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기 전에 (딤후4:9-21)
본문
할렐루야! 가족과 함께 즐거운 추석명절을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게 가을이 깊어 저 감을 느낍니다. 가을인가 하면 곧 겨울을 맞게 될텐데 가진 것 없는 서민들에겐 결코 겨울 이 낭만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말씀 그대로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가리켜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 서신서는 그 내용 면에서 대부분이 교역자가 교회를 목양하는데 필요한 말씀들이 바울의 간증과 더불어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중에서도 오늘 읽은 디모데후서는 목회생활에 대한 격려의 글로서 사 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 갇혀서 자기의 앞날이 얼마 남지 아니한 것을 알고 쓴 편지입니다. 특히 4:1-8절까지는 그의 신앙의 척도를 가름하는 신앙고 백적 말씀이 눈물겹도록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 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 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지금껏 주님을 위하여 일생을 받쳤건만 그것도 모자라서 자기의 죽음을 '관제'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받쳐지기를 서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장차 내세에서 하나님께 받을 상급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자기를 알아주지 아니하고 차디찬 감옥에서 죽을 망 정, 하늘나라의 의로우신 재판관이신 주님이 의의 면류관을 준비하고 계심 을 믿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내세에 대한 소망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사랑하는 제자요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마지막 편지를 띄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유서요, 그의 신앙고백이며, 신앙간증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9-22절까지의 말씀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서신의 마 지막 부분이 되는데, 바울은 편지 끝머리에 디모데에게 몇 가지 부탁을합니다.
첫째는, 겨울 전에 디모데 너가 속히 좀 내게로 오라는 것이고(9, 21)
둘째는,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11절)
셋째는, 가보의 집에 둔 겉옷과(13절)
넷째는,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13절). 그리고 다섯 번째의 부탁은, 부탁이기보다는 오히려 주의사항에 해당되는 말씀으로, 배교자들에 대한 조심을 당부했습니다. 당시 바울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모 두 떠나가고 누가만 그의 곁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때문에 부자유스런 수 감생활에 있어서 마가와 같은 조수가 필요했으므로 그를 데리고 오라고 부 탁한 것이고, 또한 가보의 집에 둔 겉옷과 책을 가져오라고 하였는데, 가보는 드로아에 있는 사람으로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의 70인 제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전도 다닐 때에 그 집에 유숙한 일이 있었으므로 그 집에 겉옷을 맡겨두었던 것입니다. 아마 춥지 아니할 때에 벗어두었던 겉옷을 감옥에서 월동할 각오을 하고 가져오라고 한 것입니다. 또 맡겨둔 책도 가져오라고 하면서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성경은 파피루스, 즉 갈대 잎으로 만든 종이나, 송아지 양가죽에다 가 쓰여졌습니다. 바울이 부탁한 책은 가죽(헬라어:비블라인)에 쓴 아주 귀한 책이었습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으로, 겨울이 오기 전에 성경책을 가지고 오라고 한 것은, 성도들이 종말이 오기 전에 성경말씀을 준비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절박하게 디모데를 부르고 있는 이 말씀 속에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더 있는데, 그것은 바울의 옥중 서신으로 알려진 에베소서, 빌립 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나 사도행전 28장 끝 부분의 내용과 본서를 비교 해 볼 때 바울의 옥중에서의 입장이 크게 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첫째로, 전에는 셋집을 가질 만큼 자유스러웠으나 지금은 갇혀 있다는 점,
둘째로, 전에는 누구나 접촉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위험이 따를 만큼 어 렵다는 점(1:16-17),
셋째로, 전에는 바울 곁에 많은 친구와 조력자 그리고 동역자들이 있었으 나 지금은 누가와 단 둘만이 있다는 점 (4:10-12), 끝으로, 전에는 곧 풀려나리라는 희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순교를 각오하 고 있다는 점(4:6)등 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바울이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교차하며 사람이 그리웠고, 더욱이 믿음의 아들이며 후계자인 디모데가 옆 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속히 오라고 했고, 그것도 겨울 전에 어서 속히 오라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의 "겨울 전에 어서 오라"는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 에게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하고 또 어떤 촉박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겨울이면 어쩐지 춥고 쓸쓸하고 음산하고 적막한 고독을 느끼게 하는 계 절입니다. "겨울 전"이라는 바울의 말에서 비단 계절적인 겨울만이 아니라 인생의 다른 측면의 겨울도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계절적인 겨울과 함께 인생의 겨울, 영적 세계의 겨울도 아울러 생각하면서 같은 은혜를 받고저 합니다.
