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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딤후1:3-14)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인(딤전1:2) 디모데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나이 많은 선배 목회자가 젊은 후배 목회자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주께로부터 받음 복음을 믿음의 아들에게, 후배 목회자에게 부탁하며, 자신을 본받아 그 아름다운 사역을(롬10:15) 성령님 으로 말미암아 굳게 지키라고 당부하는 말씀이다.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사도 바울은 자신이 믿고 또한 평생을 바쳐 전하는 하나님은 자신이 처음 믿고 섬기는 새로운 신이 아니라고 한다.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을 택하여 열국 위에 높이 세우신 하나님이다. 종되었던 애 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다. 홍해 바다에 길을 열어, 그 바닥을 밟고 건너게 하신 하나님이다. 광야를 지나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다.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와 내가 잘 아는 하나님이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하나님이다. 나 의 선조들이 섬기던 하나님이요, 또한 너의 선조들이 섬기던 하나님이다. 네 외조모 로이스가 섬기던 하나님이요, 네 어머니 유니게가 섬기던 하나님이다.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바로 그 하나님께 사도 바울이 감사를 드리고 있다. 사도 바울이 그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사도 바울이 감사하는 내용을 살펴 보고져 한다.
1.네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본문 5절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했다.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의 가슴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생각하며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디모데 의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은,
1.선조들이 가졌던 믿음이다. 본문 5절에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했다. 디모데의 가슴속에 간직한 믿음은 그의 외조모 로이스가 가졌던 믿음 이다. 그의 어머니 유니게가 가졌던 믿음이다. 곧 그의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다. 그 하나님이 바로 사도 바울 자신의 조상들이 섬겼던 하나님이요, 또한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 하나님이 디모데에게 거짓 없는 믿음 주신 것을 감사 드리고 있다.
2.속에서 속으로 전해진 믿음이다. 본문 5절에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했다. 이 믿음은 먼저 외조모 로이스 속에 있던 믿음이다. 그 외조모의 믿음이 어머니에게 전해져서 유니게 속에 있던 믿음이다. 그 어머니의 믿음이 아들에게 전해져서 디모데 속에 있는 믿음이다. 이렇게 속에서 속으로 전해진 믿음이다. 참으로 값진 것을 전해 받은 사람들이다. 부모로부터 신앙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나게 귀하고 값진 것이다. 시편 90: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 고 했다. 부모로부터 70-80 살다 갈 육신의 생명을 물려받은 것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한다고 한다. 측량할 수도 없다고 한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 보다 넓다고 한다. 육신의 생명도 갚지 못할 은혜일진데. 하물며 영혼 의 생명이겠는가. 속에서 속으로 전해진 믿음으로 디모데는 영혼의 구원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다. 이 영원한 생명이 70-80 살다 갈 육신의 생명과 비교가 되겠는가. 속에서 속으로 전해지는 믿음은 이처럼 귀하고 값진 것이다. 이 귀하고 값진 보배로운 믿음을(벧후1:1)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았는 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는가
그렇다면, 참으로 복된 자이다. 부모 님으로부터 물려받지 못하였는가
그렇다면 이 귀하고 값진 보배로운 믿음을 후손들에게 누구보다도 값지게 물려주자. 신앙의 유산은 그 어떤 유산보다도 귀하고 값진 것이다. 돈보다도, 그 어떤 물질보다도 귀하고 값진 보배로운 유산이다. 70-80 살다 갈 육신 의 생명도 온 천하보다 더 귀하거든. 하물며 영원한 생명이겠는가.
3.삶으로 나타난 믿음이다. 야고보 2: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다. 죽은 믿음은 생명이 없는 믿음이요, 생명이 없다는 것은 곧 끝났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죽은 믿음은 이미 끝나 버린 믿음이다.
