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도록 치료하신다 (딤후3:16-17)
본문
교훈은 지침입니다. 책망은 찔림입니다. 바르게 함은 교정입니다. 의로 교육함은 훈련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들의 참 삶에 대한 지침을 줍니다. 성경은 어그러진 삶에 대한 찔림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문제 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교정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게 합니다. 의사의 치료과정으로 설명하면 교훈 은 진단이나 처방전과 같습니다. 책망은 주사나 투약과 같습니다. 교정은 수술과 같습니다. 의로 교육함은 재활과 같습니다. 다 무엇입니까 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어 퇴원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퇴원하여 정상적인 사람으로 활발하게 일터에서 활동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치료의 목적은 회복입니다. 회복의 목적은 활동이고요. 때문에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병이 들었 다는 말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 려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류는 병든 영혼이라고 선언합니다. 환자들 어떤 목사님 사모님이 최근 자궁암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천만 다행인 것은 자궁정기검진을 받다가 발견한 거예요. 종합병원도 아닌 개인 병원에서였는데, 세밀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 잘 발견 이 된 겁니다. 어쨌든 아주 초기에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종 합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뭐 별 염려 안 해도 된 다고 하더랍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병이 진행되고 있는걸 잘 모 릅니다. 그냥 건강한 것처럼 지냅니다. 속으로는 곪아 터져, 악성 종양으로 발전되고 죽어가고 있는 데도 말이지요. 우리가 예수 처음 믿는 사람보고 전도할 때, '당신은 죄인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버럭 화를 냅니다. '나 만큼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이럽니다. 죄인이라는 말 바꿔 말하면, '당신은 환자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모든 인류는 어그러진 사람들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 다'고 했지요. 병을 보유하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환자와 같습니다. 다만 증상만 있을 뿐입니다. 병에도 증상은 있습니다. 고열, 설사, 두통, 오한 등 여러 가지 증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증상만 으로는 병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원인을 알아야 제대로 근본적 인 치유를 할 수 있습니다. 병의 뿌리 치료하지 않으면 증상은 잡히지 않습니다. 자 보세요. 하나님을 떠난 병든 인간의 증상이 어떤지. 인간은 하나님과 어그러진 이후에 불안, 좌절이 생겼습니다. 절망, 무의미 가 늘 따라 다닙니다. 허무, 고독이 있습니다. 무목적 등의 증상 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런 증상의 근본원인은 무엇입니까 바 로 '하나님과의 부조화'때문입니다. 이 근본 원인을 치유하지 않 고, 증상만 치유한다고 병이 낫겠어요 사람들은 불안하면 스트레스를 푼다고 막 쏘다닙니다. 여성들은 허무하면 자꾸 먹어댑니다. 그래서 허전한 사람들이 살찔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독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파트너 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다 씁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때요 고독이 가십니까 더 큰 올무가 되고, 더 큰 허무가 찾아오는 겁니다. 그 러니까 이런 대증 처방만으로는 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원인 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영혼이 되는 겁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의 부조화입니다. 하나님과 부조화한 것이 만병의 근원입니다. 실낙원 이후로 인류가 앓고 있는 고질적인 질병입니다. 하나님과의 부조화 때문에 자신과의 부조화가 생깁니다. 자신과의 부조화는 양면이 있습니다. 바로 열등감과 우월감입니다. 우월감은 교만으로 나타나고, 열등감은 자학증으로 나타납니다. 또 자신과의 부조화 때문에 이 웃과의 부조화도 따라옵니다. 작게는 시기와 질투로부터 크게는 적대감과 전쟁으로 발전합니다. 마지막은 자연과의 부조화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총체적으로 어그러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 로 환자라는 증거입니다. 수술을 받자 병을 고치려면 치료를 해야 합니다. 약물 투여든 수술이든 치료 를 해야 합니다. 아주 심하면 중환자실에 입원해야합니다. 급하면 응급실로라도 끌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질병은 사실 말기 암과 같이, 난치의 중병들입니다. 왜요 마땅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고 했 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 판이 있으리니"(히9:27)했습니다. 그러니 전부 수술을 받아야 할 중병들입니다. 수술을 받아야 새 생명을 얻습니다. 회복실의 사람들 수술을 받으면 회복실로 옮깁니다. 소변 양을 체크하고, 혈압을 체크합니다. 식사량을 조절하고 수술 부위의 회복 속도를 살핍니다. 그래서 정상으로 돌아 왔다고 판정될 때까지 치료를 받습니다. 이것을 회복하는 치료라고 하지요. 죽었던 감각이 제대로 돌 아와야 합니다, 썩었던 살이 제 살로 돌아와야 합니다. 병들고 파 괴되었던 모든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으로 말이지요. 