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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살후2: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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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북극 탐험가가 북극해의 수심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첨단 장비가 개발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무거운 추를 달아맨 줄을 늘어 뜨리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첫날 저녁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떻게 썼습니다. '너무 깊어서.라고. 그는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너무 깊어서라고 썼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감사할 이유와 조건이 몇가지나 되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백지 위에 그 조건들을 써 내려가다가 큰 글씨로 이렇게 썼 습니다. 너무 많아서', '너무 커서', 너무 놀라와시'라고 바울은 본문 13절에서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여호와 하나님께 감시하는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감사를 마땅히 할 것이라고 했고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감사는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 인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밝히고 있는 감사의 조건은 보다 영적인 것이며 차원 높은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세 가지로 요약 됩니다
1.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택했다는 것은 많은 것들 증에서 특별히 뽑혔다는 것입니다. 제 막내 아이가 국민학교 다니던 어느 해 자기네 반에서 반장으로 뽑힌 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뽑혔느냐고 물었더니 어떤 아이 하고 경선이 벌어졌는데 의견 발표를 잘했더니 여자 아이들이 표를 몰아줘 서 됐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반장이 되면 그냥 말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네 반아이들한테 한 턱을 내야 된다는 것 입니다. 자기네 반에서 뽑힌 것도 자랑스러워서 어깨를 뻐기고 으시대면서 한 턱을 내야된다는게 우스꽝스러웠지만 애비된 사람 입장에서 그게 싫진 않았습니다. 좋은 일에 뽑힌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감사의 조건은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선택은 증요하고 신증한 사건이었음을 발견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나 아무떻게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민족 지도자나.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7:6-8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고 에베소서 l:4-6을 보면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왜 우리를 선택 하셨을까요.
첫째 작은 자이기 빠문힙퍼다. 신명기 7:7을 보면 '려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 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증에 가장 적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큰 것, 좋은 것, 홈없는 것올 고릅니다만 하나님은 세계 민족 가운데서 가장 작은 민족을 고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세계 민족 중에 뛰어난 민족이 되게 하셨습니다. 작은 것도 하나님의 손에 선택되면 큰 것이 됨니다. 추한 것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쓸모 없던 것도 가장 요긴한 것이 됩니다. 죄인도 의인이 됩니다.
둘째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7:8을 보면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라 고 했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선택의 절대 조건입니다. 사랑은 모든 조건을 초월합니다. 국경도, 인종도, 학벌도. 가문도, 그 외의 모든 조건들도 무시 해 버럽니다. 마치 로미오와 쥴리엣이 철천지 원수인 가문의 장벽을 넘어 사랑의 꽃을 피운 것처럼 사랑은 모든 장애를 극복합니다. 부부의 경우를 보면 [그 남자와 그 여자] 도무지 외양이나 조건이 맞을 것 같지 않는데 행복한 삶을 멋지게 꾸려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가문이나 조건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사람들인데 블협화음이 들리고 결국은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사랑하지 않 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으로 선택될만한 이유갈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블구하고 [사랑]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선택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 사랑에 감격하고 감사한 것입너다.
셋째 하나님의 뜻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5을 보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라고 했 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하나님 마음대로 라는 것입니다. 누구의 부탁이나 지시에 의헤서 결정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좋아 하시는 뜻을 따라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뜻과 행동을 간섭하십니다만 인간은 하나님의 뜻이나 섭리를 간섭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자의에 의한 결정인 것입니다. 만일 오늘이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파멸시키기로 뜻올 정하신다면 우리의 운명은 오늘로 끝이나고 맙니다. 러시아와 일본은 앞을 다투어 핵 폐기믈을 동해에 버리는가 하면 북한은 핵 사찰을 다시 거부했습니다. 핵 문제는 금세기 인류의 최대 공포로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핵 무기가 지니는 대량 살상력과 파괴력이 크고 무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무서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죄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하나님은 심판을 유보하고 계십니다. 이유는 아직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셨어야 했습니다만 아직도 사랑하기 때문에 심판의 날을 연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하시고, 지키시는 그 사랑에 감사해야 합니다.
