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관념에서 자유하라 (삼상18:10-16,행11:1-18)
본문
특정 사물이나 관념에 괴팍스러울 정도로 집착하는 것을 '편집적 강박증 (偏執的 强迫症)'이라고 합니다. 옷이라든가, 몸매, 우표, 일, 건강 등이 흔히 집착의 대상이 됩니다. 편집적 강박증은 대개 고집스럽고 독특한 습관 정도로 치부돼 버리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심각한 '병'으로 치달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환자'로 분류할 만한 강박관련 장애자만도 10%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적이거나 충동적 집착에 휩 싸여,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한 불안이나 우울 증세를 보인다고 합니다. 선진국에서 편집적 강박증은 이미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아주 흔 한 '병적 증세'인 것입니다.(<한겨레21> 219호, 98. 8. 6.) <한겨레21>에서 본 예입니다. 이아무개(45)씨는 편집적 강박증이 '병'으 로까지 발전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때 그는 '일'에 대한 심각한 편 집적 강박증에 시달렸습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 겪었던 불쾌한 경험 때문이 었던 것으로 그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딱 한번 숙제를 못해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담임선생님에게 엄청난 꾸지람을 들어야 했 습니다. 무엇보다 "우등생에다 반장이 숙제를 안 해 오다니"라는 선생님의 말이 어린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다른 학생들의 시선에도 조롱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무너진 자존심 때문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사 실 그는 다른 선생님의 심부름 때문에 숙제를 못해 간 것이었는데, 본래 내 성적 성격이었던 그는 변명조차 못하고 속으로만 억울함을 삭였습니다. 그 뒤로 이씨는 자신이 맡은 일을 다했는지에 대해 강박적 집착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오늘 한 일과 내일 할 일, 일주일 안에 할 일 등을 몇 번씩이나 확 인한 뒤에도 잠자리에 들면 머릿속은 달력으로 꽉 찼습니다. 해야 할 일을 뭔가 꼭 빼먹은 듯 찜찜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때의 '숙제 강박증'은 중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의 '성적에 대 한 집착증'으로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명문대학 경영학과를 1등으로 졸업하 고 학교에서는 유학을 권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고 싶던 유 학을 포기하고 취직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사회생활만큼은 집착에서 자유 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떼려고 발버둥칠수록 강박증은 더욱더 그의 목을 옥죄어 들어왔습니다. '숙제-성적 집착증'이 곧바로 '일 집착증' 으로 바뀐 것입니다. 남들보다 한시간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야근도 마 다하지 않는 고단한 직장생활이 이어졌습니다. '너무 튄다'는 이야기도 들 려왔지만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판이 그나마 직장생활을 지탱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취직한 뒤 2년 뒤부터 편집적 강박증은 우울증과 불안증세로 발전했다. 곪았던 상처가 터진 것이었습니다. 이런 편집적 강박증은 대체로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다 있다고 합니다. 이런 강박증이 부정적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긍정적으로 나타날 때도 있지만, 이런 증세가 심해지면 병이 되고, 그것 때문에 자신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의 경우 편집적 강박증에 사로 잡혔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상 그는 이 강박증 때문에 자신을 파 멸로 몰고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골리앗이라는 무서운 장수가 나타나서 이스라엘 군 대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때 목동인 다윗이 물매돌로 그와 맞서 그를 넘 어뜨리고 그 목을 베었습니다. 사울 왕은 대단히 기뻐하였고, 다윗을 아끼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돌아올 때 여인들이 나와서 환영하면서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노래를 듣는 순간 사울은 다윗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렸으 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 하고 투덜거렸 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부터 다윗에 대한 편집적 강박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튿날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에게 내리 덮치자, 사울은 궁 궐에서 미친 듯이 헛소리를 질렀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현대 정신과 의사들 은 사울이 심한 편집적 강박증에 사로 잡혔다고 할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 에 대한 질투 때문에 미칠 것 같아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다윗이 들어와 거문고를 탈 때 옆에 있던 창을 들어 그에게 집어 던졌던 것입니다. 다윗이 두 번이나 몸을 피하여 목숨을 건졌습니다. 사울 왕은 그런 다윗이 더욱 두 려워진 것입니다.
