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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육관2 (딤후3:16-17)

본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과거의 자기, 현재의 자기, 미래의 자기를 바 로 드러내놓고 과거의 행위가 말씀에 합치하는 것은 무엇이며 대치되는 것을 발견하고 못 깨달아서 한 범죄, 알고도 연약해서 한 범죄, 고의적 범 죄를 찾으십시오. 현재 미래도 자기를 냉정히 비판하여 대조하면 교훈, 책망, 권면,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과 상관없이 과거 현재 미래를 비판하지 않으면 양 심을 버린 자입니다. 양심을 쓴다면 합치인지 대치인지의 비판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나타나면 `정신차려야지!`하는 거기에서 영혼이 움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영이 제일 불쌍합니다. 딤후3:16 말씀은
(1) "교훈"의 말씀이니, 교훈을 받을 때는 자기 행위와 대조해서 어떻게 할 것을 발견하고 또한 교훈을 받으면 감동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2) "책망"의 말씀, 자기에게 거리끼는 것은 책망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약한 말로 했더라도 자기에게 거리끼는 것은 큰 책망이고 성경에 큰 책망 이라도 자기만 거기에 상관없는 생을 했으면 책망이 아닙니다.
(3) "바르게 함", 비뚤어진 것을 가르쳐 옳은 길로 인도합니다.
(4)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의를 행할 수 있도록 할 일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을때 매우 복잡합니다. 왜 고칠 것, 회개, 계획, 간구할 것들을 찾아야 되므로, 또 말씀을 받았으면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으면 영의 양식이 되지만 못 깨달으면 영의 양식이 안 됩니다. 또 깨 달은 후는 실행이 있어야 합니다. 실행은 먼저 마음으로 실행하고 다음에 몸으로 실행입니다. 마음은 받는 즉시 행할 수 있으나 몸은 마음대로 못 합니다. 몸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기회에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원수를 사랑하라`했으면 즉시 마음은 작정하고 행하나 몸은 기회를 만날 때만 합니다. 곧 사랑할 수 없을 때에 사랑하고, 사람을 만날 때에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몸의 실행은 하나님의 주시는 기회에만 하므로 마음으로 행하고 육으로 행하기를 원하지만 일평생 못만나 보는 것도 있습니다. 몸의 행함이 없으면 이성은 구원 얻으나 몸은 못 얻습니다.
그러므로 주 신 기회를 놓지면 안됩니다. 영은 이성과 몸이 함께 구원 받아야 충분히 자랍니다. 말씀을 들어 깨닫는 것도 보배이나, 실행이 없으면 율법입니다. 깨달은대로 행하려고 작정하는 것이 이성의 실행이고, 이성이 행했으면 다시 몸에게 실행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성의 책임완성입니다. 또 몸이 행하면 행한 일이 의가 되고 하나님의 양식인 은혜로 영은 자라 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을때
(1) 깨닫고
(2) 여기서 행하십시오. 말로만 하고 마음속에 부정을 품고 있으면 이성이 행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마음은 몸 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마음으로 확정하고 행하기로 작정하면 넘어져도 또 일어납니다. 마음으로 못 행하는 자는 지식뿐이므로 징계를 받고 나서는 행하게 됩니다. 이런 기회가 없으면 헛일입니다. 깨닫는 정도는 각자에 따라 다릅니다. 깨닫는 것은 영의 양식이므로 영 이 장성한 분량에 따라 다릅니다. 자란 정도에 알맞게 깨달아야 양식이 됩니다. 목사와 평신도와 깨닫는 양도 다릅니다. 말씀은 꼭같은 말씀이나 각자가 깨닫는 양도 다르고 방면도 다릅니다. 한 설교를 듣고도 각각 여 러가지의 회개를 합니다. 깨닫는 방법은, 자기의 명철한 총명도 아니고 기존 지식도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뿐입니다. 깨닫는 것은 영의 양식인데 먹는 것은 행하는 것입니다. 깨달은 것을 행하지 아니하면 새가 주워 먹습니다. 깨달 은 것을 결심하고 각오하고 뜻을 세워 나가면 넘어져도 표가 보이므로 다 시 세울 수 있습니다. 천번 꺽어져도 또 일어나야 합니다. 마음으로 원하 지 않는 소행이 집에 가서 어찌 행하겠습니까 이 마음은 나쁜 마음입니다. 신자가 악인이 되려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잘 믿는 사람은 정금 과 같습니다. 어떻게 남에게 누를 끼치고 살까 어떻게 남의 덕을 볼까 하나님께만 구하십시오. 죄를 짓지 말고 의를 행하며 자기 것 다하고 남을 도와야 합니다. 자기는 조금도 부족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천대를 받는 것은 지옥행동입니다. 죄가 없는데도 욕하고 천대하고 또 모르고 핍 박 하거든 그들을 사랑하고 너그러이 용서하고 기도하십시오. 도와주십시 오. 또 신자는 남의 구제를 바라지 마십시오. 그것으로 말미암아 몰살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혜택을 받으십시오. 국가에서는 내 나라이므로 적당하게 만 혜택 받으면 됩니다. 또 그것도 성경에 위반이면 받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혜택받는 자는 불신자입니다. 땅 위에 살며 참고, 견디고, 용서하며, 손해 보고, 양보하며, 정정 당당하 게 낮과같이 광명하게 살아야 합니다. 기독자는 겉은 무르나 속은 철주가 들어있습니다. 피조물을 겁내는 자는 신앙 없는 죄값입니다. 약한 것같이 보이나 약한 것이 아니고 악을 선으로 갚으니까 약하게 보 입니다. 육적 싸움은 어린애 싸움. 육적 싸움 다음은 논리 싸움, 행동 싸 움이고 그다음 인격 최고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싸우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 믿기가 어렵습니다. 같은 짐을 질때 억지로 하는 것과 자의로 하는 것이 어느 것이 피곤합니까 억지로 할 때입니다. 왜 영과 육이 단합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육의 힘은 영에서 온다. 몸은 이성과 이 성은 영과 영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힘에는
