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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할 이유가 무엇인가 (고전1:1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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죤 F. 케네디(John F. Kennedy)는 자신의 저서 참된 용기(Profiles in Courage)엣 말하기를, 큰 위기는 위대한 사람과 용기있는 행동을 만든다 고 했다. 위기는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내 주기도 한다. 빌라도는 큰 위기에 직면했었지만, 그 위기는 그에게 용기를 주지도 못했고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도 못했다. 인생이 역경들에 어떻 게 대처하는가는 우리가 어떤 성품을 지녔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어떠한가는 우리의 내적 삶의 상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아주 사적(私的)인 이 편지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또한 우리에 게) 자기의 마음을 열어 그가 체험했던 고난들을 드러내 보여 준다. 무엇 보다도 그는 계획을 변경하고 또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인해 몇몇 고 린도 교인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었다.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서로를 오해하 게 되면 그 상처는 매우 깊어진다. 게다가 그 교회 안에서는 바울의 사도 적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문제도 있었다. 또 고린도 교인들 중 한 사람 (아마 교회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이 징계를 받아야 할 지경에 있 었고, 이 일은 바울에게 크나큰 슬픔이었다. 그리고 급기야 바울은 아시아 에서 큰 역경에 처하게 되었는데(1:8-11), 그 시련은 너무도 극심해서 바울은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낙심치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 이 이와 똑같은 위기에 직면했다면 아마도 십중팔구는 좌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상황을 극복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시련 가운데서도 위대한 서신을 기록하여 심지어 오늘날의 하나님 의 백성들까지도 승리를 체험하는 데 이 서신의 도움을 받고 있다. 바울로 하여금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해 주었던 영적 근원은 무엇 이었는가
1. 깨끗한 양심 양심(conscience)이란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인데 함께 (with) 를 뜻하는 com과 안다 (to know)란 뜻의 scire가 합성된 단어이다. 즉, 양심이란 우리의 마음(spirit)이 함께 알아서 , 옳은 것을 행할 때는 칭찬하며, 그릇된 것을 행할 대는 비난하는 내적 능력인 것이다. 물론 양심은 하나님의 법(Law of God)은 아니지만, 그 법을 증거하는 역할을 한다. 양심은 빛을 통과시키는 창문과 같은 것이어서, 만일 그 창문이 우리 의 불순종으로 인해 더러워지면 그 빛은 점점 더 희미해진다(마 6:22-23/ 롬 2:14-16 참조). 바울은 자신의 서신들에서 양심 이란 단어를 23번씩이나 썼고, 사도 행전에서는 설교 중에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 없기를 힘쓰노라 (행 24:16)고도 증거했다. 선한 양심을 가진 가람에게는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것이 없다. 그에게는 성실과 정직만이 있다. 그래서 그는 신뢰를 받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인들은 왜 바울이 거짓말을 했고 경솔한 사람이라고 비난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바울이 그의 계획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그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고린도에서 겨울을 유 하기로 약속했었다(고전 16:2-8).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가난한 유대 신 자들을 위해 모금한 헌금을 거두어서 그와 그의 동역자들이 예루살렘에 가는 길에 그것을 전해 줄 수 있기는 희망했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 계획을 부득이 바꾸게 되어 큰 유감과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바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처럼 지극히 제한된 사역을 하는 사람도 가끔씩 계획을 변경하거나 심지어 집 회를 취소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에게는 바울과 같 은 사도적 권위가 주는 혜택도 없었다 ! 윌 로저스(Will Rogers)는 말하 기를, 계획은 당신을 얽매이게 하지만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계획된 일을 해내야 한다고 했다. 바울은 이때 고린도에 두 번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한 번은 마게도냐로 가는 길이요, 또한 번은 마게도냐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그때 마게도냐 교회에서 거둔 헌금에 고린도 교인들의 헌금을 합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번째 계획마저도 무산되어 버리고 말았다. 왜 그렇게 되었는 가 바울은 그들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괴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방문 할 수 없었던 것이다(1:23/ 2:1-3). 바울은 자신의 계획이 변경되었음을 교회에 전했지만, 이것조차 그의 반대자들에게 비난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그를 육체의 지혜로 행하는 사람이요(1:12), 하나님의 뜻을 경솔히 여기 면서(1:17), 자기 마음대로 계획했다가 변경해 버리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바울이 말과 편지에 쓰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 그의 예는 '아니오'이고 아니오는 '예'다 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오해가 생기면 매우 풀기 어려운 지경으로 빠 져들곤 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 가지 오해가 종종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 키기 때문이다. 일단 다른 사람의 정직을 의심하고 그들의 말을 불신하기 시작하면, 그로 인해 온갖 문제들이 야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소자들이 무어라고 하든, 바울은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결코 흔들림이 없 었다. 그가 보고 말한 것, 그가 살았던 삶은 모순이 없이 모두 일치했다. 그래서 그는 원래의 계획에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이라는 말을 덧붙였던 것이다(고전 16:7/ 약 4:13-17 참조). 깨끗한 양심을 갖고 있을 때 우리의 상태가 어떠한지에 대해 바울은 네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소망 가운데 살게 된다(1:14). 주 예수의 날 이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당신의 교회를 하늘로 인 도하실 바로 그 날을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그 자신은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요, 그들은 바울로 말미암 아 기뻐하게 될 것을 확신했다. 