1. 계절의 겨울이 있습니다. 봄이 지나면 여름, 여름이 지나면 가을, 그리고 다음에는 겨울이 옵니다. 이것은 자연이 갈라놓은 어쩔 수 없는 계절의 법칙입니다. 봄은 생명이 싹트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성장하는 계절이요, 가을은 만물 이 열매를 맺는 계절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신비입니다. 그러나 겨울은 모 든 생명의 성장이 정지된 채 깊은 잠에 빠지는 계절입니다. 어느 시인이 [겨울 밤] 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전등이 떤다 밤바람이 물결처럼 설레고 회색 하늘이 호흡 없는 침묵에 잠긴다 밤에도 겨울밤은 더구나 쓸쓸하구나. 겨울은 매섭게 추울 뿐 아니라 침묵에 잠긴 고독의 계절이며 쓸쓸한 죽음 과 같은 계절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이 오기 전에 이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슬기로운 사람들은 추위가 닥치기 전에 월동에 필요한 난방을 비롯해서 의복준비, 식량준비를 철저하게 합니다. 한국의 초겨울은 김장 담그는 일이 가정마다의 큰 행사로 되어 있습니다. 겨울에 대비하는 옛부터 내려오는 하나의 지혜인 것입니다. 겨울을 앞두고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대비책 없이 살과 같이 빠른 세월 속에서 별안간에 추운 날씨를 만나게 되면 그것만큼 당혹하고 고생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지구상에 대부분의 나라가 계절이 다 있습니다(남, 북극, 중동). 그러나 극 히 일부분의 지역은 계절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불행한 것이다. 계절이 있다는 것은 다음 계절을 기다리고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봄이면 여름을 준비하고 여름이면 가을, 가을이면 겨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자세는 누구든지 진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미지의 시간은 모두 겨울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앞길이 펼쳐질지 우리는 아무도 우리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추워질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노(老)목회자 바울은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겉옷을 가져오라고 당부했 습니다. 순교를 앞둔 늙은 사도의 갇힌 감옥은 뼈가 시리도록 추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는 날까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굳은 일념으로 "나의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되었노라"며, 하루가 될지 이틀이 될지 모르는 남은 생애를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추운 계절을 지나기 위해서는 만반의 월동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2. 인생의 겨울이 있습니다. 중국의 작가인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1년은 4계절 이 있고, 하루는 아침, 낮, 저녁, 밤이라는 때가 있는데, 이렇듯 인생에게도 생물학적 계절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젖먹이시절인 유아시절, 소년시 절, 청년시절, 노년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가을인 노년 시대를 지나면 인생의 겨울인 죽음이 옵니다. 계절의 겨울이 그렇듯 인생의 겨울 또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이 인생의 겨울이 계절의 겨울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계절의 겨울은 봄, 여름, 가을 다음에 어김없는 자연법칙에 따라 순서대로 오지만, 인생의 겨 울은 유아나 소년이나 청장년의 순차를 무시하고 곧바로 죽음이라는 겨 울의 계절로 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에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언제 우리 앞에 인생의 겨울 이 닥쳐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계절을 부인할 수 없듯이 다가오는 인생의 겨울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인생은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생은 단 한번 밖에 없는 목숨이라는 점에 우리는 깊은 유의 를 해야 합니다. 두 번, 세 번 경험할 수 있는 인생이라면 연습 삼아 인생 을 살 수 있겠지만 인생의 왕복 차표는 발행되고 있지를 않습니다. 한번 떠나면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작가 체호프는 "이미 살아와 버린 하나의 인생은 초벌이고 다른 하나가 정서라면 얼마나 좋겠어요"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인생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했습니다. 정해진 죽음을 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3.역사의 겨울 즉 세상 종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 세계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 을 시작하셨다고 했습니다. 시작이 있다는 말은 끝이 있다는 말도 됩니다. 