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길을 예비하라 (벧후3:8-13)
본문
저는 월요일과 화요일에 매산 감리교회에서 열렸던 성탄절 강습회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한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중에 성탄절이 누구의 날이냐고 하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들었습니다. 성탄절은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누구의 날입니까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 날이 흥청 망청 자신이 즐기는 날로, 망년회나 하는 날로 기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는 큰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와서 원하는 선물을 양말 속에 넣어 줌으로 인해서 선물을 가져다 준 산타크로스의 날로 기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잘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성탄절은 산타크로스의 날도, 내 자신이 즐기고 노는 날도 아닙니다. 성탄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사하여 주시며,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탄생하신 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신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이와같이 사람들이 성탄절을 엉뚱한 곳에 의미를 두고, 귀를 기울이며 정신이 나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의 오심 즉 재림에 관해서도 의견들이 분분하고 말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92년도 10월에 오신다고 말하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주의 재림을 이 세상의 징조들에 맞추어서 EC가 통합이되고 거기서 적그리스도가 나오면 7년 대환란이 닥치게 되고 그 후에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이렇게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재림은 무슨 재림이냐 그냥 다 하는 말들이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이렇게 의견들이 분분한데 우리는 우리의 중심을 어디에다 두고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주의 날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종말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마 24장과 막 13장에서 말씀하시길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주의 오심은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죽어 가는 때까지도 주님은 재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벧후 3:3-4에 있는 것과 같이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라고 말하는 자들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약속을 어기시고 재림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것은 대단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다른 성경에서 이 말씀을 살펴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이 한가지 사실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이 늦추어 진다고 해서 그것에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에게는 두 가지의 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날과, 미래의 날이었습니다. 그들도 우리 한민족과 같이 엄청나게 고난을 많이 당하였으며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은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도 한을 품고 있는 민족이지만 그들도 역시 우리에 못지 않게 한을 품고 있는 민족입니다. 그들의 현재의 날은 항상 고난과 고통이 떠날 날이 없는 날들이었습니다. 현실은 불합리하고 악하고 죄에 빠져 있으며 구원의 가망이 없어 보이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하기를 미래에는 황금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비록 현실은 우리가 어렵게 살고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후손들은 좀 편하고 안락하게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에는 그래도 뭐 좀 좋은 것이 없을까하는 심정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이렇게 우리와 같이 미래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닌 신앙으로 승화가 되었습니다. 장래에 우리에게 올 날은 황금의 시대가 될 것이다. 주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참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 올 것을 신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평범하게 진화가 되거나 발전이 되어서 오게 되는 날이 아닙니다. 장래의 날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개입하셔서 이 세상의 부정과 악이 완전히 제거되는 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들의 마음 속에 임하셔서 모든 인간을 다스리는 날인 것입니다. 이 때에 완전한 낙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날이 확실하게 올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날은 도적과도 같이 급박하게 오는 것입니다. 경고하고 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20세기에 인간이 쌓아 놓은 문명은 지난 수만년 동안에 인류가 발전시킨 문명과 비교할만 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과학의 발달이 급속하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오늘 전자제품 사놓고서 일주일 후에 그곳에 다시 가보면 아마도 새로운 물건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일주일전에 산 것이 구식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저도 컴퓨터를 일년전에 사 놓고서 쓰고 있는데, 지금은 저와 같은 컴퓨터 사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속도도 더 빠르고 용량도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도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모든 것이 발전되어 가고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는 어떻겠습니까 인간인 우리들이 그 날 수를 센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날자를 늦추시고 오시지 않으시는 것이 인간의 생각에는 그 날 수가 긴 것 같지만, 또 아주 오시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님께는 그 날 수가 아주 짧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왜 재림하시는 날을 늦추고 계실까요 그것은 본문 9절에 나오는 것과도 같이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가 그 대답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래 참으사라고 하는 말을 영어로 보면 long-suffering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오래 참으시는데 어떻게 오래 참으시느냐 하면, 고통스럽게 오래 참으신다고 하는 말입니다. 