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어느 때인가? (딤후3:1-5)
본문
하늘과 땅에서,물질과 시간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법입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이제는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람이 하는 일치고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또한 있을 것입니다. 한 때 건강해서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것 같이 보였던 사람이 그 건강에 끝이 있어 질병으로 먼저 간 사람도 있을 것이요, 어떤 사람은 그 사업이 번창해서 전국을 삼킬 것 같이 대단했지만 거기에도 끝이 있어 빚때문에 야간 도주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옆에 있는 나드리 백화점도 개장할 때 얼마나 화려했습니까 마치 천년만년 건재할 것 같았지만 몇개월이 지난 지금 부도가 나서 크레물린 궁전같은 건물이 썰렁하기 그지 없습니다. 때로는 권력이 천년만년 갈것같이 세도를 부리더니만 그것도 끝이 있어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고 부하에게 총경을 당하고 산속 깊은 절로 유배를 떠나고.그 끝이 다 비참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일이 영원하도록 잘되는 경우는 아주 없습니다. 지금 잘되는 것 같이 보일런지는 몰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한 나라와 문화에도 끝은 있습니다. 신라문화가 그렇게 찬란했었지만 지금은 농부의 호미끝에 걸리는 기와장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잉카문명이 그렇게 위대했어도, 아틀란트 문명이 그렇게 화려했지만 지금은 땅 속 깊은 곳으로, 바다속 깊은 곳에 묻혀버린 문화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스키타이 황금전이 장안의 화제인데 옛날에 찬란했던 문화가 이렇게 박물관의 유리상자 속에서 있다는 것은 그 문화가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영원히 계속될 것같았던 로마도 끝이 났고 페르시아제국도 끝이 났습니다. 나폴레옹의 제국도 끝이 났습니다. 이렇게 문화에도, 나라에도 반드시 끝이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것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문화나 나라나 끝이 날때는 반드시 그 끝의 징조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소위 망조(망할 징조)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망조가 보였을 때 “아하, 이러면 안되겠구나.”하고 정신을 차렸다면 안망했을 텐데 그 망조를 보고도 정신차리지 않았기에 전부 망해 버리고 만것입니다. 로마가 망하기 전에도 망조가 있었습니다. 헬라가 망하기 전에도 망조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백제가 망하기 전에도 망조가 있었습니다. 일본이 망하기 전에도 망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신 차리지 않고 있다가 그만 망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지금 망조가 보이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정치가, 경제가, 노사분규가, 국민의 의식구조가 심각해져 갑니다. 공장마다 일 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인데 술집과 디스코텍은 사람으로메어집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일할려고 하지않고 부동산이나 굴려서 일확천금이나 꿈꾸고 있습니다. 학생운동은 이것이 시위인지 전쟁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 갑니다. 심지어 교육자까지 돈받고 학생들을 입학시키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다 망조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허, 저사람 왜저래, 저러다 망하고 말지!” 사람이 망하는데 망조가 있습니다. “어허 저집안 왜저래 저러다 망하고 말지!” 집안이 망하는데 망조가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데 망조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 망조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은 끝(종말)에 대하여 두가지가 있음을 말합니다.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인 종말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날 우리는 개인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또한 모든 체질이 뜨거워져 없어지고 하늘의 별이 1/3이 떨어지고 하늘이 종이장같이 말리는 날, 그것은 우주적 종말입니다. 특별히 성경은 이 우주적 종말이 오기전에 반드시 그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24장에 이 망조를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본문을 통해 이 망조를 말했습니다. 요한도 게시록을 통해 이 망조를 말했습니다. 베드로도 벧전:에 이 망조를 말했습니다.이러한 성경을 중심으로 두가지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I. 왜 이와같은 망조를 미리 에언해 주셨는가(목적)
1. 미혹당하거나 당황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때 가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미혹당하거나 당황하거나 실패할까봐 이런 징조를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2.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무화과 나무잎이 푸르면 여름이 가까이 온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말씀하시는 예언을 통하여 때가 임박하였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해산할 여인은 자기의 불러지는 배를 보고 태어날 날을 준비합니다. 기저귀도 준비하고 미역도 준비하고 배내옷도 준비하고 목욕통도 준비합니다. 이같이 징조의 임함을 보고 “이래서는 안되겠구나.기도해야지,성경보아야지,경건하게 살아야지” 하며 이렇게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예언의 말씀을 듣고도 준비하지 않으면 어떤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까 도적과 같이 임하시는 주님을 맞이하게 될것입니다.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그리고 준비하는 자에게는 해산할 여인과 같이 임하실 것이요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는 도적과 같이 임하실 것입니다.