12절에 "주께서 자기를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안 사울은, 다윗이 두려워졌다."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으로 임명하여 전쟁터에 내보냈으나 그는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뻐해야 할 사 울은 오히려 더욱 두려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15절에 "다윗이 이렇게 큰 승리를 거두니, 사울은 그것을 보고, 다윗을 매우 두려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실상 사울은 다윗에 대한 이런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 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왕권에 대한 편집적 강박증인 것입니다. 다윗이 왕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윗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수금을 타는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집어던진 일이 한 번 더 있었고, 그 것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자객을 보내어 그를 죽이려 했으나 창문으로 도망 하여 그를 죽이지 못하였습니다. 그후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 다니 기 시작하였는데, 사울은 계속 그를 추격하여 잡으려 하였으나 번번히 실패 하였던 것입니다. 사무엘 23장에 보면, "그 동안 사울은 날마다 다윗을 찾 았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출동할 때마다, 다윗이 그것을 다 알고서 피하였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윗이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다윗 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종이라고 하여 그를 살려주곤 하였습니다. 그 때 마다 사울은 자신의 강박증에 대하여 후회하면서 눈물을 흘리곤 하였지만, 좀처럼 그 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을 피 해 블레셋으로 망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 단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왕권에 대한 강박증을 갖기로 한다면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더 심했 을 것이지만, 요나단은 왕권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적극적으로 아버지 사울로부터 다윗을 보호해주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에 대한 시기와 두려움 때문에 그래서 그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다 결국 자기의 삶을 비극적으로 마쳤던 것입니다. 사울의 일생은 결국 이런 강박증으로 인해서 참으로 불행하였고, 그가 왕이었기에 자기만이 아 닌 많은 사람을 괴롭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에 끝난 TV 연속극 <용의 눈물>에서도 편집적 강박증에 사로잡힌 임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오직 그 한 가지 강 박증 때문에 형제들과 원수가 되고 처남들을 모조리 죽여버렸고, 자기가 왕 이 되도록 도왔던 공신들마저 의심하여 내어쫓거나 죽여버렸던 것입니다. 왕들이 이런 강박증에 사로잡혀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역사에서 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당시에 유대의 왕이었던 헤롯도 아주 심한 열등감과 편집적 강박증에 시달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권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자기 부인과 아들까지도 죽였고, 메시아가 될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문에 베 들레헴에 사는 두 살 이하 아기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끔찍한 짓을 서슴지 않고 행하였던 것입니다. 자기가 행한 이런 끔찍한 행위 때문에 인기 없는 왕임을 스스로 잘 알았지만 그 강박증을 벗어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심 지어는 자기가 죽었을 때 애곡할 사람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자기가 죽을 무렵 예루살렘에 유명 인사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애곡 소리로 자기의 장례를 치르려 했던 아주 심한 강박 증 환자였던 것입니다. 결국 이런 강박증은 인간의 잘못된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에 몰두하 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그 말씀에 몰두하는 일은 대단히 긍정적인 일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악으로 물들 어 몰두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에는 등한하고, 몰두하지 말아야 할 세상일에 집착하게 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에만 순종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우리를 여러 가지 아 름답고 매력적인 것처럼 보이는 세상일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거기에 몰두 하게 만들어 마침내는 그것이 병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율법에 몰두하는 일조차도 율법의 핵심을 붙잡기보다는 그 형식에만 매어 달리게 만들어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유혹에 빠진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대한 집착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들 의 그런 집념에 대하여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의 의 로운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 행실보다 낫지 않으 면, 너희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마 5:20)이라고 하셨습니다. 유 대인들의 율법에 대한 집념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며 우리가 본받아야할 태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율법을 지키겠다는 형식만 있지 그 율법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 새파 사람들을 책망하시면서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고 지적 하셨습니다. 그들은 너무 형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 의 역사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분적인 것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의 역사 전체를 통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율법이 지시하였고 예언 자들이 예언하였던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는데도 저들은 알 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던 것입니다. 저들의 율법 에 대한 강박증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에서 보는 것처럼 스데반을 돌로 처 죽였고, 청년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다메섹까지 자진하여 찾아 나섰던 것 입니다.
