변화의 물결을 내다보고, 바야흐 로 도래하는 세계의 영적 추수 비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예수는 역사의 종말기에 자신이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타 작마당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타작마당은 추수 마당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추수 마당은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져 버리고마는 때라고 하였습니다 (마 3:10-12). 이렇게 예수는 이 세상을 큰 농원의 추수기로 본 것입니다.
Ⅱ. 서울 을지로 환상(vision) 저는 1974년 2월 초순 어느 날, 당시 제가 머물고 있던 을지로 3가 110-1번지의 임대로 살고 있었던 집에서 예기치 못한 한 미래적 환상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일이 있은 지 24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마음과 기억 속에 사라질 줄 모르고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제가 개척 교회 25년의 걸음을 걸으면서 어떤 중대한 변화의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저는 그 을지로의 환상을 되새기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그날은 저와 제 아내가 서울 역 앞에 소재하는(동자동 35-26번지) 기독교여자절제회관을 두 번째 개척의 장소로 정하고 임대 계약을 마친 후, 너무 기쁘고 좋아서 새 예배실 준비를 위하여 열심히 청소하고 있던 날이었습니다. 밖에는 전날 너무 많이 내린 눈 때문에 아직도 길에는 녹 지 않은 흰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너무 즐거워 열심히 청소를 하다가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시장기 를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청소하던 당시 배달삼 집사에게는 점심 값을 주어 그곳에서 식사를 하게 하고, 우리 부부는 다른 청소 도구도 더 가지고 올 겸 집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밥을 데워서 김치 한 가지를 가지고도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아 내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동안 저는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그 자리 에서 몸을 벽에 기댄 채 잠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뜻밖에 세 가지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옮기고자 하는 동자동에 있는 기독교여자절제회관 건물 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예배실의 평수와 규모 그리고 거기에 수용 할 수 있는 인원 등등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오후에 다시 그곳에 가자마 자 건물 사무실로 찾아가서 그 건물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물어 보게 되 었고, 그 결과는 서류의 기록이 제가 본 환상과 꼭 같았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놀라면서 흥분하 였습니다. 또 하나의 환상은 장래의 교회 조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환상대 로 장로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의 환상은 엄청나게 큰 유리로 만든 큰 빌딩이 솟아 오른 것이 었습니다. 놀라웁게도 그 건물 안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흰옷을 입고,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 낫을 들고 가득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저들은 거기에서 저와 함께 결사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뜨 거운 예배의 모습은 실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예배실 창밖으로 전개되는 끝이 안보이게 넓고도 넓은 가을의 황금만야를 보게 된 것입니다. 누렇게 익어버린 탐스러운 곡식들이 고개를 숙인 채 우리 의 추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거기 앉은 흰옷 입은 수많은 무리들은 그 예배가 끝나는 대로 제 각기 추수 명령을 받고, 지정 받은 곳으로 떠날 무리들이었습니다. 모두 다 추수꾼으로 완전무장되어 있었습니다. 거기 예배 드리고 있는 모든 자들은 그 창밖 들판에 전개되는 모든 익은 곡식들이 우리 것이라고 하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날 식곤 중에 잠이 든 그 짧은 시간에 받은 이 세 가지 환상은, 하나님께서 개척을 시작하는 나에게 그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복음 선교의 사명을 다하라고 주신 격려와 용기의 사인(sign)이라 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에 보았던 두 가지 환상은 이미 성취가 되었 습니다. 세 번째 환상은 아직까지 미래사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고 제 마음속에 생각되고 있습니다. 저는 세 번째 환상에서 받은 그 추수꾼의 예배 무리들이 오늘 강서 시 대를 맞는 바로 여러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먼저 이 화려한 새 성전은 흰옷을 입고,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낫을 들고 예배를 드리는 큰 무리들로 가득 차고 말 것 입니다. 그 다음에 그 무리들로 말미암아 가든지 보내든지 둘 중에 하나를 명 령받은 선교 사명의 축복이 따를 것입니다. 