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피조물 (고후5:1-21)
본문
1. 바울은 '현세의 삶'을 땅에 있는 '장막 집'으로, '내세의 삶'을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간절히 소망하는 바는 장막 집을 벗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덧 입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이 세상에서 살기 보다는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기를 더 원하 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육체적 죽음으로 이는 인간의 생리적 죽음을 말하며 육체에서 영혼이 떠나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죽음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비롯된 것으로 모든 사람이 한번은 겪게 되는 필연적인 과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누구도 이 육체적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영적인 죽음있는데 이는 육체적 죽음이 육체와 영혼의 분리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면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이 영적 죽 음 역시 인간의 죄악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 의 말씀에 불순종한 인간이 육체적으로는 당장 죽지 않았으나 죄와 사망 과 질병 그리고 육체적 노동 등의 고통에 놓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범 죄한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영적인 죽음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죽음이 있습니다. 이 죽음은 영적인 죽음과 육적인 죽음의 최후의 단계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최후의 결과요 죄의 마지막 열매입니다. 그리스도 재림 때에 죄인들이 최후 심판 을 받아 생명과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영원한 고통 과 슬픔을 겪게 되는 상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
둘째 사 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그의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보증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또한 성도들은 인간 위에 군림하여 왕노릇 하던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 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무서워한 마지막 원수였던 죽음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더 이상 생명을 주관할 수 없게 되 었습니다. 주를 믿는 성도들은 "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뿐만 아 니라 현재에도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운 상태에 있습니다. 따라서 영생을 소유한 성도들은 더 이상 죽음의 권세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이 세상에서의 삶이 곧 영생을 준비하는 소중한 순간임을 깊이 인식하고 삶 전체를 주께 헌신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힘써 야 할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이 육신을 벗는 날, 곧 육체적 죽음의 날이 기쁨의 날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임시 거처와 같은 육체가 무너 지면 우리 영혼의 영원한 거처로 옮겨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몸을 주실 날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몸은 신령 한 몸인데 그 몸을 입은채 하늘에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경배할 수 있는 몸입니다. 바울은 장차 다가올 생명에 대한 강한 기대와 동경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 세상의 생명을 경멸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언제나 담대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님을 소 유하며, 바로 그 성령님이 장차 누리게 될 생명의 보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뉴욕주 포트빌에 헬렌 워드라는 54세의 여성이 살았습니다. 그녀는 갑 자기 에이즈라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7년 전에 수혈한 일이 있었는데 보균혈액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대학교수이고, 연합감리 교회의 독실한 신자이며, 여선교회 회장입니다. 마을의 지도자이고 인기 있는 성경연구반 교사였습니다. 그녀는 감리교 잡지에다 시를 실었습니다. "하나님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 나는 절망했고 화가 났다. 내 가슴은 찢어지고 극도로 우울했다. 대학일, 교회일, 동네일, 귀여 운 손자까지 주시고 그렇게 많은 문을 내 앞에 열어 주시더니, 왜 갑자기 모든 문을 단번에 닫아 버리시나 그러나 나는 지금 회개한다. 내가 구원 의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인 것을 잠시 잊었던 죄를 회개한다. 주님은 나에 게 영생을 약속하셨는데, 주님은 나에게 영광의 새 몸을 약속하셨는데, 낡고 썩어질 이 몸을 가지고 내가 왜 이토록 집착하는가 나는 기도하였다. 오 주여, 이제부터 얼마를 살던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 하게 하소서." 예수 믿어 성령님의 보증으로 내세의 영생을 소유한 사람은 현재의 삶이 어떠하든 그것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남은 생애를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 쁘시게 하는 삶이 될까, 어떻게 하여야 주님께 영광된 삶이 될까를 먼저 생각하며 살게 됩니다. 어차피 썩을 몸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될 때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과 소망, 그리고 그에 대한 보증으로 성령님이 내주하기 때문입니다.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 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4) 육의 몸 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2.