3. 할일을 하라는 뜻입니다. 스피노자는 말하기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내일 오신다고 해도 오늘 할일을 하라는 말인줄 압니다. 달란트받은 종 모두는 주인이 언제 오실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마치 내일 오실 것 같이 여기고 오늘 할일을 한 두종은 칭찬을 받았습니다만 받은 달란트를 땅에 감춰두고 주인이 오실려면 아직 멀었다고 게으름을 피운 종은 책망받고 쫒겨났습니다.주님이 언제 불쑥 오셔서 여러분께 할 일을 점검하실때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잎사귀가 푸르렀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것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정신 바짝차리시기 바랍니다. 망조를 무시했다가 망하지 말고 예언의 말씀을 잘 듣고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Ⅱ.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구체적인 망조는 무엇입니까
1. 자연의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만큼 천재지변이 참혹한 때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지질학자가 말하기를 캘리포니아와 알래스카를 이어서 일본과 우리나라 남쪽까지 이어지는 땅속에서 언제 무슨일이 일어날 줄 모른답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이것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일어난 것만 해도 끔찍한데 앞으로 일어날 것은 이에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 재난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진대에 속하지 않는다고요 어제 신문을 보니 경북 영양에서 지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물론 미약한 지진이었지만 그것이 시작에 불과할 지 누가 압니까 보이지 않는 땅속일이니 아무도 모릅니다.
2. 인류사회의 전쟁과 계급투쟁과 골육상쟁과 사상분쟁과 이념투쟁.등 처 참한 불화 분쟁이 지구상 곳곳에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과거 어느때보다 지구는 예민해져 있습니다. 너무나 분쟁이 심합니다. 해방무드라고요 핵을 감축한다고요 평화를 위한 정상회담을 한다고요 자신들의 이익이 걸리면 언제 손바닥 뒤집듯 번복할 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화과 나무잎이 얼마나 푸르렀는가를 이 시대를 보고 짐작하시길 바랍니다. 해산할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국제정세를 보고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3. 교회안에 이단사설과 적그리스도가 일어나고 교회안에 부패가 있을 것이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말씀드리기로 하겠고.
4. 개개인의 신자속에 망조가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은 이것을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말세에는 신자가 많지 않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 다시올때 믿음을 보겠느냐”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말씀의 뜻은 말세에 믿음있는 사람이 많은 것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적다는 말씀입니다. 교인은 많아도 성도는 적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교인은 여러명 모였지만 이중에 성도가 몇명인지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한국교인이 천만을 넘는다고 하지만 그 중 성도가 몇명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오직 성도의 숫자가 매우 적다는 것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도의 무리중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교인이냐 성도냐 성경찬송끼고 교회나온다고 해서 다 성도는 아닙니다. 성도다와야 비로소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10처녀중 다섯 처녀만이 신랑을 영접했습니다. 메돌을 가는 두 사람중 한 사람만이 들림받았습니다. 밭을 가는 두 사람중 역시 한 사람만 데려감을 당했고 잠을 자는 두 사람중 역시 한사람만 휴거되었습니다. 꼭 반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쨋든 주님이 말씀하신 예화를 빌어 볼 때 최소한 반은 쭉정이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알곡입니까 쭉정이입니까 들림받는 반입니까 아니면 땅에 남는 반입니가 흔들어 흔들어 날라가는 세상에 소망을 둔 쭉정이가 아닙니까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보여드릴 믿음이 있습니까 보여드릴 순종이 있습니까 보여드릴 열매가 있습니까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많은 금액이 예금되어 있는 통장이 아닙니다. 땅도 아닙니다. 소원성취도 아닙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그 믿음가진 사람이 얼마 안된다는 말입니다.