그러므로 속에서 속으로 전해질 수 없다. 속에서 속으로 전해지는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다. 살아 있는 믿음 은, 살아 역사하는 모습이 행동으로 나타나진다는 말이다. 곧 삶을 통하 여 남의 눈에 띄도록 눈에 띄게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믿음의 아들 디모데의 집에서 외조모 로이스도, 어머니 유니게도, 사도 바울은 만나본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의 모습에서 살아 있는 믿음, 거짓 없는 믿음을 보았고, 디모데를 통해서도 그 거짓 없는 믿음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2.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네 눈물을 생각함이라 본문 4절에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 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본문 8절에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복음과 함께 고난을 감수하는 하나님의 일군으로(살전3:2) 굳게 서서 선한 싸움을 싸우기를 권고하고 있 다(딤전6:20). 그 길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고린도후서 11:23-27절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 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 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다. 자신이 몸소 겪어 보았기에, 그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 고난의 길을 아들 디모데에게 걷게 하고 있다. 같이 함께 있으 며 사역을 감당하기도 했고(행20:4), 특별히 몇 몇 교회에 파송하여(행 19:22) 사역을 감당하게도 했다.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복음 전파자의 사명의 길에서 고난을 감수하지 못하여 도망하는 이도 보았지만(행15:38), 옥에 갇히기까지 복음과 함께 고난을 감당하며(히13:23) 눈물 뿌려 기도하는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하 며, 조상적부터 섬겨 온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하는 마음은,
1.주님이 제자를 생각하시던 마음이다. 마태복음 10:16절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 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고 했다. 주님이 복음 전파를 위하여 열 두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또 70인을 파송하실 때 들려주신 말씀이다. 곧 사랑하는 제자들을 사지(死地)로 보 내시는 마음이다. 이런 주님의 마음으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감당하는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하며 조상적부터 섬겨 온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2.아버지가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빌립보 2:22절에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했다. 디모데전서 1:18-19절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 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 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했다. 자신이 걸어 온 고난의 길인데. 자신이 겪어 온 힘들고 어려운 고통 인데. 사도 바울은 지금 그 험한 고난의 길을 아들 디모데에게 "가라" 고 하고 있다. 바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 아들이 흘려야 할 눈물을 생각하고 있다. 그 값진 눈물을 생각하며 조상적부터 섬겨 온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3.선배 목회자가 후배 목회자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본문 6절에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고 했다. 데살로니가전서 3:2절에 "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라고 했다. "나의 안수함으로.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고 한다. 복음의 사역자 로, 하나님의 일군으로 파송을 할 때, 안수함으로(딤전4:14) 일군을 세웠다. 그날에 그 마음으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선배로서 먼저 걸어 온 길이요, 또한 선배로서 후배를 그 길 로 내보내는 길이다. 자신이 선배로서 그 길을 걸으며 주님 앞에 흘렸 던 눈물. 후배 또한 그 길을 걸으며 주님 앞에 똑같이 흘려야 할 눈물을 생각 하고 있다. 그 값진 눈물을 생각하며 조상적부터 섬겨 온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3.자기의 뜻대로 부르심을 생각함이라. 본문 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 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했다.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사도 바울은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 있다. 사람의 행위대 로 아니하시고, 자기의 뜻대로 부르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 영원한 때 전부터 은혜대로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이 사람의 행위를 보시고 구원하신다 면. 어떻게 자신이 구원의 반열에 설 수 있겠는가. 죄인 중의 괴수로 멸망 의 앞잡이가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이다. 그런 사도 바울인데, 자신의 행위를 보시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부르 시는 하나님, 영원한 때 전부터 주신 은혜대로 하시는 하나님, 그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자신을 돌아보니 예수를 핍박하고(행9:4), 뒷발질하던 자신이다(행 26:14).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행26:5), 예수의 증인을 잡아죽이는 일에 앞장선 자이다(행26:10). 바로 멸망의 자식이다. 그런 자신을 자신의 행위를 보시지 않고 자기 뜻대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 영원한 때 전부터 주신 은혜대로 하시는 하나님, 조상적부터 섬겨 온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항상 만 삭되지 못하여 난 자,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주님 앞에 내어놓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달려가는 것뿐이라고 한다. 뒤돌아보지 않고, 곁눈질하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앞만 바라보고 달려간다고 한다(빌3:13-134)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죄인 중의 괴수인 자신의 행위를 보시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구원의 반열에 서게 하신 하나님, 영원한 때 전부터 은혜대로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4.