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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승리의 찬가 (딤후4:6-8)

본문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확신에 찬 신앙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가를 보게 됩니다.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이 노년에 가서 인생을 정리하고 종말을 준비하면서 다가올 순교를 염두에 두고 고백한 것입니다. 종말을 눈앞에 두고서도 만족해 하는 신앙인의 참모습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본문을 통해 인간의 종말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저가 아는 분중에는 암으로 돌아가신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참으로 아까운 사람이 또 희생되었구나 생각하면 허무감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암이라는 병은 참 무섭습니다. 사람들을 사정없이 쓰러트리고 낙심하게 만들고 망가트리고 죽게 만듭니다. 이 암이라는 병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을 쓰러트리고 한창 일할 사람들을 사정없이 넘어트리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동안 주변의 소천하신 분들이 대부분 이 암으로 가셨습니다. 암이 얼마나 흔한지 모릅니다. 몸에 이상이 있다 해서 진찰을 해보면 모두 암입니다. 오늘은 주어진 생명을 건강히 살다 가기가 참 어려운 세상입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다 보니까 얼마 전에 읽었던 책 내용이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 책은 엘리자베스 로스라는 임상 심리학자가 쓴 죽음에 대한 해답이라는 책이니다. 이 책은 암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임상적으로 깊이 관찰해서 연구해 놓은 책입니다. 어떤 환자가 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습니다. 진찰 결과 암입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 앞으로 6개월밖에 살 수 없습니다.” 하고 통고해 줍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부분 멍하니 그냥 서 있는다는 것입니다. 로스는 이런 사람 600명을 대상으로 해서 연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이런 사람들은 다섯 단계를 거치면서 죽더라는 것입니다. 이 임상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의 종말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단계는 부인하는 단계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당신의 병은 암입니다. 앞으로 6개월밖에 살지 못합니다.” 하고 말하면 한결같이 부인하더라는 것입니다. “정말입니까 오진일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죽을 고비를 얼마나 많이 넘겼는데 지금 와서 죽습니까” 그럴 것입니다. 모두가 오진이라고 믿고 싶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암으로 죽어도 나한테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똑같은 마음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생각을 고쳐서 수그러든다고 합니다. “아니야, 사실일지도 몰라. 나도 죽을지 몰라.” 그리고 어깨가 축 늘어져 충격과 낙심과 심한 고독감에 깊이 빠져들어 간다고 합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때 누가 위로를 하면 그 위로가 비웃음으로 들린다고 합니다. 친구가 위로하면 “자네는 내 심정 몰라”하고는 돌아 눕습니다. 아내가 위로를 하면 “나 죽으면 다시 시집 가고 좋지” 그러면서 순순히 그 위로를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종말이라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모두 이런 때가 옵니다. 형식이 다르고 과정이 다르고 모양이 다를 뿐이지 사람에게는 모두 이런 종말의 때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종말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 종말은 예고 없이 오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 단계는 분노하는 단계입니다. “내가 암에 걸렸다” 하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도적놈, 강도, 사기꾼, 나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선하게 살아온 내가 죽어야 하지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이것은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야” 하며 분노합니다. 그렇게 화가 치밀어 오르면 신경질을 부리고 발악을 하다가 전신이 마비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아주 보기 흉한 험한 모습으로 지레 죽는 사람도 있답니다. 그때 사람들은 말하기를 “정을 끊고 죽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죽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에 악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악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건강하고 장수하고 형통하고 돈도 잘 벌고 또 죽을 때도 고통 없이 잘 죽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어떤 때는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삽이라는 사람이 그런 불합리함을 보고 불공평하다 해서 시편 73편에서 말하기를 어찌 악인은 건강하고 돈도 잘 벌고 재앙도 없고 죽을 때도 고통 없이 죽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시73:2)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시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 하였음이로다 (시73: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시73: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시73: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73:7)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시73: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시73: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상할 것 하나 없습니다. 사형 언도를 받은 사형수야 감방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지 누가 상관을 합니까 그냥 놓아둡니다.