둘째, 사람들의 마음이 이기작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만큼 이기적인 시대가 또 어디있었겠습니까 내주머니 채우기 위해서 히로뽕장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요구르트에 독극물을 넣는 것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이 쓰러지거나 자빠지거나 무슨짓이던 다 해먹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정서가 어떻게 되든 불량만화를 마꾸 찍어내고 담벼락에 벌거벗은 여자가 누워있는 영화 포스터를 마구 붙여 놓습니다. 돈만 벌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소위 대기업이란 자들이 없는자들이 어떻게 되든 바나나및 각종 농산물을 마구 수입합니다. 심지어 새우젖이나 콩나물장사까지 합니다. 얼마나 이기적인가하면 자기 딸같고 동생같은 여자를 마구 팔아먹기도 합니다. 세상에 이기적 이기적 해도 이렇게 악질적인 이기적인 시대가 또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믿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믿는 사람들이 더 이기적입니다. 내주머니 채우기 위해 믿지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상처를 입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믿는 자에게 상처입은 사람이 과연 예수믿으라면 믿을까요 그들의 영혼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이 내주머니만 채워지면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까지 이용해 먹습니다. 자기 사업위해, 자기 건강위해, 자기 소원 위해 하나님을 이용한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사업에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건강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간절한 소원이 있을때는 봉사도, 헌금도,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 합니다. 심방도 와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좀 잘된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오히려 하나님과 교회와 신앙을 귀찮게 여깁니다. 주일날 교회가는 것, 사업에 방해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작정헌금, 거지에게 동전던져주듯 생각나면 툭 던져놓습니다 신앙생활 잘하라고 심방하면 귀찮게 왜 왔느냐는 식입니다. 여러분이여, 이러한 믿는 자의 이기심이 믿지 않는 자들의 이기심보다 더 큰 죄임을 아십니까 이러한 시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해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아야 합닉다.
셋째, 사람들의 마음이 오만 불손해 진다고 했습니다. 소위 자유니 인귄이니 민주주의니 하면서 오만불손해 집니다. 어른도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도 필요없습니다. 부모도 선배도 필요 없습니다. 자기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다 적이고 타도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만불손한지 남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른이 충고하면 왜 간섭이냐고 칼로 찔러 죽이는 시대개 되었습니다. 내 말만 하고 내 주장만 관철시키면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야 죽거나 말거나입니다. 학생이 교수의 머리를 깍아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교회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역자에 대한 오만불손,신앙의 지도자들에 대한 오만 불손도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대한 오만불손도 문지입니다만 하나님께 대한 오만불손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전시대는 “사람은 위대하다 따라서 하나님은 필요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는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하나님을 죽이자”고 달려듭니다. 많은 음악을 통해서 미술을 통해서 각종 문화와 예술이 하나님을 죽이자고 총동원 되고 있습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끌려가고 맙니다.