지금이야 어떤 오해가 있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때면 모두 다 용서될 것이고, 잊혀질 것이며, 영광 으로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께 찬양을 드리게 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뜻에 대해 진지해질 것이다(15-18절). 바울은 그의 계획을 경홀하게 또는 아무렇게나 세우지는 않았다. 그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계획을 세웠다. 때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어떤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 확실히 알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행 16:1-10), 그는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의 행동 동기는 진지했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힘썼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의 교통이나 통신 시설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바울이 그 의 바쁜 일정을 큰 문제 없이 그렇게 잘 수행할 수 있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말할 때에 자기 의중(意中)을 그대로 말하라고 가르치셨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 으로 좇아 나느니라 (마 5:37). 예 혹은 아니요를 지나치게 과장하기 위해 필요없는 말을 덧붙이는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고림도인들은 바울이 진실한 성품을 가 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양심이 깨끗한 사람이었 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서 18개월 동안 사역하면서, 바울은 그 자신이 신실함을 입증해 보였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는 변한 것이 없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1:19-20).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면서 그와 동시에 사람들을 기만할 수는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양심을 속이는 것이고, 자신의 인격을 부패시 키는 것이며, 결국 진리가 떠나게 될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과 그 의 동역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전파함으로 인해 구원받게 되었 따.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거짓된 사람들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거 짓 도구들을 통해 진리를 전하실 수 있었겠는가 사역자들의 증거와 행위는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우리가 행하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삶으 로부터 넘쳐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해서는 예 와 아니오 사이의 선택이 없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있어 그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 가 되신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 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0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약속을 계시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시며, 우리 로 하여금 그 약속을 소유할 수 있게 하신다 ! 선한 양심으로 인해 누릴 수 있는 복 중의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된다는 것, 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주신 약속들을 나의 것으로 주 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에게는 자신의 죄악된 행동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히 이용하는 죄 따위는 없었다(4:2 참조). 네째,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갖게 될 것이다(1:21-2
4).
견고케 한다 (established)는 말은 상업상의 용어로서 계약을 이행하 겠다는 데 대한 보증을 뜻한다. 즉, 그것은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그 상품 은 광고한 것과 똑같은 상품이며, 서비스는 약속한 대로 이행되어질 것을 확증해 주는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이 믿을 만한 분이며, 약속하신 것을 모두 이루실 분 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보증자이시다. 바울은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썼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죄로 인해 바울을 책망하는 일이 없었기에, 그는 자신의 동기가 순수한 것이며 자신의 양심이 깨끗 함을 확신할 수 있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21절). 구약 시대 에는 오직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만이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을 수 있었다.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길 채비를 갖추는 것이다. 우리 가 성령님께 복종함에 따라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나님을 섬기며 경건한 삶을 살 수 있게 역사해 주신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합당하게 섬기는 데 꼭 필요한 특별한 영적 분별력 주신다(요일 2:20, 27). 성령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인치셨기에(고후 1:22/ 엡 1:13)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하며, 그분의 소유가 된다. 성령님의 내적 증거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참 자녀요 거짓 자녀가 아님을 보증받는다(롬 5:5/ 8:9).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을 확신시켜 주신다. 우리는 그분의 소유이 기 때문이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명령하는 '영적 주관 자'로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성장을 돕고자 애쓰는 '종'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도록 해 주신다(1:23-2
4). 그러나 거짓 교사들이 고린도 교회에 몰래 들어와 주관자 노릇을 함으로써(11장 참조), 성도들의 마음은 그들을 위해 실로 많은 수고를 한 바울에게서 멀어지고 말았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보증'(지불 보증금, 계약금, 안전 장치)으로서, 훗날 우리가 천국에서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하여 하나님과 함께 거할 것을 약속 하신다(엡 1:14 참조).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지금이라도 우리의 심령으로 천 국의 은혜들을 받아 누리게 해 주신다 !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바울은 깨끗한 양심을 지닐 수 있었으며, 사라오가 인내로써 자긴에 대한 오해들 에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산다면, 갖가지 오해 들이 우리를 짓누를 것이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산다면, 우리는 그러한 오해들을 믿음과 용기로써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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