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보다 더 큰 위로 (고후1:1-11)
본문
우리 말에 엎친 데 덮친다는 말이 있죠 설상가상이란 말도 있습니다. 또 영국 속담에는 우박은 가난한 사람의 마당에만 내린다는 말도 잇습니다. 이런 말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인생 가운데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는 반증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데 더 큰 어려움이 겹쳐지면 정말 괴롭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연속적인 환란이 바로 그런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위기 시대를 맞이해서 다들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이번에 수해까지 겹쳐서 정말 심란합니다. TV 뉴우스를 보다가 어느 수재민의 한숨 섞인 말을 들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실직하고 어려워서 농촌에 와서 농사나 짓고 겨우 마음 잡고 살려고 하는데 이렇게 폭우가 쏟아져서 농사를 망쳤네요 .” 이럴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마음이 착잡합니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어려움이 겹쳐 올 때면, 대개 다음의 몇 가지 반응을 나타내게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1) 원망하며 푸념을 늘어 놓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합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고 .
2) 잊어버리려고 일부러 다른 일을 합니다. 술을 마신다든지, 혹은 향락에 빠져 버립니다. 직장인들 스트레스 풀려고 평균 주
1.6회 술집에 간다고 .
3) 체념하고 자포자기해 버립니다. 이제는 죽든지 살든지 에라- 모르겠다는 식 으로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반응 중 어느 것도 환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진정한 해답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그 위로는 환란보다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해답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만이 그들은 모든 환란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임을 천명합니다. 우리도 오늘 성경 말씀을 상고하면서 겹쳐오는 환란 가운데 하나님의 큰 위로를 경험하고 새 힘을 얻어 꼭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이 세상에 환란을 당하지 않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환란에서 면제된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신앙 생활을 잘 하는 성도라 할지라도 다 환란과 고통을 당하며 삽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 같은 사람도 환란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욥 같은 사람도 동방의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환란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1 세상의 죄악 때문에:개개인의 직접적인 죄악이 아니라도 인류 전체가 죄악을 범함으로 세상이 어지럽고 많은 재앙과 환란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 요즘 세계 각처에서 겪는 기상 이변도 사실은 인간이 지구를 파괴한 죄의 98/08/09 주일낮예배(9833) 2 결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2 마귀의 방해 때문에:타락한 천사인 마귀는 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삶을 훼방하고 휘저어 놓습니다. 예> 수많은 사건, 사고의 배후에 때때로 마귀의 역사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 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한에는 반드시 환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라도 천국 가기 전까지는 수시로 환란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동일한 환란을 당한다 할지라도 일반인들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전혀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은 환란 중의 백성을 위로함으로써 더 큰 유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작정하시면 얼마든지 환란을 막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환란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단순하게 고생시키려고 아닙니다.(애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로다”) 환란 중에 주시는 위로로 더 큰 유익을 주시기 위해서! 환란보다 더 큰 위로!(실제로 단어를 비교해 보면 위로란 단어 수가 훨씬 많음) 특히 위로(파라칼레오-파라칼론/현재분사)란 말은 ‘곁으로 부르다’는 뜻입니다. 보혜사라는 말과 같은 어원을 가진 말입니다. 환란 가운데 함께 하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완전한 위로로써!(3절.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 시34:6-7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시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위로는 단순히 우리를 동정하는 게 아닙니다. 힘을 주시고, 도움을 주시고, 구체적인 유익을 주시는 것입니다. 5절.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넘치는 위로) 6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에네르게오)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하나님의 능력으로서의 위로) 이것이 바로 환란보다 더 큰 위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위로의 힘으로 환란을 견디게 할 뿐 아니라. 더 좋은 유익들을 얻게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일까요
1 하나님만 의뢰하는 믿음을 얻게 됩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한 이후 다 죄인의 특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원죄) 이 죄의 대표적 속성은 하나님을 등지고 멀리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이나 권세 등의 세속적인 힘을 의지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생명(영생)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영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 98/08/09 주일낮예배(9833) 3 따라서 하나님이 택한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 중 한 가지가 바로 믿음을 유지케 하는 환경을 조성시켜 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가지 못하도록 적당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 바울조차-육체의 가시(고후12:)-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의지할까봐 하나님에 채운 족쇄 . 본문에서도 바울은 그런 사실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증거합니다. 9절(하) “ .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하나님을 의뢰하는 이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곧 영생을 보장하고, 그것이 인생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인생의 유일한 ‘살 길’! 예> 다윗-망명 시절 블렛 땅의 시글락에 거주했는데, 그의 부재 중에 아말렉이 노략질-부녀자 포로, 집은 불타고, . 부하들마저 기기 막혀 흥분한 나머지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려 함-삼상30:6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었더라”