높이 솟은 성전의 창밖에 전개된 끝없는 황금 들판은 바로 경향교회가 받은 우리 전도지역(국내)이며, 또한 세계 선교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대한 문제는 이 세상 넓은 공간에 살아가는 수많은 창생 가운데 분 명히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전도를 받아 구원받을 무리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경향이라 고 하는 영적 추수 창고 안으로 거두어 들여야 할 곡식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야흐로 우리 앞에 새로운 강서 시대의 장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열어 놓으신 하늘의 문입니다. 축복의 문입니다. 영광의 문입니다. 은총의 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추수의 비전은 오늘 세계 복음 선교를 받은 교회 운동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신 추수 영역은 큰 농원입니다. 말하자면 세계요, 세계 만 민이요, 예루살렘이요, 유대요, 사마리아요, 땅끝까지입니다. 각 나라 요, 족속이요, 백성이요, 방언이요, 이루 셀 수 없는 큰 무리입니다(행 1:8, 막 16:15, 마 24:14). 세계 인류와 역사의 존재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추수할 곡식 때문에 땅이 존재하고, 하늘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존재하고, 효과적인 추수 때문에 이 세상의 역사와 문화와 과학이 그 도 구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추수가 끝나면 곡식 없는 들판은 아무 의미 가 없지 않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선교하는 교회는 바로 역사의 알맹이 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아브라함의 자손, 곧 익은 곡식은 존재 세 계의 알맹이가 되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밭을 봅시다! 여기에 세계를 받은 경향교회의 의미가 있고, 본질이 있고, 사명이 있고, 목적이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는 여기에 경향의 축복이 있습니다. 경향의 힘이 있고, 움직임이 있고, 내일이 있고, 진보가 있고, 약속이 있고,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 큰 농원의 추수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의 강서 시대를 우리에게 허 락하셨습니다. 축복이 있으라, 경향이여! 영광이 있으라, 경향이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경향이여! 눈을 들어 밭을 보는 여기에 경향의 21세기가 있습니다.
I. 이는 영적 추수의 비전(vision)을 제시하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4장 35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이러한 추수 비전의 환상은 사마리아에 일어나고 있던 일련의 영적 상황을 내다보고 하신 복음 운동의 환상(vision)입니다. 사마리아 땅에 무르익어가고 있는 영적 구원의 때를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사 마리아 여자의 말을 듣고(전도를 받고) 예수께로 나오는 수많은 영혼들 을 쳐다보신 예수님은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사마리아 통행의 필요를 느꼈습니다(요 4:4). 예수 당시의 팔 레스틴 땅은 남북의 길이가 120마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당시 의 팔레스틴은 세 부분으로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남쪽은 유다 지방이 고, 북쪽은 갈릴리지방, 그 가운데가 사마리아 지방이었습니다.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7백 수십 년이 지나도 록 이어져 오는 적대적 관계의 비극적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치 아니하고 적대시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북쪽 갈릴리로 가려고 하면 사흘밖에 걸리지 않는 가 까운 사마리아도를 거쳐가지 아니하고 요단강을 건너서 강 동쪽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사마리아 경내가 지나는 북쪽에서 다시 요단강을 건너서 갈릴리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이 길은 사마리아로 통행하는 여 로보다 두 배 이상이나 멀었습니다. 예수는 이러한 지리적 공간의 장벽을 뚫고 사마리아로 직행하였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은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까웠고, 또 거기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요 4:5,
6). 예수는 그 우물곁에 앉게 되었고, 거기에서 물길러 나온 한 사마리아 여성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때는 우리 시간으로 정오(육시)쯤 되었습니다. 벌써 전지하신 예수는 그녀가 인생의 어떠한 불행을 씹으며 살고 있는 사람인가를 알았습니다. 주님은 먼저 그녀에게 "물 좀 달라."고 하시며 자기의 목마른 처지를 나타냄으로 그녀의 영적 목마름을 상기시키려고 하였습니다(요 4:7). 이 때 예수의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기 때문에, 한 유대 남자와 한 사마리아 여자의 단독적인 만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독설적이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 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요 4:9)라고 하였습니다. 실로 무서운 혈통의 도전(유대인, 사마리아인)과,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성(性)의 도전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는 그녀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과 '생수'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요 4:10). 