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행13:21-23)
본문
겔18:31에 "너희는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영과 마음이 말씀으로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가 영적으로 새롭 게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시대를 바르게 직시할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떠합니까 우리에게 제시하는 어떤 올바른 사상이나 철학이 있습니까 우리가 닮아가야 할 지도자도 없습니다. 모두가 마음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모두가 제 기분대로 입니다. 이런 상황의 결과는 경제적인 난국을 만들게 된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의인 열명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가 망하느냐 아니면 다시금 일어나느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바르게 설 때 가능 한 것이 아닙니다. 소수만 정신을 차려도 재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정결케 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수상을 지낸 비스마르크가 청년이었을 때 친구와 사냥을 갔습니다. 그들이 산을 헤치고 다니다가 그만 친구가 발을 헛디뎌 수렁에 빠졌습니다. 친 구는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이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비스마르크는 친 구를 향하여 엽총을 겨누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친구여 죽더라도 나의 우 정을 잊지말게'라는 겁니다. 이 때 절대절망의 상황에 처한 수렁에 빠진 친구는 사력을 다하여 수렁을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뭍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비스마르 크가 막대기를 친구에게 내밀면서 하는 말이 '나는 자네의 머리에 총을 겨눈 것 이 아니라 저네의 포기하려는 생각이었네'라고 하였답니다. 새롭게 된 마음이 이 엄청난 재난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일군은 아무쪼록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군은 사람의 표준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말씀의 빛에 비추어 그 빛 안에서 부끄러움이 없다면 참된 일 군으로 쓰여지는 겁니다. 세상의 높은 지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지는 조건 이 아닙니다. 물질과 명예를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출세하여 혹은 돈벌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합하여 질 때 우리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예전에 가졌던 어리석은 생각에서 속히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서 멀어졌기에 사울은 왕의 자리에서 폐하여졌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다 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졌기에 왕으로 세움을 입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을 보세요.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올바른 것을 구하였기에 그가 구하지 않는 것 까지도 주신다고 했습니다. 과연 솔로몬은 그가 구하지 않은 부 귀영화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복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보다 우선될 것은 없어야 하며 귀한 것도 없습니다. 진실로 우리는 바른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하며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겠습니까 윤리와 기준이 없는 시대입니다. 참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시대입니다. 올바른 사상도 철학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순간마다 달라집니다. 단지 내게 유익한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즉 유익이 있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고 의미가 있고 그리고 친구가 됩니다. 그 장소 에 무슨 유익이 있느냐에 따라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를 판단합니다. 결국 삶 의 의미도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떤 삶이 가치있습니까 참된 가치가 힘에 있지 않습니다. 힘없는 사람이라 고 별 볼일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돈의 힘, 권력의 힘, 권세의 힘, 숫자의 힘, 학 력의 힘 그래서 그 힘들이 가치있고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까지도 그 힘을 좇아 살아가시렵니까 무엇이 나의 삶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할 수 있습니 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세요. 그 삶이 후회되지 않는 비결임을 곧 아 시게 됩니다. 그 삶이 가치있는 삶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는가 22절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폐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왜 사울을 폐하셨습니 까 그것은 그의 범죄함 때문입니다. 삼상13장에 보게되면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믹마스에 진을 쳤는데 병거가 삼만이었 고 마병이 육천이었고 일반 군사들은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이런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사무엘은 정한 날이 되어도 길갈로 오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 백성들은 사울에게서 하나 둘 떠나갑니다. 상황이 위급하다 보니 사울이 명령하 기를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하여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사무엘이 도착하여 힐난하는 말이 삼상13:13-14에 나타나는데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멸하신 멸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 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멸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울 왕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위기의 때에 흔들리고 말 았습니다. 사울 왕의 두 번째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거역은 삼상 15장에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멸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반역했던 일을 기억하셨 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이 사무엘을 통하여 주어졌습니다. 삼 상 15:3에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그 멸령에 준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 치없는 것은 진멸하니라"고 했습니다(9절). 이 일에 대하여 사무엘의 책망이 15:19에 나타납니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 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고 했습니다. 