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조상의 신앙 (딤후1:3-8)

본문

우리 장로교의 100년사는 민족의 영욕 속에서 호흡을 같이했으며, 그 수난 속에서 부흥의 기적을 생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놀라 운 축복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계셨으며, 또한 믿음의 선배들의 위 대한 노고가 서려 있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27년전, 즉 1959년 우리 총회가 불행하게도 합동측과 분열되었을 때 장로교는
2,250교회에 52만 교인이었습니다. 아마 둘로 분열이 되었으 니까 우리 교단 교회는
2,000교회에 62만 교인이었습니다. 금년 1986 년 8월말 통계에 의하면 4,839교회에,
1,477천여 교인이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5,000교회에 150만 교인을 위해서 열심히 전도한 결실이 거의 목표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또한 초교파적으로 약 30년 전인 1955년에는 4,000교회에 100만 교인 이었던 것이, 작년인 1985년에는
3,200교회에 인구 4,000교회에 인구 4,000만에 기독교인
1,000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인구증거 가 자연인구 증가보다 4배 이상이나 빠르다는 것이며, 우리 나리에서는 날마다 평균 15개의 개척교회가 세워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는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한인교회가
1,500교회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근로자가 가는 곳에도 교회가 설립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급성장에는 부작용되 없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극장,주점,다방,당구장,음식점,등이 서는 것보다 교회가 개처 되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을 극복하고 우리 조상의 귀한 신앙을 체질화해서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아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 청결한 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젊은 종 디모데에게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때부터 섬교 오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역사를 무시하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좋은 신앙은 전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청결한 양심은 물욕과 정욕과 죄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마음을 의 미합니다. 오염된 한강, 고기가 살 수 없는 죽은 한강물을 살리기 위 해 수년 동안 얼마나 노력을 했습니까 지금은 폐수와 오물을 버리지 않으니까 깨끗한 한강이 되어서 고기가 사는 한강이 되었습니다. 마찬 가지로 불순물이 섞이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은 마음은 분명히 청결한 마음입니다. 재물만 알고 치부하기에 정신이 없었던 삭개오는 물질로 만족할 수 없는 심령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갈급한 심령으로 주께 나온 삭개오는 재산의 반을 떼어서 극빈자를 구제하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부지중에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를 보상하겠다고 회개했습니다. 이것이 청결한 양심입니다. 그래서 그는 구원받지 않았습니까 삭개오라는 이름은 '순수한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5:8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심령으로 주께 나오 지 않기 때문에 진리의 말슴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는 형식화되고 사회는 부패했을 때 양심적인 인물인 나다나엘은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고요한 중에 메시아를 대망 했던 그는 빌립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요한복음 1:47 에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 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고 하였습니다.주님이 요구하시는 인물은 참되고 간사한 것이 없는 양심적인 인물입니다. 바울 사도가 선교활동은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청결한 양심으로 증거했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20:23-34에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 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 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스페인의 사상가 오르테가는 "현대인의 가장 큰 정신적 죄악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성실치 못한 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정직 하고 하나님께 약속한 믿음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거짓을 버리고 진실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아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망친 원수로구나. 내 평생에 죽어도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아 니하라."고 외쳤습니다.
