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의미 (딤후3:12)
본문
어느 금요일,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피흘리며 돌아가 신 예수님을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 리로 수 천 명을 먹이신 것과, 병든 사람을 낳게 하신 것과,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살리시는 것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은, 지금 십자가에 달려 돌 아가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지금 이 순간은,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의 뜻이 완전히 성취된 순간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의 곳곳에는, 메시야로 오신 구세주가 어떤 고난을 받으실 것인지를, 거듭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그렇게 치욕적인 형벌을 받으실 것을 이미 알리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이 얼마만한 영적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받으 신 그 고통은 본래,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 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에서 노예나 반역죄를 범한 사람에게 주 어지는 가장 치욕적인 형벌이었습니다. 때문에 당시로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은 저주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주는 곧, 죄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단순한 저주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죽음은, 그분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인류)의 죄로 인한 대속적인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해, 3년된 어린 양이나 다른 짐승을 바쳐, 자기를 대신해서 피 를 흘리게 함으로써, 자신의 죄 값을 치렀습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피흘 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그들의 죄를 용서 하시기 위한 희생으로 치러진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십자가의 부 활이 있은 후에, 십자가는 더 이상 저주의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자기 부인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이나 필요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으로, 결 국은 옛 사람을 버리고, 성령님에 의지해서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 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그를 대신해서 복음 전파와 목회에 전념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디모 데후서 3장 12절 말씀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현 실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통을 인내하신 주님을 기억하 며,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섬기며 사는 귀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모든 이가 죄를 범하였으매 시 130:3 신학자, 철학자, 설교자, 은둔자, 행정가, 그리고 무신론자의 공통점이 무엇 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죄 입니다. 신학자는 인간의 죄에 대해 연구합니다. 철학자는 철학적인 사고로 인간의 죄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설교자는 인간의 죄를 주제로 설교합니다. 은둔자는 죄를 회피하려고 하며, 행정가는 죄를 제거하려고 하며, 무신론자는 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하 지만, 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더구나 우리들 인간은, 어른, 아이 할 것 없 이, 모두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성경 구석 구 석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증거하는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열왕 기상 8장 46절은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으사오니. 로 시작됩니다. 전 도서 7장 20절은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 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또,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는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고 하며,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 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오직 한 분,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죄가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파괴입니다. 무엇보다, 죄는 관계를 파괴합니다. 죄는,
첫째 죄를 범하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둘째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셋째 자신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때문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죄의 문제를 심 각하게 다룰 책임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오히 려 죄를 번식하게 하고, 죄의 결과를 크게 할 뿐입니다. 주님 앞에 겸손히 서십시오. 그리고 주께 마음을 드리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우리의 죄에 민감하게 하시고, 주님을 의지해서 죄를 이기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오늘도 이미 죄를 이기고 승리하신 주님을 소망으로 바라보며, 주를 의지 해서 사는 겸손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담으로부터 받은 유산 롬 8:6-8 하늘 나라에서 긴급 재판이 열렸습니다. 배심원과 재판장이 들어오고, 재판 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죄인이 재판장 앞에 불려나옵니다. 죄인의 이름은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의 죄목은 구제불능성 타락입니다. 아우슈비츠, 캄보 디아, 보스니아, 팔레스타인이 증거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참 혹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배심원으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죄인인, 인간 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지금까지 죄인의 행동을 감시해왔던 하늘의 천 군과 천사도 유죄를 선고합니다. 마지막으로, 대 제판관이신 의의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인정하심으로써 최종 판결이 내려집니다. 인간은 유죄입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반복해야 했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애초에 인간이 죄를 짓도록 창조된 것은 아니지만,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그의 성품이 변화되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전에, 인간에게는 죄를 범할 수도 있고 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죄 이전에, 선택 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선택의 가능성 만으로는 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기로 선택한 이후, 아담의 죄된 성품은모 든 후손에게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에게서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는 박탈되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인간이 죄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말 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 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결국, 아담의 죄는 인간을 거룩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모든 사람이, 적어도 한 때는, 죄인의 신분으로, 하나님과 아무 관계 없는 자로, 하나님으로부터 멀 어진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이키는 첫 걸음이 됩니다. 주님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그기도를 들으신 줄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용서를 구하는 이마다 참으로 용서 하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작 은 신음 소리에도 귀 기울이시는 주님 앞에, 우리의 참 모습을 내어놓고, 고백하며, 자유하게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 롬 6:19-23 죄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는 몇 가지, 대표적인 유형이 있습니다. 첫번째 유형은, 이제까지 그렇게 죽을 죄는 짓지 않으면서 살아왔는데 무 슨 문제냐 고 말하는 소신파 입니다. 이 사람은 살인죄만 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죄의 무게는, 죄의 모양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눈에 선량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리 작 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표준을 어긴 것은 이미 죄 입니다. 두번째 유형은, 나도 죄인이지만, 다른 사람은 더 큰 죄인이라고 말하는 회 피형 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죄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추기 좋아합니다. 