(1) 물질의 힘
(2) 정신의 힘이 있습니다. 정신의 힘은 영 에서 나온다. 몸의 정기는 영에서 오기 때문에 물질을 많이 먹어도 소용 없습니다. 영의 힘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또 산 영을 가진 자와 죽은 영 을 가진 자가 일을 할 때에 그 능률은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고생뿐입니다. 왜 주의 영광 안 가리고, 피조물의 종이 안 되 려고, 사람 노릇 하고, 성도 노릇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영이 서둘러서 시작합니다. 그러면 이성이 기뻐합니다. 기뻐하 지 않으면 연결이 끊어져 고장이 납니다. 영의 힘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영의 힘이 옴으로 할 수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약 한 몸의 힘도 영의 힘입니다. 영육이 연결되면 상호간에 기쁘고 자라게 됩니다. 피곤하지 않습니다. 물질도 신자는 최저한도로 하고 누를 끼치지 않는 경계를 넘으면 죄입니다. "사랑의 빚 외에 지지 말라.굶어도 죄짓는 일을 하지 말라." 죄가 안되는 한 열심히 노력하면 굶어죽지 않을 텐데 노력하지 않으므로 죽는 것은 살인죄(자살죄)입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죽는 날까지 먹고 살아야 합니다. 죄짓는 경계선을 넘 지 않고는 자기 신분에, 자기 구원 이루기에 적당하게 하고 나머지는 구제에 써야 합니다. 이것이 빛의 생활입니다. 책임을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타인이 잘못 비판하여 평가, 압제, 지나친 요구를 할 때에 선으로 이기는 것이 신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속혀서 손해보는 것은 죄일까요, 의일까요 죄입니다. 신자가 어리석은 것은 믿음 없는 까닭입니다. 믿음만 지키면 지혜자입니다. 세상 지혜는 어린아이 지 혜입니다. 죄를 짓고 맞으면 자기만 분개할 것뿐입니다. 맞을 일 없이 맞으면 다행 입니다. 다만 모르고 상대방이 자기를 때렸음으로 그를 불쌍히 여겨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또 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고, 침략하지 말고, 침략을 당해도 용서하는 것이 자유 의 생활입니다. 신자는 호리라도 멸시 받는 일을 안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욕을 받을 때 먼저 자기 속의 허물과 죄를 찾아야 합니다. 죄가 없으면 그를 불쌍히 여기고, 죄가 있으면 자기를 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원수 갚으시는 하나님, 복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도 원수를 갚 아야 합니다. 누구에게 그 사람을 이용하는 죄와 원수에게입니다. 의는 공의의 의, 복수의 의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구별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사랑하고 그 속의 부패성을 미워해 야 합니다. 또 구제를 받지 마십시오. 구제는 나를 돕는 것이 아니고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계12:15, 뱀은 마귀. 뱀은 꾀우는 역사를 할 때 쓰입니다. 강물은 세상에 서 좋아하는 모든 총칭, 즉 궁핍한 것을 주면서 꾀입니다. 땅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양심의 도덕입니다. 도덕이 나와서 자기의 분량에 맞추어보 니 너무 구분하여 가분(可分)하여 안 받으려고 피하니 그 마귀가 물러갔 습니다. 정당하게 비판하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의무를 다하는 것이 신앙양심입니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영은 자랍니다. 특수한 일을 통하여 특수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특수한 사건 은 드물기 때문에 그 사건 만날 때에 못이기면 천국에서 헛일입니다. 이 런 특수 시간을 만나는 자가 유익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것 자기가 해야 합니다. 물질, 수고, 사랑, 위로, 구제를 받지 마십시오. 구걸중 제일 큰 구걸은 마음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만 얻으면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 기 의무를 다하고 월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깨닫고 곧 일어나서 마음으로 뜻을 세워 작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지면 넘어진 줄 압니다. 마음에 굳게 뜻을 세우면 넘어 지는 표가 나타나므로 다시 세우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자기 분량에 맞게 깨달을까 바른 양심만 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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