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탄함을 좇는 시대 (딤후4:1-5)
본문
세상이 마지막 때가 되면 허황되고 허탄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지막 때가 되면 허황된 일들을 좋아하고 허탄한 일거리나 말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는 일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는 믿음이 없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신앙적이고 비복음적인 일들이 도처에서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디모데에게 이같은 점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마지막 때에 나타나는 허탄한 이야기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될 것이고,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싫어하게 될 것이며, 이상한 풍조를 따르게 될 것이고, 허탄한 이야기들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을 할 때도 이런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들을 가리켜 말세의 징조들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오늘날은 사람들이 이상한 일에 관심을 갖고 이상한 일을 위해서 머리를 쓰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그럽니다. 또 허황된 일들에 마음을 쓰고 집착하고 한편 두려워하기도 하고 재미있어 하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이 그 옛날 염려했던 그대로 오늘 사람들은 이상한 풍조를 따르고 허탄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한 풍조 가운데 하나는 “환생설”입니다. 요즘 환생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생과 환생을 다룬 책들이 잘 팔린다고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여기에 많이 이끌리고 있는데 입시를 앞둔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귀신 놀이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여러 명이 모여서 주문을 외우면 귀신이 나타나는데 그 귀신에게 자신의 진로를 알아 보기도 하고 대학에 가서 무엇을 전공하면 좋으냐고 물어 보기도 하고 과연 내가 대학에 갈 수 있는가를 물어 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불한해 하는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얼마나 허탄한 이야기고 허황된 생각들입니까 여기에 대한 책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또 전생을 보게 해준다는 테이프가 나왔고 잡귀를 막아 준다는 장신구들이 나왔으며 정신 질환자에게 이 전생을 보여 줌으로써 질병을 고쳐 준다는 “전생 퇴행 요법”일라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미국에서 전생 요법을 주장한 브라이언 와이스라는 사람이 쓴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와 전생 요법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들을 보면 정신질환 환자에게 최면을 걸어서 이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된 전생의 사건을 떠올리게 해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신 질환은 전생에 원인이 있으므로 질병을 고치려면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전생을 보게 하여 그 원인을 찾아서 병을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생 퇴행 요법”이라고 합니다. 또 지나 서미나라라는 사람은 윤희의 비밀, 방경각, 윤희의 진실이라는 책들에서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윤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놓았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나는 98번 환생했다. 사후의 생, 영혼의 탐구, 삶 이전의 삶” 등입니다. 이런 책들은 모두 사람의 전생과 환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작가 양귀자가 쓴 천년의 사랑이라는 책이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두 남녀가 천년이 지난 뒤인 오늘날에 환생해서 옛날에 다하지 못한 사랑을 다시 속삭인다는 내용인데 이 책이 그렇게 잘 팔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생과 환생을 다룬 책들이 잘 팔리니까 너도 나도 이런 책들을 출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책뿐만이 아닙니다. 드라마에서도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서울방속이 방영한 “8월의 신부”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26년 전에 사랑을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청춘남녀가 다시 환생했는데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옛날의 애인을 다시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즈 사람들이 이렇게 황당한 이야기들을 즐기고 좋아합니다. 또 영화도 있습니다. “은행나무 침대”라는 영화인데 그 내용을 보면 한 나라의 궁중에서 악사로 일하던 청년이 공주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두 젊은이가 신분의 차이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그런데 공주가 후에 은행나무로 환생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악사도 환생을 해 미술 교사가 되는데 이 악사가 그 은행나무로 자신의 침대를 만듭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전생에서 못다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주는 메시지는 이루지 못한 사랑은 천년이 지난 후에도 환생해서 다시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 귀신과 사랑을 나눈다는 “천년유혼”이라는 영화가 있고, 여러분도 보셨겠지만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친구에게 죽음을 당한 남편의 영혼이 점술사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 처한 부인을 돕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중국의 “진용”이라는 영화도 있는데 이 영화는 옛날 진시황의 호위장군이 오늘날에 다시 환생해서 전생에서 사랑했던 궁녀와 다시 사랑을 나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요즘 액세서리에서도 이런 것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생을 체험하고자 할 때 잡귀들이 방해를 많이 하는데 그 방해를 막아 준다는 “금강저”라는 액세서리가 지금 잘 팔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투시를 통해서 전생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천년 수정구”, “문스톤”이라는 수정 액세서리가 있습니다. 이 수정을 통해서 보면 자신의 전생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젊은이들이 이 장신구를 액세서리로 몸에 지니고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얼마나 황당한 일들입니까 오늘늘은 이렇게 허무맹랑한 일들이 많습니다. 