하지만, 죄의 결과로 책임져야 하는 생명 의 문제는 자기 자신의 문제이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성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평가는 상대 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입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죄가 적다고 해서 무죄인 것은 아닙니다. 세번째 유형은, 아예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배짱파 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죄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의도하셨던 삶을 포기하거나 거절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모든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 51:5), 생각으로 입으로 행동으로 범한 자범죄가 있습니다(약 4:17). 또 하나님을 떠난 죄(롬 1:28), 하나님을 믿지 않은 죄(요 3:18), 성령님을 훼방 한 죄(마 12:31)가 있습니다. 스스로 죄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 죄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지막, 네번째 유형은, 죄가 너무 많아서 죄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조차 민 망하다 고 말하는 주눅파 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을 보십시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때 사망은 육신에서 분리되는 육체적인 사망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영적인 사망까지 의 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온전히 죄의 삯이 치러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사망이 아닌, 영생이 선물로 주어질 것으로 약 속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더이상 죄로 인해, 고통 아래 있 지 않습니다. 주께서 이미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죄 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참예한 한 사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영생이 있음을 전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반항 롬 6:11-14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르키 드 싸드(Marquis de Sade)라는 이름을 들으면, 쌔디즘을 연상합니다. 쌔디즘은 마르키 드 사드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가학적인 성도착증을 말합니다. 마르키는 많은 활동을 남긴 철학자이자 작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인생은, 기본적으로, 기존 사회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반항과 반역으로 일관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한 마르키의 사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 대한 반항, 그리고 그 피조물인 인간에 대한 반항, 나아가 자신에대한 반항으로 발전했습니다. 마 르키는 성본능에 대한 인간의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그를, 가학적인 성격 파탄자로, 정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했습니다. 그 의 삶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 오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본보기가 됩니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 합한 삶을 살아갈 때입니다. 반대로 인간의 가장 추 악한 모습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기 욕심에 좇아 살아갈 때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욕심을 좇아 사는 것은 죄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범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금하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4절을 보십시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이것은 죄의 적극적인 측면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게 되는 두번째 방법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하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소극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 고보서 4장 17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든, 죄를 범하지 않도 록 애써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 죄를 피하는 데 필요 충 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 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라고 고백했던 시편 기자의 고백(시 119:11)이 우리 자신의 고백이 되어야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혀 예기치 못한 어떤 상황에서 죄의 유혹을 만나더라도, 우리 마음에 새겨진 진리의 말씀으로, 죄를 극복하는 능력을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가 거 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생활하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완전한 해결책이 있는 문제 딤전 1:15 요즘 우리 어른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무엇입니까 아이들이 커가면서, 교육비 지출이 심각하게 늘어갑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매일 쫓기듯이 살 아도, 시간은 항상 부족합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보다, 안에서 나가는 것 이 더 많으니, 늘 빠듯하게 살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매일 저녁 뉴 스에서 들리는 소리는, 흉칙한 범죄와 사건, 사고 소식을 알리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에는 정말, 해결책 없는 큰 문제만 있는 것처럼 생각 되지 않습니까 어떤 측면에서는 그렇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 지 방법 가운데, 현실적으로 가장 나은 한 가지 해결책을 찾았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미봉책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직면하고 있는 이런 문제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완전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죄 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를 푸는 해결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하고 완전하며, 영 원한 해답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그분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 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 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 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장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 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누구든지, 성령님의 능력 안에 서 죄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가올 심판을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신앙 선배 한 분이 믿음으로 살아라, 그러면 죄를 이길 수 있 다 고 권면하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우리를 죄에서 이기게 하시고, 때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날 계 21:1-4 하루 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깊이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이 완전히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더이상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아직 죄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선한 일을 하고자 해도, 솔직히 우리는 때로 크고 작은 유혹에 지고 말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죄의 유혹과 싸우는 수고와 고통을 계속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절망적인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로마서 7장 15절과 17절입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 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 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렇습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 안 에 죄의 옛 본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마음 아프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 리고 자기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신앙과 죄의 갈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좌절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갈등이 언제까지 계 속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엔가 우리를 괴롭히는 죄 에서 해 방되는 날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날에는 죄가 영원히 지옥으로 사라 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불순종으로 왜곡된 인간의 본성까지도 온 전히 회복되어, 