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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마라톤 (딤후4:5-8)

본문

전 아시아인을 흥분시켰던 아세안게임에서 우리 한국과 일본과의 2위자리를 놓고 경쟁한 것은 두 민족에게 크나큰 관심거리 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는 그 보다도 더 큰 관심거리는 마라톤과 축구에서 한국을 이기느냐 였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마라톤과 축구에서 우리 한국을 이기려고 온 힘을 기울였지만 안타깝게 둘 다 우리 나라에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경기장에서 응원을 하러 나왔던 일본 소녀들의 우는 모습에서 한국을 이기지 못한 그들의 슬픈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 선수는 이미 2년전 바로셀로나 올림픽 때에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온 민족을 흥분하게 하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단거리인 100m달리기는 출발이 참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첫 출발이 좋아야 1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라톤은 출발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라톤은 출발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도리어 맨 앞에 나서지를 않으려고 합니다. 마라톤은 4
2.195km를 끝까지 완주하여 결승점에 골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라톤 경기는
1,
2,3등의 등수도 중요하고 시간기록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낙오하지 않고 달렸느냐 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도에 낙오하거나 탈락하지 않고 끝까지 경기를 마쳐서 꼴인 지점에 도착했느냐가 더 중요한 경기입니다. 물론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가와 나라의 명예를 걸고 달리기를 하여 1등을 하면 그 선수 개인의 영광 뿐만 아니라 나라의 영광도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올림픽 정신은 1등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달려서 꼴인 지점에 들어왔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요즈음은 마라톤에 출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완주를 하기 때문에 끝까지 달렸느냐는 올림픽정신이 약해지고 금메달을 딴 선수만 혼자 영광을 받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황영조의 금메달도 값진 것이지만 황영조 선수보다 40분 늦게 도착하기는 하였지만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미얀마 선수의 투혼도 참으로 값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신앙의 마라톤을 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마라톤은 1등을 한 사람에게만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우리의 달려 갈 길을 다하여 꼴인 지점에 들어온 사람들은 누구든지 상을 받게 되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서 바울 사도는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신앙의 마라톤은 일등을 한 사람만 상을 받고 일등을 한 사람만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킨 모든 성도들에게 모두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1등을 못했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바울과 같이 충성을 못하고, 아브라함 같이 아들은 받치는 믿음이 없고. 베드로와 같이 하루에 3천명씩 회개시키는 설교를 못하고 생명을 받치는 순교를 못했어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지킨 사람은 누구나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마라톤은 1등에게만 영광이 있지만 하늘나라 신앙의 마라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골인을 한 사람은 누구나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신앙이란 마라톤과 같은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출발선에서 출발을 하여10km,20km를 지나 꼴인 지점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선수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달리는 신앙의 마라톤 경기는 세계적으로 델레비젼에 방영되고 있지는 않아도 하나님 나라의 비디오에 녹화되고 있습니다. 이 신앙의 마라톤은 서로 1등하려고 경쟁하는 자세로 견제하면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낙오자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 위로하고 서로 힘을 주고 사랑으로 서로 도와 가면서 하나님 나라의 꼴인 지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라톤에는 여러번 고비가 있다고 합니다.처음 10km를 넘기기가 힘들고 또 30km를 지나기가 힘이 든다는 것이고 마지막 꼴인 지점에 다시 한번 고비가 있다고 합니다. 신앙에도 힘든 고비가 여러번 있습니다. 이 고비 때마다 믿음과 인내와 기도로 이기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겨 나아가야 골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지금 신앙의 마라토너 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씀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우리의 결승지점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고전9:26에서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 하였으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우리가 달리는 신앙의 마라톤은 목적이 없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도 왜 예수를 믿는지 왜 교회에 다녀야 하는지 기도는 왜 하는지 전도는 왜 하는지 분명한 목적을 모르고 향방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는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가 달려가야 할 꼴인 지점이 있다는 것이며. 달리는 것도 법칙에 따라서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달은 질은 재물을 얻기 위한 달음질도 아닙니다. 또 명예와 권세를 얻고 세상의 부귀 영화를 얻기 위한 달음질도 아닙니다. 우리의 달음질은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하늘 나라의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달리고 또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분명한 목표인 예수를 바라보고 힘차게 뛰시기 바랍니다. 희망의 신학이라는 책을 써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던 몰트만은 우리가 신앙의 달음질에서 분명한 목표를 가져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기에 소개하려 합니다.