아주 허황되고 부질없는 일들이 무책임하게 TV에서 방영되고 책과 영화를 통해서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이런 것에 솔깃해 하고 관심을 갖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허탄한 것에 관심을 갖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인간이 무분별한 장난이 많아진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발전된 의학 기술을 얼마나 무분별하게 사용하는지 모릅니다.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에서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의술이 조금 더 발전되면 인간의 몸속에 있는 부품들을 사고 파는 산업이 굉장히 발전하게 될 것이며 플라스틱이나 강철로 사람의 위나 눈, 심장 같은 부품을 만들어내는 공장도 생길 것이라고 합니다. 또 부품뿐이 아니고 인간 자체를 만들어내는 공장도 생겨날 것이라고 가상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하는 행동으로 보아서는 이런 것도 만드어낼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는 것이 아니고 잘생긴 남자에게서 정자를 빼내고 아름다운 여자에게서 난자를 빼내 수정란을 만들어 놓으면 아기를 원하는 부부들이 와서 그것을 마음대로 골라 아이를 만드는 그런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소름끼치는 장난들입니까 그것뿐이 아닙니다. 이제는 인간의 감정까지도 합성하는 약이 개발되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싱글벙글 웃게 만드는 약이나 하루종일 으르렁대며 싸우게 하는 그런 약도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또 에너지 혁명이 일어나서 공중에 있는 자력을 차단시켜서 우주선처럼 무중력 상태로 만들어 사람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게 만들 수도 있게 한다고 합니다. 이제사람들이 별 장난을 다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결코 가설만이 아닙니다. 이 같은 일들은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인간을 복제하는 시대까지 왔습니다. 이것이 지금 한창 세상을 흔들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나서 어머니의 몸속에서 잉태되고 자라서 태어나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동물이나 인간은 암수가 서로 만나서 또다른 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똑같은 유형의 인간을 복제하는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미 96년도에는 원숭이가 복제되어 만들어졌고 이어서 “둘리”라는 똑같은 양이 복제되어서 태어났습니다. 다음 차례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1978년에 루이스라는 최초의 시험과 아기가 태어나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수정체가 체내에서 수정되어야 정상인데 그렇지 못하고 밖에서 수정시키는 과정을 거쳐서 잉태된 아기를 시험관 아기라고 합니다. 당시 이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한참 동안 시끄러웠었는데 지금은 이 방법이 보편화되어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방법은 오히려 이 땅의 수많은 불임 여성들에게는 하나의 복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 지난 84년에는 수정란을 냉동시켰다가 다시 꺼내어 잉태시킨 냉동아가 출생하셨습니다. 이 경운는 수정체를 냉동시켜 두었다가 후에 부모들이 원할 경우에 그것을 녹여서 태어날 수 있께 하는 경우입니다. 앞으로는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이렇게 수정체를 냉동시켜 놓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오래 두었다가 혹시 손자에 가서 손부가 불임이면 다시 꺼내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아이를 얻어서 좋기는 하겠지만 촌수를 따지자면 참 애매할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마음 한편으로 명쾌하지 못하고 꺼림칙한 것이 사실입니다. 왠지 이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불임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하여 이 방법들까지도 묵인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법들을 통해서 아이를 낳고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태아의 세포를 분리해서 똑같이 생긴 인간을 복제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람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서 잉태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몸에 있는 세포 조직을 통해 똑같은 사람이 복제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자라다가 죽으면 그 세포를 이용해서 죽은 아이와 똑같은 아이를 다시 복제해 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이미 죽은 시체 속에서도 DNA만 추출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람의 복제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레닌을 복제한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오래전에 죽어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안치된 레닌의 몸속에서 DNA를 추출해 레닌과 똑같은 레닌을 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모스크바에서는 레닌을 복제하자, 하지 말자 하는 논쟁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앞으로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이 세상이 얼마나 허황되고 부질없이 순 인간적인 재주만을 부리는 부도덕한 시대입니까 앞으로 세월이 가면 갈수록 별스런 장난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전생을 믿고 환생을 신봉하며 귀신에게 자신의 미래를 물어 보고 있는가 하면 또한편에서는 과학의 힘을 가지고 너무나 인간적인 장난을 많이 하고 있고 오만한 것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이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이 다 되어간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허무맹랑한 일들이 지금 이 시대에 난무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요즘 사람들이 너무 허약해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기가 너무 무서운 것입니다. 내일이 막연하고 경쟁에서 이기기가 너무 힘들며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과거에서 찾으려는 나약한 마음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생에 관심을 갖고 환생을 말하고 점쟁이를 찾아가고 그러는 것입니다. 