빨리 세상에 재림하셔서 주의 의로운 백성들이 평화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멸망에 있는 자들이 하나라도 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딤전 2:4에 보시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에스겔 18:23에 보시면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은 당신이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오래 참고 계시는데 우리는 과연 우리의 해야 할 일을 마땅히 잘 해내고 있습니까 주께서 심판날을 늦추시고 계시는 이 때에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의 수가 늘어나도록 기도해야 하며,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선교하는 일에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교회 선교 표어 중의 하나가 가든지 보내든지 한다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선교사로 가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든가 혹은 직접 갈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다고 하면 보내기라도 한다는 것입니다. 막 16:15절의 명령과 같이 우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복음의 일군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주님은 고통을 참으시면서까지 그 날을 늦추시고 계시지만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것도 도적같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죄인의 심판이 있을 것이며, 또한 공포의 날이 될 것입니다. 성경 여러곳에서 그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 13:9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습 1:15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욜 2:1-2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사 13:10-13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고통하시면서 참고 계시는 인내의 시간이 끝나게 되면, 이렇게 큰 심판이 있게 될 것도 알지 못한 채, 어리석은 사람들은 주의 재림이 없다고 말하고 천국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만을 탓할 것도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의 삶이 어떤지도 한 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진정 주님을 맞이하는 심정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십니까 앞으로 다가오게 될 세상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오늘의 삶만이 제일입니다. 그러나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하여 저금도 하고, 실력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그와 같은 이치입니다. 내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다라고 하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향락에 빠질 수 밖에 없으며, 쾌락을 즐깁니다. 내 재산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떠들어 댑니다. 전혀 천국을 위한 삶의 준비를 행하지 않습니다. 좋은 집에 살면서 남이 부러워 하는 것을 보며 우쭐대기를 좋아합니다. 비싼 자가용 타고 다닌다고 남들이 우러러 보아주기를 원합니다. 많은 학식이 있다고 자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노력하여 얻었네! 무엇이든지 쌓아두어야 직성이 풀리는가 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모든 물질들, 우주까지라도 완전히 용해가 되며,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도 타져서 사라져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위에서와 같은 것들을 위해서 삶을 살아오셨다면, 완전히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물질과 학식과 돈과 명예, 이러한 모든 것들은 심판날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소금이 물에 녹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자랑하던 그 모든 것들도 그와같이 녹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토록 높에 쌓아왔던 우리의 탑들은 타져서 재 밖에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 다가 아니고 앞으로 올 세상이 있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앞으로 올 세상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준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지금 질문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타지고 녹아지고 없어질 터인데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우리가 그토록 되고 싶어하였고, 모으고 싶어하였던 것들은 모두 녹아져서 없어질지라도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은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주님께 대하여 어떠한 자세를 지니고 있었는가하는 것은 영원히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항상 문 밖에만 세워 놓았었습니다. 진심으로 내 맘속에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어요라고 그 때가서 후회하시겠습니까 주님! 저는 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음성을 주시고 형제와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나 혼자만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우리의 주님에 대한 행위, 그 믿음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학부모는 자녀 과외를 시키는데 몇 백만원씩 투자를 하면서 공부시킵니다. 이러한 열정도, 그렇게 쌓은 지식도 주의 날에는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우리의 행위는 남아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1:4-8에서는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그 날에 우리는 반드시 주님과 회계를 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준 것으로 너는 얼마나 남겼느냐 무언가 열매를 남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가올 주님의 날을 위해서 사라지지 아니할 열매가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갖지 아니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있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있어서는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세상,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번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올 한 해를 뛰어왔나 나의 쾌락을 위해서 뛰어왔는가 내가 자랑할 것을 위해서 공부하여 왔는가 아니면 주의 오심을 사모하며 그 분께 귀하게 보여 줄 믿음을 위해서 살아왔는가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 분의 약속은 하나도 거짓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주님 앞에 무엇을 내어 놓아야 합니까 주의 날이 오는 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까 아니면 두려움이 됩니까 과연 우리는 떳떳하게 주님 제가 이것을 주님께 드리려고 준비하였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유대 땅에 오실 때에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은 이 소식을 듣고 소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준비하고 있지 못하였기에 소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에 우리가 소동하게 된다면, 주님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날을 사모하며 주님 오실 때에 기뻐 뛰어나가 그 분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합시다. 