그 리고 계속하여 22절에서 말하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 름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3절에서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 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 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사울 왕은 자신에게 주어진 승리의 기회에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는 마땅한 일 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가문에 준 왕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다윗을 가리켜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은 죄의 문제인가 무엇때문에 한 사람은 폐하 여지고 한 사람은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는가 다윗이 범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는가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다윗도 별 수 없는 인간이었음을 압니다. 그는 백성들은 전쟁터에 나아가서 암몬 족속들과 싸 우는데 낮잠을 즐기다가 일어나 목욕하는 이웃집의 여인을 향하여 음욕을 품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여인을 범한 후에 임신하게 되자 이 일을 합법화 하기 위 하여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집으로 불러 들입니다. 그러나 그 장수는 지금 군 사들은 전투 중인데 자신만 집에서 쉴 수없다는 생각으로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윗의 계책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국가에 충성하고 하나님 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신실된 장수 우리야를 전쟁터에 내어 보내 죽게 하는 밀 서를 우리야의 손에 쥐어보냅니다. 결국 다윗의 명령대로 군대장관 요압은 격렬 한 전쟁 중에 우리야만 남겨놓고 퇴각하므로 그를 죽게만듭니다. 아무도 모르는 완벽한 살인을 행했습니다. 다윗은 살인 교사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우리야 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는 파렴치한 죄인이었습니다(삼하 11장). 그 뿐이 아닙니다. 나라가 태평할 때에 그의 생각에는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강성했는가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불일 듯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쟁에 나갈만 한 장정들을 헤아리게 하였습니다. 이런 악한 일에 대하여 군대장관 요압은 극 구 말렸습니다. 요압은 "백성은 얼만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 게 하사" 왕의 눈에 보게 할 수 있다고 하며 간청하는 것도 뿌리치고 백성계수 를 명령합니다. 다윗은 범죄하였습니다. 창6장에 보면 온 인류가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졌습니다. 그 결국은 하나님 께서 물로써 인류를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 심판의 때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창6:9에 기록하기를 "노아는 의인 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창6:9의 말씀처럼 노아가 의인이었습니까 완전하였습니까 노아는 의인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노아도 포도주를 마시고 부끄러운 수치를 들어내어 놓고 잠자는 사람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노아의 그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세요. 자식을 저주하지 못하니까 손자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가나안이 저주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물에서 건 짐받은 한 때의 위대한 승리자가 이런 모습입니다. 아브라함도 의인입니까 아브라함이 완벽합니까 그도 아니었습니다. 모세도 의인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가 의인이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복 주셨습니다. 이들을 승리의 위대한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쓰임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허물과 죄가 있음에도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는가
(1) 다윗은 회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니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야와 밧세바의 사건을 가지고 나단선지자가 다윗 왕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책망합니다. 그 때 다윗 왕은 아니라고 부인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하나님 앞에 사죄의 기도를 드립니다. 백성을 계수한 잘못을 저지른 다음에도 다윗은 즉시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 드려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삼하 24:10에 기록하기를 "다윗이 인구 수를 조 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 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 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함한 자 라는 아름다운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회개 하기를 잘 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일서 1:9에 "우리가 죄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자랑할 육체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 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날마다 순간마다 죄인 임을 자백하십시다. 회개하여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그의 보배로운 피로 씻음받기를 바랍니다. 그 위에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송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시대는 어른과 아이가 구별이 없습니다. 선생과 제자가 구별이 없는 시대입니다. 힘이 있으면 어른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꿇어 앉히고 머리를 깍는 시대가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런 시대가 어떻게 희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제대로 굴러 갈 수 있겠습니까 교만한 자를 하나님은 물리칩니다. 겸손 한 자를 사용하시고 복 주십니다. 겸손은 신자의 기본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22:4에도 "겸손과 여호와 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행하여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도무지 따를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기뻐시 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역자임을 통회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겸손이며 참된 신앙의 표징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자세로 만물을 대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 다고 하셨는데(마5:3-4) 이 말씀은 겸손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계속하 여 주님께서 어린아이를 칭찬하셨고 그리고 어린아이같아져야 천국에 들어간다 고 했는데 이도 겸손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주님 자신도 스스로 제자들 의 발을 씻기시는 겸손의 행위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요13:4이하). 