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열심 (고후11:1-33)
본문
1. 어느 날 밤 몇 명의 사람이 함께 모여 식사를 나누었을 때 생긴 유 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식사 후에 각자 돌려가며 한 가지씩 낭송하도록 합의를 보았습니다. 한 유명한 배우가 일어나서, 모든 웅변술과 연극적인 기교를 다 부리면서 시편 23편을 낭송하였는데 그가 앉자마자 박수가 요 란하게 울려 나왔습니다. 그의 뒤를 따라 한 조용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 일어섰습니다. 그도 역시 시편 23편을 낭송하였는데 처음엔 비웃음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낭송을 끝내기 전에 어떤 박수보다 도 더 감동적인 고요함이 그 방에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 지막 말을 낭송하였을 때도 고요함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 그 배우가 몸을 일으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나는 그 시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목자를 알고 있습니다." 바울의 적대자, 거짓 사도들은 웅변술이나 여러 가지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말하는 것이 서툴고 숙달하지 못했을지도 모 릅니다. 그러나 말하는 내용 그 자체를 알고 말하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 라 바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참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은 거짓 사도들에게 미혹되어 참 사도인 바울을 배반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거짓 교사들은 교회를 더럽히고 파괴하기 위해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강력한 중상 모략을 일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전한 예수와는 다른 예수를 전하면서 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랍비를 부양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임한다.'고 선전하여 많은 재물 을 착취하였고,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아버지 이상의 대우를 원하면서 심 지어 자신의 제자들의 뺨을 때릴 정도로 거만했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이러한 거짓 사도들의 태도마저 사도들의 권위라고 오해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어리석게도 거짓 사도들의 바울에 대한 중상 모략은 잘도 받아 들이면서 자신들은 퍽이나 지혜로운 척 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 교회는 거짓 사도들의 탐욕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은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며 사도 바울은 "(고후11:1)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고 타이르며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이같은 열심은 바로 교회를 성결 보존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께 중매한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써 순결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열심"으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열심"을 유대인의 결혼 관습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라는 구약 사상 을 혼합해서 인용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54: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사62: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이같은 구약 사상에서 볼 때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중매한 그리스도의 신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된 고린도 교회가 거짓 사도들의 미혹을 받 아, 마치 뱀의 간계로 하와가 미혹된 것처럼 더럽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유대 관습에서 신랑의 친구들은 신부의 정조를 보증하는 막중한 책임 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고린도 교회 사이에서 이같은 순결성 보증의 책임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로서 신부인 고린도 교회의 정절을 보증해야 하는 임무 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순결성 보전, 성결 보존을 위해 "하나님의 열 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의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따라서 '어린 양 의 혼인 잔치'에 참예한 사람들은 자신의 영적, 정신적, 육체적 성결을 보 존해야만 합니다. 신부된 성도의 성결 보존을 위해 신랑되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마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와 같다 하리니 (마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마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25:4) 슬 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마25:5) 신랑 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마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 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25: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 비할새 (마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마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25: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 지라 (마25: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마25: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성결은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 리고.(살전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을 가진 자는 성결해야하며(고후7:1)
예수님 의 재림(再臨)을 고대(苦待)하는 자는 성결해야 합니다. "(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 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딛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딛 2: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 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딛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결은 받아야 할 은혜로서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다. 또한 생활되어 져야 할 방식으로 빛되시는 예수와 사귐을 통해 얻어지는 성결 생활(요 일 1:7)이 성결 보존입니다. "(요일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 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성결 보존을 위해서 빛 가운데 행하며 참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있어야만 합니다. 월간지 '신동아'(97년 기획연재물)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는 대선 주자 가운데 유일한 개신교 신자. 따라서 자민련측에선 은근히 개신교 신자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김총재는 감리교단의 모(母)교회인 정동감리교회에 30년 가까이 다니 고 있다. 오랫 동안 집사로 있다가 지난 4월에 권사로 승진 했다고 한다. 김총재는 80년 관훈토론회에서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밝 힌 적이 있다.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의문을 가 졌습니다. 그래서 통 안가다가 66년부터 정동교회에 적을 두었습니다. 제 아우는 자다 말고 성경을 읽는 깊은 신앙인입니다만 나는 일요일에도 잘 안 갑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안식을 필요로 할 때 교회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목사님을 모셔다가 조찬기도회 같은 모임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김총재의 집안은 종교가 모두 다르다. 김총재의 부인 박영옥 여 사는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에는 개인 사정으로 성당에 자주 못 나간다고 전한다. 현재 파나마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김총재의 외아들 김진씨 역시 가톨릭 신자. 한편 김총재의 수행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딸 예리씨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청연화(靑蓮花)라는 법명을 가지고 있다. 지난 초파일에 전국 사찰에 가장 많은 연등을 단 것으로 알려진 예리씨는 김총재와 불교계를 잇는 가교 역할도 맡고 있다. 김총재 자신도 불교 와 인연이 있다. 92년 대선 무렵 원불교 종법사에게서 수산(首山)이라는 법호를 받은 것. 