잘못된 신앙이나 이념에 대한 편집적 강박증은 다른 사람들을 핍박 하고 그 신앙과 이념을 수호하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서는 것입니다. 이런 강박증은 성령님에 의해 변화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도 완전히 사 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를 중심한 예루살렘 교회는 여전 히 유대인 중심의 선교에만 집착하였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율법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의 백부장인 고 넬료에게 베드로를 보내시기 위하여 먼저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늘에서 큰 보자기가 내려왔는데 그 안에는 율법에 먹지 말라고 금한 짐승들과 새들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서 잡아먹어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켜온 베드로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세 번 반복된 후에 그는 고넬료의 집에 불려갔고, 거기 모인 이방인들 앞에 서 설교하고 세례까지 베풀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를 율법주의라는 강박증에 서 벗어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여러 모양으로 역사 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먹고 마셨다는 이야기 를 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를 힐문하였습니다. 어떻게 무할례자의 집 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을 때 베드로는 장황하게 그 경위를 설명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예루살렘 교회는 끝까지 유대인이라는 한계를 벗어 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이라는 새로운 일꾼을 불러 내어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고 이방전도에 앞장서게 하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므로 전에 사로잡혀 있던 율법주의 강박증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역사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사로잡혀 있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역사와 그 뜻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역사는 보지 못하고 자질구레한 생활에 얽매어 거기서 헤어나지 못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얽매어 있는 강박증이 무엇입니까 젊은이들은 유행에 아 주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유행에 뒤떨어지면 낙오자가 된다는 강박증에 걸려서 기를 쓰고 유행에 앞장서 가는 것입니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야 한 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힌 부모들이 기를 쓰고 몇 천만원짜리 과외를 시켜서 라도 대학에 보내려 하다가 사회적인 망신을 당하였습니다. 정치 강박증에 걸린 사람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 한 번 되려고 하다가 패 가망신하기도 합니다. 기업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기업인 들은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훨씬 넘어선 빚을 얻어다가 계속 기업을 문어 발처럼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경제위기라는 된서리를 맞아 문을 닫거나 합병이라는 진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성장시켜야 된다는 강박증 에 걸린 목사들은 자기가 배운 신학 같은 것은 집어던지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교회를 성장시키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강박증 때문에 몸을 상하여 일찍 세상을 떠나는 목사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현 대인들을 병들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본다면 현대인들은 결국 이런 저런 편집적 강박증에 걸려 앓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 을 돌아보고 내가 붙잡혀 있는 강박관념이 무엇인지 찾아서 거기로부터 탈 출하고 자유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셨 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붙잡혀 있는 이런 저런 강박증에서 우리를 자유하 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십자가 앞에 나가 나 의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그가 주신 참 자유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욕망에 사로잡혀 헛된 꿈을 좇던 데서 벗어나 큰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 야 하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려고 하던 욕망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보잘 것 없는 작은 자 임을 깨닫고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나를 붙들 어 나를 크게 하실 것입니다. 내가 몰두하였던 세상일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건강해지고 이 시대를 올바로 분별할 지혜가 생기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크게 봉사할 수 있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이제 매어 있던 모든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그 뜻을 따를 수 있기 위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 시기 바랍니다.
오늘 한 일과 내일 할 일, 일주일 안에 할 일 등을 몇 번씩이나 확 인한 뒤에도 잠자리에 들면 머릿속은 달력으로 꽉 찼습니다. 해야 할 일을 뭔가 꼭 빼먹은 듯 찜찜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때의 '숙제 강박증'은 중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의 '성적에 대 한 집착증'으로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명문대학 경영학과를 1등으로 졸업하 고 학교에서는 유학을 권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고 싶던 유 학을 포기하고 취직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사회생활만큼은 집착에서 자유 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떼려고 발버둥칠수록 강박증은 더욱더 그의 목을 옥죄어 들어왔습니다. '숙제-성적 집착증'이 곧바로 '일 집착증' 으로 바뀐 것입니다. 남들보다 한시간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야근도 마 다하지 않는 고단한 직장생활이 이어졌습니다. '너무 튄다'는 이야기도 들 려왔지만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판이 그나마 직장생활을 지탱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취직한 뒤 2년 뒤부터 편집적 강박증은 우울증과 불안증세로 발전했다. 곪았던 상처가 터진 것이었습니다. 이런 편집적 강박증은 대체로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다 있다고 합니다. 이런 강박증이 부정적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긍정적으로 나타날 때도 있지만, 이런 증세가 심해지면 병이 되고, 그것 때문에 자신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의 경우 편집적 강박증에 사로 잡혔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사실상 그는 이 강박증 때문에 자신을 파 멸로 몰고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골리앗이라는 무서운 장수가 나타나서 이스라엘 군 대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때 목동인 다윗이 물매돌로 그와 맞서 그를 넘 어뜨리고 그 목을 베었습니다. 사울 왕은 대단히 기뻐하였고, 다윗을 아끼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돌아올 때 여인들이 나와서 환영하면서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노래를 듣는 순간 사울은 다윗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렸으 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 하고 투덜거렸 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부터 다윗에 대한 편집적 강박증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튿날 여호와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에게 내리 덮치자, 사울은 궁 궐에서 미친 듯이 헛소리를 질렀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현대 정신과 의사들 은 사울이 심한 편집적 강박증에 사로 잡혔다고 할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 에 대한 질투 때문에 미칠 것 같아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다윗이 들어와 거문고를 탈 때 옆에 있던 창을 들어 그에게 집어 던졌던 것입니다. 다윗이 두 번이나 몸을 피하여 목숨을 건졌습니다. 사울 왕은 그런 다윗이 더욱 두 려워진 것입니다.