넷째, 다 졸고 잔다고 했습니다. (마25장)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 모두 다 졸고 잔걸 보니 참으로 말세는 피곤한 시대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신자도, 교인도 다 잠니다. 물론 피곤하면 잠이 옵니다만 이, 시대를 돌아보고 내 영혼의 상태를 돌아보면 잠이 어디옵니까 깜짝놀라 오히려 오던 잠이 달아나야 하지 않겠습니가 졸고 잔다는 말은 긴장감이 풀어졌다는 말입니다. 죄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 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무감각해졌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피곤해지다 보니까 자기의 상태까지 잊습니다. 기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신랑예수 맞이할 준비가 됬는지 안됬는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망조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찬송해도 피곤해, 기도해도 피곤해, 성경 읽는 것도 피곤해.철야 나오라는 말도 귀찮습니다. 신나게 드라마게임을 보고 있는데 철야기도 나오라니 정말 싫습니다. “다 졸고 잘세”는 말세의 징조입니다.정신차리십시오. 다섯째, 진리를 떠나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에 관심을 갖는다고 했습니다. 목사가 설교하면 교회가 텅텅비고 코메디언이 와서 특별 순서하면 교회가 터지라고 모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망조를 보고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라오디에아 교회안에 있었던 망조가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소아시아의 7번째 교회로 말세교회를 의미합니다. 이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현실이 말세교회의 현실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 교회는 어떤 특색이 있었습니까
ㄱ. 미지근한 신앙압니다. 이말은 말세교회는 주님보시기에 구역질나는 교회가 된다는 말입니다. 미지근한것이 무엇입니까 죄와 의의 선이 분명치 않습니다. 하나님과 세상과의 구분이 희미합니다. 죄악에 대해서는 얼음같이 차갑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불같이 뜨거워야 할텐데 그렇지가 못하고 양면에 대해 미지근 했다는 말입니다.
ㄴ. 영적인 빈곤입니다. 눈먼것과 가난한 것과 헐벗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겉은 그럴듯했지만 알맹이가 없었다는 밀입니다. 찬송은 부르지만 내용은 없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상달이 없습니다. 교회는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지만 그 속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건물은 웅장하지만 그 신앙은 초가집 같이 초라하다는 것입니다. 집사라고 해서 구원받은 과정을 얘기해 보랬더니 아무말도 못합니다. 모태신앙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보라고 했더니 주저주저 합니다. 혹 이야기 하더라도 그저 줏어들은 것만 갖다 댈뿐 체험에서 나온 경험담이 아닙니다.
ㄷ. 영적교만입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나는 부자라 부요한자라는 것입니다. 모태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물교회 제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이만큼 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교만은 하나님앞에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처럼 아무것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것 같이 보이는 교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ㄹ. 라오디게아 교회의 마지막 망조는 예수님을 문밖으로 쫒아 냈다는 것입니다. 이는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예수님이 종교의식 때문에 문밖으로 쫒겨 났습니다. 예수 없는 신앙,예수없는 찬송,예수없는 예배,예수없는 봉사,예수없는 수양회, 예수없는 세미나.가 되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련미 거둘 수 있을런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예배속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봉사와 기도속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망조가 내게 하나라도 있습니까
그렇다면 빨리 회개하십시오. 때가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심판날 최후로 웃는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것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문화나 나라나 끝이 날때는 반드시 그 끝의 징조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소위 망조(망할 징조)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망조가 보였을 때 “아하, 이러면 안되겠구나.”하고 정신을 차렸다면 안망했을 텐데 그 망조를 보고도 정신차리지 않았기에 전부 망해 버리고 만것입니다. 로마가 망하기 전에도 망조가 있었습니다. 헬라가 망하기 전에도 망조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백제가 망하기 전에도 망조가 있었습니다. 일본이 망하기 전에도 망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신 차리지 않고 있다가 그만 망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지금 망조가 보이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정치가, 경제가, 노사분규가, 국민의 의식구조가 심각해져 갑니다. 공장마다 일 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인데 술집과 디스코텍은 사람으로메어집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일할려고 하지않고 부동산이나 굴려서 일확천금이나 꿈꾸고 있습니다. 