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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소경이 주는 은혜 (요9:1-8)

본문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그것은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일 것입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걷지 못하는 것도 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을 못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좋은 세상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불행입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가끔 소경들이 높은 산을 등반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가 있는데 올라가면 무얼 합니까 내려다볼 수도 없는 등반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람으로 태어나서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는 눈을 뜨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런 소경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소경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입니다. 눈을 떠 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거기다 처자식도 없고 집 한 칸 없는 거지입니다. 그러니 이 인생이 얼마나 불행하고 한심합니까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 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그 인생이 하도 불쌍해서 제자들은 원인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이 사람이 소경 된 것은 자신의 죄 때문도 아니고 그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어서다.” 즉 이 사람이 소경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와 뜻이 있어서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 이 소경의 이야기를 통해 몇 가지 은혜을 받고자 합니다.
1. 과연 누가 불쌍하냐하는 문제입니다. 제자들은 이 소경이 불쌍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진지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누가 불쌍하냐”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질문은 우리 인생을 향해서 던지는 실존적 질문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여분들에게 한 가지 물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만족하고 계십니까 그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까 이 소경이 눈이 멀었기 때문에 불쌍하다면 지금 여러분들은 눈이 뜨여 있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아야 하고 만족스럽게 살고 있어야 하며 감격스러워 잠도 못 잘 정도여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속은 원망과 갈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만족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눈을 뜨고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행복의 기준이 못 됩니다. 지금까지 자살한 사람들 가운데 소경이 세상을 비관해서 죽었다는 경우는 듣지 못했습니다. 모두 건강한 사람들이 죽었고 눈뜬 사람들이 세상을 비관해서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람들은 상당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평가할 때 상당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체 부자유자들을 보면 먼저 불쌍하다고 생각해버립니다. 물론 지체 부자유자들은 불쌍할 수도 있습니다.
몸이 자유스럽지 못하고 행동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체 부자유자들이 모두 불행합니까 그리고 지체 부자유자들이 모두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상당한 오해입니다. 뇌성마비로 전신이 뒤틀리고 걷지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하는 송명희라는 처녀가 있습니다. 이 처녀는 말 한마디를 하려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습니다. 이 처녀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결혼도 못하고 가정을 이루는 일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런 처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처녀를 보면 “이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 처녀는 지금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처녀는 시인입니다. 제대로 글씨를 쓸 수도 없는 손목으로 벌써 몇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그 시를 읽어 보면 구구절절 그녀가 예수로 가득찬 인생을 살고 있으며 감사와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감격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형편 없이 일그러진 처녀가 성한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부하는 글도 있습니다. 그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는 감사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는 더욱 기뻐하십시오. 즐거울 때는 애통하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더욱 근신하십시오.” 여러분, 어느 성인이 주는 교훈 같지 않습니까 또 이런 시도 있습니다. “내게 고통을 주신 주께 내가 감사하나이다. 만일 주께서 내게 고통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주님의 고통도 알 수 없었으리이다.
그러므로 내게 고통 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누가 이 여인을 보고 불쌍하다고,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이 여인을 보고 지체 부자유자이기 때문에 분명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엄청난 오해입니다.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불행합니까 여러분은 지금 이 여인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까 한번 자신에게 물어 보시 바랍니다.