어런 학생들이 입시 때문에 지쳐 있다가 문득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장차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이며 과연 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자신의 미래가 막막하고 현실이 불안해집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미래를 오늘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미래에 감추어진 나의 모습을 오늘 하나씩 만들어 가고 벗겨 가는 그런 자신만만한 자세가 아니고 오늘이 너무 힘들고 불안하니까 베일에 쌓인 이미 만들어진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오늘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오늘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일에는 관심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허약하고 미래가 불안스러우면 그렇게 허황된 것에 미련을 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사람들의 마음들이 그만큼 약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모두 정신적인 공황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같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다 보면 사람들이 모두 확고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미래에 대한 확신과 든든한 의지력을 가지고 살아가면 그렇게 흔들리는 일이 없을 것인데 그런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확고한 신앙이나 정신력이 없으니까 그 허전한 정신적 공황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대가 암울하다든지 미래가 불투명하다든지 하면 모두 허황된 것에 미련을 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말세론에 빠지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정신적 공황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속이 허하니까 허황된 것에 마음을 쏟고 그것에 의지해 보려는 안쓰러운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 시대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없고 믿음이 없고 소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성경은 세상이 마지막 때가 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예언했습니다. 마지막 때는 이렇게 믿음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정신적으로 중심을 잃고 방황하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강조하기를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별 희한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그 허황된 일들을 좇는 일들이 일어날 것인데 그때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임을 담대히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지막 시대에 믿음을 가지고 살게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믿음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면 미래가 걱정스럽고 두려운 법입니다. 사람이 두렵고 자신이 없으면 아무 것이나 찾게 되어 있고 아무 것이나 믿으려고 하는 나약함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더욱 확신 있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때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바로 마지막 때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는 믿음이 없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신앙적이고 비복음적인 일들이 도처에서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디모데에게 이같은 점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마지막 때에 나타나는 허탄한 이야기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될 것이고,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싫어하게 될 것이며, 이상한 풍조를 따르게 될 것이고, 허탄한 이야기들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을 할 때도 이런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들을 가리켜 말세의 징조들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오늘날은 사람들이 이상한 일에 관심을 갖고 이상한 일을 위해서 머리를 쓰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그럽니다. 또 허황된 일들에 마음을 쓰고 집착하고 한편 두려워하기도 하고 재미있어 하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이 그 옛날 염려했던 그대로 오늘 사람들은 이상한 풍조를 따르고 허탄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한 풍조 가운데 하나는 “환생설”입니다. 요즘 환생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생과 환생을 다룬 책들이 잘 팔린다고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여기에 많이 이끌리고 있는데 입시를 앞둔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귀신 놀이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여러 명이 모여서 주문을 외우면 귀신이 나타나는데 그 귀신에게 자신의 진로를 알아 보기도 하고 대학에 가서 무엇을 전공하면 좋으냐고 물어 보기도 하고 과연 내가 대학에 갈 수 있는가를 물어 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불한해 하는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얼마나 허탄한 이야기고 허황된 생각들입니까 여기에 대한 책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또 전생을 보게 해준다는 테이프가 나왔고 잡귀를 막아 준다는 장신구들이 나왔으며 정신 질환자에게 이 전생을 보여 줌으로써 질병을 고쳐 준다는 “전생 퇴행 요법”일라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미국에서 전생 요법을 주장한 브라이언 와이스라는 사람이 쓴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와 전생 요법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들을 보면 정신질환 환자에게 최면을 걸어서 이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된 전생의 사건을 떠올리게 해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신 질환은 전생에 원인이 있으므로 질병을 고치려면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전생을 보게 하여 그 원인을 찾아서 병을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생 퇴행 요법”이라고 합니다. 