왜냐하면 사형수는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책임을 묻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냥 놔 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심수야 그냥 놓아 둡니까 감옥내에서도 질서를 지켜야 하고 규울을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만일 조금만 어기면 엄한 벌이 내리고 매를 맞지 않습니까 선한 사람이 인생 도중에 병에 걸려 일찍 죽게 되었을 때 왜 분노가 없겠습니까 그래서 본노를 터트린다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단계는 흥정하는 단계입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왜 내가 죽어야 하나” 생각해보면 분노가 치솟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선하게 살고 열심히 살고 신앙생활 잘하고 그랬는데 왜 하필 내가 이렇게 일찍 죽어야 하나” 생각하면 얼마나 분노할 일입니까 그래서 세 번째 단계에서 사람들은 분노하고 흥분하고 심지어는 발악을 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진정되면 흥정을 합니다. “아이고, 내가 이렇게 죽으면 어떡해, 죽으려면 고이 죽어야지” 그러고는 하나님께 흥정을 합니다. “하나님, 이번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이번 한번만 살려 주시면 죽도록 헌신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고, 십일조 생활도 철저히 하고, 새벽기도도 잘하겠습니다. ” 우선 약속부터 해놓고 봅니다. 감당도 못할 약속들을 마구 해놓습니다. 그리고 의사에게도 흥정을 합니다. “나를 살려만 주면 내 재산 모두 팔아서 내놓을테니 고쳐만 주십시오.” 아마 이것이 인간의 본성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모두 이렇게 됩니다. 이 모습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이 때는 자존심도 체면도 부끄러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우리들은 이런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은 마지막을 편안히 맞아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이 단계에서 하나님과 흥정이 잘되면 고침받고 살아납니다. 이 단계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이 단계를 “신유의 단계”라고 합니다. 사람이 고침을 받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가 사람이 사람 되는 단계이고 사람이 위인이 되는 단계이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단계입니다. 사람들이 이 단계까지 이르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단계까지 와야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작가 오혜령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에 대한 책을 읽어 보니까 참 기구한 인생 역정이었습니다. 이 분은 4살 때 폐렴으로 사경을 헤맸다고 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신장염과 방광염과 관절염이 한꺼번에 발병해서 2년 동안을 자리에 누워서 살았습니다. 여고 1학년 때는 몸에 고열이 발생하더니 갑자기 하반신이 마비되어서 꼼짝을 못하고 누워 살았습니다. 이때 너무나 낙심이 되어서 두 번이나 자실을 하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실패를 했습니다. 2년 만에 겨우 두 발로 일어서려는가 했는데 또 구토와 고열이 나서 병원에 가 진찰을 해보니 불치병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살려 달라고 얼마나 문을 잡고 매달려 애원을 했는지 병원에서 그냥 나가라고 문을 닫는 바람에 다섯 손가락이 문틈에 끼어서 모두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2년간을 누워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생명이 얼마나 질긴지 죽지 않고 누워서 공부를 해 대학엘 갑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신춘문예에 당선이 됩니다. 그때부터 이 분이 기고망장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 한달간 병원에서 혼수상태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혼수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때부터 이 분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험은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다음해에 갑상선으로 1년간 또 입원을 합니다. 겨우 회복되어 퇴원을 했는데 일주일 후 몸이 이상해 다시 입원해서 조사를 해보니까 위암이라는 판정이 납니다.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그렇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자비하시다구요 웃기지 마세요.” 그랬답니다. 그럴 만도 하지 않습니까 나중에는 위암이 임파선 암으로 번져 도저히 살 욕망이 없어서 세 번째로 자살을 기도했다고 합니다. 아파트 위에 올라가서 뛰어 내리려고 하는데 경비원에게 발각되어서 실패합니다. 또 방에다 장미꽃 50송이를 갖다 놓고 죽으려 했는데 가족들에게 발각되어서 역시 실패를 합니다. 