진정으로죄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앞서 절망적인 탄 식에 이어지는 사도 바울의 힘있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로마서 8장 22절 에서 24절까지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님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 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그렇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소망하는 사람은, 언젠가 죄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와지는 그 날 을 기대하며, 하나님 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소망을 가졌으므로 우리 의 영혼이 구원을 얻은 것처럼, 오늘도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죽음은, 그분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인류)의 죄로 인한 대속적인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해, 3년된 어린 양이나 다른 짐승을 바쳐, 자기를 대신해서 피 를 흘리게 함으로써, 자신의 죄 값을 치렀습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피흘 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그들의 죄를 용서 하시기 위한 희생으로 치러진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십자가의 부 활이 있은 후에, 십자가는 더 이상 저주의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자기 부인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이나 필요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으로, 결 국은 옛 사람을 버리고, 성령님에 의지해서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 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그를 대신해서 복음 전파와 목회에 전념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디모 데후서 3장 12절 말씀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현 실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통을 인내하신 주님을 기억하 며,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섬기며 사는 귀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모든 이가 죄를 범하였으매 시 130:3 신학자, 철학자, 설교자, 은둔자, 행정가, 그리고 무신론자의 공통점이 무엇 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죄 입니다. 신학자는 인간의 죄에 대해 연구합니다. 철학자는 철학적인 사고로 인간의 죄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설교자는 인간의 죄를 주제로 설교합니다. 은둔자는 죄를 회피하려고 하며, 행정가는 죄를 제거하려고 하며, 무신론자는 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하 지만, 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더구나 우리들 인간은, 어른, 아이 할 것 없 이, 모두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성경 구석 구 석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증거하는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열왕 기상 8장 46절은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으사오니. 로 시작됩니다. 전 도서 7장 20절은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 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또,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는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고 하며,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 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오직 한 분,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죄가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파괴입니다. 무엇보다, 죄는 관계를 파괴합니다. 죄는,
첫째 죄를 범하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둘째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셋째 자신과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때문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죄의 문제를 심 각하게 다룰 책임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오히 려 죄를 번식하게 하고, 죄의 결과를 크게 할 뿐입니다. 주님 앞에 겸손히 서십시오. 그리고 주께 마음을 드리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우리의 죄에 민감하게 하시고, 주님을 의지해서 죄를 이기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오늘도 이미 죄를 이기고 승리하신 주님을 소망으로 바라보며, 주를 의지 해서 사는 겸손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담으로부터 받은 유산 롬 8:6-8 하늘 나라에서 긴급 재판이 열렸습니다. 배심원과 재판장이 들어오고, 재판 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죄인이 재판장 앞에 불려나옵니다. 죄인의 이름은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의 죄목은 구제불능성 타락입니다. 아우슈비츠, 캄보 디아, 보스니아, 팔레스타인이 증거로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참 혹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배심원으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죄인인, 인간 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지금까지 죄인의 행동을 감시해왔던 하늘의 천 군과 천사도 유죄를 선고합니다. 마지막으로, 대 제판관이신 의의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인정하심으로써 최종 판결이 내려집니다. 인간은 유죄입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반복해야 했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애초에 인간이 죄를 짓도록 창조된 것은 아니지만, 아담이 죄를 범했을 때, 그의 성품이 변화되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전에, 인간에게는 죄를 범할 수도 있고 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죄 이전에, 선택 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선택의 가능성 만으로는 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기로 선택한 이후, 아담의 죄된 성품은모 든 후손에게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에게서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는 박탈되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인간이 죄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말 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 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결국, 아담의 죄는 인간을 거룩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습니다. 모든 사람이, 적어도 한 때는, 죄인의 신분으로, 하나님과 아무 관계 없는 자로, 하나님으로부터 멀 어진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이키는 첫 걸음이 됩니다. 주님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그기도를 들으신 줄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용서를 구하는 이마다 참으로 용서 하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작 은 신음 소리에도 귀 기울이시는 주님 앞에, 우리의 참 모습을 내어놓고, 고백하며, 자유하게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 롬 6:19-23 죄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는 몇 가지, 대표적인 유형이 있습니다. 첫번째 유형은, 이제까지 그렇게 죽을 죄는 짓지 않으면서 살아왔는데 무 슨 문제냐 고 말하는 소신파 입니다. 이 사람은 살인죄만 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죄의 무게는, 죄의 모양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눈에 선량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리 작 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표준을 어긴 것은 이미 죄 입니다. 두번째 유형은, 나도 죄인이지만, 다른 사람은 더 큰 죄인이라고 말하는 회 피형 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죄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추기 좋아합니다. 하지만, 죄의 결과로 책임져야 하는 생명 의 문제는 자기 자신의 문제이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성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평가는 상대 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입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죄가 적다고 해서 무죄인 것은 아닙니다. 세번째 유형은, 아예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배짱파 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죄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의도하셨던 삶을 포기하거나 거절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모든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 51:5), 생각으로 입으로 행동으로 범한 자범죄가 있습니다(약 4:17). 