나의 의탁한 것을 지켜 주실 줄 확신함이라 본문 11-12절에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 우심을 입었노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 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을 위한 사역자로서의 신앙고백이 잘 나타나 있는 말씀이다.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신 주님, 자신이 의탁한 것을 끝 까지 능히 지키실 수 있는 주님, 그 주님이 자신의 의탁한 것을 지켜 주신다는 확신에 찬 신앙고백이다.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자신의 의탁한 것을 능히 지키시리니. 이 어찌 아니 감사한 일인가. 사도 바울은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1.복음의 사역자로 세우심을 입었다. 본문 11절에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 을 입었노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을 입고, 복음의 반포자로, 사도로,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고 한다. 자신의 뜻이 아닌 부르시는 이의 뜻대로 영원 한 때 전부터 베푸시는 은혜로 자신을 복음의 사역자로 불러 세웠다고 한다. 반포자는 주께 받은 복음을 세상에 알리는 일로 선지자적인 사명을,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택하여 보내심을 받은 권위 있는 사명을, 교사는 주의 말씀으로 양 무리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명을 말한다. 갈라디아 1:16-17절에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 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 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고 했다. 주께로부터 이런 사역자로 세우심을 입었다고 확신하기에 사도 바울 은 사람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입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 하지 않고, 오히 려 아라비아 산속으로 들어갔다. 주님이 나를 인정하셔서 부르시고 일군 삼으시니 누구의 인정이 필요 하겠는가. 내가 나의 의뢰한 자를 알고, 그가 나를 지켜 인도하시니. 두려움도, 부족함도 없다고.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2.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안다. 본문 12절에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 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라 했다. 사도 바울이 의뢰한 자가 누구인가 그의 의뢰한 자는 조상적부터 섬 겨 온 하나님이요,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을 불러 복음의 사역자로 삼아 주신 예수님이다. 자신의 행위대로 하시지 않으시고, 영원한 때 전부터 은혜 베푸시고, 자기의 뜻대로 부르시어 구원해 주신 주님, 만삭되지 못하고난 자 같 은 자신에게 복음의 사역을 주신 주님이시다. 그러기에 복음으로 인한 고난과 수욕도 감수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 의 뜻대로 행하시는 주님이시기에 최후의 승리는 주님의 것! 이 승리의 주님을 사도 바울은 알고 있다는 고백이다. 확신에 찬 신앙고백이다.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사도 바울은 항상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3.나의 의탁한 것을 능히 지키시리. 본문 12절에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 을 확신함이라"고 했다.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사도 바울이 참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의탁한 것을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나의 주님은 나의 의탁한 것 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는 주님이시다. 그것도 주님 오실 그 날까지, 끝까지 지켜 주신다.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이 있기에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나의 의탁한 것"이 무엇일까. 생명, 구원, 상 급, 성도, 등. 여러 가지를 말한다고 성경학자들은 해석한다. 우리는 단순하게 생각하자. 그의 "생의 모든 것"을 의탁했다. 우리 성도들이 주님께 의탁하지 않은 "나의 삶"이 따로 있을까 주님 께 "의탁한 삶"이 따로 있고, 의탁하지 않은 "나의 삶"이 따로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를 주께 맡기고 나면, 이제 나는 없는 것이다. 주의 것 일 뿐이다. 사도 바울의 의탁한 것도 똑같다고 본다. 그의 삶 전부를 맡긴 것이다. 복음의 사역자의 길도 의탁했고, 복음의 사명도, 생명도, 구원도, 상 급도, 또 자신이 디모데에게 부탁할 복음도, 모두 모두 주님께 다 의탁 한 것이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잠 잘 곳도, 예배할 처소도, 다 주님께 의탁했다.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으로 각 처에 세워진 교회도, 그곳의 성도들 도, 다 주님께 의탁했다. 환난이 와도, 시련이 와도, 곤고가 와도, 다 주 님께 의탁했다. 빌립보 4:12-13절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 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다. 확실한 의뢰할 자가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자신이 의탁 한 것을 능히 지켜 주실 자가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일체 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이런 의뢰할 자가 있고, 또 자신의 모든 것을 의탁했으니. 어찌 아니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감사가 내게도 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내 속에 거짓 없는 믿음이 있어서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음으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흘리는 눈물이 있 어서 감사를 드리고 있는가 나의 행위를 보시지 않으시고 자기의 뜻대로 부르시는 영원한 때 전 부터 베푸시는 은혜가 있어서 감사를 드리고 있는가 나의 삶에 모든 것, 나의 의탁한 것을 지켜 주실 줄을 확신하는 믿음이 있어서 감사를 드리고 있는가 그런 의뢰자가 나에게 있어서 감사를 드리고 있는가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참으로 내가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많아야 한다. 참으로 내 가 섬겨 오는 주님께 감사할 일이 많아야 한다. 실상은 많고 많은 감사이나.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마음이 많고 많은 감사를 가로막고 있지나 않는지. 우리 모두 오늘의 말씀을 묵상 하며 자신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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