그때 그녀는 그러한 생수를 인간적인 어떤 외적 수단이나 조 건으로 얻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런 생수는 불가하다고 하였습니다. 물길 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다는 것이었습니다(요 4:11). 그러면서 그 녀는 자기 조상의 우물을 자랑하면서, 당신이 감히 우리 조상인 야곱보 다 큰 사람이냐고 반문하며 도전하였습니다(요 4:12). 그때 주님은 조상의 우물은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다고 하였습니다 (요 4:13). 역사의 전통이 인생을 만족하게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 하였습니다(요 4:14). 마침내 그녀는 그 샘물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요 4:15). 그때 예수님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고 하였습니다(요 4:16). 실로 뜻 밖의 내용으로 대화는 비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연적인 목마름에서 이제 도덕적 단계로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역문은 그녀의 중심을 흔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자기에게 남편이 없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요 4:17). 예수님 은 그녀의 인생고백을 인정했습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 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라고 하였습니다(요 4:17, 18). 그녀의 가슴은 이제 종교적인 차원으로 더 올라갑니다. "주여 내가 보 니 당신은 선지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 4:19-20)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벌써 자기에게 있는 인생의 영원한 불 행의 수수께끼는 종교적인 예배 문제로만 풀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 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참된 예배는 사마리아의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의 성 전 같은 장소 문제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참 예배의 본질과 대상은 아 버지 하나님이고, 예배의 내용은 성령님과 말씀(진리)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고 있다고 하였습니다(요 4:21-2
4). 이때 그녀의 입에서 갑자기 '메시야'라는 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메시 야 곧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라고 메시야 소망을 피력했습니다(요 4:25). 그렇게 혈통 문제로, 남녀 차별의 성(性) 문제로, 역사와 전통의 문제 (야곱의 우물)로, 남편과 아내의 문제 그리고 예배의 정통성 문제 등으 로 온통 짓밟혀 버린 죄인일지라도, 메시야가 오시는 그날에는 모든 것 이 해결된다고 하는 메시야 신앙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실로 캄캄한 절 망의 밤중에 소망의 아침을 기다리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요 4:26)고 답 변하는 순간, 그녀의 마음 깊은 인격의 지성소에는 생수가 터지고 말았 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자기가 살던 사마리아 동네 에 들어가서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라고 소리치고 말았습니다(요 4:28-29).
그 시간 이후 사마리아에는 실로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입에서 토해져 버린 메시야 복음의 소식은 1 마침내 수다한 사 마리아인들이 예수에게 나오게 되고(요 4:30),2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게 되고(요 4:39), 3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초청하게 되고(요 4:40),4 사마리아인이 예수의 말씀(복음)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 많아 지게 되고(요 4:41) 5 마침내 사마리아인들의 신앙은 예수를 세상의 구 주로 고백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요 4:42). 실로 무서운 복음의 폭풍이 사마리아 땅에 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는 지역적, 공간적 장벽만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영적 장벽까지 무너뜨리 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복음의 사마리아, 믿음의 사마리아, 구원의 사 마리아, 찬송의 사마리아, 은혜의 사마리아 아니 예수의 사마리아가 되 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마리아의 영적 대변화의 물결을 내다보고, 바야흐 로 도래하는 세계의 영적 추수 비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예수는 역사의 종말기에 자신이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타 작마당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타작마당은 추수 마당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추수 마당은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져 버리고마는 때라고 하였습니다 (마 3:10-12). 이렇게 예수는 이 세상을 큰 농원의 추수기로 본 것입니다.