바울도 빌2:3에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3)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함한 자가 될 수 있덨던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잔생애는 기도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잘못을 저질렀 을 때도 기도합니다. 사울 왕 때문에 많은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그 숱한 어려 움이 다가 올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위기의 때에도 기도했습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에도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4)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함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찬송하는 사람이었 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악신에 사로잡혀 고통당할 때 다윗이 수금을 타면 더러운 악신 이 떠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찬송의 사람이라는 것은 시편을 펼쳐보 면 쉽게 알게 됩니다. 무수한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의 돌렸습니다. 찬송은 흉악한 결박을 푸는 능력이며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또는 우리의 신앙 삶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 립보 옥에 갇혔을 때 밤 중 쯤 되어 찬송할 때에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행16장).
(5)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사랑했습니다. 친구 요나단을 사랑했습니다. 요나단이 죽은 후에도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서 나타났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왕자의 하나같이 동일하게 대우했습니다. 옛 아내 미갈을 동일하게 사랑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책망받은 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6) 다윗이 하나님이 마음에 함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뻐시게 못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비결입니다. 다윗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잔장터에 갔습니다.
그런데 적장 골리앗이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전쟁의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군인도 앞으로 나서지 않는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 하는 장수 골리앗이지만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다윗 의 고백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는 큰 승리 즉 골 리앗을 쓰려뜨렸습니다. 그러나 그이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믿음으 로 승리한 것이었습니다(삼상17장). 우리의 찬송 중에 343장에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 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라고 함 같이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7)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함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되기를 힘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죽일려는 사울과 끝까지 화해를 시도하는 것을 볼 때 하나되기를 힘쓴 사람임을 볼 수 있습니다.
3. 역사의 주인공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행하여 가십니다. 21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하는 일은 잘못이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신정정치에 배치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불신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주셨습니다. 그런 중에도 폐할 자는 폐하시고 세울 자는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창49:10의 말씀 처럼 평화의 왕(실로)이 오시기 까지 이루어져 갑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들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루십니다. 피카소의 조각 중에 '황 소머리'가 있습니다. 이 직품은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피카소의 예술성과 작품성이 갖아 잘 드러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재료는 쓰레기 장에서 주워 온 낡은 자전거였습니다. 하잖은 쓰 레기가 누구의 손과 두뇌가 닿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집니다. 버려진 자전거가 피카소의 손에 의하여 엄청난 가치의 작품으로 변하여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같이 쓸모없고 가치없는 존재이 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잡힐 때 능력있는 일군으로 쓰여지는 줄 믿습니다. 마귀 에게 붙잡힌 일회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권세있게 사용될 하나님이 백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의 상황은 경제위기. 뭐다 하면서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장 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은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주식회사 쥬 뱅크라는 보석을 가공하는 작은 공장이 있습니다. 이 회사에는 전직원의 60%가 넘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어려움이 닥친 것은 80% 이상의 내수시장이 막히면서였습니다. 동종의 업체들이 문을 닫는 상 황에서 이 회사가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육신의 장애를 가진 이들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더 많은 고난들을 당했기 때문에 이겨 낼 수 있었던 것 입니다. 월급을 받지 못해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고통을 당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종업원들의 후원에 힘을 입은 사장은 중동의 바이어들을 만나 제품은 퍼펙트 하다는 평가를 받고 매달 20-30억원어 치를 수출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면 못할 일이 없음을 믿 으세요.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일을 결단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루지 못할 일 이 없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다윗을 세우 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혈통에서 과연 구세주가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통 하여 하나님의 뜻은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후손이 어떠 했는가를 아는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벗어남으로 포로로 잡혀가야 했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로에서 돌이 키시고 무너진데서 다시 수축하여 다윗의 혈통에서 예수님 메시야가 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여 줍니까 우리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죄악 중에 먹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를 선택하신 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 고 긍휼을 베푸사 이 놀라운 은총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결심과 각오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아가도록 결단 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힘으로는 안되기에 그의 은혜를 구하면서 그리고 그의 피로 씻음 받으면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하니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을 다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을 전하기를 다 짐하는 겁니다.