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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가는 길 (딤후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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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신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sphynx가 어느 날 동네에 한 구석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냈다. "아침에는 네 발로 기어다니다가 낮에는 두발로 걷고 저녁 이 되면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 여기에 대하여 Oedipus왕이 다음과 같이 알아 맞혔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이다.어릴때는 기어 다니니 네 발이요, 젊어서는 건강하게 걸어다니고 뛰기도 하니 두 발이며, 늙어서는 지 팡이로 다니니 세 발이다." 그 후 Oedipus왕은 이 괴물 sphynx를 죽였다고 한다. 이것의 하나의 우스운 수수께끼에 불과하지만 짧고 무상한 인생을 잘 표현한 이야기다. 인생살이는 생각할수록 짧고 덧없다. 어제가 소년시절이었 던 것 같은데 벌써 청년이요, 바로 몇 년전에 팔팔한 청춘을 자랑한 것 같은데, 어느새 백발 노년기가 찾아온다. 그래서 벧전 1:24에서는 인생을 잠깐 푸르다가 시들어 버리는 풀로 비유하는가 하면, 약 4:4에서는 햇빛에 으스러져 버리는 안개로 비견하였다. 한 때 크게 유행했던 '모모'라는 노래가 있었다. 이 동화의 작가 마이클 언데는 이 책에서 시간을 3형제로 비유하였다. 맏아들은 과거요,
둘째는 미래이고, 막내는 현재이다. 과거 와 미래는 무한한 시간의 모래 벌처럼 광대하게 펼쳐져 있으 나 현재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끼여서 한 순간의 시계 초침 소리 정도를 내면서 자꾸 흘러 과거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 린다. 거기에 우리의 짧은 인생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 서 1:1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 다"라고 탄식한다. 사실 육체만을 생각한다면 우리 인생이란 파도 위에다 재비 가 물장구 한 번 치고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이토록 짧은 인생 속에서 우리 성도들의 가는 길은 무엇이 겠는가
I. 선한 싸움을 싸워가는 길이다. 교회를 그 성격상으로 구분할 때 천상의 승리적 교회와, 지 상의 전투적 교회로 나누기도 한다. 천상의 승리적 교회는 믿음의 개선장군들, 즉 승리한 성도 들의 모임이요, 지상의 전투적 교회는 Satan의 세력들, 죄악, 불의와 선한 싸움을 싸워가는 현세적 성도들의 모임이다. 이렇게 보건데, 우리 성도들은 지상의 전투적 교회에서의 군병들이다. 거룩한 전쟁에 대비하여 소집명령을 받은 자들로 서, 현실적으로 그 전투에 매일매일 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전투에서 물러설 수도 없고, 비겁 하게 주저앉을 수도 없다. 찬송가에서 처럼 "우리는 예수 따라가는 십자가의 군병"들 이다.
그런데 이 선한 싸움에는 꼭 지켜야 할 rule이 있다. 이 rule을 우리는 충실히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권투선수가 ring위에서 싸울 때 반칙하면 처음엔 심판에 의 하여 주의를 받는다. 그러다가 반칙이 반복되면 퇴장 당한다. 우리 성도들도 반칙으로 살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다가, 나중에는 구원 의 ring위에서 퇴장 당하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선한 싸움이란 rule을 잘 지키는 fair play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싸움, 깨끗한 싸움은 그 자체가 벌써 승리인 것이다. 19세기초 구라파를 파죽지세로 휩쓸던 Napoleon을 1815년 6월 18일 영국의 Wellington장군이 Waterloo전투에서 깨끗하 고 명예롭게 이겼다. 그 때 세상에는 다음과 같은 명언이 유행 했다고 한다. "Waterloo전투는 Eton학교의 운동장에서 이미 이긴 전쟁이 었다". 우리가 아는대로 Wellington장군이 졸업했던 그 당시의 영 국Eton학교는 축구로도 유명했지만, 훌륭한 sportsmanship으 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의와 싸우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되 주의 뜻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사는 성도들의 생활태도는 숭고 하고 아름다운 생애이다.
Ⅱ. 성도들의 가는 길은 경주 course와 같다. 경주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와 체력이다. 출애굽한
Israel백성들은 Canaan에 골인하기까지 강인하게 온갖 어려움 을 참았다. 참
Israel백성인 우리 성도들도 천국문을 통과하기까지는 절대로 좌절해서도, 실망해서도 안된다. 절망의 어둠이 짙을수록 희망의 새벽은 더욱 가까워 온다는 밝은 환상을 가져야만 한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올라가는 생활을 한다."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자전거 타기에 비유하는 것을 들었다. 자전거 타는 사람은 균형을 잘 잡고, 비틀거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빨리 처음부터 몰아 부쳐서도 안된다. 시종일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도 균형감각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뜨겁되 너무 달아오르지도 말고, 또 너무 냉랭하지도 않게 말씀과 기도로 정상체중을 유지하여야 한다. 가정과 직장, 교회에 무리 없이 충실한 태도, 이것이 올바 른 신앙인의 자세인 것이다. 김천택의 시조에서처럼 "잘 간다고 달리지도 말고, 못 간다 고 쉬지도 않는" 교회 중심의 꾸준한 신앙생활이 중요한 것이다. 말씀과 기도 위에 굳게 서 있는 신앙인은 한 때 시련과 환 란이 닥치더라도 말씀으로 잘 이겨낸다. 파도를 잘 타는 선장이라야 훌륭한 선장인 것이다. 갈 6:9에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치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다. 롬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라"고 했 으며 롬 8:17에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 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고 했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 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 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 모두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이다.
Ⅲ. 믿음을 지키는 길이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과의 약속 위에 굳게 서서 믿음 을 신실히 지켜가기 바란다. 합 2:4, 롬 12:17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벧전 1:7에서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 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 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전천후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란다. 어떤 자매님께서 40일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40일을 마치는 바로 그 날 딸이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에 들어왔다. 화가 난 자매님이 "이런 하나님이라면 난 안 믿겠다"선언하 고 나서 그날로 신앙을 팔아 버렸다. 이것은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하나님의 차원을 인간의 차원으로 놓고 본 것이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말한다. 사 55:9에 "하늘이 땅보다 높 음같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 으니라" 만사를 유익하고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되 조건을 달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도와 도리에 조건이 없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에도 어떠한 단서나 조건이 있을 수 없다. 욥은 일시에 일곱 아들과 세 딸을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그 의 신앙고백을 보라. "주신 자도 여호와 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 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라" 항상 읽는 말씀이지만 욥은 참 크리스챤의 모델이다. 독일 속담에 "Kommt Zeit, kommt Rat"라는 말이 있다. 때가 오면 좋은 수가 터지니 때를 기다리라는 뜻이다. 김상옥의 "백자부"라는 시 속에는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주의 백성들은 찬 서리, 눈보라에도 신앙의 절개는 늘 푸르 러야 한다. "주 향한 일편단심이 변할 줄이 있으랴" 이런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란다. 주님께서 쓰신 고난의 가시 면류관 위에 유대인의 왕 이 라고 쓰인 명패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피흘리시는 주님의 모습만 보지 마시고, 한 차원 위의 "왕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힘을 얻는 여러분이 되 시기를 바란다. 결론으로 요약한다. 성도의 길은 선한 싸움을 싸워가는 길이다. rule을 잘 지키 자. 성도의 길은 경주course와 같다. 인내로 승리하자. 성도의 길은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길이다. 어렵다고 좌절하지 말자. 이런 훌륭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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