항상 깨어있어 기도에 힘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데 열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일에 여러분의 모든 삶, 재물과 시간과 명예 그 모든 것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당신이 주의 길을 예비하고 있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깨어있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죽어 가는 때까지도 주님은 재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벧후 3:3-4에 있는 것과 같이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라고 말하는 자들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약속을 어기시고 재림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것은 대단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다른 성경에서 이 말씀을 살펴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이 한가지 사실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이 늦추어 진다고 해서 그것에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에게는 두 가지의 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날과, 미래의 날이었습니다. 그들도 우리 한민족과 같이 엄청나게 고난을 많이 당하였으며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은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도 한을 품고 있는 민족이지만 그들도 역시 우리에 못지 않게 한을 품고 있는 민족입니다. 그들의 현재의 날은 항상 고난과 고통이 떠날 날이 없는 날들이었습니다. 현실은 불합리하고 악하고 죄에 빠져 있으며 구원의 가망이 없어 보이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하기를 미래에는 황금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비록 현실은 우리가 어렵게 살고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후손들은 좀 편하고 안락하게 살아가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에는 그래도 뭐 좀 좋은 것이 없을까하는 심정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이렇게 우리와 같이 미래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닌 신앙으로 승화가 되었습니다. 장래에 우리에게 올 날은 황금의 시대가 될 것이다. 주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참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 올 것을 신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평범하게 진화가 되거나 발전이 되어서 오게 되는 날이 아닙니다. 장래의 날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개입하셔서 이 세상의 부정과 악이 완전히 제거되는 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들의 마음 속에 임하셔서 모든 인간을 다스리는 날인 것입니다. 이 때에 완전한 낙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날이 확실하게 올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날은 도적과도 같이 급박하게 오는 것입니다. 경고하고 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20세기에 인간이 쌓아 놓은 문명은 지난 수만년 동안에 인류가 발전시킨 문명과 비교할만 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과학의 발달이 급속하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오늘 전자제품 사놓고서 일주일 후에 그곳에 다시 가보면 아마도 새로운 물건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일주일전에 산 것이 구식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저도 컴퓨터를 일년전에 사 놓고서 쓰고 있는데, 지금은 저와 같은 컴퓨터 사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속도도 더 빠르고 용량도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도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모든 것이 발전되어 가고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는 어떻겠습니까 인간인 우리들이 그 날 수를 센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날자를 늦추시고 오시지 않으시는 것이 인간의 생각에는 그 날 수가 긴 것 같지만, 또 아주 오시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님께는 그 날 수가 아주 짧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왜 재림하시는 날을 늦추고 계실까요 그것은 본문 9절에 나오는 것과도 같이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가 그 대답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래 참으사라고 하는 말을 영어로 보면 long-suffering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오래 참으시는데 어떻게 오래 참으시느냐 하면, 고통스럽게 오래 참으신다고 하는 말입니다. 빨리 세상에 재림하셔서 주의 의로운 백성들이 평화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멸망에 있는 자들이 하나라도 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딤전 2:4에 보시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에스겔 18:23에 보시면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은 당신이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오래 참고 계시는데 우리는 과연 우리의 해야 할 일을 마땅히 잘 해내고 있습니까 주께서 심판날을 늦추시고 계시는 이 때에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의 수가 늘어나도록 기도해야 하며,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선교하는 일에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교회 선교 표어 중의 하나가 가든지 보내든지 한다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선교사로 가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든가 혹은 직접 갈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다고 하면 보내기라도 한다는 것입니다. 