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재기 (딤후4:9-11)
본문
오늘은 일년 365일 가운데서 맨 마지막 날입니다. 그것도 한 해의 마지막 시간을 이제 겨우 30여 분 남겨 놓고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감회가 어떻습니까 아마 이 밤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많이 여기에 나와 있게 된 것은 남달리 시간에 대한 감회를 느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나간 일년의 시간을 되돌아 보면 아마 만감이 교차할 것입니다. 아마 만족함보다는 모두 아쉬움이 더할 것입니다.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일을 하느라고는 했는데 오늘에 와서 보니 별로 만족스럽지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늘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다 보면 늘 성공만 할 수는 없습니다. 성공은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희망하고 바라는 마음이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는 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또 바라는 대로 되는 것도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실패가 가져다 주는 유익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는 이렇게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도 모두 이렇게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습니다. 실패가 주는 교훈이 그만큼 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늘 건강하던 사람이 한 번 병에 들게 되면 좀처럼 고치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병이 중하고 경해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그만큼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병을 앓게 되면 그때 받는 충격이 그만큼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잔병 치레를 많이 하던 사람은 병에 걸려도 놀라지 않고 잘 대처해 나가게 되는데 건강하던 사람이 한 번 입원하게 되면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잔병 치레를 많이 하는 사람은 여러 번 병을 앓아 보았기 때문에 그만큼 병력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가 생겨서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실패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려움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실패는 우선 사람들에게 쓴맛을 줍니다. 그리고 실패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실의를 맛보게 합니다. 실패는 어쩌다 한 번쯤 경험해 볼 일이지 자주 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씁니까 아마 인간의 발전은 그렇게 해서 오기도 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세 차례 세계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세계 여행이라야 그 당시는 지중해 연안이었고 좀더 넓게 말하자면 로마까지를 말합니다. 바울은 이 3차 여행을 하는 동안 여러 사람들을 대동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끝까지 잘 동행해 준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도중에서 실패하고 탈락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탈락은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사람이 “데마”라는 사람입니다. 10절을 보면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라고 했습니다. 그는 처음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드어갔을 때 그 곳까지 함께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그곳에서 데마는 사도 바울과 함께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같이 당했습니다. 처음의 데마는 아주 신실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사도 바울이 두 번째로 감옥에 들어갈 때는 그만 탈락하고 맙니다. 왜 탈락하는가 하면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가버렸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그의 고향입니다. 여기서 그만 데마는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고향은 참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어서라도 고향에 묻히려 합니다. 외국에 이민을 간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고향에 대한 향수라고 합니다. 이것만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중학교때 미국에 이민을 간 사람이 나이 60이 되어 가는데도 갈수록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에 갈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그리움은 더하다고 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일년에 한 번씩은 귀국해서 고향의 공기를 마시고 가야 살 수 있지 그렇지 못하면 몸살이 난다고 합니다. 데마도 몸으로는 사도 바울을 따라서 전도를 한다고 나서서 감옥에도 함께 따라가 보기도 했는데 끝내는 중도에서 탈락해서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성경는 거기다 더 악센트를 붙여서 “세상을 사랑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물론 세속 사회를 말합니다. 데마는 옛 친구와, 옛 생활과, 옛 추억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도 길에서도 그것을 잊지 못하고 있다가, 그것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그만 옛 생활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데마는 끝내 신앙도 버렸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자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데마라는 사람입니다. 또 성경은 “그레스게”라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갈라디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가 돌아간 이유를 성경은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아서 잘 알 수 없지만 이 사람도 도중에 실패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도 처음에는 전도를 하겠다고 따라 나섰는데 그만 도중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또 “디도”라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달마디아는 오늘의 유고슬라비아입니다. 디도는 그의 신앙 역정을 보아서 도중에 탈락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울이 개척했던 곳으로 보내 사역하도록 하기 위하여 미리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바울 곁에는 “누가”만 혼자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누가는 누가보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사도 바울의 주치의입니다. 이 사람은 아주 신실했던 사람입니다. 누가는 끝까지 사도 바울이 가는 곳이면 어디나 어디서나 동행하고, 함께 가서 사도 바울의 건강을 보살피며 함께합니다. 모두가 도중에서 탈락했지만 누가만은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킵니다. 이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함께 있을 때는 함께 있기가 쉽지만, 모두가 떨어져 나갈 때 혼자 남아 있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들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실패를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갈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11절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 보면 “(딤후4:11) 네가 올 때에” 그랬습니다. 여기서 “너”는 디모데를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디모데에게 보내면서 “(딤후4:11)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럽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가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의 일생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전반기의 마가는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는 어머니가 강권해서 사도 바울의 전도 길에 따라 나섰습니다. 마가의 외삼촌이 사도 바울의 일급 참모였던 바나바입니다. 마가는 사도 바울을 동경한 나머지 그를 따라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오래 견디지를 못하고 그만 도중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그의 전반 인생은 실패를 경험하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의 신중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마가는 신앙의 가정에서 자랍니다. 어머니와 외삼촌이 아주 열심 있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자주 왔던 사도 바울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어떤 동경심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가는 자기 소명도 구체적으로 없는데 어머니와 외삼촌의 조언에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전도 길에 따라 나섰다가 그만 도중에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의 마가는 실패하는 마가입니다.