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네게서 다 이루겠다는 구원의 은총 이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땅 위 에서 나타낼 여러 일도 이루어져 큰 상급을 천대까지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출세하여 혹은 돈벌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합하여 질 때 우리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예전에 가졌던 어리석은 생각에서 속히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서 멀어졌기에 사울은 왕의 자리에서 폐하여졌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다 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졌기에 왕으로 세움을 입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을 보세요.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올바른 것을 구하였기에 그가 구하지 않는 것 까지도 주신다고 했습니다. 과연 솔로몬은 그가 구하지 않은 부 귀영화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복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보다 우선될 것은 없어야 하며 귀한 것도 없습니다. 진실로 우리는 바른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하며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겠습니까 윤리와 기준이 없는 시대입니다. 참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시대입니다. 올바른 사상도 철학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순간마다 달라집니다. 단지 내게 유익한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즉 유익이 있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고 의미가 있고 그리고 친구가 됩니다. 그 장소 에 무슨 유익이 있느냐에 따라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를 판단합니다. 결국 삶 의 의미도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떤 삶이 가치있습니까 참된 가치가 힘에 있지 않습니다. 힘없는 사람이라 고 별 볼일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돈의 힘, 권력의 힘, 권세의 힘, 숫자의 힘, 학 력의 힘 그래서 그 힘들이 가치있고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까지도 그 힘을 좇아 살아가시렵니까 무엇이 나의 삶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할 수 있습니 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세요. 그 삶이 후회되지 않는 비결임을 곧 아 시게 됩니다. 그 삶이 가치있는 삶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는가 22절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폐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왜 사울을 폐하셨습니 까 그것은 그의 범죄함 때문입니다. 삼상13장에 보게되면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믹마스에 진을 쳤는데 병거가 삼만이었 고 마병이 육천이었고 일반 군사들은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이런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사무엘은 정한 날이 되어도 길갈로 오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 백성들은 사울에게서 하나 둘 떠나갑니다. 상황이 위급하다 보니 사울이 명령하 기를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하여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사무엘이 도착하여 힐난하는 말이 삼상13:13-14에 나타나는데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멸하신 멸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 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멸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울 왕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위기의 때에 흔들리고 말 았습니다. 사울 왕의 두 번째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거역은 삼상 15장에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멸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반역했던 일을 기억하셨 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이 사무엘을 통하여 주어졌습니다. 삼 상 15:3에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그 멸령에 준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 치없는 것은 진멸하니라"고 했습니다(9절). 이 일에 대하여 사무엘의 책망이 15:19에 나타납니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 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고 했습니다. 그 리고 계속하여 22절에서 말하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 름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3절에서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 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 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사울 왕은 자신에게 주어진 승리의 기회에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는 마땅한 일 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가문에 준 왕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다윗을 가리켜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은 죄의 문제인가 무엇때문에 한 사람은 폐하 여지고 한 사람은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는가 다윗이 범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는가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다윗도 별 수 없는 인간이었음을 압니다. 그는 백성들은 전쟁터에 나아가서 암몬 족속들과 싸 우는데 낮잠을 즐기다가 일어나 목욕하는 이웃집의 여인을 향하여 음욕을 품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여인을 범한 후에 임신하게 되자 이 일을 합법화 하기 위 하여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집으로 불러 들입니다. 그러나 그 장수는 지금 군 사들은 전투 중인데 자신만 집에서 쉴 수없다는 생각으로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윗의 계책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국가에 충성하고 하나님 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신실된 장수 우리야를 전쟁터에 내어 보내 죽게 하는 밀 서를 우리야의 손에 쥐어보냅니다. 