막 16:15절의 명령과 같이 우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복음의 일군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주님은 고통을 참으시면서까지 그 날을 늦추시고 계시지만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것도 도적같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죄인의 심판이 있을 것이며, 또한 공포의 날이 될 것입니다. 성경 여러곳에서 그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 13:9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습 1:15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욜 2:1-2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사 13:10-13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고통하시면서 참고 계시는 인내의 시간이 끝나게 되면, 이렇게 큰 심판이 있게 될 것도 알지 못한 채, 어리석은 사람들은 주의 재림이 없다고 말하고 천국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만을 탓할 것도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의 삶이 어떤지도 한 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진정 주님을 맞이하는 심정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십니까 앞으로 다가오게 될 세상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오늘의 삶만이 제일입니다. 그러나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하여 저금도 하고, 실력도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그와 같은 이치입니다. 내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다라고 하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향락에 빠질 수 밖에 없으며, 쾌락을 즐깁니다. 내 재산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떠들어 댑니다. 전혀 천국을 위한 삶의 준비를 행하지 않습니다. 좋은 집에 살면서 남이 부러워 하는 것을 보며 우쭐대기를 좋아합니다. 비싼 자가용 타고 다닌다고 남들이 우러러 보아주기를 원합니다. 많은 학식이 있다고 자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노력하여 얻었네! 무엇이든지 쌓아두어야 직성이 풀리는가 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모든 물질들, 우주까지라도 완전히 용해가 되며,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도 타져서 사라져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위에서와 같은 것들을 위해서 삶을 살아오셨다면, 완전히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물질과 학식과 돈과 명예, 이러한 모든 것들은 심판날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소금이 물에 녹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자랑하던 그 모든 것들도 그와같이 녹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토록 높에 쌓아왔던 우리의 탑들은 타져서 재 밖에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 다가 아니고 앞으로 올 세상이 있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앞으로 올 세상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준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지금 질문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타지고 녹아지고 없어질 터인데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우리가 그토록 되고 싶어하였고, 모으고 싶어하였던 것들은 모두 녹아져서 없어질지라도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은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주님께 대하여 어떠한 자세를 지니고 있었는가하는 것은 영원히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항상 문 밖에만 세워 놓았었습니다. 진심으로 내 맘속에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어요라고 그 때가서 후회하시겠습니까 주님! 저는 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음성을 주시고 형제와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나 혼자만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우리의 주님에 대한 행위, 그 믿음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학부모는 자녀 과외를 시키는데 몇 백만원씩 투자를 하면서 공부시킵니다. 이러한 열정도, 그렇게 쌓은 지식도 주의 날에는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에 대한 우리의 행위는 남아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1:4-8에서는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 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그 날에 우리는 반드시 주님과 회계를 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준 것으로 너는 얼마나 남겼느냐 무언가 열매를 남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가올 주님의 날을 위해서 사라지지 아니할 열매가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갖지 아니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있는 여러분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있어서는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세상,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번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올 한 해를 뛰어왔나 나의 쾌락을 위해서 뛰어왔는가 내가 자랑할 것을 위해서 공부하여 왔는가 아니면 주의 오심을 사모하며 그 분께 귀하게 보여 줄 믿음을 위해서 살아왔는가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 분의 약속은 하나도 거짓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주님 앞에 무엇을 내어 놓아야 합니까 주의 날이 오는 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까 아니면 두려움이 됩니까 과연 우리는 떳떳하게 주님 제가 이것을 주님께 드리려고 준비하였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유대 땅에 오실 때에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은 이 소식을 듣고 소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준비하고 있지 못하였기에 소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에 우리가 소동하게 된다면, 주님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날을 사모하며 주님 오실 때에 기뻐 뛰어나가 그 분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합시다. 항상 깨어있어 기도에 힘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데 열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기뻐하시는 일에 여러분의 모든 삶, 재물과 시간과 명예 그 모든 것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당신이 주의 길을 예비하고 있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깨어있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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