2. 그러나 중반기의 마가는 끝내 “재기”합니다. 사도 바울이 제 1차 전도 여행 때 마가가 도중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마가에 대해서 아주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2차 전도 여행 때는 일급 참모였던 바나바의 간청도 무시하고 마가를 멤버에서 빼 버립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서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의절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마가를 모두 떼어 놓고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을 떠나 버립니다. 이 같은 사도 바울의 엄격성이 결국 마가에게는 굉장히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여행 대열에서 탈락한 마가는 그때부터 숙부 바나바로부터 다시 경건 훈련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숙하고, 연마하고, 뉘우치고, 참회하고,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아마 사도 바울이 바나바의 요청을 너그럽게 받아들여서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갔더라면 마가는 얼마 가지 못해서 또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에는 무엇보다도 이 엄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결단과 분발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마가는 피눈물 나는 자성과 참회를 통해 결국 제기하게 됩니다.
3. 그래서 결국 마가는 후반기에 가서 “성공하는 사람”이 됩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바울이 마가를 다시 인정하는 대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편지합니다. 마가를 다시 불러들입니다. 이 말은 마가를 다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 마가는 끝내 사도 바울의 일급 가는 동역자로 성장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최초의 복음서라고 하는 마가복음을 기록하는 기록자가 됩니다. 결국 실패했던 마가는 제기한 마가가 되었고 끝내는 성공한 마가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여기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실패는 한때 사람들에게 좌절을 맛보게 하고, 쓴맛을 보게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실패자로 하여금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게 하는 도화선이 되고 계기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실패하면서 성숙해지고, 다져지고,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이 시간은 특별히 한 해를 뒤돌아 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들이 살아온 지난 날들을 생각하면 공통적으로 생각되는 것은 모든 일에 성공보다는 실패와 부끄러움이 더 많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늘 후회도 하게 되고, 그래서 새롭게 다짐도 하면서 발전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지난 시간은 다 지나가고 새 날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 마가가 한때는 실패를 했었지만 그것이 기회가 되어 오히려 더 단단한 미래를 성곡시켰던 것처럼 새해 여러분의 삶은 주 안에서 인도를 받아 성공스럽게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실패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려움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실패는 우선 사람들에게 쓴맛을 줍니다. 그리고 실패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실의를 맛보게 합니다. 실패는 어쩌다 한 번쯤 경험해 볼 일이지 자주 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씁니까 아마 인간의 발전은 그렇게 해서 오기도 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세 차례 세계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세계 여행이라야 그 당시는 지중해 연안이었고 좀더 넓게 말하자면 로마까지를 말합니다. 바울은 이 3차 여행을 하는 동안 여러 사람들을 대동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끝까지 잘 동행해 준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도중에서 실패하고 탈락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탈락은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사람이 “데마”라는 사람입니다. 10절을 보면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라고 했습니다. 그는 처음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드어갔을 때 그 곳까지 함께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그곳에서 데마는 사도 바울과 함께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같이 당했습니다. 처음의 데마는 아주 신실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사도 바울이 두 번째로 감옥에 들어갈 때는 그만 탈락하고 맙니다. 왜 탈락하는가 하면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가버렸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그의 고향입니다. 여기서 그만 데마는 실패하고 맙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고향은 참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어서라도 고향에 묻히려 합니다. 외국에 이민을 간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고향에 대한 향수라고 합니다. 이것만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 중학교때 미국에 이민을 간 사람이 나이 60이 되어 가는데도 갈수록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에 갈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그리움은 더하다고 합니다. 어떤 목회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일년에 한 번씩은 귀국해서 고향의 공기를 마시고 가야 살 수 있지 그렇지 못하면 몸살이 난다고 합니다. 데마도 몸으로는 사도 바울을 따라서 전도를 한다고 나서서 감옥에도 함께 따라가 보기도 했는데 끝내는 중도에서 탈락해서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성경는 거기다 더 악센트를 붙여서 “세상을 사랑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물론 세속 사회를 말합니다. 데마는 옛 친구와, 옛 생활과, 옛 추억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도 길에서도 그것을 잊지 못하고 있다가, 그것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그만 옛 생활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데마는 끝내 신앙도 버렸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패자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데마라는 사람입니다. 