또 하나님을 떠난 죄(롬 1:28), 하나님을 믿지 않은 죄(요 3:18), 성령님을 훼방 한 죄(마 12:31)가 있습니다. 스스로 죄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 죄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지막, 네번째 유형은, 죄가 너무 많아서 죄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조차 민 망하다 고 말하는 주눅파 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을 보십시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때 사망은 육신에서 분리되는 육체적인 사망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영적인 사망까지 의 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온전히 죄의 삯이 치러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사망이 아닌, 영생이 선물로 주어질 것으로 약 속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더이상 죄로 인해, 고통 아래 있 지 않습니다. 주께서 이미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죄 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참예한 한 사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영생이 있음을 전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반항 롬 6:11-14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르키 드 싸드(Marquis de Sade)라는 이름을 들으면, 쌔디즘을 연상합니다. 쌔디즘은 마르키 드 사드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가학적인 성도착증을 말합니다. 마르키는 많은 활동을 남긴 철학자이자 작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인생은, 기본적으로, 기존 사회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반항과 반역으로 일관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한 마르키의 사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 대한 반항, 그리고 그 피조물인 인간에 대한 반항, 나아가 자신에대한 반항으로 발전했습니다. 마 르키는 성본능에 대한 인간의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그를, 가학적인 성격 파탄자로, 정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했습니다. 그 의 삶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 오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본보기가 됩니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 합한 삶을 살아갈 때입니다. 반대로 인간의 가장 추 악한 모습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기 욕심에 좇아 살아갈 때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욕심을 좇아 사는 것은 죄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범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금하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4절을 보십시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이것은 죄의 적극적인 측면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게 되는 두번째 방법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하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소극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 고보서 4장 17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든, 죄를 범하지 않도 록 애써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 죄를 피하는 데 필요 충 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 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라고 고백했던 시편 기자의 고백(시 119:11)이 우리 자신의 고백이 되어야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혀 예기치 못한 어떤 상황에서 죄의 유혹을 만나더라도, 우리 마음에 새겨진 진리의 말씀으로, 죄를 극복하는 능력을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가 거 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생활하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완전한 해결책이 있는 문제 딤전 1:15 요즘 우리 어른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무엇입니까 아이들이 커가면서, 교육비 지출이 심각하게 늘어갑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매일 쫓기듯이 살 아도, 시간은 항상 부족합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것보다, 안에서 나가는 것 이 더 많으니, 늘 빠듯하게 살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매일 저녁 뉴 스에서 들리는 소리는, 흉칙한 범죄와 사건, 사고 소식을 알리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에는 정말, 해결책 없는 큰 문제만 있는 것처럼 생각 되지 않습니까 어떤 측면에서는 그렇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가 지 방법 가운데, 현실적으로 가장 나은 한 가지 해결책을 찾았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미봉책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직면하고 있는 이런 문제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완전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죄 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를 푸는 해결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하고 완전하며, 영 원한 해답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그분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 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 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 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장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 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누구든지, 성령님의 능력 안에 서 죄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가올 심판을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신앙 선배 한 분이 믿음으로 살아라, 그러면 죄를 이길 수 있 다 고 권면하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우리를 죄에서 이기게 하시고, 때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날 계 21:1-4 하루 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깊이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이 완전히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더이상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아직 죄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선한 일을 하고자 해도, 솔직히 우리는 때로 크고 작은 유혹에 지고 말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죄의 유혹과 싸우는 수고와 고통을 계속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절망적인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로마서 7장 15절과 17절입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 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 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렇습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 안 에 죄의 옛 본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마음 아프게 깨닫고 있습니다. 그 리고 자기 내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신앙과 죄의 갈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좌절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갈등이 언제까지 계 속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엔가 우리를 괴롭히는 죄 에서 해 방되는 날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날에는 죄가 영원히 지옥으로 사라 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불순종으로 왜곡된 인간의 본성까지도 온 전히 회복되어, 진정으로죄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앞서 절망적인 탄 식에 이어지는 사도 바울의 힘있는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로마서 8장 22절 에서 24절까지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님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 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그렇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소망하는 사람은, 언젠가 죄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와지는 그 날 을 기대하며, 하나님 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소망을 가졌으므로 우리 의 영혼이 구원을 얻은 것처럼, 오늘도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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