학생운동은 이것이 시위인지 전쟁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 갑니다. 심지어 교육자까지 돈받고 학생들을 입학시키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다 망조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허, 저사람 왜저래, 저러다 망하고 말지!” 사람이 망하는데 망조가 있습니다. “어허 저집안 왜저래 저러다 망하고 말지!” 집안이 망하는데 망조가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데 망조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 망조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은 끝(종말)에 대하여 두가지가 있음을 말합니다.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인 종말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날 우리는 개인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또한 모든 체질이 뜨거워져 없어지고 하늘의 별이 1/3이 떨어지고 하늘이 종이장같이 말리는 날, 그것은 우주적 종말입니다. 특별히 성경은 이 우주적 종말이 오기전에 반드시 그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24장에 이 망조를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본문을 통해 이 망조를 말했습니다. 요한도 게시록을 통해 이 망조를 말했습니다. 베드로도 벧전:에 이 망조를 말했습니다.이러한 성경을 중심으로 두가지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I. 왜 이와같은 망조를 미리 에언해 주셨는가(목적)
1. 미혹당하거나 당황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때 가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미혹당하거나 당황하거나 실패할까봐 이런 징조를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2.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무화과 나무잎이 푸르면 여름이 가까이 온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말씀하시는 예언을 통하여 때가 임박하였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해산할 여인은 자기의 불러지는 배를 보고 태어날 날을 준비합니다. 기저귀도 준비하고 미역도 준비하고 배내옷도 준비하고 목욕통도 준비합니다. 이같이 징조의 임함을 보고 “이래서는 안되겠구나.기도해야지,성경보아야지,경건하게 살아야지” 하며 이렇게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예언의 말씀을 듣고도 준비하지 않으면 어떤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까 도적과 같이 임하시는 주님을 맞이하게 될것입니다.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그리고 준비하는 자에게는 해산할 여인과 같이 임하실 것이요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는 도적과 같이 임하실 것입니다.
3. 할일을 하라는 뜻입니다. 스피노자는 말하기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내일 오신다고 해도 오늘 할일을 하라는 말인줄 압니다. 달란트받은 종 모두는 주인이 언제 오실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마치 내일 오실 것 같이 여기고 오늘 할일을 한 두종은 칭찬을 받았습니다만 받은 달란트를 땅에 감춰두고 주인이 오실려면 아직 멀었다고 게으름을 피운 종은 책망받고 쫒겨났습니다.주님이 언제 불쑥 오셔서 여러분께 할 일을 점검하실때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잎사귀가 푸르렀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것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정신 바짝차리시기 바랍니다. 망조를 무시했다가 망하지 말고 예언의 말씀을 잘 듣고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Ⅱ.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구체적인 망조는 무엇입니까
1. 자연의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만큼 천재지변이 참혹한 때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지질학자가 말하기를 캘리포니아와 알래스카를 이어서 일본과 우리나라 남쪽까지 이어지는 땅속에서 언제 무슨일이 일어날 줄 모른답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이것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일어난 것만 해도 끔찍한데 앞으로 일어날 것은 이에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 재난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진대에 속하지 않는다고요 어제 신문을 보니 경북 영양에서 지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물론 미약한 지진이었지만 그것이 시작에 불과할 지 누가 압니까 보이지 않는 땅속일이니 아무도 모릅니다.
2. 인류사회의 전쟁과 계급투쟁과 골육상쟁과 사상분쟁과 이념투쟁.등 처 참한 불화 분쟁이 지구상 곳곳에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과거 어느때보다 지구는 예민해져 있습니다. 너무나 분쟁이 심합니다. 해방무드라고요 핵을 감축한다고요 평화를 위한 정상회담을 한다고요 자신들의 이익이 걸리면 언제 손바닥 뒤집듯 번복할 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화과 나무잎이 얼마나 푸르렀는가를 이 시대를 보고 짐작하시길 바랍니다. 해산할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국제정세를 보고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3. 교회안에 이단사설과 적그리스도가 일어나고 교회안에 부패가 있을 것이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말씀드리기로 하겠고.