결국 다윗의 명령대로 군대장관 요압은 격렬 한 전쟁 중에 우리야만 남겨놓고 퇴각하므로 그를 죽게만듭니다. 아무도 모르는 완벽한 살인을 행했습니다. 다윗은 살인 교사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우리야 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는 파렴치한 죄인이었습니다(삼하 11장). 그 뿐이 아닙니다. 나라가 태평할 때에 그의 생각에는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강성했는가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불일 듯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쟁에 나갈만 한 장정들을 헤아리게 하였습니다. 이런 악한 일에 대하여 군대장관 요압은 극 구 말렸습니다. 요압은 "백성은 얼만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 게 하사" 왕의 눈에 보게 할 수 있다고 하며 간청하는 것도 뿌리치고 백성계수 를 명령합니다. 다윗은 범죄하였습니다. 창6장에 보면 온 인류가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졌습니다. 그 결국은 하나님 께서 물로써 인류를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 심판의 때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창6:9에 기록하기를 "노아는 의인 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창6:9의 말씀처럼 노아가 의인이었습니까 완전하였습니까 노아는 의인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노아도 포도주를 마시고 부끄러운 수치를 들어내어 놓고 잠자는 사람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노아의 그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세요. 자식을 저주하지 못하니까 손자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가나안이 저주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물에서 건 짐받은 한 때의 위대한 승리자가 이런 모습입니다. 아브라함도 의인입니까 아브라함이 완벽합니까 그도 아니었습니다. 모세도 의인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가 의인이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복 주셨습니다. 이들을 승리의 위대한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쓰임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허물과 죄가 있음에도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는가
(1) 다윗은 회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니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야와 밧세바의 사건을 가지고 나단선지자가 다윗 왕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책망합니다. 그 때 다윗 왕은 아니라고 부인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하나님 앞에 사죄의 기도를 드립니다. 백성을 계수한 잘못을 저지른 다음에도 다윗은 즉시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 드려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삼하 24:10에 기록하기를 "다윗이 인구 수를 조 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 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 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함한 자 라는 아름다운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회개 하기를 잘 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일서 1:9에 "우리가 죄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자랑할 육체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 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날마다 순간마다 죄인 임을 자백하십시다. 회개하여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그의 보배로운 피로 씻음받기를 바랍니다. 그 위에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송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시대는 어른과 아이가 구별이 없습니다. 선생과 제자가 구별이 없는 시대입니다. 힘이 있으면 어른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꿇어 앉히고 머리를 깍는 시대가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런 시대가 어떻게 희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제대로 굴러 갈 수 있겠습니까 교만한 자를 하나님은 물리칩니다. 겸손 한 자를 사용하시고 복 주십니다. 겸손은 신자의 기본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22:4에도 "겸손과 여호와 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행하여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도무지 따를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기뻐시 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역자임을 통회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겸손이며 참된 신앙의 표징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자세로 만물을 대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 다고 하셨는데(마5:3-4) 이 말씀은 겸손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계속하 여 주님께서 어린아이를 칭찬하셨고 그리고 어린아이같아져야 천국에 들어간다 고 했는데 이도 겸손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주님 자신도 스스로 제자들 의 발을 씻기시는 겸손의 행위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요13:4이하). 바울도 빌2:3에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3)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함한 자가 될 수 있덨던 것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잔생애는 기도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잘못을 저질렀 을 때도 기도합니다. 사울 왕 때문에 많은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그 숱한 어려 움이 다가 올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위기의 때에도 기도했습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에도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4)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함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찬송하는 사람이었 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악신에 사로잡혀 고통당할 때 다윗이 수금을 타면 더러운 악신 이 떠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다윗이 찬송의 사람이라는 것은 시편을 펼쳐보 면 쉽게 알게 됩니다. 무수한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의 돌렸습니다. 찬송은 흉악한 결박을 푸는 능력이며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또는 우리의 신앙 삶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 립보 옥에 갇혔을 때 밤 중 쯤 되어 찬송할 때에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행16장).