그러므로 환란의 때에 오히려 하나님만 의지함으로써 오히려 안전하고, 승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미래의 구원에 대한 승리 확신을 얻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환란을 잘 이긴다고 해도,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많은 환란이 우리에게 닥쳐올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인생은 늘 불안하고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주 강해지면 무슨 일을 만나도 두려워 할 게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환란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연단되면 우리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승리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예> 스파아링-권투 연습-무거운 글러브를 끼고 적당한 상대를 정해서 싸워 보는 것-그럼으로써 앞으로 당할 상대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 줍니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0절에서 말씀합니다. “ . ” 과거에 그렇게 큰 환란(=큰 사망)에서 건져 주셨을진대 앞으로 어떤 환란이 닥쳐와도 분명히 건져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예> 다윗의 확신-골리앗과 싸울 때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캐리어가 있기에 . 삼상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이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환란이 닥쳐 올 때 스파링 상대가 옴다고 생각하십시오. 앞으로 우리의 불투명한 미래에 그 어떤 일이 닥친다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98/08/09 주일낮예배(9833) 4
3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도 세상 사는 동안 많은 환란을 당하지만, 우리 주변에 살펴 보면 환란을 당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을 하나님이 위로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위로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위로하기를 원하십니다. 4절. “ . ” 이 위로의 사명이 성도들과 교회에게 맡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 자신부터 환란을 당한 경험이 없으면 그 사람들에게 전혀 공감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예> 중환자 심방하는 경우-참 죄송한 마음 . 그 고통을 내가 과연 몇 %나 공감하면서 위로하는가 다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으로 위로할 뿐입니다. 예> 내가 당했던 환란과 동일한 고난을 당한 분(신앙으로 인한 핍박 등 .)에겐 나 자신이 하나님의 위로로 승리한 간증을 들려주면 보다 효과적으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 위로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예> 20대에 홀로 되어 평생 고생하며 자식을 휼륭하게 키운 어른-중년에 혼자 된 분에게 위로할 수 있습니다. 등을 탁 치면서 . “울지 마! 아이들 다 컸는데 뭘 그래! 하나님이 계시쟎아! 나 같은 사람도 살았는데 . 다 살 수 있어 . 걱정 마! 당신이 담대해야 아이들이 용기를 낼 거 아냐” 본문의 바울도 그랬습니다. 8절-10절. 아시아에서 당한 고난-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음-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 환란과 고난에 관한 한 베테랑인 바울이 말하니까 호소력이 있는 것입니다. 곱게만 산 사람이 이야기하면 시큰둥할 수도 있을 겁니다. 자기가 뭘 안다고 . 그러나 고난에 관한 한 바울만큼 극심하게 경험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바울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승리한 간증을 하니까 쉽게 공감하고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히4:14-16 우리의 대제사장-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15절)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 . 요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환란을 당할지라도 이것을 우리의 좋은 경험으로 삼아 앞으로 우리가 사는 동안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수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란을 주시고 그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면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에게 귀중한 사명을 부여해 주시는 것입니다. 병들어 고통받고 위로 받았다면 앞으로 병든 자들을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핍박받은 경험이 있다면 핍박받는 자들을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물질적인 고통을 받다가 위로받은 적이 있었다면 물질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에게 계속 닥쳐오는 환란 가운데서라도 무조건 슬퍼하지만 말고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모든 환란 중에 우리 곁에 오셔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더 나아가 위로자의 사명을 깨닫고 잘 감당하는 진정한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1) 원망하며 푸념을 늘어 놓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원망합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고 .
2) 잊어버리려고 일부러 다른 일을 합니다. 술을 마신다든지, 혹은 향락에 빠져 버립니다. 직장인들 스트레스 풀려고 평균 주
1.6회 술집에 간다고 .
3) 체념하고 자포자기해 버립니다. 이제는 죽든지 살든지 에라- 모르겠다는 식 으로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반응 중 어느 것도 환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진정한 해답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그 위로는 환란보다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해답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만이 그들은 모든 환란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임을 천명합니다. 우리도 오늘 성경 말씀을 상고하면서 겹쳐오는 환란 가운데 하나님의 큰 위로를 경험하고 새 힘을 얻어 꼭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이 세상에 환란을 당하지 않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환란에서 면제된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신앙 생활을 잘 하는 성도라 할지라도 다 환란과 고통을 당하며 삽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 같은 사람도 환란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욥 같은 사람도 동방의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환란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1 세상의 죄악 때문에:개개인의 직접적인 죄악이 아니라도 인류 전체가 죄악을 범함으로 세상이 어지럽고 많은 재앙과 환란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 요즘 세계 각처에서 겪는 기상 이변도 사실은 인간이 지구를 파괴한 죄의 98/08/09 주일낮예배(9833) 2 결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2 마귀의 방해 때문에:타락한 천사인 마귀는 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삶을 훼방하고 휘저어 놓습니다. 예> 수많은 사건, 사고의 배후에 때때로 마귀의 역사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 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한에는 반드시 환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라도 천국 가기 전까지는 수시로 환란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동일한 환란을 당한다 할지라도 일반인들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전혀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은 환란 중의 백성을 위로함으로써 더 큰 유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작정하시면 얼마든지 환란을 막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환란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단순하게 고생시키려고 아닙니다.(애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로다”) 환란 중에 주시는 위로로 더 큰 유익을 주시기 위해서! 환란보다 더 큰 위로!(실제로 단어를 비교해 보면 위로란 단어 수가 훨씬 많음) 특히 위로(파라칼레오-파라칼론/현재분사)란 말은 ‘곁으로 부르다’는 뜻입니다. 보혜사라는 말과 같은 어원을 가진 말입니다. 환란 가운데 함께 하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완전한 위로로써!(3절.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 시34:6-7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시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위로는 단순히 우리를 동정하는 게 아닙니다. 힘을 주시고, 도움을 주시고, 구체적인 유익을 주시는 것입니다. 5절.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넘치는 위로) 6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에네르게오)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하나님의 능력으로서의 위로) 이것이 바로 환란보다 더 큰 위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위로의 힘으로 환란을 견디게 할 뿐 아니라. 더 좋은 유익들을 얻게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일까요