그런 인연 탓인지 김총재는 지난 5월14일 법호 수산을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여 부처님오신 날 메시지를 발표했다. 김총재는 자신 이 믿지 않는 종교의 예식에 참여하는 데 대해자기가 믿는 종교가 소 중하면 타인이 믿는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존중론에 입각해 보면 문제가 없다고 원론적으로 답변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 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후6:15) 그리스도와 벨 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 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 셨느니라 (고후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고후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전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 치 아니하노라 (고전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여치 못하리라 (고전10:22) 그러 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성결 보존을 위해 성령님과 말씀이 충만하며,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와만 교제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바울 당시 거짓 사도들은 교회로부터 생활비 받는 것을 당연한 권 리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물론 성경적 근거를 지닌 복음 사역자의 권리였 습니다. "(신25:4)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눅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부담을 갖지 않은 채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또 그들로 하여금 복음에만 마음과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은 장막 만드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행18: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행18:2) 아굴 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 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 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행18: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살전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살후3: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 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에 대해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은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으면서 그것이 참 사도의 표라고 주장하며, 바울이 아무것도 받지 않는 것은 그 가 전하는 복음이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복음을 매도하며 악선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생계 유지를 위해 장막 만드는 일을 하던 바울 의 초라함과 고된 노동을 천하다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 이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까지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하나님이 아신다고 하면서 마게도냐교회로 부터는 헌금을 받고 고린도 교회로부터는 받지 않는 이유가 결코 고린도 교회보다 마게도냐 교회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고후11:11)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 이 아시느니라." 바울이 고린도에서 헌금을 받지 않은 이유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고린도에 만연한 물질 만능주의 때문이었습니다. 부유한 고린도에 많은 전도자들과 가난한 철학자들이 있었고 고린도 인들은 그들의 후원자가 되고 있었는데 이 후원자들은 암암리에 그 전도 자들이나 철학자들의 선교나 사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무의 도움 을 받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뜻에 좌지우지하지 않고 순수한 하나님의 복음에만 전념코자 했던 것입니다. 황금이 교회를 지배하려는 위기에 처한 이 시대의 교역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부분입니다. 순수한 복음 전파와 교회를 위한 바울의 열심과 고난은 참으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후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 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고후11:24) 유대인들에 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고후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 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11:28)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 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 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사도 바울이 40에 하나 감한 매를 세 번이나 맞았습니다. 유대의 태형 법에는 매를 40대까지만 때리게 되어 있습니다. "(신25: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 을 넘겨 과다히 때리면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 그래서 40을 넘기지 않기 위한 대행 집행자의 완전 조치로 바울이 40 에 하나 감한 39대를 맞은 것입니다. 유대 문학인 미쉬나에 이 태형은 매 우 혹독한 매질로 죽은 자가 부지기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매를 무려 세 번씩이 맞아가면서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중매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를 위해 매뿐만 아니라 돌에 맞은 적도 있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당한 고난으로, 그 때 돌에 맞아 치 명적인 상처를 입은 바울을 사람들은 죽은 줄로 생각하고 그를 성밖에 내던졌습니다. "(행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행14: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행14: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 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 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이같은 수없는 고난과 핍박은 대부분 유대주의를 고수하는 거짓 사도 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동족들로부터 이같은 숱한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가 염려하는 바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값을 주고 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였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몸과 같이 교회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자신을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말 입니다. "(고후11:28)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 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실로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교회를 섬기며 봉사할 수 없고, 더 나아가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3. 바울도 유대 율법에 노예로 있었을 때, 즉 바울이전의 사울은 그릇 된 신앙의 열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빌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 라." 유대인들의 무지한 열심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롬10장;요 2:17). "(요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 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그러므로 올바른 열심은 성령님의 감화를 받아 예수님(하나님)을 바로 알 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사울 역 시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성령님체험을 통해서 복음 전파와 교회를 위한 올바른 열심,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느하스는 이스라엘에 내린 염병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그 분의 마음과 열심을 가지고 음행(淫行)하는 두 남녀를 죽임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하고 자신은 평화의 언약(言約), 즉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얻었습니다(민 25:1-11). 여호와의 열심이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 고 십자가에 희생시키므로 인류구원의 역사(役事)을 성취하셨습니다. "(사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59:17)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 으시고 보수로 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열심은 항상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고 불타는 심정으로 자신을 몽땅 불태우고도 무엇을 했다고 생각조차 못하는 것입니다(마 25:31-4
