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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교회 성도들에게 닥친 환난의 유익 (행11:19-26)

본문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을 해나가다보면 피치 못하게 환난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에 대한 박해와 탄압이 거세었던 초대 교회 당시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곧 환난을 자초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믿는 성도에게 시시 때때로 환난을 주십니까 그것은 환난으로 말미암는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커다람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박해가 얼마나 컸던지 그들은 더 이상 예루살렘에 무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은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교향과 가정과 형제를 등져야 했던 이들의 아픔과 고통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지만 성도 여러분, 이들 앞에는 아주 커다란 영적 기쁨과 유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 선교 지역을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 등 국외로 쫓겨나다시피 흩어졌지만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곳곳에서 만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많은 결실을 얻고 선교 지역을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들이 박해를 피해 흩어질 때는 이런 사실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아니 만일 그들에게 박해가 없었다면, 이 지역에 직접 찾아가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혹 여러분에게 환난이 닥칠지라도 결코 서러워하거나 낙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환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 이루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육신이 아무리 피곤하고 괴로울지라도 그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도처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다면 그로써 기쁜일이 아니겠습니까 “(빌1:17)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빌1:18)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1:19)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줄 아는고로 (빌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2. 평신도의 선교 의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에 복음을 전파하고 또 이방 지역에 교회를 세운 이들은 누구입니까 사도들입니까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는 사도들이 없었습니다. “(행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들은 모두 순수한 평신도들이었던 것입니다. 곧 그들은 직접 전하고 또 교회까지 설립함으로써 선교 의무가 사도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하겠습니다. 아울러 자신들에게도 복음을 증거하고 결실할 능력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지 아십니까 바로 우리에게 사명감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아울러 우리도 주의 사역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통해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와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이방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된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 교회에 닥친 환난이 가져온 또 하나의 놀라운 유익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된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 등으로 흩어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그곳의 유대인에게만 전했습니다. 그러나 흩어진 유대인 성도들에 의해 복음을 전해 듣고 개종한 구브로와 구레네의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증거함으로 그곳에 최초의 이방인 안디옥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안디옥 교회는 급성장하여 이방 지역을 향한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유대인들은 교회를 말살하려고 핍박했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복음의 확장과 이방 선교의 기회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하고 신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까잙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고 핍박하나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세상의 박해를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선용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환난을 당할 때 오히려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크고 작은 시련이 닥칠 때마다 그래서 우리 맘이 좌절되고 괴롭고 슬플 때마다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단 한가지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고 가정과 고향을 등져야 했던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생각합시다. 그들은 갑작스레 닥친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꿋꿋이 지켜 냄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복음의 결실을 맺고 자신들의 사명감을 더욱 분명히 자각하고 또 이방인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우쳤습니다. 여러분, 상황에 따라 다를지라도 환난 뒤에는 반드시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역시 환난을 통해 반드시 영적인 유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환난은 축복의 전조입니다.
4. 이상적인 교회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생아의 체중은
3.3kg, 그리고 신장은 50cm정도가 정상입니다. 물론 모태내에서도 그러했지만 태어난 후 이 아이는 성년이 되기까지 놀랍게 성장합니다. 적어도 체중은 20배, 신장은 3배 이상 자랍니다. 그러나 자라는 것은 육체만이 아닙니다. 사고력이나 사회성 등 정신적인 면도 함께 자라 완전한 성인이 됩니다. 육체적, 정신적 성장 중 어느 하나라도 정체된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면도 함께 자라 완전한 성인이 됩니다. 육체적, 정신적 성장 중 어느 하나라도 정체된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불구일 것입니다. 만약 정신적 성장이 지체된다면 이는 정신 박약아일 것이고, 육체적 성장이 지연된다면 기형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성인이 되려면 반드시 육체와 더불어 정신적 성장을 병행해야 합니다. 이 원리는 교회 성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교회가 온전히 성장하려면 외적으로, 양적으로 부흥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 질적으로도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안디옥 교회는 이에 대한 좋은 모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디옥 교회 성장을 살펴봅시다.
첫째, 내적,질적 성장(2절) 안디옥 교회 목회자로 파송받은 바나바는 그 교회의 외적 성장에만 만족지 아니하고 내적 결실을 위해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붙어 있다”라는 헬라어 “프로스메노”는 -를 향하여 또는 “가까이에”라는 뜻의 전치사 “프로스”와 “머물다” 또는 “거주하다”라는 뜻의 “메노”가 결합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프로스메노”는 문자적으로 “가까이 머무르다” “(딤전1: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또는 함께 남아 있다“(마15: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행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안에 있다“(딤전5: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 라는 의미이며, 본문에서는 성도는 오직 주 예수와 함께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만약 그렇지 않으면 줄기에서 유리된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는 전혀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지 않는 사람은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그리스도 안에 머뭄으로써 내적 성장을 기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외적, 양적 성장(24절) 안디옥 교회에는 이미 많은 성도가 모였으나, 바나바가 뚜렷한 목회관으로 그들을 권하고 양육하자 더욱큰 무리가 주께 더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더하다”라는 헬라어 “프로스티제미”는 “곁에” “-을 향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프로스”와 두다“(마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가두다“(마14: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쌓다“(눅14: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라는 뜻의 “티데미”의 합성어로서 이를 직역하면 “옆에두다”이며 본문에서는 많은 사람이 운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안디옥 교회는 내적 성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성장을 외적인 성장의 기초로 삼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교회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며 혹은 내실을 기하는 일련의 운동들이 자칫 개교회 성장을 도모하는 데만 그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닙니다. 교회가 내실을 기하는 것은 더 큰 성장, 곧 선교를 위한 기초를 찾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내적 성장을 기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머물지 말고 그것을 기초로 외적, 양적 성장과 더불어 더 큰 복음 선교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디옥 교회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온전히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이에 비해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지나치게 숫적인 팽창에만 급급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숫자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의 많은 불신자들에게 나아가서 제자삼고 그들을 하나님의 교회로 인도하는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적을 위해서 정작 성도들의 내적 신앙의 성숙을 방관한다면 하나님의 교회는 불균형한 성장으로 말미암아 어느 한계에 도달해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으며 오히려 퇴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 교회의 모습을 다시 점검하고 외적으로 뿐 아니라 내적으로 균형 있는 교회 성장을 위해 모든 헌신을 다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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