또 지나 서미나라라는 사람은 윤희의 비밀, 방경각, 윤희의 진실이라는 책들에서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윤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놓았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나는 98번 환생했다. 사후의 생, 영혼의 탐구, 삶 이전의 삶” 등입니다. 이런 책들은 모두 사람의 전생과 환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작가 양귀자가 쓴 천년의 사랑이라는 책이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두 남녀가 천년이 지난 뒤인 오늘날에 환생해서 옛날에 다하지 못한 사랑을 다시 속삭인다는 내용인데 이 책이 그렇게 잘 팔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생과 환생을 다룬 책들이 잘 팔리니까 너도 나도 이런 책들을 출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책뿐만이 아닙니다. 드라마에서도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서울방속이 방영한 “8월의 신부”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26년 전에 사랑을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청춘남녀가 다시 환생했는데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옛날의 애인을 다시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즈 사람들이 이렇게 황당한 이야기들을 즐기고 좋아합니다. 또 영화도 있습니다. “은행나무 침대”라는 영화인데 그 내용을 보면 한 나라의 궁중에서 악사로 일하던 청년이 공주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두 젊은이가 신분의 차이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그런데 공주가 후에 은행나무로 환생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악사도 환생을 해 미술 교사가 되는데 이 악사가 그 은행나무로 자신의 침대를 만듭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전생에서 못다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주는 메시지는 이루지 못한 사랑은 천년이 지난 후에도 환생해서 다시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 귀신과 사랑을 나눈다는 “천년유혼”이라는 영화가 있고, 여러분도 보셨겠지만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친구에게 죽음을 당한 남편의 영혼이 점술사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 처한 부인을 돕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중국의 “진용”이라는 영화도 있는데 이 영화는 옛날 진시황의 호위장군이 오늘날에 다시 환생해서 전생에서 사랑했던 궁녀와 다시 사랑을 나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요즘 액세서리에서도 이런 것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생을 체험하고자 할 때 잡귀들이 방해를 많이 하는데 그 방해를 막아 준다는 “금강저”라는 액세서리가 지금 잘 팔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투시를 통해서 전생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천년 수정구”, “문스톤”이라는 수정 액세서리가 있습니다. 이 수정을 통해서 보면 자신의 전생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젊은이들이 이 장신구를 액세서리로 몸에 지니고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얼마나 황당한 일들입니까 오늘늘은 이렇게 허무맹랑한 일들이 많습니다. 아주 허황되고 부질없는 일들이 무책임하게 TV에서 방영되고 책과 영화를 통해서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이런 것에 솔깃해 하고 관심을 갖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허탄한 것에 관심을 갖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인간이 무분별한 장난이 많아진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발전된 의학 기술을 얼마나 무분별하게 사용하는지 모릅니다.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에서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의술이 조금 더 발전되면 인간의 몸속에 있는 부품들을 사고 파는 산업이 굉장히 발전하게 될 것이며 플라스틱이나 강철로 사람의 위나 눈, 심장 같은 부품을 만들어내는 공장도 생길 것이라고 합니다. 또 부품뿐이 아니고 인간 자체를 만들어내는 공장도 생겨날 것이라고 가상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하는 행동으로 보아서는 이런 것도 만드어낼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는 것이 아니고 잘생긴 남자에게서 정자를 빼내고 아름다운 여자에게서 난자를 빼내 수정란을 만들어 놓으면 아기를 원하는 부부들이 와서 그것을 마음대로 골라 아이를 만드는 그런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소름끼치는 장난들입니까 그것뿐이 아닙니다. 이제는 인간의 감정까지도 합성하는 약이 개발되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싱글벙글 웃게 만드는 약이나 하루종일 으르렁대며 싸우게 하는 그런 약도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또 에너지 혁명이 일어나서 공중에 있는 자력을 차단시켜서 우주선처럼 무중력 상태로 만들어 사람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게 만들 수도 있게 한다고 합니다. 이제사람들이 별 장난을 다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결코 가설만이 아닙니다. 이 같은 일들은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인간을 복제하는 시대까지 왔습니다. 이것이 지금 한창 세상을 흔들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나서 어머니의 몸속에서 잉태되고 자라서 태어나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동물이나 인간은 암수가 서로 만나서 또다른 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똑같은 유형의 인간을 복제하는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이미 96년도에는 원숭이가 복제되어 만들어졌고 이어서 “둘리”라는 똑같은 양이 복제되어서 태어났습니다. 다음 차례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1978년에 루이스라는 최초의 시험과 아기가 태어나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수정체가 체내에서 수정되어야 정상인데 그렇지 못하고 밖에서 수정시키는 과정을 거쳐서 잉태된 아기를 시험관 아기라고 합니다. 당시 이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한참 동안 시끄러웠었는데 지금은 이 방법이 보편화되어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방법은 오히려 이 땅의 수많은 불임 여성들에게는 하나의 복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 지난 84년에는 수정란을 냉동시켰다가 다시 꺼내어 잉태시킨 냉동아가 출생하셨습니다. 이 경운는 수정체를 냉동시켜 두었다가 후에 부모들이 원할 경우에 그것을 녹여서 태어날 수 있께 하는 경우입니다. 