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무엇보다 복음을 전하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의 친구 빌레몬에게 쓴 짧은 편지 속에 화목에 대한 아름다 운 예화가 있습니다. 빌레몬의 종인 오네시모는 주인에게서 돈을 훔쳐갖 고 로마로 달아났었습니다. 그 죄로 보자면, 그는 십자가형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로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회심했습니다. 바울은 이에 그의 친구인 빌레몬에게 편지하여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 고 그를 다시 받아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주인 빌레몬에게 종 오네시모의 죄를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친구처럼 영접하여 화목할 것을 당부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모가 훔친 것이 있다면 그 대가를 자신이 다 치루 겠다는 것입니다. "(몬1: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 듯 하고 (몬1:18)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의 죄를 자신에게 전가시키고 서로 화목을 이루 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화목은 죄의 전가(轉嫁)됨에 기초합니다. 다시말 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의 요구들이 십자가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인들과 화목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 세주로 믿는 자들은 결코 다시는 죄가 자신들에게 전가되는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로마 제국에는 두 종류의 성(省)이 있었는데, 하나는 원로원 관할의 성 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황제 관할의 성이었습니다. 원로원 관할의 성에는 로마와 화친을 맺고 전쟁을 하지 않는 백성들이 거주했습니다. 즉, 그들 은 로마에 완전히 항복하여 복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황제 관할 의 성은 평화스럽지 못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로마에 반역하고자 하는 위험 인물들이었습니다. 로마는 반역이 발생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 그곳에 대사(大使)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사신(使臣)이라고 한 말은 바꿔말해 이 세상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곳,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곳임을 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이 세상은 '황제 관할의 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선포하도록 하기 위해 당신의 사신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고후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 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 이 우리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거절하면 그것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직분은 죄인들을 권면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도록 강요하거나, 어떤 옳 지 못한 방법으로 그들을 위협해서는 안됩니다. "(살전2:3)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진리이기 때문에 올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 생명력을 지니고 있으며 심판의 권세가 있기 때문에 이를 전하기 위해 구태여 간사나 궤계를 사용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본문 11절의 말씀대로 "두려움"가지고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합니다. "(고후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성경에 대해 농담을 함으로 영감(靈感)된 성경의 영광과 권위를 실추시 키는 행위를 금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두려움을 가지고 복음 전파를 위해 "힘쓰노라"(9절)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후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여기 "힘쓰다"는 "우리는 야심을 품었다"는 뜻입니다. 이기적이고 세 속적인 야심이 아니라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야심을 말합니다. 유 대주의자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사역하며 그들의 협력을 요구했 지만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음 전도 사역은 세속적이고 타협적인 사역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행위에 대해서 기뻐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을 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다음의 성구에서 밝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자신을 기꺼이 주님께 산제물로 바치며 복음을 전파할 때 주님은 기뻐 하십니다. "(빌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 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경건한 야심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롬15:20) 또 내가 그리스도 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야심을 가졌노 니)" 사도 바울의 야심은 바울로 하여금 복음이 아직 들려지지 않은 곳 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드는 경건한 야심이었습니다. 바울은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부끄러움으로서가 아니라 담대 함으로 주를 뵙기를 소원했기 때문에 복음을 위해 야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충성을 다 했다면 그 자리는 상급과 칭찬의 자리 가 될 것입니다. 