1 하나님만 의뢰하는 믿음을 얻게 됩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한 이후 다 죄인의 특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원죄) 이 죄의 대표적 속성은 하나님을 등지고 멀리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이나 권세 등의 세속적인 힘을 의지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생명(영생)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영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 98/08/09 주일낮예배(9833) 3 따라서 하나님이 택한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 중 한 가지가 바로 믿음을 유지케 하는 환경을 조성시켜 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가지 못하도록 적당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 바울조차-육체의 가시(고후12:)-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의지할까봐 하나님에 채운 족쇄 . 본문에서도 바울은 그런 사실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증거합니다. 9절(하) “ .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하나님을 의뢰하는 이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곧 영생을 보장하고, 그것이 인생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인생의 유일한 ‘살 길’! 예> 다윗-망명 시절 블렛 땅의 시글락에 거주했는데, 그의 부재 중에 아말렉이 노략질-부녀자 포로, 집은 불타고, . 부하들마저 기기 막혀 흥분한 나머지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려 함-삼상30:6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었더라”
그러므로 환란의 때에 오히려 하나님만 의지함으로써 오히려 안전하고, 승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미래의 구원에 대한 승리 확신을 얻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환란을 잘 이긴다고 해도,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많은 환란이 우리에게 닥쳐올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인생은 늘 불안하고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주 강해지면 무슨 일을 만나도 두려워 할 게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환란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연단되면 우리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승리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예> 스파아링-권투 연습-무거운 글러브를 끼고 적당한 상대를 정해서 싸워 보는 것-그럼으로써 앞으로 당할 상대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 줍니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0절에서 말씀합니다. “ . ” 과거에 그렇게 큰 환란(=큰 사망)에서 건져 주셨을진대 앞으로 어떤 환란이 닥쳐와도 분명히 건져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예> 다윗의 확신-골리앗과 싸울 때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캐리어가 있기에 . 삼상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이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환란이 닥쳐 올 때 스파링 상대가 옴다고 생각하십시오. 앞으로 우리의 불투명한 미래에 그 어떤 일이 닥친다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98/08/09 주일낮예배(9833) 4
3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도 세상 사는 동안 많은 환란을 당하지만, 우리 주변에 살펴 보면 환란을 당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을 하나님이 위로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위로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위로하기를 원하십니다. 4절. “ . ” 이 위로의 사명이 성도들과 교회에게 맡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 자신부터 환란을 당한 경험이 없으면 그 사람들에게 전혀 공감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예> 중환자 심방하는 경우-참 죄송한 마음 . 그 고통을 내가 과연 몇 %나 공감하면서 위로하는가 다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으로 위로할 뿐입니다. 예> 내가 당했던 환란과 동일한 고난을 당한 분(신앙으로 인한 핍박 등 .)에겐 나 자신이 하나님의 위로로 승리한 간증을 들려주면 보다 효과적으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 위로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예> 20대에 홀로 되어 평생 고생하며 자식을 휼륭하게 키운 어른-중년에 혼자 된 분에게 위로할 수 있습니다. 등을 탁 치면서 . “울지 마! 아이들 다 컸는데 뭘 그래! 하나님이 계시쟎아! 나 같은 사람도 살았는데 . 다 살 수 있어 . 걱정 마! 당신이 담대해야 아이들이 용기를 낼 거 아냐” 본문의 바울도 그랬습니다. 8절-10절. 아시아에서 당한 고난-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음-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 환란과 고난에 관한 한 베테랑인 바울이 말하니까 호소력이 있는 것입니다. 곱게만 산 사람이 이야기하면 시큰둥할 수도 있을 겁니다. 자기가 뭘 안다고 . 그러나 고난에 관한 한 바울만큼 극심하게 경험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바울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승리한 간증을 하니까 쉽게 공감하고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히4:14-16 우리의 대제사장-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15절)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 . 요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환란을 당할지라도 이것을 우리의 좋은 경험으로 삼아 앞으로 우리가 사는 동안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수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란을 주시고 그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면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에게 귀중한 사명을 부여해 주시는 것입니다. 병들어 고통받고 위로 받았다면 앞으로 병든 자들을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핍박받은 경험이 있다면 핍박받는 자들을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물질적인 고통을 받다가 위로받은 적이 있었다면 물질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에게 계속 닥쳐오는 환란 가운데서라도 무조건 슬퍼하지만 말고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모든 환란 중에 우리 곁에 오셔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더 나아가 위로자의 사명을 깨닫고 잘 감당하는 진정한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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