그래서 이 분이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닏. “하나님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왜 나로 하여금 죽지도 못하게 합니까” 그러면서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몸부림을 치며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잠을 자는데 꿈 속에서 환상이 보여집니다. 그러면서 어거스틴의 참회록에 있는 한 구저이 선명하게 나타나더랍니다. “오 새로운 아름다움이여! 내가 왜 이제야 당신을 알게 되었나요!” 그 구절을 모는 순간 이 분이 큰 감동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과 흥정을 벌입니다. “나를 여기서 살려만 주시면 이제부터는 당신만을 위해서 살렵니다. 그 동안 교만했던 것, 자만했던 것, 방자했던 것 모두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나를 살려만 주시면 이제부터 나는 당신만을 전하며 살겠습니다. ” 그 흥정이 얼마나 심각했겠습니까 이 분이 그렇게 흥정하는 동안 온 몸이 뜨거워지면서 몸에 있던 종양들이 모두 없어지고 부풀어 오르던 배가 꺼지고 몸이 순간적으로 회복되어 고침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때는 아주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무한정 기다리시는 그런 분이신데 어떤 때는 참 두렵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인정사정 없이 몰아치십니다. 용서가 없고 기다림이 없고 막다른 골목에 몰아 넣고 사정없이 몰아치십니다. 그렇게 해서 항복을 받으시고는 다시 불러서 당신의 도구로 사용을 하십니다. 그것도 흥정이 잘된 사람이라야 고생 끝에 기쁨이 주어집니다. 만일 이 단계에서 흥정이 안 되면 네 번째 단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4. 네 번째 단계는 우울증에 빠지는 단계입니다. 이제는 소망이 없습니다. 흥정이 되지 않아서 희망도 없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포기합니다. 비관합니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죽을 준비는 안 되었는데 시간은 자꾸만 다가오니.” 그래서 초조하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고독해집니다. 이 단계가 네 번째 단계인 깊은 절망과 우울에 빠지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날을 위해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준비된 사람은 그렇게까지 절망적이고 우울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얼마나 자신 있는 모습입니까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 얼마나 자신감 넘치는 고백입니까 사실 우리들이 신앙 안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종말의 순간을 이렇게 담담하게 맞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꾸만 종말을 준비하라고 말씀합니다.
5. 다섯 번째 단게는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체념의 단계입니다. 수용의 단계입니다. 그 길이 아무리 고독하고 힘들고 무서워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갈 수밖에 없구나” 그리고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초라한가. 내 인생이 겨우 이렇게 끝나고 마는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신앙생활 좀 잘 할걸. 헌금도 좀 잘하고 싸우지도 말걸. 나도 참 한심한 인간이구나.” 그러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이 단계가 사람이 가장 진실해지는 단계라고 합니다. 거짓이 없어지고 세상에 미련이 없어지고 인심이 후해지는 단계입니다. 이제 와서 후회를 하고 인심이 후해지면 무얼 합니까 그래서 건강할 때 일 좀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시간 여유가 좀 있을 때 봉사 좀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질이 좀 있을 때 하나님을 위해서 과감하게 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다 없어진 후에, 시간이 다 지난 후에 와서 할걸 하고 후회를 하면 무얼 합니까 천국은 심은 자만이 거두는 나라입니다. 천국은 심지 않은 사람은 갈 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아주 자신만만합니다. “(딤후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 이 말은 곧 있을 자신의 순교를 내다보고 하는 말입니다. “관제”라는 말은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은 얼마 있으면 순교의 제물로 죽을 것을 미리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 동안 심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심은 것이 너무나 많기에 그 나라에 가서 주어질 상을 미리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두려움과 아쉬움과 망설임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나온 고백이 이 말씀입니다.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 얼마나 시원한 신앙고백입니까 이것이 신앙인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세상을 살다가 이렇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같은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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