넷째 하나럼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함입니다. 에베소서 l:6을 보면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3:21을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6은 선택의 이유가 찬미에 있으며, 이사야 43:2l은 창조의 원인이 찬송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지으시고 택하신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입을 다물고 찬송을 부르지 않는다든지, 찬송을 게을리 한다든지, 찬송을 소흘히 취급하는 것은 창조하시고 선택하신 하나님 의 뜻을 거역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는 찬송이 풍성해야 합니다. 얼마전 어떤 분이 보낸 상담편지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젊은이들에게 알맞는 노래를 부르게 헤야 한다면서 록 음악이나 랩 스타일의 곡에다 가사를 붙여 부르는데 그것이 바 람직한가]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오 예, 예수영광, 오 예, 예수찬양' 이런 스타일로 노래를 만들어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보급을 했더니 아이들이 신바람 나게 부르더라는 것입니다. 발랄하고 생기넘치는 그리고 영감 있는 찬송을 부르는 것은 장려되 어야 하지만 엉덩이를 혼들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면서 오 예, 예수, 오 예. 할렐루야'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찬송부르는 소리와 태도는 그 교회의 영적 건강 상태를 결정합니다. 찬송 소리와 태도는 그 사람의 신앙의 건강 상태를 보여 줍니다 죽은 시체는 노래하지 못합니다 수술환자는 노래 부를 수가 없습니다. 열흘을 굶은 사람은 큰 소리로 노래할 수가 없습니다. 찬송은 영력과 영감과 비례합니다. 내가 태어난 이유. 내가 사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 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성령님으로 거륵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면 넝령의 거룩하게 하심파'라고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한데 어울려 사는 데는 [거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부가 서로 누가 더 거룩한가를 내기할 필요도 없고 거룩한 티를 낼 필요도 없습니다. 참 거룩은 속에 있는 것이지 겉으로 표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내적 경건이 소중한 것입니다. 부부라면 한 방을 쓰고 함께 침실에 들어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거룩해야 된다면서 부부가 딴 방을 쓴다든지 별거를 하는 것은 비정상입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남편이 여보라고 아내를 부르면 걸걸한 목소리로 '할렐루야'하는 것도 비정상입니다. 상냥한 목소리로 왜 그러세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는 거룩해야 합니다. 문제는 나는 내 힘으로 나를 거룩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더러운 죄는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내 추한 행실과 더러운 삶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거룩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하는 사람이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반팔 디셔츠를 입고 갈 수 있겠습니까 물론 정장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내가 거룩해야 합니다. 문제는 내가 나를 거룩 하게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그 문제를 성령님께서 쭐어주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날마다 나를 거룩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3. 믿음으로 구원음 얻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13절 끝을 보면 '신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즉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셨기 때문에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의 통계국이 밝힌바에 따르면 미국 국민 전체의 5%가 고 소득층으로 연 평균 14만 5천 달러의 소득을 올린데 반해 전체 인구의 14. 5%에 해당하는 3690만 명은 빈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빈민으로 취급해야 하는 인구가 반절을 넘을 것 이라고 합니다. 증요한 것은 누가 더 감사하느냐 입니다. 잘 사는 사람. 많이 가진 사람, 고소득층일수록 감사가 적고 욕구불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런 사람들일수록 소유욕과 성취욕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드릴 감사의 결정적 조건은 '구원입니다. 얼마전 지방에 있는 모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설교를 마치고 나오는데 반갑게 인사를 청하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기억이 잘 안나는 사람들이어서 일상적인 인사를 건네고 지나 치려는데 따라오며 말을 걸었습니다. 목사님은 기억을 못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4년전 목사님의 도움으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를 하고 있는 X X X 목사'라는 것입니다. 이 얘기 저 애기를 나누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더니 친구 목사님의 소개로 세 학기 동안 장학금을 도와 주었던 분이었습니다. 사실 14년전의 제 생활은 어려웠습니다만 아끼고 아껴서 도와준 분이 목사가 되어 제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자주 연락드리는 것이 폐가 될 것 같아서 일부러 연락을 드리지 않았노라면서 그러나 새벽마다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노라고 했습니다. 저는 .새벽마다' 그 한마디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 때문에 그날도 지갑을 털어서 그 목사님 주머니에 넣어 주면서 '새벽마다 계속 기도해 달라 '고 부탁했습니다. '새벽마다'의 값을 비싸게 지블한 셈입니다. 오직 믿음 한 가지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그 은총을 무엇으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어린 아이가 열 살이 되면 대략 6천개의 낱말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중 부모를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라는 말 입니다. 성인이 되면 평균 2만 6천 단어를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단어도 역시 '감사합니다'인 것입니다.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인간의 용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감사합니다'인 것입니다. 우리에겐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할 조건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생명 끝나는 날까지 못다 부를 감사의 노래가 있습니다. 주님,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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