12절에 "주께서 자기를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안 사울은, 다윗이 두려워졌다."고 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으로 임명하여 전쟁터에 내보냈으나 그는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승승장구하였습니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뻐해야 할 사 울은 오히려 더욱 두려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15절에 "다윗이 이렇게 큰 승리를 거두니, 사울은 그것을 보고, 다윗을 매우 두려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실상 사울은 다윗에 대한 이런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 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왕권에 대한 편집적 강박증인 것입니다. 다윗이 왕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윗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수금을 타는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집어던진 일이 한 번 더 있었고, 그 것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자객을 보내어 그를 죽이려 했으나 창문으로 도망 하여 그를 죽이지 못하였습니다. 그후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 다니 기 시작하였는데, 사울은 계속 그를 추격하여 잡으려 하였으나 번번히 실패 하였던 것입니다. 사무엘 23장에 보면, "그 동안 사울은 날마다 다윗을 찾 았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출동할 때마다, 다윗이 그것을 다 알고서 피하였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윗이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다윗 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종이라고 하여 그를 살려주곤 하였습니다. 그 때 마다 사울은 자신의 강박증에 대하여 후회하면서 눈물을 흘리곤 하였지만, 좀처럼 그 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을 피 해 블레셋으로 망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 단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왕권에 대한 강박증을 갖기로 한다면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더 심했 을 것이지만, 요나단은 왕권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적극적으로 아버지 사울로부터 다윗을 보호해주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에 대한 시기와 두려움 때문에 그래서 그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다 결국 자기의 삶을 비극적으로 마쳤던 것입니다. 사울의 일생은 결국 이런 강박증으로 인해서 참으로 불행하였고, 그가 왕이었기에 자기만이 아 닌 많은 사람을 괴롭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에 끝난 TV 연속극 <용의 눈물>에서도 편집적 강박증에 사로잡힌 임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오직 그 한 가지 강 박증 때문에 형제들과 원수가 되고 처남들을 모조리 죽여버렸고, 자기가 왕 이 되도록 도왔던 공신들마저 의심하여 내어쫓거나 죽여버렸던 것입니다. 왕들이 이런 강박증에 사로잡혀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역사에서 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당시에 유대의 왕이었던 헤롯도 아주 심한 열등감과 편집적 강박증에 시달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권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자기 부인과 아들까지도 죽였고, 메시아가 될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문에 베 들레헴에 사는 두 살 이하 아기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끔찍한 짓을 서슴지 않고 행하였던 것입니다. 자기가 행한 이런 끔찍한 행위 때문에 인기 없는 왕임을 스스로 잘 알았지만 그 강박증을 벗어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심 지어는 자기가 죽었을 때 애곡할 사람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자기가 죽을 무렵 예루살렘에 유명 인사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애곡 소리로 자기의 장례를 치르려 했던 아주 심한 강박 증 환자였던 것입니다. 결국 이런 강박증은 인간의 잘못된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에 몰두하 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그 말씀에 몰두하는 일은 대단히 긍정적인 일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악으로 물들 어 몰두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에는 등한하고, 몰두하지 말아야 할 세상일에 집착하게 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에만 순종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우리를 여러 가지 아 름답고 매력적인 것처럼 보이는 세상일에 관심을 갖게 만들고 거기에 몰두 하게 만들어 마침내는 그것이 병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율법에 몰두하는 일조차도 율법의 핵심을 붙잡기보다는 그 형식에만 매어 달리게 만들어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유혹에 빠진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대한 집착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들 의 그런 집념에 대하여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의 의 로운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 행실보다 낫지 않으 면, 너희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마 5:20)이라고 하셨습니다. 유 대인들의 율법에 대한 집념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며 우리가 본받아야할 태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율법을 지키겠다는 형식만 있지 그 율법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 새파 사람들을 책망하시면서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고 지적 하셨습니다. 그들은 너무 형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 의 역사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분적인 것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의 역사 전체를 통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율법이 지시하였고 예언 자들이 예언하였던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는데도 저들은 알 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던 것입니다. 저들의 율법 에 대한 강박증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에서 보는 것처럼 스데반을 돌로 처 죽였고, 청년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다메섹까지 자진하여 찾아 나섰던 것 입니다.