자녀들이 상을 받으면 부모가 기뻐하듯이 우리 주님도 자신의 자녀들이 칭찬을 받고 상을 받을 때 기뻐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상급 그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진 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울산을, 내일은 한국을, 모레는 세계를 복음화시 키겠다는 복음화에 대한 거룩한 야심을 가지시기 실천하여 장차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크신 기뻐하심과 상급과 영광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대비해서 무엇보다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사람의 칭찬을 의지하지 말며 장차 누릴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을 바라보며 복음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고후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고 후5: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 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참으로 열심히 충성을 다하는 자는 언제나 적당하게 일하는 미적지근 한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말을 듣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충성된 자는 다 른 사람이 자기를 보고 바보라고 보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주의 복음을 위해 조용하고 분별있는 행동을 취할 때도 필요하지만 때로 세상 이 그를 미쳤다고 볼 정도로 일해야 할 때도 필요한 것임을 사도 바울은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기준에 의해 사물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한 때 바울은 인간적인 기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판단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 세상으로부터 추방하려고 했으며, 그의 추종자들을 말살하며 기독교의 신앙을 이 세상으로부터 인 멸시키려고 했었습니다. 이제는 그 표준이 달라졌습니다. 바울이 전생애 를 통해 찾아 헤매던 하나님과 화해를 그리스도께서 찾도록 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전 생애 동안 찾아 헤매도 못찾던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찾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858년에 해버갈은 아버지의 아픈 눈을 치료하기 위해 부녀가 함께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어떤 한 목사님의 집에 머물게 된 그녀는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아래엔 "내 너를 위하여 이 일을 했건만, 너는 날 위해 무엇 을 했느냐"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얼른 종이 한 장을 준비해 그것을 주제로 해서 한 편의 시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별로 만족스럽지가 못해서 그만 그 종이를 꾸겨서 화로 속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종 이는 타지 않은 채 화로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이를 본 그녀의 아버지는 그 시를 출판하라고 권면했는데, 그 시에 필립 블리스가 곡을 붙여 오늘날 우리 모두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가 되었습니다.(185장) 내 너를 위하여 '1절' 내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죄를 사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위 해몸을 주건만 날무엇주느냐 너위해 몸을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2절' 아버지 보좌와 그영광 떠나서 밤같은 세상에 만백성 구하려 내몸 을 희생했건만 너무엇하느냐 내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3절' 죄중에 빠져서 영죽을 인생을 구하여 주려고 나피를 흘렸다 네죄 를 대속했건만 너무엇하느냐 네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4절' 한없는 용서와 참사랑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값없이 주었다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무엇주느냐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 무엇주느냐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화목, 그리고 사랑과 기쁨을 주셨는데 우리는 무엇을 주님께 드려야 하겠습니까 복음을 통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신 성도 여러분은 이 복음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열심과 충성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비결은 예수님의 사랑에 꽉 붙 잡혀 살 때, 그리스도의 강권하는 사랑에 떠밀려 사는 사랑의 사람이 될 때 무너져가는 장막집 인간이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시는 새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 혁명전쟁 중 펜실바니아에 피터 밀러라는 목사가 살았습니다. 같 은 동네에 원수 같은 인간이 있었는데 밀러 목사를 중상모략하는 온갖 수단을 노골적으로 구사하여 십 년 동안이나 괴롭혔습니다. 이 사람이 전 쟁 중 적에 내통하다가 체포되어 필라델피아에서 군법회의를 받게 되었 습니다. 밀러 목사는 60마일을 걸어 필라델피아까지 가서 조지 워싱턴 장 군에게 그의 구명을 탄원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은 "친구를 위하여 애쓰 시는 목사님의 마음은 알 수 있으나 이미 어제사형언도가 내렸습니다." 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밀러 목사는 "제 친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만난 중 가장 악한 원수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귀하지 않습 니까" 워싱턴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원수를 위하여 60마일을 걸어왔다는 것입니까!" 감동한 워싱턴은 특사령에 서명하였습니다. 특사령은 휴대한 장교와 함께 밀러 목사는 사형수를 방문했습니다. 밀러 목사를 본 사형수는 씹어 ㅂ듯이 말했습니다. "나의 교수형 구경을 하려고 에프라타에서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몹쓸 목사군!' 그러나 밀러 목사가 내민 것은 그의 특사령이었습니다. 워싱턴 대통령은 "내 평생에 수천 번의 사인을 하였지만 그 때 매국노의 특사령에 사인한 것이 가장 감격적이었다." 고 술회하였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내 속에 있는 예수, 내 속에 있는 사랑은 나를 새롭게 하고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때 이 썩어질 몸은 찬란한 영광이 비취는 새 몸이 됩니다. 