1) 그리스도 중심으로 신앙의 달음질을 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들의 달음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그리스도를 떠나서 달음질하는 것은 신앙의 달음질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신앙인의 개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은 그리스도이며,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주님을 위하여 달려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자신의 육신의 종이 되여 살고 사탄의 종이 되여서 하나님의 일을 거역할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라톤을 할 때 주최측에서 선수들이 달려가는 길에 파란 금을 그어 놓았습니다. 그 선을 가장 가깝게 밟고 따라가야 가장 짧은 길로 골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선을 벗어나서 파란선이 없는 다른 엉뚱한 길로 달려가면은 탈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선수가 지름길로 간다고 파란선을 벗어나 다른 길로 달려서 꼴인을 해도 그는 탈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를 벗어나서는 실패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벗어나면은 패배한 신앙인 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온전한 열매를 맺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전도하는 것이 교회의 목표이고 신앙인의 목표입니다. 믿음의 확신이 없고 뜨거운 체험이 없는 사람은 전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뜨거운 체험을 한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전도가 되는 것이며 또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님을 받기 전에는 두려움 때문에 문을 꼭꼭 잠그고 숨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순절날 성령님의 뜨거운 체험을 하고 나서 그들은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꼭꼭 닫아놓았던 문을 열고 거리로 나와서 복음은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은 철학의 이야기나 윤리 도덕의 말을 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며 하늘로 승천하시고 곧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말만 전했으며 이 말을 듣는 이마다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하루에 3천명, 5천명, 허다한 무리들이 예수를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령님을 받고 전도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 것이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며 우리가 달려갈 길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교회의 목표는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이 그리스도의 몸이 서로 나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믿는 성도는 화평을 심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화평을 심어야 하며, 직장과 사회, 교회 안에서 화평을 만들고 심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달려가야 할 목표입니다.
4) 이웃을 돌보는 것이 교회와 성도들의 달려 갈 길입니다. 우리는 우리 신앙인들의 인생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힘차게 달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목적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사명을 꼭잡고 우리의 눈은 그리스도의 목표를 향하고 가슴을 펴고 힘차게 달려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도우셔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2. 마라톤은 참고 견디는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인내라는 말은 '휘포모네' 인데 이는 고통과 위험이 닥칠 때 체념하고 될 대로되라는 식으로 맡겨버리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휘포모네'는 어려운 일이 닥쳐올 때 그 어려움을 정면으로 대항하여 싸우고 극복해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이 '휘포모네' 신앙은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말하는 것이며. 고통과 아픔을 기쁘게 받아드리고 신앙으로 싸워 이기는 적극적인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이 '휘포모네' 신앙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소망의 신앙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힘든 고통을 참고이기는 신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라톤은 인내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할 수 없는 경기입니다. 100m 달리기는 인내가 필요 없습니다. 10여초 동안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하여 힘차게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라톤 경기에는 실제로 참기가 힘든 죽음과 같은 고통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군대에 있을 때 10km 구보를 하는데 군에서 하는 구보는 30kg나가는 군장과 총을 메고 철모를 쓰고 50분 정도 달리는 것입니다. 그 때 50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힘이 들고 고통스러운지 몰랐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 선수의 이야기가 신문에 나온 것을 읽어보니까 그가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하여 훈련을 하는 데 매일 50km을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 것도 평탄한 길만 달린 것이 아니라 높은 고갯길도 달려가기도 하는 힘든 것이 였습니다. 그는 그 훈련이 너무도 힘이 들어서 마주 달려오는 자동차에 뛰어들어 죽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수 없이 가지게 되였는데, 그 때 마다 자신을 낳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인내했다는 것입니다. 신앙도 참는 자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인내하지 못하는 자는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것이며 영광스러운 꼴인 지점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의 고난과 수치와 부끄러움을 참으시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민13-14장을 보면 모세가 12지파에서 대표를 뽑아서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고 그 정탐꾼이 40일 후에 돌아와서 보고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는데 12명중에 10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보고는 “가나안 땅의 사람들은 신장이 장대하고 성은 견고하게 세워졌고 그들은 무기가 좋고 군사는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메뚜기처럼 약하다”는 보고하였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우리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소동을 일으키기 시작을 합니다. 