구약 성경은 구세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예언한 성경이고, 신 약성경은 다시 오실 심판주 되시는 에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한 성경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세상의 종말과 동시에 예수님 의 재림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 설교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24:32,33)고 하셨고, 천사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갈릴리 사람 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고 증거 했습니다. 요한 계시록 끝 부분에서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시대 "내가 진실 로 속히 오리라"(계22:20)고 재확인했습니다. 지금 세계는 성경이 예언한 모든 징조가 하나 하나 이 역사 속에 성취되 어 가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는 깨여서준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계절의 겨울이건, 인생의 겨울이건, 세상 종말을 의미하는 겨울이건, 지금 우리 앞에 속히 임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어서 오라"며 그렇게도 기다린 것은, 죽기 전에 그의 목회철학을 전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어서오라"는 것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입니다. 머뭇거리다간 해야 할 일을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서오라"는 말은 지체하지 말고 대비하라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겨울이 오기 전에 열심히 준비합시다. 인생종말이 오기 전에, 세상 종말이 오기 전에 준비하십시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겨울이 우리에게 묻는 날이 있으리라 여름엔 무엇을 했느냐고…" 지금 늦었다고 생각할 때, 이 때가 가장 빠른 것입니다. 신앙도, 우리의 생활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주님 뵈올 때 한 점 부끄럼 없이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아멘-
첫째는, 겨울 전에 디모데 너가 속히 좀 내게로 오라는 것이고(9, 21)
둘째는,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11절)
셋째는, 가보의 집에 둔 겉옷과(13절)
넷째는,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13절). 그리고 다섯 번째의 부탁은, 부탁이기보다는 오히려 주의사항에 해당되는 말씀으로, 배교자들에 대한 조심을 당부했습니다. 당시 바울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모 두 떠나가고 누가만 그의 곁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때문에 부자유스런 수 감생활에 있어서 마가와 같은 조수가 필요했으므로 그를 데리고 오라고 부 탁한 것이고, 또한 가보의 집에 둔 겉옷과 책을 가져오라고 하였는데, 가보는 드로아에 있는 사람으로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의 70인 제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전도 다닐 때에 그 집에 유숙한 일이 있었으므로 그 집에 겉옷을 맡겨두었던 것입니다. 아마 춥지 아니할 때에 벗어두었던 겉옷을 감옥에서 월동할 각오을 하고 가져오라고 한 것입니다. 또 맡겨둔 책도 가져오라고 하면서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성경은 파피루스, 즉 갈대 잎으로 만든 종이나, 송아지 양가죽에다 가 쓰여졌습니다. 바울이 부탁한 책은 가죽(헬라어:비블라인)에 쓴 아주 귀한 책이었습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으로, 겨울이 오기 전에 성경책을 가지고 오라고 한 것은, 성도들이 종말이 오기 전에 성경말씀을 준비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절박하게 디모데를 부르고 있는 이 말씀 속에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더 있는데, 그것은 바울의 옥중 서신으로 알려진 에베소서, 빌립 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나 사도행전 28장 끝 부분의 내용과 본서를 비교 해 볼 때 바울의 옥중에서의 입장이 크게 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첫째로, 전에는 셋집을 가질 만큼 자유스러웠으나 지금은 갇혀 있다는 점,
둘째로, 전에는 누구나 접촉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위험이 따를 만큼 어 렵다는 점(1:16-17),
셋째로, 전에는 바울 곁에 많은 친구와 조력자 그리고 동역자들이 있었으 나 지금은 누가와 단 둘만이 있다는 점 (4:10-12), 끝으로, 전에는 곧 풀려나리라는 희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순교를 각오하 고 있다는 점(4:6)등 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바울이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교차하며 사람이 그리웠고, 더욱이 믿음의 아들이며 후계자인 디모데가 옆 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속히 오라고 했고, 그것도 겨울 전에 어서 속히 오라고 재촉을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의 "겨울 전에 어서 오라"는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 에게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하고 또 어떤 촉박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겨울이면 어쩐지 춥고 쓸쓸하고 음산하고 적막한 고독을 느끼게 하는 계 절입니다. "겨울 전"이라는 바울의 말에서 비단 계절적인 겨울만이 아니라 인생의 다른 측면의 겨울도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계절적인 겨울과 함께 인생의 겨울, 영적 세계의 겨울도 아울러 생각하면서 같은 은혜를 받고저 합니다.