앞으로는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이렇게 수정체를 냉동시켜 놓는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오래 두었다가 혹시 손자에 가서 손부가 불임이면 다시 꺼내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아이를 얻어서 좋기는 하겠지만 촌수를 따지자면 참 애매할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마음 한편으로 명쾌하지 못하고 꺼림칙한 것이 사실입니다. 왠지 이것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불임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하여 이 방법들까지도 묵인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법들을 통해서 아이를 낳고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태아의 세포를 분리해서 똑같이 생긴 인간을 복제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람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서 잉태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몸에 있는 세포 조직을 통해 똑같은 사람이 복제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자라다가 죽으면 그 세포를 이용해서 죽은 아이와 똑같은 아이를 다시 복제해 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이미 죽은 시체 속에서도 DNA만 추출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사람의 복제는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레닌을 복제한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오래전에 죽어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안치된 레닌의 몸속에서 DNA를 추출해 레닌과 똑같은 레닌을 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모스크바에서는 레닌을 복제하자, 하지 말자 하는 논쟁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앞으로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이 세상이 얼마나 허황되고 부질없이 순 인간적인 재주만을 부리는 부도덕한 시대입니까 앞으로 세월이 가면 갈수록 별스런 장난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전생을 믿고 환생을 신봉하며 귀신에게 자신의 미래를 물어 보고 있는가 하면 또한편에서는 과학의 힘을 가지고 너무나 인간적인 장난을 많이 하고 있고 오만한 것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이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이 다 되어간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허무맹랑한 일들이 지금 이 시대에 난무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요즘 사람들이 너무 허약해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기가 너무 무서운 것입니다. 내일이 막연하고 경쟁에서 이기기가 너무 힘들며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과거에서 찾으려는 나약한 마음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생에 관심을 갖고 환생을 말하고 점쟁이를 찾아가고 그러는 것입니다. 어런 학생들이 입시 때문에 지쳐 있다가 문득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장차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이며 과연 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자신의 미래가 막막하고 현실이 불안해집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미래를 오늘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미래에 감추어진 나의 모습을 오늘 하나씩 만들어 가고 벗겨 가는 그런 자신만만한 자세가 아니고 오늘이 너무 힘들고 불안하니까 베일에 쌓인 이미 만들어진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오늘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오늘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일에는 관심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허약하고 미래가 불안스러우면 그렇게 허황된 것에 미련을 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사람들의 마음들이 그만큼 약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모두 정신적인 공황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같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다 보면 사람들이 모두 확고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미래에 대한 확신과 든든한 의지력을 가지고 살아가면 그렇게 흔들리는 일이 없을 것인데 그런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확고한 신앙이나 정신력이 없으니까 그 허전한 정신적 공황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대가 암울하다든지 미래가 불투명하다든지 하면 모두 허황된 것에 미련을 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말세론에 빠지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정신적 공황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속이 허하니까 허황된 것에 마음을 쏟고 그것에 의지해 보려는 안쓰러운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 시대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없고 믿음이 없고 소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성경은 세상이 마지막 때가 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예언했습니다. 마지막 때는 이렇게 믿음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정신적으로 중심을 잃고 방황하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강조하기를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별 희한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그 허황된 일들을 좇는 일들이 일어날 것인데 그때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임을 담대히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지막 시대에 믿음을 가지고 살게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믿음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면 미래가 걱정스럽고 두려운 법입니다. 사람이 두렵고 자신이 없으면 아무 것이나 찾게 되어 있고 아무 것이나 믿으려고 하는 나약함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더욱 확신 있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때입니다. 오늘 이 시대가 바로 마지막 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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