잘못된 신앙이나 이념에 대한 편집적 강박증은 다른 사람들을 핍박 하고 그 신앙과 이념을 수호하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서는 것입니다. 이런 강박증은 성령님에 의해 변화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도 완전히 사 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를 중심한 예루살렘 교회는 여전 히 유대인 중심의 선교에만 집착하였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율법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의 백부장인 고 넬료에게 베드로를 보내시기 위하여 먼저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늘에서 큰 보자기가 내려왔는데 그 안에는 율법에 먹지 말라고 금한 짐승들과 새들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서 잡아먹어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켜온 베드로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세 번 반복된 후에 그는 고넬료의 집에 불려갔고, 거기 모인 이방인들 앞에 서 설교하고 세례까지 베풀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를 율법주의라는 강박증에 서 벗어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여러 모양으로 역사 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먹고 마셨다는 이야기 를 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를 힐문하였습니다. 어떻게 무할례자의 집 에 들어갈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을 때 베드로는 장황하게 그 경위를 설명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예루살렘 교회는 끝까지 유대인이라는 한계를 벗어 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이라는 새로운 일꾼을 불러 내어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고 이방전도에 앞장서게 하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므로 전에 사로잡혀 있던 율법주의 강박증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역사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사로잡혀 있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역사와 그 뜻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역사는 보지 못하고 자질구레한 생활에 얽매어 거기서 헤어나지 못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얽매어 있는 강박증이 무엇입니까 젊은이들은 유행에 아 주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유행에 뒤떨어지면 낙오자가 된다는 강박증에 걸려서 기를 쓰고 유행에 앞장서 가는 것입니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야 한 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힌 부모들이 기를 쓰고 몇 천만원짜리 과외를 시켜서 라도 대학에 보내려 하다가 사회적인 망신을 당하였습니다. 정치 강박증에 걸린 사람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 한 번 되려고 하다가 패 가망신하기도 합니다. 기업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기업인 들은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훨씬 넘어선 빚을 얻어다가 계속 기업을 문어 발처럼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경제위기라는 된서리를 맞아 문을 닫거나 합병이라는 진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성장시켜야 된다는 강박증 에 걸린 목사들은 자기가 배운 신학 같은 것은 집어던지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교회를 성장시키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강박증 때문에 몸을 상하여 일찍 세상을 떠나는 목사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현 대인들을 병들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본다면 현대인들은 결국 이런 저런 편집적 강박증에 걸려 앓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 을 돌아보고 내가 붙잡혀 있는 강박관념이 무엇인지 찾아서 거기로부터 탈 출하고 자유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셨 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붙잡혀 있는 이런 저런 강박증에서 우리를 자유하 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십자가 앞에 나가 나 의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그가 주신 참 자유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욕망에 사로잡혀 헛된 꿈을 좇던 데서 벗어나 큰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 야 하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려고 하던 욕망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보잘 것 없는 작은 자 임을 깨닫고 나 자신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나를 붙들 어 나를 크게 하실 것입니다. 내가 몰두하였던 세상일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건강해지고 이 시대를 올바로 분별할 지혜가 생기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크게 봉사할 수 있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이제 매어 있던 모든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그 뜻을 따를 수 있기 위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 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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