2. 순종입니다. 우리는 이 소경에게서 진정한 순종의 태도가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 일행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때 거지 소경을 만났습니다. 그 소경의 모습이 한심스러웠습니다. 그 지저분한 얼굴하며 그 인생 하며 멀어 버린 그 눈 하며 그 모습이 한심하고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물으십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소경이 말합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그때 주님은 땅에 침을 뱉아 흙을 이긴 다음에 그 진흙을 소경의 눈에 바르십니다. 그리고 소경에게 이르시기를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대목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이 때 소경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소경의 눈은 눈이 아닌가 고쳐 주려면 이 자리에서 고쳐 주실 것이지, 손으로 만지고 기도해도 얼마든지 나을텐데 흙에 침을 뱉아 이겨서 보이지도 않는 눈에 붙여 놓고는 눈먼 소경에게 굳이 멀리 실로암 연못까지 가서 씻으라니,” 이것은 분명 모독입니다. 소경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 소경은 몹시 불쾌했을 것이고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며 수치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시기 바랍니다. 소경은 속으로는 불쾌했는지 모르지만 실로암 연못을 향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갑니다. 기분은 상했겠지만 하라는 대로 두 눈에 흙덩이를 달고 연못으로 가서 씻었습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이 모습이 순종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순종이 무엇입니까 순종은 “주님의 뜻이라면 내 이성이나 생각으로는 납득이 안 되는 일도 그대로 따르는 태도”입니다. 내 생각이나 이치로 따지자면 이해가 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하라 하시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이 같은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자손을 주시고 땅에 충만하게 하시고 하늘에 별처럼 땅에 모래처럼 많게 하시며 축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시면 될것이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달라고 하십니다.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나 순종할 때 비로소 그 언약과 축복이 함께 주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때로 교회내에 불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순종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내 의견은 이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저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내 의견만 내세우면 안 됩니다. 저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고 깊이 생각해 봐서 정말 타당성이 있고 옳으면 내 의견을 수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갈등이 없어집니다. 그것을 우리는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 의견만을 절대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발생하고 다툼이 일어나고 불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주님은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내 생각을 주님의 의지에 복종시키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이 소경도 마음속으로는 불쾌했는지 모르지만 말없이 갑니다. 가서 하라는 대로 눈을 씻습니다. 얼마나 순전한 순종의 모습입니까 그러기에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순종이 있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섭리가 이루어지며 축복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이 소경에게서 진정한 순종의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섭리를 배우게 됩니다. 제자들이 이 소경에 대해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요9: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 이것은 유대인들의 습성입니다. 유대인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그 원인이 누구의 죄 때문인가 묻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부모의 죄 때문에 자식이 불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식의 죄 때문에 부모가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요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 사람이 소경 된 원인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미래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이 우리들이 이해해야 할 부분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숱한 일들이 있고 고통스런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성공과 즐거운 일만 좋아합니다. 그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불행한 일이 생기면 벌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성공만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고 행복만이 꼭 하나님의 복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실패도 하나님의 뜻일 수 있고 축복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결과를 주실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속단하지 말고 기다려 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소위 성도들의 삶의 지혜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롯과 처)(돌아온 탕자) 내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것은 분명 불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현실만 보면 적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결과를 주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섣불리 속단하고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좀더 기다려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디 그렇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앞의 현실만 보고 탄식하고 비통해 하다가 자살해 버립니다. 어느 중소기업 사장이 회사가 부도가 나자 차를 몰고 한강에 뛰어들어 죽은 일이 있습니다. 사업이 부도가 나니까 낙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 아내와 어린아이들을 놓아두고 투신해서 죽은 것입니다. 오죽 절망을 느꼈으면 젊은이가 그렇게 죽겠습니까 충분히 이해는 가는 일입니다. 적어도 우리들이 현실만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하고 이해는 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의 이 불행이 미래에 얼마나 엄청난 축복으로 이어지고 충만한 은혜로 이어질지 누가 압니까 그리고 오늘의 성공이 미래의 나의 삶에 어떤 재앙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늘 내 회사의 부도가 장차 어떤 큰 은혜스러운 일로 연결될지 누가 압니까 사업가로서 대성한 사람들 가운데 한두 번 부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옛부터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지혜나 생각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풀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영영 풀 길 없는 문제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왜 가룟 유다가 끼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다음에 천국에 가면 가장 먼저 이것을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보다 더 알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필이면 내가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는가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불러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불러내서 당신의 백성 삼으시고 제자를 삼으셨습니까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아십니까 그리고 괌 비행기 사고 때 희생된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이라면 굳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가족 11명이 함께 희생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한 교회를 다니는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어떤 때는 우리의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령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애굽으로 팔려 갑니다. 어린 나이에 암담하고 두렵고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애굽으로 팔려 가야 장차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신나게 팔려 갔겠습니까 그리고 보디발 장군의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갈 때도 이 과정을 거쳐야 총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이 얼마나 신나게 감옥에 들어갔겠습니까 그래서 요셉은 나중에 그 형제들에게 말하기를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 수 없으니까 두렵고 낙심되고 절망스럽고 그래서 자살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근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을 구원하시려고 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환난을 이기면 축복이 임하며 존귀한 자가 되며 땅에 충만하고 번성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풀 길 없는 문제들을 소경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경은 지금까지 참 불행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소경의 인생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 속에 여러분의 가정속에 사업속에 자녀위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속단할 수 있으며 포기하고 버릴 수가 있습니까 믿는 사람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엄청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존재를 인식할 수가 있습니다. 소경의 모습을 통해서 깊은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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