Ⅱ. 서울 을지로 환상(vision) 저는 1974년 2월 초순 어느 날, 당시 제가 머물고 있던 을지로 3가 110-1번지의 임대로 살고 있었던 집에서 예기치 못한 한 미래적 환상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일이 있은 지 24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마음과 기억 속에 사라질 줄 모르고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제가 개척 교회 25년의 걸음을 걸으면서 어떤 중대한 변화의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저는 그 을지로의 환상을 되새기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곤 하였습니다. 그날은 저와 제 아내가 서울 역 앞에 소재하는(동자동 35-26번지) 기독교여자절제회관을 두 번째 개척의 장소로 정하고 임대 계약을 마친 후, 너무 기쁘고 좋아서 새 예배실 준비를 위하여 열심히 청소하고 있던 날이었습니다. 밖에는 전날 너무 많이 내린 눈 때문에 아직도 길에는 녹 지 않은 흰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너무 즐거워 열심히 청소를 하다가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시장기 를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청소하던 당시 배달삼 집사에게는 점심 값을 주어 그곳에서 식사를 하게 하고, 우리 부부는 다른 청소 도구도 더 가지고 올 겸 집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밥을 데워서 김치 한 가지를 가지고도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아 내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동안 저는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그 자리 에서 몸을 벽에 기댄 채 잠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뜻밖에 세 가지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옮기고자 하는 동자동에 있는 기독교여자절제회관 건물 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예배실의 평수와 규모 그리고 거기에 수용 할 수 있는 인원 등등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오후에 다시 그곳에 가자마 자 건물 사무실로 찾아가서 그 건물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물어 보게 되 었고, 그 결과는 서류의 기록이 제가 본 환상과 꼭 같았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놀라면서 흥분하 였습니다. 또 하나의 환상은 장래의 교회 조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환상대 로 장로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의 환상은 엄청나게 큰 유리로 만든 큰 빌딩이 솟아 오른 것이 었습니다. 놀라웁게도 그 건물 안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흰옷을 입고,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 낫을 들고 가득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저들은 거기에서 저와 함께 결사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뜨 거운 예배의 모습은 실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예배실 창밖으로 전개되는 끝이 안보이게 넓고도 넓은 가을의 황금만야를 보게 된 것입니다. 누렇게 익어버린 탐스러운 곡식들이 고개를 숙인 채 우리 의 추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거기 앉은 흰옷 입은 수많은 무리들은 그 예배가 끝나는 대로 제 각기 추수 명령을 받고, 지정 받은 곳으로 떠날 무리들이었습니다. 모두 다 추수꾼으로 완전무장되어 있었습니다. 거기 예배 드리고 있는 모든 자들은 그 창밖 들판에 전개되는 모든 익은 곡식들이 우리 것이라고 하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날 식곤 중에 잠이 든 그 짧은 시간에 받은 이 세 가지 환상은, 하나님께서 개척을 시작하는 나에게 그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복음 선교의 사명을 다하라고 주신 격려와 용기의 사인(sign)이라 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에 보았던 두 가지 환상은 이미 성취가 되었 습니다. 세 번째 환상은 아직까지 미래사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고 제 마음속에 생각되고 있습니다. 저는 세 번째 환상에서 받은 그 추수꾼의 예배 무리들이 오늘 강서 시 대를 맞는 바로 여러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먼저 이 화려한 새 성전은 흰옷을 입고,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낫을 들고 예배를 드리는 큰 무리들로 가득 차고 말 것 입니다. 그 다음에 그 무리들로 말미암아 가든지 보내든지 둘 중에 하나를 명 령받은 선교 사명의 축복이 따를 것입니다. 높이 솟은 성전의 창밖에 전개된 끝없는 황금 들판은 바로 경향교회가 받은 우리 전도지역(국내)이며, 또한 세계 선교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대한 문제는 이 세상 넓은 공간에 살아가는 수많은 창생 가운데 분 명히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전도를 받아 구원받을 무리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경향이라 고 하는 영적 추수 창고 안으로 거두어 들여야 할 곡식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야흐로 우리 앞에 새로운 강서 시대의 장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열어 놓으신 하늘의 문입니다. 축복의 문입니다. 영광의 문입니다. 은총의 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추수의 비전은 오늘 세계 복음 선교를 받은 교회 운동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신 추수 영역은 큰 농원입니다. 말하자면 세계요, 세계 만 민이요, 예루살렘이요, 유대요, 사마리아요, 땅끝까지입니다. 각 나라 요, 족속이요, 백성이요, 방언이요, 이루 셀 수 없는 큰 무리입니다(행 1:8, 막 16:15, 마 24:14). 세계 인류와 역사의 존재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추수할 곡식 때문에 땅이 존재하고, 하늘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존재하고, 효과적인 추수 때문에 이 세상의 역사와 문화와 과학이 그 도 구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추수가 끝나면 곡식 없는 들판은 아무 의미 가 없지 않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선교하는 교회는 바로 역사의 알맹이 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아브라함의 자손, 곧 익은 곡식은 존재 세 계의 알맹이가 되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밭을 봅시다! 여기에 세계를 받은 경향교회의 의미가 있고, 본질이 있고, 사명이 있고, 목적이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는 여기에 경향의 축복이 있습니다. 경향의 힘이 있고, 움직임이 있고, 내일이 있고, 진보가 있고, 약속이 있고, 생명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 큰 농원의 추수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의 강서 시대를 우리에게 허 락하셨습니다. 축복이 있으라, 경향이여! 영광이 있으라, 경향이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경향이여! 눈을 들어 밭을 보는 여기에 경향의 21세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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