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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한 근심 (고후7:5-11)

본문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바라는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을 때,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 근심하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근심과 걱정이 지나쳐 도저히 애를 쓸수도 없구 몸부림칠 수도 없을 때에,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생각될 때에 자포자기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 크리스챤들도 정도의 차이지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의 근심 걱정거리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간절히 울부짖기도 하지만, 연약한 인간인지라 돌아서면 또 근심에 빠집니다. 어쩌면 근심거리가 없는 사람이 비정상일지도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고민하고 있는 근심거리는 어떤 것들입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두 종류의 근심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는 세상적인 근심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즉 신령한 근심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말라' 여기서 말하는 근심은 세상적인 근심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마땅히 이러한 근심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후회없는 삶을 창조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가져오는 근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요, 신령한 근심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차피 우리 인간이 근심하는 존재라면 세상의 헛된 근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신령한 근심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고린도 교회는 신령한 은혜 체험도 많았고, 한참 활발하게 움직이며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교회 내에는 분쟁이 있었고 여러가지 많은 문제가 나타나 많은 신자들이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더이상 방관할 수 없는 바울은 마침내 엄격하고 심한 책망의 편지를 써서 디도편으로 보냈고, 소식을 기다리는 중에 마게도냐에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디도를 통하여 들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은 바울의 편지를 통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근심하게 되었으나 결국 그 근심 때문에 회개하게 되었으며,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마게도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울에게 위로와 기쁨을 가져다 준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얼마나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가를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까 오늘은 신령한 근심이 주는 유익들을 생각해 보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없는 삶을 창조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지나간 생애를 회고해 보면 유감스럽고 아쉽고 안타까운 후회의 발자 국이 남게 됩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것 같은데 뒤돌아 보면 아쉬움만 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면서 일평생을 살게 된다면 결단코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생애를 생각해 보십시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후 하루 아침에 그의 삶이 바뀐 것은 결코 아닙니다. 3년 동안 아라비아 지방에 틀어박혀서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애통하고 근심하고 기도하면서 진리를 연구합니다. 다멕섹 도상에서 자신의 길을 막았던 예수 그리스도! 그가 도대체 누구인가 그동안 자기가 신봉하였던 유대교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러면 이제 남은 생애는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고 묵상하면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 이후에 그의 생애는 오직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함으로 후회없는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야곱의 생애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형 에서와 함께 이삭의 쌍둥이 아들로 태어나 그야말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자입니다. 말년에 그가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의 바로 왕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여러분! 왜 그토록 야곱이 130년 동안 그야말로 험악한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까 만약 야곱이 신령한 근심, 즉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까 그것을 염려하면서 살았다면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려고 애를 쓰고 발버둥쳤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아버지와 형님을 속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삶은 평탄치가 못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왜 어리석게도 자 자신만을 위하여, 자녀들만을 위해 살아왔던가 나는 왜 죄악된 삶을 청산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그 길로 걸어왔는가 나는 왜 지금까지 주님을 위하여, 몸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된 삶을 살지 못했을까 근심하면서 삶의 패턴을 바꿀 때에 분명히 여러분의 남은 생애는 후회없는 삶이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만듭니다. 본문 9절 말씀을 함께 봅시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 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오히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근심함으로 회개 에 이르게 되었다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다운 회개는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삶의 열매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부 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 나타나 베드로에게 다시금 사명을 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주여 그러하외이다" 주님은 또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주여 그러하외이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세번째 물었을 때에는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베드로는 심히 근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근심이 베드로의 생애를 바꾸어 놓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밧세바와 간음죄를 짓고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되자 다윗은 그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전쟁터에 나가있는 그녀의 남편을 불러들여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잠을 자도록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는 어떻게 지금 한참 전쟁 중인데 아내와 함께 잠을 잘 수가 있느냐고 하면서 집에 가지 않자 다윗은 군대장관을 시켜 그를 최전방으로 보내 적군에 의해 죽게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그 사실을 책망하였을 때에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합니다. 아기가 태어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를 칩니다. 아이가 죽게 되었을 때에 다윗은 일주일 동안 그 아이를 위하여 금식하면서 애통하고 근심하며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비록 그 아이는 죽었지만, 그러한 근심과 회개가 다윗을 이스라엘의 성군으로 만들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의 뜻 대로 하는 근심은 죄에 대하여 슬퍼하고 근심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한 삶에 대한 근심이요, 잘못 믿은 생활에 대한 근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근심이 저와 여러분의 삶의 순간 순간마다 있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줍니다. 본문 10절 말씀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세상의 근심은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다 주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줍니다. 믿습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청중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면서 가슴을 치고 애통합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분명하게 복음을 선포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근심하고 회개함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죄에 대하여 진정으로 근심하고 회개하게 될 때에 우리에게 구원이 임함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에 보면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지 못함을 근심하면서 애통하는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궁극적으로 구원을 베푸십니다. 아버지 곁을 떠났던 탕자가 지난 날의 삶을 후회하고 근심하면서 이제는 아버지께 돌아가는 길 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품에 안겼을 때에 아들의 신분을 회복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가져다 줌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계속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다시말해서 신령한 근심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들을 여러가지 나열합니다. 마지막 11절 말씀을 제가 보겠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될 때에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간절함이 생기게 됩니다. 그 복음에 대하여 변병하게 되고 불의에 대하여는 의분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될 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며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 수 있으며 또한 신앙생활의 열심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동안 이러한 근심으로 여러분의 삶의 패턴을 바꾸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근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로 실족하게 하고 시험에 빠지게 하는 세상적인 근심입니까 아니면 우리로 하여금 후회없는 삶을 살게 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까 세상의 근심은 무익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근심한다고 해서 적은 키가 자라는 것도 아니고, 흰 머리카락이 검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언젠가 제가 소개했습니다만 '웃으며 살자구요'라는 책을 쓴 김경태 장로님은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입니다. 한참 머리카락이 빠질때에 그것 때문에 무척 고민하고 걱정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민하고 걱정하닌까 더 빠지더라는 겁니다. 혹 대머리가 될 까봐 걱정하는 분이 계시다면 쓸데 없는 걱정 근심 아예 버리십시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걱정 근심 없이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의 인생이 걱정과 근심을 하면서 사는 존재라면 사망을 가져오는 세상적인 근심이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신령한 근심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걱정과 근심의 보따리는 주님께 맡기십시오. 십자가 앞에 내려 놓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아예 잊어버리십시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삶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웃기는 일이 많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올 때에는 걱정과 근심의 보따리를 들고 옵니다. "하나님! 이것을 해결하여 주십시오. 주님께 맡깁니다" 하면서 기도하는 것 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그렇게 해놓고 성전을 떠나갈 때에는 다시 걱정과 근심의 보따리를 끙끙거리면서 짊어지고 가정과 삶의 현장으로 갑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걱정하고 근심하다가 주님 앞에 또 가져오고 또 가져갑니다. 여러분! 웃을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것이 오늘 우리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앞으로 우리 세심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이런 분이 한사람도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세상적인 근심과 걱정은 아예 주님께 맡겨버리고 제발 다시 가져가지 마십시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악한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말씀과 기도생활에 힘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하여 몸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며 충성하며 봉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복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증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구역과 교회가 부흥할 수 있을까 신령한 근심을 하면서 하루 하루를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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