(5)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사랑했습니다. 친구 요나단을 사랑했습니다. 요나단이 죽은 후에도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서 나타났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왕자의 하나같이 동일하게 대우했습니다. 옛 아내 미갈을 동일하게 사랑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책망받은 것은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6) 다윗이 하나님이 마음에 함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뻐시게 못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비결입니다. 다윗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잔장터에 갔습니다.
그런데 적장 골리앗이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전쟁의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군인도 앞으로 나서지 않는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 하는 장수 골리앗이지만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다윗 의 고백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는 큰 승리 즉 골 리앗을 쓰려뜨렸습니다. 그러나 그이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믿음으 로 승리한 것이었습니다(삼상17장). 우리의 찬송 중에 343장에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 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라고 함 같이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7)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함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되기를 힘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죽일려는 사울과 끝까지 화해를 시도하는 것을 볼 때 하나되기를 힘쓴 사람임을 볼 수 있습니다.
3. 역사의 주인공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행하여 가십니다. 21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하는 일은 잘못이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신정정치에 배치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불신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주셨습니다. 그런 중에도 폐할 자는 폐하시고 세울 자는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창49:10의 말씀 처럼 평화의 왕(실로)이 오시기 까지 이루어져 갑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들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루십니다. 피카소의 조각 중에 '황 소머리'가 있습니다. 이 직품은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피카소의 예술성과 작품성이 갖아 잘 드러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재료는 쓰레기 장에서 주워 온 낡은 자전거였습니다. 하잖은 쓰 레기가 누구의 손과 두뇌가 닿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집니다. 버려진 자전거가 피카소의 손에 의하여 엄청난 가치의 작품으로 변하여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같이 쓸모없고 가치없는 존재이 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잡힐 때 능력있는 일군으로 쓰여지는 줄 믿습니다. 마귀 에게 붙잡힌 일회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권세있게 사용될 하나님이 백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의 상황은 경제위기. 뭐다 하면서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장 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은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주식회사 쥬 뱅크라는 보석을 가공하는 작은 공장이 있습니다. 이 회사에는 전직원의 60%가 넘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어려움이 닥친 것은 80% 이상의 내수시장이 막히면서였습니다. 동종의 업체들이 문을 닫는 상 황에서 이 회사가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육신의 장애를 가진 이들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더 많은 고난들을 당했기 때문에 이겨 낼 수 있었던 것 입니다. 월급을 받지 못해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고통을 당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종업원들의 후원에 힘을 입은 사장은 중동의 바이어들을 만나 제품은 퍼펙트 하다는 평가를 받고 매달 20-30억원어 치를 수출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면 못할 일이 없음을 믿 으세요.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일을 결단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루지 못할 일 이 없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다윗을 세우 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혈통에서 과연 구세주가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통 하여 하나님의 뜻은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후손이 어떠 했는가를 아는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벗어남으로 포로로 잡혀가야 했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포로에서 돌이 키시고 무너진데서 다시 수축하여 다윗의 혈통에서 예수님 메시야가 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여 줍니까 우리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죄악 중에 먹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를 선택하신 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 고 긍휼을 베푸사 이 놀라운 은총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결심과 각오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아가도록 결단 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힘으로는 안되기에 그의 은혜를 구하면서 그리고 그의 피로 씻음 받으면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하니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을 다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을 전하기를 다 짐하는 겁니다.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네게서 다 이루겠다는 구원의 은총 이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땅 위 에서 나타낼 여러 일도 이루어져 큰 상급을 천대까지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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