무너져 가는 장막집, 이 텐트같은 인간이 새롭게 탄생하여 아름답고 영원한 몸으로 변화하는 비밀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장 차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를 두고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했 습니다. "(빌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 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 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한 즈음, 어떤 교회의 직 분자 한 사람이 한 후보를 지지하는 큰 띠를 몸에 두르고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그를 제지하면서 교회 안에서는 그 띠를 풀 어 달라고 했습니다. "이걸 풀으라고요" 그는 반문했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훌륭한 후보입니다!하지만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불신자가 그 띠를 보았을 경우를 생각 해보시오"라고 목사는 말하면서 "그 사람은 화가 나서 결국 말씀을 더욱 멀리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구원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부루퉁해서 그 띠를 풀어 버리더니, 곧 웃으 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구세주가 필요한 죄인들이지 신한 국당이나 국민회의당원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중요한 일이지요." 이 세상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복음을 통해 예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적당하게 자신만 예수 믿고 구원받으 면 다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땅에 가정들이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타락이 이 나라의 장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직 도 사회에는 부정 부패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수 많은 기업들 이 하루에도 수 백개씩 도산을 당하는 경제적 위기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이 나라 민족에 대해 하나님은 등을 돌리시고 계십니다. 이런 시 대에 대해 벙어리 개처럼 정의와 공의를 부르짖지 못하는 교회와 나라 민족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의 칼 아래 놓여 있습니다. "(마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라 민족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지 못하면 나라 민족이 살 길이 전 혀 없습니다. 이 땅에 기독교 지도자와 성도들이 먼저 회개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아니하면 진노의 도끼를 피할 길 이 없 습니다. 자신만 적당히, 안일하게 신앙생활하면 그만이 아닙니다. 다함께 망하게 됩니다. 이 나라 민족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룩할 수 있도록 미친 사람처럼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나 와 너, 나라 민족이 사는 길입니다. 단테의 명장 '신곡'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단테가 안내자를 따라 한 장소에 도착합니다. 혈색 나쁜 사람들이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천당에서 거절된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지옥에서도 거절당했 습니다. 천당에 갈 만큼 선인도 아니고 지옥에 넣은 만큼 악인도 아닌 어 정쩡한 부류입니다. 안내인이 말합니다. "저 인간들은 하나님도 좋아하시 지 않고 사단도 좋아하지 않는 영원히 버려진 인간들입니다. 만나볼 것도 없으니 지나갑시다." 그들은 세상에서 착한 시민을 가장했던 사람이요. 괜찮은 기독교인을 가장했던 인간들이었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뜨거운 사랑의 열정을 가지고 열심과 충성을 다해 화목의 제물이 되시고, 장차 덧입게 될 영원한 처소를 바라보며, 그 나라 의 영광을 바라보며 헌신하는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사 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그의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보증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또한 성도들은 인간 위에 군림하여 왕노릇 하던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 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무서워한 마지막 원수였던 죽음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더 이상 생명을 주관할 수 없게 되 었습니다. 주를 믿는 성도들은 "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뿐만 아 니라 현재에도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운 상태에 있습니다. 따라서 영생을 소유한 성도들은 더 이상 죽음의 권세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이 세상에서의 삶이 곧 영생을 준비하는 소중한 순간임을 깊이 인식하고 삶 전체를 주께 헌신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힘써 야 할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는 이 육신을 벗는 날, 곧 육체적 죽음의 날이 기쁨의 날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임시 거처와 같은 육체가 무너 지면 우리 영혼의 영원한 거처로 옮겨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몸을 주실 날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 몸은 신령 한 몸인데 그 몸을 입은채 하늘에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경배할 수 있는 몸입니다. 바울은 장차 다가올 생명에 대한 강한 기대와 동경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 세상의 생명을 경멸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언제나 담대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여기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님을 소 유하며, 바로 그 성령님이 장차 누리게 될 생명의 보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뉴욕주 포트빌에 헬렌 워드라는 54세의 여성이 살았습니다. 