6).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와 이웃을 섬기 시므로 이 땅에 드리워진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시고 공평과 정의, 그리고 참된 평화가 이루어지는 나라 민족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참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은 거짓 사도들에게 미혹되어 참 사도인 바울을 배반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거짓 교사들은 교회를 더럽히고 파괴하기 위해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강력한 중상 모략을 일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전한 예수와는 다른 예수를 전하면서 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랍비를 부양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임한다.'고 선전하여 많은 재물 을 착취하였고,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아버지 이상의 대우를 원하면서 심 지어 자신의 제자들의 뺨을 때릴 정도로 거만했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이러한 거짓 사도들의 태도마저 사도들의 권위라고 오해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어리석게도 거짓 사도들의 바울에 대한 중상 모략은 잘도 받아 들이면서 자신들은 퍽이나 지혜로운 척 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 교회는 거짓 사도들의 탐욕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은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며 사도 바울은 "(고후11:1) 원컨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고 타이르며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린도 교인들을 향한 이같은 열심은 바로 교회를 성결 보존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께 중매한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써 순결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열심"으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열심"을 유대인의 결혼 관습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라는 구약 사상 을 혼합해서 인용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54: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사62: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이같은 구약 사상에서 볼 때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중매한 그리스도의 신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된 고린도 교회가 거짓 사도들의 미혹을 받 아, 마치 뱀의 간계로 하와가 미혹된 것처럼 더럽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유대 관습에서 신랑의 친구들은 신부의 정조를 보증하는 막중한 책임 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고린도 교회 사이에서 이같은 순결성 보증의 책임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로서 신부인 고린도 교회의 정절을 보증해야 하는 임무 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순결성 보전, 성결 보존을 위해 "하나님의 열 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의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따라서 '어린 양 의 혼인 잔치'에 참예한 사람들은 자신의 영적, 정신적, 육체적 성결을 보 존해야만 합니다. 신부된 성도의 성결 보존을 위해 신랑되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마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와 같다 하리니 (마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마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25:4) 슬 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마25:5) 신랑 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마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 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25: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 비할새 (마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마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25: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 지라 (마25: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마25: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성결은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 리고.(살전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을 가진 자는 성결해야하며(고후7:1)
예수님 의 재림(再臨)을 고대(苦待)하는 자는 성결해야 합니다. "(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 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딛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딛 2: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 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딛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결은 받아야 할 은혜로서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다. 또한 생활되어 져야 할 방식으로 빛되시는 예수와 사귐을 통해 얻어지는 성결 생활(요 일 1:7)이 성결 보존입니다. "(요일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 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성결 보존을 위해서 빛 가운데 행하며 참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있어야만 합니다. 월간지 '신동아'(97년 기획연재물)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는 대선 주자 가운데 유일한 개신교 신자. 따라서 자민련측에선 은근히 개신교 신자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김총재는 감리교단의 모(母)교회인 정동감리교회에 30년 가까이 다니 고 있다. 오랫 동안 집사로 있다가 지난 4월에 권사로 승진 했다고 한다. 김총재는 80년 관훈토론회에서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 솔직하게 밝 힌 적이 있다.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의문을 가 졌습니다. 그래서 통 안가다가 66년부터 정동교회에 적을 두었습니다. 제 아우는 자다 말고 성경을 읽는 깊은 신앙인입니다만 나는 일요일에도 잘 안 갑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안식을 필요로 할 때 교회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목사님을 모셔다가 조찬기도회 같은 모임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김총재의 집안은 종교가 모두 다르다. 김총재의 부인 박영옥 여 사는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에는 개인 사정으로 성당에 자주 못 나간다고 전한다. 현재 파나마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김총재의 외아들 김진씨 역시 가톨릭 신자. 한편 김총재의 수행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딸 예리씨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청연화(靑蓮花)라는 법명을 가지고 있다. 지난 초파일에 전국 사찰에 가장 많은 연등을 단 것으로 알려진 예리씨는 김총재와 불교계를 잇는 가교 역할도 맡고 있다. 김총재 자신도 불교 와 인연이 있다. 92년 대선 무렵 원불교 종법사에게서 수산(首山)이라는 법호를 받은 것. 그런 인연 탓인지 김총재는 지난 5월14일 법호 수산을 자신의 이름 앞에 붙여 부처님오신 날 메시지를 발표했다. 김총재는 자신 이 믿지 않는 종교의 예식에 참여하는 데 대해자기가 믿는 종교가 소 중하면 타인이 믿는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존중론에 입각해 보면 문제가 없다고 원론적으로 답변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 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후6:15) 그리스도와 벨 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 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 셨느니라 (고후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고후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전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 치 아니하노라 (고전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여치 못하리라 (고전10:22) 그러 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성결 보존을 위해 성령님과 말씀이 충만하며,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와만 교제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바울 당시 거짓 사도들은 교회로부터 생활비 받는 것을 당연한 권 리로 여겼습니다. 