또 성경은 “그레스게”라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갈라디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가 돌아간 이유를 성경은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아서 잘 알 수 없지만 이 사람도 도중에 실패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도 처음에는 전도를 하겠다고 따라 나섰는데 그만 도중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또 “디도”라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달마디아는 오늘의 유고슬라비아입니다. 디도는 그의 신앙 역정을 보아서 도중에 탈락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울이 개척했던 곳으로 보내 사역하도록 하기 위하여 미리 보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바울 곁에는 “누가”만 혼자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누가는 누가보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사도 바울의 주치의입니다. 이 사람은 아주 신실했던 사람입니다. 누가는 끝까지 사도 바울이 가는 곳이면 어디나 어디서나 동행하고, 함께 가서 사도 바울의 건강을 보살피며 함께합니다. 모두가 도중에서 탈락했지만 누가만은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킵니다. 이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함께 있을 때는 함께 있기가 쉽지만, 모두가 떨어져 나갈 때 혼자 남아 있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들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실패를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갈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11절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 보면 “(딤후4:11) 네가 올 때에” 그랬습니다. 여기서 “너”는 디모데를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디모데에게 보내면서 “(딤후4:11)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럽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가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의 일생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전반기의 마가는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는 어머니가 강권해서 사도 바울의 전도 길에 따라 나섰습니다. 마가의 외삼촌이 사도 바울의 일급 참모였던 바나바입니다. 마가는 사도 바울을 동경한 나머지 그를 따라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오래 견디지를 못하고 그만 도중에서 탈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그의 전반 인생은 실패를 경험하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의 신중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마가는 신앙의 가정에서 자랍니다. 어머니와 외삼촌이 아주 열심 있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자주 왔던 사도 바울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어떤 동경심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가는 자기 소명도 구체적으로 없는데 어머니와 외삼촌의 조언에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전도 길에 따라 나섰다가 그만 도중에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의 마가는 실패하는 마가입니다.
2. 그러나 중반기의 마가는 끝내 “재기”합니다. 사도 바울이 제 1차 전도 여행 때 마가가 도중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마가에 대해서 아주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2차 전도 여행 때는 일급 참모였던 바나바의 간청도 무시하고 마가를 멤버에서 빼 버립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서 사도 바울은 바나바와 의절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마가를 모두 떼어 놓고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을 떠나 버립니다. 이 같은 사도 바울의 엄격성이 결국 마가에게는 굉장히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여행 대열에서 탈락한 마가는 그때부터 숙부 바나바로부터 다시 경건 훈련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숙하고, 연마하고, 뉘우치고, 참회하고,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아마 사도 바울이 바나바의 요청을 너그럽게 받아들여서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갔더라면 마가는 얼마 가지 못해서 또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에는 무엇보다도 이 엄격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결단과 분발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마가는 피눈물 나는 자성과 참회를 통해 결국 제기하게 됩니다.
3. 그래서 결국 마가는 후반기에 가서 “성공하는 사람”이 됩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바울이 마가를 다시 인정하는 대목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편지합니다. 마가를 다시 불러들입니다. 이 말은 마가를 다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 마가는 끝내 사도 바울의 일급 가는 동역자로 성장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최초의 복음서라고 하는 마가복음을 기록하는 기록자가 됩니다. 결국 실패했던 마가는 제기한 마가가 되었고 끝내는 성공한 마가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여기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실패는 한때 사람들에게 좌절을 맛보게 하고, 쓴맛을 보게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실패자로 하여금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게 하는 도화선이 되고 계기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실패하면서 성숙해지고, 다져지고,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이 시간은 특별히 한 해를 뒤돌아 보는 시간입니다. 우리들이 살아온 지난 날들을 생각하면 공통적으로 생각되는 것은 모든 일에 성공보다는 실패와 부끄러움이 더 많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늘 후회도 하게 되고, 그래서 새롭게 다짐도 하면서 발전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지난 시간은 다 지나가고 새 날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 마가가 한때는 실패를 했었지만 그것이 기회가 되어 오히려 더 단단한 미래를 성곡시켰던 것처럼 새해 여러분의 삶은 주 안에서 인도를 받아 성공스럽게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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