그녀는 갑 자기 에이즈라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7년 전에 수혈한 일이 있었는데 보균혈액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대학교수이고, 연합감리 교회의 독실한 신자이며, 여선교회 회장입니다. 마을의 지도자이고 인기 있는 성경연구반 교사였습니다. 그녀는 감리교 잡지에다 시를 실었습니다. "하나님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 나는 절망했고 화가 났다. 내 가슴은 찢어지고 극도로 우울했다. 대학일, 교회일, 동네일, 귀여 운 손자까지 주시고 그렇게 많은 문을 내 앞에 열어 주시더니, 왜 갑자기 모든 문을 단번에 닫아 버리시나 그러나 나는 지금 회개한다. 내가 구원 의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인 것을 잠시 잊었던 죄를 회개한다. 주님은 나에 게 영생을 약속하셨는데, 주님은 나에게 영광의 새 몸을 약속하셨는데, 낡고 썩어질 이 몸을 가지고 내가 왜 이토록 집착하는가 나는 기도하였다. 오 주여, 이제부터 얼마를 살던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 하게 하소서." 예수 믿어 성령님의 보증으로 내세의 영생을 소유한 사람은 현재의 삶이 어떠하든 그것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남은 생애를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 쁘시게 하는 삶이 될까, 어떻게 하여야 주님께 영광된 삶이 될까를 먼저 생각하며 살게 됩니다. 어차피 썩을 몸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될 때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과 소망, 그리고 그에 대한 보증으로 성령님이 내주하기 때문입니다.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 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4) 육의 몸 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2.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무엇보다 복음을 전하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의 친구 빌레몬에게 쓴 짧은 편지 속에 화목에 대한 아름다 운 예화가 있습니다. 빌레몬의 종인 오네시모는 주인에게서 돈을 훔쳐갖 고 로마로 달아났었습니다. 그 죄로 보자면, 그는 십자가형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로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회심했습니다. 바울은 이에 그의 친구인 빌레몬에게 편지하여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 고 그를 다시 받아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주인 빌레몬에게 종 오네시모의 죄를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친구처럼 영접하여 화목할 것을 당부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모가 훔친 것이 있다면 그 대가를 자신이 다 치루 겠다는 것입니다. "(몬1: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 듯 하고 (몬1:18)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의 죄를 자신에게 전가시키고 서로 화목을 이루 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화목은 죄의 전가(轉嫁)됨에 기초합니다. 다시말 해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의 요구들이 십자가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인들과 화목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 세주로 믿는 자들은 결코 다시는 죄가 자신들에게 전가되는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로마 제국에는 두 종류의 성(省)이 있었는데, 하나는 원로원 관할의 성 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황제 관할의 성이었습니다. 원로원 관할의 성에는 로마와 화친을 맺고 전쟁을 하지 않는 백성들이 거주했습니다. 즉, 그들 은 로마에 완전히 항복하여 복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황제 관할 의 성은 평화스럽지 못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로마에 반역하고자 하는 위험 인물들이었습니다. 로마는 반역이 발생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 그곳에 대사(大使)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사신(使臣)이라고 한 말은 바꿔말해 이 세상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곳,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곳임을 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이 세상은 '황제 관할의 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선포하도록 하기 위해 당신의 사신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고후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 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 이 우리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거절하면 그것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직분은 죄인들을 권면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도록 강요하거나, 어떤 옳 지 못한 방법으로 그들을 위협해서는 안됩니다. "(살전2:3)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진리이기 때문에 올바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 생명력을 지니고 있으며 심판의 권세가 있기 때문에 이를 전하기 위해 구태여 간사나 궤계를 사용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본문 11절의 말씀대로 "두려움"가지고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합니다. "(고후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성경에 대해 농담을 함으로 영감(靈感)된 성경의 영광과 권위를 실추시 키는 행위를 금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두려움을 가지고 복음 전파를 위해 "힘쓰노라"(9절)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후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여기 "힘쓰다"는 "우리는 야심을 품었다"는 뜻입니다. 