2. 복음을 생활화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신봉 했습니다. 저들은 손해를 보는 일이 있어도 성수주일했습니다. 주초를 금했으며, 제사를 금하여 추도예배로 바뀨습니다. 가정의 순결을 단행 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우상숭배인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일편단심 하나님만 섬겼습니다. 복음이 들어온 지 5년이 되는 1890년 선교부 보고에 의하면 주일에 예배당 위에 태극기를 게양해서 복받는 주일임을 표시했다는 것입니다.1907년 장로회 독노회가 조직되었을 때 회장이 사용했던 고퇴는 은 으로 십자가를 면에 새기고, 청홍으로 태극을 머리에 그린 권위 있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교사들의 암시나 지시가 없이 주체적인 신앙의 발로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신앙 속에는 우리 예수교야말로 민족종교임을 믿고 암 시한 것으로 믿습니다. 언제나 주체성이 없는 신앙은 형식화되기 쉽고 외식으로 흐르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우리 장로교회 고유의 신앙과 교리를 고수하면서도 우리의 생리에 맞는 신앙으로 체 질화시켰던 것입니다. 웨슬레 같은 분은 언제나 저녁 10시에 자고 새벽 4시에 기도를 드렸 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운동이 다른 곳에서는 보급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905년 박치록 장로님과 길선주 장로교신학생 이 새벽 기도를 시작한 것이 1907년 큰 부흥이 되어서 전국 교회에 확 산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새벽기도는 체질화되 고 말았고, 우리의 체질에 맞는 신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세가 우상숭배하는 애굽에서 공부했지만 신앙은 절대로 타협하지않 은 것처럼,3.1기미독립만세운동 당시 기독교,천도교,불교 신도들이 합심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지만, 절대로 저들의 신앙은 손해를 보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모든 백성의 마음에 복음을 심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리신조가 같으면서도 뜻을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약한 까닭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독교 100년을 기해서 10여년만에 찬송가를 합치는 지혜 가 있었습니다. 또한 단군전 건립반대에 초교파적으로 제지를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신앙의 지혜로 힘을 합치는 역사가 있어야 하겠 습니다.
3. 뜨거운 열심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의 그 감격, 그 고마운 심정이 지금은 다 사라지 고 말았습니까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안수받을 때의 그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재연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계시록에는 에베소교회의 책망이 무엇이었습니까 저들은 이단지도 가려내고, 거짓 사도도 시험해서 색출했습니다. 인내도 했고, 게으리 지도 아니했습니다. 이는 다 잘한 일이요 장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런 일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다 보니가 자연히 첫사랑을 잃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교계도 자못 뜨거운 열심을 잃은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신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과학적인 생활에 젖다보니 신앙에 생동감이 없고, 열심이 식어져 버렸 고, 무기력한 신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경험이상의 것입니다. 과학자이며 신앙가였던 파스칼은 "사람의 마음은 이성이 알지 못하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 한 사실은 오순절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문도가 성령님 의 뜨거운 은혜를 받은 후에 비로소 능력을 얻어서 복음을 전하게 된 사실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참으로 열심히 믿었던 이승훈 장로님은 그의 전 재 산을 오산학교에 헌납했습니다. 존경했던 제자들이 세운 동상과 제막 식에서 답사하기를, "오늘까지 내가 한 일은 조금도 없습니다. 무엇이 든지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나는 불학무식합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나 하나님이 나를 이렇 게 이끌어 오늘까지 왔습니다. 이 후로는 그럴 줄 믿습니다."고 했습니다. 일주일 후인 1930년 5월 9일 별세할 때, "나의 유해는 땅에 매 장하지 말고 일주일 후인 1930년 5월9일 별세할 때, "나의 유해는 땅 에 매장하지 말고 생리표본을 만들어 학교에 두고 학생들의 공부에 도 움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유언입니까 이런 귀한 신앙이 우리 교회에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3.1 독립운동 때, 수원 제암리교회는 일본 사람에 의해 많은 사람이 순교를 했습니다. 어린이를 교회 밖으로 내보내서 대를 잇게 해 달라는 어른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을 죽이고,집에 불에 타서 뜨 거워질 때에도 교인들은 찬송가 141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 두 돌아 가셨나.늘 울어도 눈물로 못갚을 줄 알아아 이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고 찬송하면서 순교했습니다. 이런 귀한 신앙을 받은 우리 한국교회는 신앙을 더욱 빛나게 활성화 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였 습니다. 제암리 교인이 순교한 지 50여년이 지난 1973년, 일본 목사들 이 와서 통회자복하고 기념교회를 세웠습니다. 해방 후에 세운 교회인 영락교회는 세계에서 제일 큰 장로교회로 성 장했습니다. 해방 후 총회를 41번 개회하였는데, 귀영락교회에서 16번 이나 총회를 했습니다. 얼마나 귀한 봉사를 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의 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04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