이것이 회복실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 은 사람을 온전케 한다고 말합니다. '온전케 한다'는 말은 회복시 킨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17절)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온전해 집니까 성경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 게 함과 의로 교육함의 과정을 거쳐야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온전케 한다'는 말의 어원은 뼈를 맞추는 일을 뜻하는 의학 용어 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뼈를 맞추어 완전케 하다'라는 뜻이지요. 뼈가 어긋나 장애가 생긴 사람을 맞추어 제자리로 돌려 온전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게 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회복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사람이' 온전해 진다는 것은 '인격'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접한 사람은 제일 먼저 인격이 변합니다. 예수님의 인격 (person)을 닮아 온전해 집니다. 그러면 온전해진 인격의 구체적 인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바로 갈라디아서 5장과, 고린도전서 13장에 있습니다. 두 부분에서 중복되는 걸 빼면 대략 17가지쯤 됩니다. 자 한번 세어 보세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5:22) 투기하지 않음, 자랑하지 않음, 교만하지 않음, 무례히 행치 않음,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음, 성내지 않음, 악한 것을 생각지 않 음, 불의를 미워하고 진리를 기뻐함, (고전13:4-6) 이렇게 17가지입니다. 이 17가지 인격의 모습이 제대로 우러나와 야 온전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이 런 예수의 인격에 한 발걸음 한 발걸음 다가가게 만듭니다. 이것 이 말씀과 믿음의 위대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에덴 동산의 인격으로 회복시킵니다. 일터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또 무엇입니까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17절)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의 인격이 온전케 되는 것은, 순전히 선한 일을 온전하게 하기 위한 준비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인격의 완성은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닙니다. 선한 일을 온전케 하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자 본문 17절을 공동번역과 새번역으로 한번 읽겠습니다. "이 책으로 하나님의 일꾼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공동번역)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합당하도록 완전히 준비되는 것입니다."(새번역) 모두 자격과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모든 선한 일을 하도록 준 비를 갖추는 것이 곧 인격의 변화라는 것이지요. 바꾸어 말하자 면,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격을 갖추는 것은, 준비 운동이라는 말 입니다. 인격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운동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구원을 치료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닮아 가는 것을 회복이라 한다면,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정상 적인 활동을 하는 겁니다. 치료나 회복이나 다 정상적인 활동을 위한 게 아니던가요 때문에 오늘 분문 16절과 17절을 잇는 "이는"이라는 단어에 주목 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17절) 헬라어로는 입니다. 바로 앞 구절의 목적이 이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 게 함과 의로 교육함의 최종적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선한 일 을 하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치료의 목적, 모든 인격 변화 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신앙 행위의 목적은 바로 선한 일, 즉 복음증거 사랑의 실천입니다. 수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물론 회복이겠지요. 그러면 회복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정상적인 활동입니다. 때문에 수술의 목적은 정상적인 활동에 있습니다. 치료의 목적도 정상적인 활동에 있습니다. 정상적인 활동을 하도록 치료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상적 이라는 말 참으로 중요합니다. 정상적이라는 말은, 사람은 활동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앙인은 전도하는 것, 주님을 위해 무슨 대단한 일을 해 주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웃을 섬기는 것을 뭐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뻐기고 다닙니다. 아니 될 말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활 동을 한 것뿐입니다. 안 하는 게 비정상적이지요. 당연한 활동을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으로는 온전한 활동입니다. 오늘 본문에 온전함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이 '온전함'이라는 말은 바로 '정상적인', '건강한'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성경의 목적이 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입원실에 있는 환자들은 퇴원을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병원에 입원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은 누구나 퇴원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모든 환자들의 소원은 퇴원입니다. 어쩌다 먼저 퇴원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지요.