이기적이고 세 속적인 야심이 아니라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야심을 말합니다. 유 대주의자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사역하며 그들의 협력을 요구했 지만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음 전도 사역은 세속적이고 타협적인 사역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행위에 대해서 기뻐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을 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다음의 성구에서 밝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자신을 기꺼이 주님께 산제물로 바치며 복음을 전파할 때 주님은 기뻐 하십니다. "(빌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 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경건한 야심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롬15:20) 또 내가 그리스도 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야심을 가졌노 니)" 사도 바울의 야심은 바울로 하여금 복음이 아직 들려지지 않은 곳 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드는 경건한 야심이었습니다. 바울은 장차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부끄러움으로서가 아니라 담대 함으로 주를 뵙기를 소원했기 때문에 복음을 위해 야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충성을 다 했다면 그 자리는 상급과 칭찬의 자리 가 될 것입니다. 자녀들이 상을 받으면 부모가 기뻐하듯이 우리 주님도 자신의 자녀들이 칭찬을 받고 상을 받을 때 기뻐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상급 그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진 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울산을, 내일은 한국을, 모레는 세계를 복음화시 키겠다는 복음화에 대한 거룩한 야심을 가지시기 실천하여 장차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크신 기뻐하심과 상급과 영광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대비해서 무엇보다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사람의 칭찬을 의지하지 말며 장차 누릴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을 바라보며 복음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고후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고 후5: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 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참으로 열심히 충성을 다하는 자는 언제나 적당하게 일하는 미적지근 한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말을 듣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충성된 자는 다 른 사람이 자기를 보고 바보라고 보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주의 복음을 위해 조용하고 분별있는 행동을 취할 때도 필요하지만 때로 세상 이 그를 미쳤다고 볼 정도로 일해야 할 때도 필요한 것임을 사도 바울은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기준에 의해 사물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한 때 바울은 인간적인 기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판단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 세상으로부터 추방하려고 했으며, 그의 추종자들을 말살하며 기독교의 신앙을 이 세상으로부터 인 멸시키려고 했었습니다. 이제는 그 표준이 달라졌습니다. 바울이 전생애 를 통해 찾아 헤매던 하나님과 화해를 그리스도께서 찾도록 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전 생애 동안 찾아 헤매도 못찾던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찾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858년에 해버갈은 아버지의 아픈 눈을 치료하기 위해 부녀가 함께 독일을 방문했습니다. 어떤 한 목사님의 집에 머물게 된 그녀는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아래엔 "내 너를 위하여 이 일을 했건만, 너는 날 위해 무엇 을 했느냐"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얼른 종이 한 장을 준비해 그것을 주제로 해서 한 편의 시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별로 만족스럽지가 못해서 그만 그 종이를 꾸겨서 화로 속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종 이는 타지 않은 채 화로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이를 본 그녀의 아버지는 그 시를 출판하라고 권면했는데, 그 시에 필립 블리스가 곡을 붙여 오늘날 우리 모두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가 되었습니다.(185장) 내 너를 위하여 '1절' 내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죄를 사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위 해몸을 주건만 날무엇주느냐 너위해 몸을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2절' 아버지 보좌와 그영광 떠나서 밤같은 세상에 만백성 구하려 내몸 을 희생했건만 너무엇하느냐 내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3절' 죄중에 빠져서 영죽을 인생을 구하여 주려고 나피를 흘렸다 네죄 를 대속했건만 너무엇하느냐 네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4절' 한없는 용서와 참사랑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값없이 주었다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무엇주느냐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 무엇주느냐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화목, 그리고 사랑과 기쁨을 주셨는데 우리는 무엇을 주님께 드려야 하겠습니까 복음을 통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신 성도 여러분은 이 복음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열심과 충성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비결은 예수님의 사랑에 꽉 붙 잡혀 살 때, 그리스도의 강권하는 사랑에 떠밀려 사는 사랑의 사람이 될 때 무너져가는 장막집 인간이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시는 새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 혁명전쟁 중 펜실바니아에 피터 밀러라는 목사가 살았습니다. 