4. 개개인의 신자속에 망조가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은 이것을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말세에는 신자가 많지 않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 다시올때 믿음을 보겠느냐”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말씀의 뜻은 말세에 믿음있는 사람이 많은 것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적다는 말씀입니다. 교인은 많아도 성도는 적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교인은 여러명 모였지만 이중에 성도가 몇명인지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한국교인이 천만을 넘는다고 하지만 그 중 성도가 몇명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오직 성도의 숫자가 매우 적다는 것 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도의 무리중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교인이냐 성도냐 성경찬송끼고 교회나온다고 해서 다 성도는 아닙니다. 성도다와야 비로소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10처녀중 다섯 처녀만이 신랑을 영접했습니다. 메돌을 가는 두 사람중 한 사람만이 들림받았습니다. 밭을 가는 두 사람중 역시 한 사람만 데려감을 당했고 잠을 자는 두 사람중 역시 한사람만 휴거되었습니다. 꼭 반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쨋든 주님이 말씀하신 예화를 빌어 볼 때 최소한 반은 쭉정이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알곡입니까 쭉정이입니까 들림받는 반입니까 아니면 땅에 남는 반입니가 흔들어 흔들어 날라가는 세상에 소망을 둔 쭉정이가 아닙니까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보여드릴 믿음이 있습니까 보여드릴 순종이 있습니까 보여드릴 열매가 있습니까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많은 금액이 예금되어 있는 통장이 아닙니다. 땅도 아닙니다. 소원성취도 아닙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그 믿음가진 사람이 얼마 안된다는 말입니다.
둘째, 사람들의 마음이 이기작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만큼 이기적인 시대가 또 어디있었겠습니까 내주머니 채우기 위해서 히로뽕장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요구르트에 독극물을 넣는 것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이 쓰러지거나 자빠지거나 무슨짓이던 다 해먹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정서가 어떻게 되든 불량만화를 마꾸 찍어내고 담벼락에 벌거벗은 여자가 누워있는 영화 포스터를 마구 붙여 놓습니다. 돈만 벌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소위 대기업이란 자들이 없는자들이 어떻게 되든 바나나및 각종 농산물을 마구 수입합니다. 심지어 새우젖이나 콩나물장사까지 합니다. 얼마나 이기적인가하면 자기 딸같고 동생같은 여자를 마구 팔아먹기도 합니다. 세상에 이기적 이기적 해도 이렇게 악질적인 이기적인 시대가 또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믿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믿는 사람들이 더 이기적입니다. 내주머니 채우기 위해 믿지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상처를 입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믿는 자에게 상처입은 사람이 과연 예수믿으라면 믿을까요 그들의 영혼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이 내주머니만 채워지면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까지 이용해 먹습니다. 자기 사업위해, 자기 건강위해, 자기 소원 위해 하나님을 이용한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사업에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건강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간절한 소원이 있을때는 봉사도, 헌금도,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 합니다. 심방도 와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좀 잘된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오히려 하나님과 교회와 신앙을 귀찮게 여깁니다. 주일날 교회가는 것, 사업에 방해된다는 것입니다. 십일조와 작정헌금, 거지에게 동전던져주듯 생각나면 툭 던져놓습니다 신앙생활 잘하라고 심방하면 귀찮게 왜 왔느냐는 식입니다. 여러분이여, 이러한 믿는 자의 이기심이 믿지 않는 자들의 이기심보다 더 큰 죄임을 아십니까 이러한 시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해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아야 합닉다.