1. 계절의 겨울이 있습니다. 봄이 지나면 여름, 여름이 지나면 가을, 그리고 다음에는 겨울이 옵니다. 이것은 자연이 갈라놓은 어쩔 수 없는 계절의 법칙입니다. 봄은 생명이 싹트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성장하는 계절이요, 가을은 만물 이 열매를 맺는 계절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신비입니다. 그러나 겨울은 모 든 생명의 성장이 정지된 채 깊은 잠에 빠지는 계절입니다. 어느 시인이 [겨울 밤] 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전등이 떤다 밤바람이 물결처럼 설레고 회색 하늘이 호흡 없는 침묵에 잠긴다 밤에도 겨울밤은 더구나 쓸쓸하구나. 겨울은 매섭게 추울 뿐 아니라 침묵에 잠긴 고독의 계절이며 쓸쓸한 죽음 과 같은 계절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이 오기 전에 이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슬기로운 사람들은 추위가 닥치기 전에 월동에 필요한 난방을 비롯해서 의복준비, 식량준비를 철저하게 합니다. 한국의 초겨울은 김장 담그는 일이 가정마다의 큰 행사로 되어 있습니다. 겨울에 대비하는 옛부터 내려오는 하나의 지혜인 것입니다. 겨울을 앞두고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대비책 없이 살과 같이 빠른 세월 속에서 별안간에 추운 날씨를 만나게 되면 그것만큼 당혹하고 고생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지구상에 대부분의 나라가 계절이 다 있습니다(남, 북극, 중동). 그러나 극 히 일부분의 지역은 계절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불행한 것이다. 계절이 있다는 것은 다음 계절을 기다리고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봄이면 여름을 준비하고 여름이면 가을, 가을이면 겨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는 자세는 누구든지 진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미지의 시간은 모두 겨울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앞길이 펼쳐질지 우리는 아무도 우리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추워질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노(老)목회자 바울은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겉옷을 가져오라고 당부했 습니다. 순교를 앞둔 늙은 사도의 갇힌 감옥은 뼈가 시리도록 추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는 날까지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굳은 일념으로 "나의 당한 일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되었노라"며, 하루가 될지 이틀이 될지 모르는 남은 생애를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추운 계절을 지나기 위해서는 만반의 월동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2. 인생의 겨울이 있습니다. 중국의 작가인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1년은 4계절 이 있고, 하루는 아침, 낮, 저녁, 밤이라는 때가 있는데, 이렇듯 인생에게도 생물학적 계절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젖먹이시절인 유아시절, 소년시 절, 청년시절, 노년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가을인 노년 시대를 지나면 인생의 겨울인 죽음이 옵니다. 계절의 겨울이 그렇듯 인생의 겨울 또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이 인생의 겨울이 계절의 겨울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계절의 겨울은 봄, 여름, 가을 다음에 어김없는 자연법칙에 따라 순서대로 오지만, 인생의 겨 울은 유아나 소년이나 청장년의 순차를 무시하고 곧바로 죽음이라는 겨 울의 계절로 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에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언제 우리 앞에 인생의 겨울 이 닥쳐올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계절을 부인할 수 없듯이 다가오는 인생의 겨울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인생은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인생은 단 한번 밖에 없는 목숨이라는 점에 우리는 깊은 유의 를 해야 합니다. 두 번, 세 번 경험할 수 있는 인생이라면 연습 삼아 인생 을 살 수 있겠지만 인생의 왕복 차표는 발행되고 있지를 않습니다. 한번 떠나면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작가 체호프는 "이미 살아와 버린 하나의 인생은 초벌이고 다른 하나가 정서라면 얼마나 좋겠어요"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인생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했습니다. 정해진 죽음을 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3.역사의 겨울 즉 세상 종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 세계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 을 시작하셨다고 했습니다. 시작이 있다는 말은 끝이 있다는 말도 됩니다. 구약 성경은 구세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예언한 성경이고, 신 약성경은 다시 오실 심판주 되시는 에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한 성경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세상의 종말과 동시에 예수님 의 재림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 설교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24:32,33)고 하셨고, 천사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갈릴리 사람 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고 증거 했습니다. 요한 계시록 끝 부분에서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시대 "내가 진실 로 속히 오리라"(계22:20)고 재확인했습니다. 지금 세계는 성경이 예언한 모든 징조가 하나 하나 이 역사 속에 성취되 어 가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는 깨여서준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계절의 겨울이건, 인생의 겨울이건, 세상 종말을 의미하는 겨울이건, 지금 우리 앞에 속히 임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어서 오라"며 그렇게도 기다린 것은, 죽기 전에 그의 목회철학을 전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어서오라"는 것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입니다. 머뭇거리다간 해야 할 일을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서오라"는 말은 지체하지 말고 대비하라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겨울이 오기 전에 열심히 준비합시다. 인생종말이 오기 전에, 세상 종말이 오기 전에 준비하십시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겨울이 우리에게 묻는 날이 있으리라 여름엔 무엇을 했느냐고…" 지금 늦었다고 생각할 때, 이 때가 가장 빠른 것입니다. 신앙도, 우리의 생활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주님 뵈올 때 한 점 부끄럼 없이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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