같 은 동네에 원수 같은 인간이 있었는데 밀러 목사를 중상모략하는 온갖 수단을 노골적으로 구사하여 십 년 동안이나 괴롭혔습니다. 이 사람이 전 쟁 중 적에 내통하다가 체포되어 필라델피아에서 군법회의를 받게 되었 습니다. 밀러 목사는 60마일을 걸어 필라델피아까지 가서 조지 워싱턴 장 군에게 그의 구명을 탄원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은 "친구를 위하여 애쓰 시는 목사님의 마음은 알 수 있으나 이미 어제사형언도가 내렸습니다." 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밀러 목사는 "제 친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만난 중 가장 악한 원수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귀하지 않습 니까" 워싱턴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원수를 위하여 60마일을 걸어왔다는 것입니까!" 감동한 워싱턴은 특사령에 서명하였습니다. 특사령은 휴대한 장교와 함께 밀러 목사는 사형수를 방문했습니다. 밀러 목사를 본 사형수는 씹어 ㅂ듯이 말했습니다. "나의 교수형 구경을 하려고 에프라타에서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몹쓸 목사군!' 그러나 밀러 목사가 내민 것은 그의 특사령이었습니다. 워싱턴 대통령은 "내 평생에 수천 번의 사인을 하였지만 그 때 매국노의 특사령에 사인한 것이 가장 감격적이었다." 고 술회하였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내 속에 있는 예수, 내 속에 있는 사랑은 나를 새롭게 하고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때 이 썩어질 몸은 찬란한 영광이 비취는 새 몸이 됩니다. 무너져 가는 장막집, 이 텐트같은 인간이 새롭게 탄생하여 아름답고 영원한 몸으로 변화하는 비밀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장 차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를 두고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했 습니다. "(빌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 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 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한 즈음, 어떤 교회의 직 분자 한 사람이 한 후보를 지지하는 큰 띠를 몸에 두르고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그를 제지하면서 교회 안에서는 그 띠를 풀 어 달라고 했습니다. "이걸 풀으라고요" 그는 반문했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훌륭한 후보입니다!하지만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불신자가 그 띠를 보았을 경우를 생각 해보시오"라고 목사는 말하면서 "그 사람은 화가 나서 결국 말씀을 더욱 멀리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구원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부루퉁해서 그 띠를 풀어 버리더니, 곧 웃으 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구세주가 필요한 죄인들이지 신한 국당이나 국민회의당원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중요한 일이지요." 이 세상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복음을 통해 예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적당하게 자신만 예수 믿고 구원받으 면 다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땅에 가정들이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타락이 이 나라의 장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직 도 사회에는 부정 부패가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수 많은 기업들 이 하루에도 수 백개씩 도산을 당하는 경제적 위기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이 나라 민족에 대해 하나님은 등을 돌리시고 계십니다. 이런 시 대에 대해 벙어리 개처럼 정의와 공의를 부르짖지 못하는 교회와 나라 민족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의 칼 아래 놓여 있습니다. "(마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라 민족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지 못하면 나라 민족이 살 길이 전 혀 없습니다. 이 땅에 기독교 지도자와 성도들이 먼저 회개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아니하면 진노의 도끼를 피할 길 이 없 습니다. 자신만 적당히, 안일하게 신앙생활하면 그만이 아닙니다. 다함께 망하게 됩니다. 이 나라 민족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룩할 수 있도록 미친 사람처럼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나 와 너, 나라 민족이 사는 길입니다. 단테의 명장 '신곡'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단테가 안내자를 따라 한 장소에 도착합니다. 혈색 나쁜 사람들이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천당에서 거절된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지옥에서도 거절당했 습니다. 천당에 갈 만큼 선인도 아니고 지옥에 넣은 만큼 악인도 아닌 어 정쩡한 부류입니다. 안내인이 말합니다. "저 인간들은 하나님도 좋아하시 지 않고 사단도 좋아하지 않는 영원히 버려진 인간들입니다. 만나볼 것도 없으니 지나갑시다." 그들은 세상에서 착한 시민을 가장했던 사람이요. 괜찮은 기독교인을 가장했던 인간들이었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뜨거운 사랑의 열정을 가지고 열심과 충성을 다해 화목의 제물이 되시고, 장차 덧입게 될 영원한 처소를 바라보며, 그 나라 의 영광을 바라보며 헌신하는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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