그런데 오늘의 신앙인에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퇴원을 할 마음을 먹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수술실을 매번 들 락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술실에서만 몇 십 년을 보낸 사람 도 있습니다. 어제의 병 오늘 수술 받고, 면 년 전의 병 오늘 또 도져서 수술을 받습니다. 수술 부위가 매번 바뀌기도 합니다. 매 번 문제만 안고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험한 파도에 휩쓸 려 지내다 이렇게 상처 입은 몸으로 왔다'고 주일마다 패잔병의 보고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를 매주일 마다 똑 같은 톤으로 몇 년을 반복하는 사람입니다. 또 회복실에서 마냥 지내겠다고 떼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병 실에서 몇 십 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퇴원을 하려고 하 지 않습니다. 병은 다 나았는데도 두려워서 퇴원을 하지 못합니다. 이미 병실에 적응해서 병실 체질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퇴원 을 하지 않으려고 기를 씁니다. 도대체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 가려 하지를 않습니다. 도대체 일터로 돌아가려 하지를 않는 겁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병실 그리스도인에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교회 안 병실은 만원입니다. 의사인 목자는 파김치가 되어 있습니다. 침대에 누워 조그마한 불편에도 온갖 약을 다 투약해 달라는 환자입니다. 퇴원하지 않는 사람들, 정상적인 활동으로 복귀하지 않는 사람들, 일터로 가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이제는 퇴원할 때입니다. 이제는 일터로 나갈 때입니다. 이제는 정상적인 활동을 할 때입니다. 정상적인 활동은 무엇입니까 바 로 복음증거 사랑의 실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일은 이외 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 영혼을 살리는 복음증거와, 한 육신을 살리는 사랑의 실천 외에 더 선한 것은 없습니다. 이 것이 예수 사역(works)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대는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수술을 받은 것입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러면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퇴원을 하십시오! 모든 선한 일을 온전케 할 때입니다. 활동이 건강을 지켜줍니다. 이제는 일터로 가십시다. 굴러가는 바 퀴가 넘어지지 않듯이, 활력 있는 활동이 건강을 보장해 줄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다시 수술대에 눕지 않아도 됩니다. 다시 치 료의 지긋 지긋한 세월을 보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아직 치료 를 받고 계신 분이 있으면 일하기를 소망하십시오. 퇴원하기를 소망하는 환자처럼! 일하도록 치료해 주시는 주님께 모든 걸 맡기십시오. 최선의 치 료를 단기간에 받기를 바랍니다. 훌륭한 회복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한 사람되어, 일터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십니다. 일하도록 치료하십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를 치료합니다. 일하도록 치료합니다. 복음증거 사랑의 실천으로 건강미 넘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천만 다행인 것은 자궁정기검진을 받다가 발견한 거예요. 종합병원도 아닌 개인 병원에서였는데, 세밀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 잘 발견 이 된 겁니다. 어쨌든 아주 초기에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종 합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뭐 별 염려 안 해도 된 다고 하더랍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병이 진행되고 있는걸 잘 모 릅니다. 그냥 건강한 것처럼 지냅니다. 속으로는 곪아 터져, 악성 종양으로 발전되고 죽어가고 있는 데도 말이지요. 우리가 예수 처음 믿는 사람보고 전도할 때, '당신은 죄인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버럭 화를 냅니다. '나 만큼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이럽니다. 죄인이라는 말 바꿔 말하면, '당신은 환자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모든 인류는 어그러진 사람들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 다'고 했지요. 병을 보유하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는 환자와 같습니다. 다만 증상만 있을 뿐입니다. 병에도 증상은 있습니다. 고열, 설사, 두통, 오한 등 여러 가지 증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증상만 으로는 병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원인을 알아야 제대로 근본적 인 치유를 할 수 있습니다. 병의 뿌리 치료하지 않으면 증상은 잡히지 않습니다. 자 보세요. 하나님을 떠난 병든 인간의 증상이 어떤지. 인간은 하나님과 어그러진 이후에 불안, 좌절이 생겼습니다. 절망, 무의미 가 늘 따라 다닙니다. 허무, 고독이 있습니다. 무목적 등의 증상 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런 증상의 근본원인은 무엇입니까 바 로 '하나님과의 부조화'때문입니다. 이 근본 원인을 치유하지 않 고, 증상만 치유한다고 병이 낫겠어요 사람들은 불안하면 스트레스를 푼다고 막 쏘다닙니다. 여성들은 허무하면 자꾸 먹어댑니다. 그래서 허전한 사람들이 살찔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독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파트너 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다 씁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때요 고독이 가십니까 더 큰 올무가 되고, 더 큰 허무가 찾아오는 겁니다. 