그들은 인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 앞에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헤쳐나가지 못했고 믿음으로 이겨 나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영광스러운 메인스타드움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히12:12에서 “무거운 것과 얶매이기 쉬운 것을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하셨습니다. 신앙의 마라톤은 세상에서 얽매이기 쉬운 죄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주님을 바라보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믿고 인내로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처음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아멘 하는 믿음으로 고향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믿음으로 가나안에 들어와서 살았으며 이삭을 제물로 받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끝까지 순종하고 지킴으로 그는 신앙의 마라톤에 위대한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다메섹으로 주를 믿는 자들을 잡으러 가다가 주님을 만나 주님께서 포악하고 핍박자인 자기를 불러 사도로 세우신 것을 믿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신앙의 마라톤에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붙들기 위하여 자신의 명예도 권세도 포기했고 자신의 사사로운 기쁨이나 영광을 버렸으며, 그는 주님을 위하여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배고픔과 추위를 당하면서 자신의 달려가는 길을 쉬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 후로는 나를 위하여 면류관이 예비 되여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주님을 붙들었으면 주님을 놓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내려놓지 마시고 이 십자가를 지시고 힘들어도 끝날까지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쉽게 포기해서는 안돼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끝까지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서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패인이라는 변호사가 있었다고 합니다.이 변호사가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처음으로 판사가 되여 재판을 하게 되였을 때 강력범으로 잡혀온 사람을 재판을 하게 되였다고 합니다. 그 죄가 무겁기 때문에 그는 형법대로 사형을 언도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 죄인이 사형언도를 받는 순간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젊은 재판장인 패인에게는 그것이 큰 충격 이였습니다. 비록 죄인이기는 했지만 한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생각과 사형언도를 받을 때 그 죄인의 모습이 늘 마음에 떠나지 않고 괴롭히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죄를 벌하는 판사의 자리를 내놓고 죄인들의 죄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되어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변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찾아가서 담임목사님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내가 한 생명을 죽였으니 회개하는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교회에 봉사를 하겠으니 한가지 일을 맡겨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 목사님께서는 그에게 종치는 종치기의 일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매일 오후 5시에는 종을 치는 데 패인 변호사는 평생을 종을 치는 일을 충성스럽게 해 나갔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가 70이 넘어서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시간이 가까이 와서 그는 병원에 입원을 했고 그의 자녀들이 병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패인 변호사는 정신을 잃고 사경을 헤메이면서도 종을 치는 시늉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자녀들이 안타까워서 “아버지 종은 이제부터 우리들이 계속해서 치겠습니다” 라고 말을 하니까. 그때 정신을 반짝든 패인변호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회로 가는 것이 였습니다. 자손들이 이제부터는 우리들이 종을 칠 테니까 병원으로 돌아가지고 권하니까 나는 하나님과 목사님께 죽을 때까지 종을 치기로 약속했으니 아직 살아 있으니 내가 종을 쳐야 한다. 내가 죽으면 그때는 너희들이 맡아서 종을 치라“고 말하면서 종탑에 올라가서 종줄을 붙잡는 순간 패인 변호사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종소리가 데그렁하고 울렸고 시간은 5시였습니다. 그는 종을 치는 작은 일이지만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믿음을 지키고 맡겨진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신일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을 끝까지 지키시고 감당하시기 바라시고 계십니다. 끝까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의 마라톤을 하는 선수입니다. 우리의 경주는 다른 사람보다 잘해서 1등을 하려고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과 싸움이요 또 사탄과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달리다가 중단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중단하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실망하시고 가슴아파 하시며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신앙의 달음질을 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이 낙심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달리는 길에 높은 언덕 길이 있어도 그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마십시오. 성령님께서 도우시고 힘과 용기를 주셔서 능히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달려 갈 길을 늦추지 마십시오. 우리의 갈 길을 늦추고 쉬게 되면 사탄 이가 우리를 유혹하여 낙오자가 될 수 있습니다. 더욱 힘차게 달리시기 바랍니다. 영광의 꼴인 지점에 거의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황영조 선수가 골인 지점에 들어올 때 군중들이 모두 일어나서 영광의 박수를 친 것처럼 지금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결승점에 나오셔서 우리를 맞이할 것이며, 천군 천사들과 우리들 보다 앞서서 천국에 가신 성도들이 일어나서 우리를 환영하며 맞이할 것입니다. 신앙의 마라톤은 끝까지 중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목표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려가십시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서로가 위로하고 힘을 주며 끝까지 함께 달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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