이것은 물론 성경적 근거를 지닌 복음 사역자의 권리였 습니다. "(신25:4)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눅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부담을 갖지 않은 채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또 그들로 하여금 복음에만 마음과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은 장막 만드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행18: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행18:2) 아굴 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 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 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행18: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살전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살후3: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 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에 대해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은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으면서 그것이 참 사도의 표라고 주장하며, 바울이 아무것도 받지 않는 것은 그 가 전하는 복음이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복음을 매도하며 악선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생계 유지를 위해 장막 만드는 일을 하던 바울 의 초라함과 고된 노동을 천하다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 이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까지 비방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하나님이 아신다고 하면서 마게도냐교회로 부터는 헌금을 받고 고린도 교회로부터는 받지 않는 이유가 결코 고린도 교회보다 마게도냐 교회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고후11:11)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 이 아시느니라." 바울이 고린도에서 헌금을 받지 않은 이유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고린도에 만연한 물질 만능주의 때문이었습니다. 부유한 고린도에 많은 전도자들과 가난한 철학자들이 있었고 고린도 인들은 그들의 후원자가 되고 있었는데 이 후원자들은 암암리에 그 전도 자들이나 철학자들의 선교나 사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무의 도움 을 받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뜻에 좌지우지하지 않고 순수한 하나님의 복음에만 전념코자 했던 것입니다. 황금이 교회를 지배하려는 위기에 처한 이 시대의 교역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부분입니다. 순수한 복음 전파와 교회를 위한 바울의 열심과 고난은 참으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후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 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고후11:24) 유대인들에 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고후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 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11:28)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 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 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사도 바울이 40에 하나 감한 매를 세 번이나 맞았습니다. 유대의 태형 법에는 매를 40대까지만 때리게 되어 있습니다. "(신25: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 을 넘겨 과다히 때리면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 그래서 40을 넘기지 않기 위한 대행 집행자의 완전 조치로 바울이 40 에 하나 감한 39대를 맞은 것입니다. 유대 문학인 미쉬나에 이 태형은 매 우 혹독한 매질로 죽은 자가 부지기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매를 무려 세 번씩이 맞아가면서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중매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를 위해 매뿐만 아니라 돌에 맞은 적도 있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당한 고난으로, 그 때 돌에 맞아 치 명적인 상처를 입은 바울을 사람들은 죽은 줄로 생각하고 그를 성밖에 내던졌습니다. "(행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행14: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행14: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 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 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이같은 수없는 고난과 핍박은 대부분 유대주의를 고수하는 거짓 사도 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동족들로부터 이같은 숱한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가 염려하는 바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값을 주고 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였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몸과 같이 교회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자신을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말 입니다. "(고후11:28)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 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실로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교회를 섬기며 봉사할 수 없고, 더 나아가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3. 바울도 유대 율법에 노예로 있었을 때, 즉 바울이전의 사울은 그릇 된 신앙의 열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빌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 라." 유대인들의 무지한 열심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롬10장;요 2:17). "(요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 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그러므로 올바른 열심은 성령님의 감화를 받아 예수님(하나님)을 바로 알 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져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사울 역 시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성령님체험을 통해서 복음 전파와 교회를 위한 올바른 열심,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느하스는 이스라엘에 내린 염병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그 분의 마음과 열심을 가지고 음행(淫行)하는 두 남녀를 죽임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하고 자신은 평화의 언약(言約), 즉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얻었습니다(민 25:1-11). 여호와의 열심이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 고 십자가에 희생시키므로 인류구원의 역사(役事)을 성취하셨습니다. "(사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59:17)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 으시고 보수로 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열심은 항상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고 불타는 심정으로 자신을 몽땅 불태우고도 무엇을 했다고 생각조차 못하는 것입니다(마 25:31-4
6).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와 이웃을 섬기 시므로 이 땅에 드리워진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시고 공평과 정의, 그리고 참된 평화가 이루어지는 나라 민족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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