그 러니까 이런 대증 처방만으로는 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원인 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영혼이 되는 겁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의 부조화입니다. 하나님과 부조화한 것이 만병의 근원입니다. 실낙원 이후로 인류가 앓고 있는 고질적인 질병입니다. 하나님과의 부조화 때문에 자신과의 부조화가 생깁니다. 자신과의 부조화는 양면이 있습니다. 바로 열등감과 우월감입니다. 우월감은 교만으로 나타나고, 열등감은 자학증으로 나타납니다. 또 자신과의 부조화 때문에 이 웃과의 부조화도 따라옵니다. 작게는 시기와 질투로부터 크게는 적대감과 전쟁으로 발전합니다. 마지막은 자연과의 부조화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총체적으로 어그러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 로 환자라는 증거입니다. 수술을 받자 병을 고치려면 치료를 해야 합니다. 약물 투여든 수술이든 치료 를 해야 합니다. 아주 심하면 중환자실에 입원해야합니다. 급하면 응급실로라도 끌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질병은 사실 말기 암과 같이, 난치의 중병들입니다. 왜요 마땅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라고 했 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 판이 있으리니"(히9:27)했습니다. 그러니 전부 수술을 받아야 할 중병들입니다. 수술을 받아야 새 생명을 얻습니다. 회복실의 사람들 수술을 받으면 회복실로 옮깁니다. 소변 양을 체크하고, 혈압을 체크합니다. 식사량을 조절하고 수술 부위의 회복 속도를 살핍니다. 그래서 정상으로 돌아 왔다고 판정될 때까지 치료를 받습니다. 이것을 회복하는 치료라고 하지요. 죽었던 감각이 제대로 돌 아와야 합니다, 썩었던 살이 제 살로 돌아와야 합니다. 병들고 파 괴되었던 모든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으로 말이지요. 이것이 회복실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 은 사람을 온전케 한다고 말합니다. '온전케 한다'는 말은 회복시 킨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17절)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온전해 집니까 성경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 게 함과 의로 교육함의 과정을 거쳐야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온전케 한다'는 말의 어원은 뼈를 맞추는 일을 뜻하는 의학 용어 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뼈를 맞추어 완전케 하다'라는 뜻이지요. 뼈가 어긋나 장애가 생긴 사람을 맞추어 제자리로 돌려 온전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게 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회복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사람이' 온전해 진다는 것은 '인격'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접한 사람은 제일 먼저 인격이 변합니다. 예수님의 인격 (person)을 닮아 온전해 집니다. 그러면 온전해진 인격의 구체적 인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바로 갈라디아서 5장과, 고린도전서 13장에 있습니다. 두 부분에서 중복되는 걸 빼면 대략 17가지쯤 됩니다. 자 한번 세어 보세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5:22) 투기하지 않음, 자랑하지 않음, 교만하지 않음, 무례히 행치 않음,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음, 성내지 않음, 악한 것을 생각지 않 음, 불의를 미워하고 진리를 기뻐함, (고전13:4-6) 이렇게 17가지입니다. 이 17가지 인격의 모습이 제대로 우러나와 야 온전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이 런 예수의 인격에 한 발걸음 한 발걸음 다가가게 만듭니다. 이것 이 말씀과 믿음의 위대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에덴 동산의 인격으로 회복시킵니다. 일터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또 무엇입니까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17절)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의 인격이 온전케 되는 것은, 순전히 선한 일을 온전하게 하기 위한 준비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인격의 완성은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닙니다. 선한 일을 온전케 하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자 본문 17절을 공동번역과 새번역으로 한번 읽겠습니다. "이 책으로 하나님의 일꾼은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공동번역)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합당하도록 완전히 준비되는 것입니다."(새번역) 모두 자격과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모든 선한 일을 하도록 준 비를 갖추는 것이 곧 인격의 변화라는 것이지요. 바꾸어 말하자 면,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격을 갖추는 것은, 준비 운동이라는 말 입니다. 인격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운동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구원을 치료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닮아 가는 것을 회복이라 한다면,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정상 적인 활동을 하는 겁니다. 치료나 회복이나 다 정상적인 활동을 위한 게 아니던가요 때문에 오늘 분문 16절과 17절을 잇는 "이는"이라는 단어에 주목 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17절) 헬라어로는 입니다. 