셋째, 사람들의 마음이 오만 불손해 진다고 했습니다. 소위 자유니 인귄이니 민주주의니 하면서 오만불손해 집니다. 어른도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도 필요없습니다. 부모도 선배도 필요 없습니다. 자기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다 적이고 타도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만불손한지 남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른이 충고하면 왜 간섭이냐고 칼로 찔러 죽이는 시대개 되었습니다. 내 말만 하고 내 주장만 관철시키면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야 죽거나 말거나입니다. 학생이 교수의 머리를 깍아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교회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역자에 대한 오만불손,신앙의 지도자들에 대한 오만 불손도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대한 오만불손도 문지입니다만 하나님께 대한 오만불손은 더욱 큰 문제입니다. 전시대는 “사람은 위대하다 따라서 하나님은 필요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세대는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하나님을 죽이자”고 달려듭니다. 많은 음악을 통해서 미술을 통해서 각종 문화와 예술이 하나님을 죽이자고 총동원 되고 있습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끌려가고 맙니다.
넷째, 다 졸고 잔다고 했습니다. (마25장) 슬기로운 다섯처녀와 미련한 다섯처녀 모두 다 졸고 잔걸 보니 참으로 말세는 피곤한 시대임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신자도, 교인도 다 잠니다. 물론 피곤하면 잠이 옵니다만 이, 시대를 돌아보고 내 영혼의 상태를 돌아보면 잠이 어디옵니까 깜짝놀라 오히려 오던 잠이 달아나야 하지 않겠습니가 졸고 잔다는 말은 긴장감이 풀어졌다는 말입니다. 죄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 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무감각해졌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피곤해지다 보니까 자기의 상태까지 잊습니다. 기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신랑예수 맞이할 준비가 됬는지 안됬는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망조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찬송해도 피곤해, 기도해도 피곤해, 성경 읽는 것도 피곤해.철야 나오라는 말도 귀찮습니다. 신나게 드라마게임을 보고 있는데 철야기도 나오라니 정말 싫습니다. “다 졸고 잘세”는 말세의 징조입니다.정신차리십시오. 다섯째, 진리를 떠나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에 관심을 갖는다고 했습니다. 목사가 설교하면 교회가 텅텅비고 코메디언이 와서 특별 순서하면 교회가 터지라고 모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망조를 보고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라오디에아 교회안에 있었던 망조가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소아시아의 7번째 교회로 말세교회를 의미합니다. 이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현실이 말세교회의 현실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 교회는 어떤 특색이 있었습니까
ㄱ. 미지근한 신앙압니다. 이말은 말세교회는 주님보시기에 구역질나는 교회가 된다는 말입니다. 미지근한것이 무엇입니까 죄와 의의 선이 분명치 않습니다. 하나님과 세상과의 구분이 희미합니다. 죄악에 대해서는 얼음같이 차갑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불같이 뜨거워야 할텐데 그렇지가 못하고 양면에 대해 미지근 했다는 말입니다.
ㄴ. 영적인 빈곤입니다. 눈먼것과 가난한 것과 헐벗은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겉은 그럴듯했지만 알맹이가 없었다는 밀입니다. 찬송은 부르지만 내용은 없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상달이 없습니다. 교회는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지만 그 속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건물은 웅장하지만 그 신앙은 초가집 같이 초라하다는 것입니다. 집사라고 해서 구원받은 과정을 얘기해 보랬더니 아무말도 못합니다. 모태신앙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보라고 했더니 주저주저 합니다. 혹 이야기 하더라도 그저 줏어들은 것만 갖다 댈뿐 체험에서 나온 경험담이 아닙니다.
ㄷ. 영적교만입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나는 부자라 부요한자라는 것입니다. 모태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물교회 제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이만큼 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교만은 하나님앞에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처럼 아무것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것 같이 보이는 교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ㄹ. 라오디게아 교회의 마지막 망조는 예수님을 문밖으로 쫒아 냈다는 것입니다. 이는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예수님이 종교의식 때문에 문밖으로 쫒겨 났습니다. 예수 없는 신앙,예수없는 찬송,예수없는 예배,예수없는 봉사,예수없는 수양회, 예수없는 세미나.가 되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련미 거둘 수 있을런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예배속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봉사와 기도속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망조가 내게 하나라도 있습니까
그렇다면 빨리 회개하십시오. 때가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심판날 최후로 웃는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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