바로 앞 구절의 목적이 이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의 교훈과 책망과 바르 게 함과 의로 교육함의 최종적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선한 일 을 하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치료의 목적, 모든 인격 변화 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신앙 행위의 목적은 바로 선한 일, 즉 복음증거 사랑의 실천입니다. 수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물론 회복이겠지요. 그러면 회복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정상적인 활동입니다. 때문에 수술의 목적은 정상적인 활동에 있습니다. 치료의 목적도 정상적인 활동에 있습니다. 정상적인 활동을 하도록 치료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상적 이라는 말 참으로 중요합니다. 정상적이라는 말은, 사람은 활동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앙인은 전도하는 것, 주님을 위해 무슨 대단한 일을 해 주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웃을 섬기는 것을 뭐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뻐기고 다닙니다. 아니 될 말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활 동을 한 것뿐입니다. 안 하는 게 비정상적이지요. 당연한 활동을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으로는 온전한 활동입니다. 오늘 본문에 온전함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이 '온전함'이라는 말은 바로 '정상적인', '건강한'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성경의 목적이 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입원실에 있는 환자들은 퇴원을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병원에 입원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은 누구나 퇴원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모든 환자들의 소원은 퇴원입니다. 어쩌다 먼저 퇴원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지요.
그런데 오늘의 신앙인에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퇴원을 할 마음을 먹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수술실을 매번 들 락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술실에서만 몇 십 년을 보낸 사람 도 있습니다. 어제의 병 오늘 수술 받고, 면 년 전의 병 오늘 또 도져서 수술을 받습니다. 수술 부위가 매번 바뀌기도 합니다. 매 번 문제만 안고 씨름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험한 파도에 휩쓸 려 지내다 이렇게 상처 입은 몸으로 왔다'고 주일마다 패잔병의 보고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를 매주일 마다 똑 같은 톤으로 몇 년을 반복하는 사람입니다. 또 회복실에서 마냥 지내겠다고 떼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병 실에서 몇 십 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퇴원을 하려고 하 지 않습니다. 병은 다 나았는데도 두려워서 퇴원을 하지 못합니다. 이미 병실에 적응해서 병실 체질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퇴원 을 하지 않으려고 기를 씁니다. 도대체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 가려 하지를 않습니다. 도대체 일터로 돌아가려 하지를 않는 겁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병실 그리스도인에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교회 안 병실은 만원입니다. 의사인 목자는 파김치가 되어 있습니다. 침대에 누워 조그마한 불편에도 온갖 약을 다 투약해 달라는 환자입니다. 퇴원하지 않는 사람들, 정상적인 활동으로 복귀하지 않는 사람들, 일터로 가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이제는 퇴원할 때입니다. 이제는 일터로 나갈 때입니다. 이제는 정상적인 활동을 할 때입니다. 정상적인 활동은 무엇입니까 바 로 복음증거 사랑의 실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일은 이외 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 영혼을 살리는 복음증거와, 한 육신을 살리는 사랑의 실천 외에 더 선한 것은 없습니다. 이 것이 예수 사역(works)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그대는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수술을 받은 것입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러면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퇴원을 하십시오! 모든 선한 일을 온전케 할 때입니다. 활동이 건강을 지켜줍니다. 이제는 일터로 가십시다. 굴러가는 바 퀴가 넘어지지 않듯이, 활력 있는 활동이 건강을 보장해 줄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다시 수술대에 눕지 않아도 됩니다. 다시 치 료의 지긋 지긋한 세월을 보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아직 치료 를 받고 계신 분이 있으면 일하기를 소망하십시오. 퇴원하기를 소망하는 환자처럼! 일하도록 치료해 주시는 주님께 모든 걸 맡기십시오. 최선의 치 료를 단기간에 받기를 바랍니다. 훌륭한 회복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한 사람되어, 일터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십니다. 일하도록 치료하십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를 치료합니다. 일하도록 치료합니다. 복음증거 사랑의 실천으로 건강미 넘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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