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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낙심합니까 (고전4:1-15)

본문

바울은 우리가 직분을 받았는데 낙심하지 말자고 한다. 여기서 낙심이란 "싫증나다, 무력감에 빠지다, 권태에 빠지다. 인생이 살맛이 없 어진다."라는 뜻이다. 사람은 다 잃어버려도 잃어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인가 마음이다. 돈을 잃어도 마음을 잃지 않으면, 일 할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돈은 다시 벌 수가 있다. 성적이 떨어져도 공부할 마음만 있으면 성적은 언젠가는 극복할 수가 있다. 공부를 못해도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만 잃지 않으면 공 부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 할 수가 없다 사랑이 식어도 그 사람과의 처음 사랑을 잃지 않고 지키기만 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다. 마음을 지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도무지 공부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공부해야할 의욕도 의미도 없다. 이미 실망했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고 싶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인생의 꿈, 뭐가 될 것이냐 웃기지 마라, 인생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는데, 꿈 장래소망 무슨 얼어죽을 썰렁한 꿈이란 말인가 마음을 잃으면 그 순간부터는 나와 관계된 모든 세계가 의미가 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마음을 잃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생명을 잃는 것과 마찬 가지이다. 그래서 잠언 4:23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라고 말슴하고있는 것이다. 사단은 바로 우리의 생명인 마음을 낙심케 하려고 공격하는 것이다. 전쟁에서는 심리전을 무척 중요시한다. 군사들의 전의만 빼앗으면 죽이지 않아도 그 전쟁은 승리할 수 있다. 사단은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목숨은 빼앗 지 못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낙심케 하려고 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군인 사도 바울 역시 사단의 공격에는 예외가 아니었다. 사단은 무엇 으로 사도 바울의 마음을 낙심케하고 지치게 하고 산 송장처럼 소망없이 살아가 게 하려고 하는가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을 낙심케하며 지치게하고 소망을 잃게 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우리는 언제 낙심하는가 공부하기가 싫어지는가 장래의 꿈이 썰렁해져서 별 의 미가 없어 지는가 그냥 이대로 살지 뭐! 하게 되었는가 처음부터 그랬는가 아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금 지쳐 있고 소망 없어 하는 가 우리는 언제 우리의 마음이 지쳐 낙심하게 되는가 경제위기 때문인가 남북분단 의 상황 때문인가 일관성 없는 교육제도 하루에도 수백명씩 죽어가는 아프리카 난민들 때문인가 이런 거창한 문제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낙심하게 되는가 아니다. 우리의 마음을 낙심케하는 것은 이렇게 거창한 문제들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은 관계의 깨어짐에서 온다. 부부 관계가 힘들어지면 일할 맛이 않난다. 자식이 말성 을 피우면 부모는 인생의 의미를 잃는다. 친구들에게 이지매를 당하거나 따돌림 을 당하면 학교에 가기 싫을 뿐만 아니라 얼마 살지도 않은 인생을 포기하게 된다. 사단은 태초에 이미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깨드림으로써 얼마나 인간이 망 가졌는지 잘 알고 있기에 지금도 우리의 관계를 깨뜨림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을 무기력하고 권태에 빠진 아무 소망 없는 산송장처럼 살아가게 하려고 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의 관계를 깨뜨림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낙심케 하려는 사단의 두가지 계략이 나와 있다.
첫째, 사단은 거짓을 통해 사람들의 관계를 깨뜨려서 우리들을 낙심케 한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바울이 친히 세운 교회다. 고린도 교회를 세우는데 나만큼 애쓴 사람 있으면 다나와! 하면 사도 바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떠나 있는 동안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혼란하 게 했다. 오늘날도 사단은 거짓의 영을 통해서 부모와 자식을 형제를 친구들의 관계를 깨 뜨려 우리를 낙심케 한다. 특별히 사단은 사람들의 말을 이용하여 정확하지 않은 것을 사실인것처럼 위장하여 사람들의 관계를 깨고서로 상처를 주게 하여 우리를 낙심케 한다. 우리는 언제 가장 낙심하는가 나의 마음을 준 사람으로부터 배신 당할 때이다. 나의 진심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상대적인 배신감과 마음의 상처 를 입게 된다. 나는 진심으로 대했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비꼬아 본다면 낙심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정확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 어떤 사건 이나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일들을 참으로 두려워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 단이 무엇 보다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이 우리의 불완전한 판단력과 언어이기 때문 이다.
둘째, 사단은 내가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게 함으로서 관계를 깨고 우리 의 마음을 낙심케 한다. 거짓 교사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거짓으로 바꾸려 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 보다 바울은 사도로서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하며 바울을 사도로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사단은 거짓 교사들을 통해서 바울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사람이 아니었기에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그는 원래가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자였는 데 그를 어떻게 믿고 사도로 인정할 수 있느냐고, 바울은 한 마디로 사도의 자격 이 없는 자라고" 그리고 그것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이 것은 분명히 사단이 마게도냐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바울의 마음을 낙심케 하여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는 계략인 것이다. 우리 누구도 우리가 한 일을, 우리가 한 수고를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 때 쉽게 낙심할 수 있다. 심지어는 너는 이러이러해서 우리의 친구가 될 자격이 없어 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이라면 어떻겠는가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 항상 기 대하는 것이 있다. 특별히 물질적인 것을 기대 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대부분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기대한다. 헌신적인 사람, 신앙 좋은 사람, 당신이 있 기에 우리 교회가 큰 유익을 얻는다는 등 ., 사실 이런 말은 서로가 좀더 자주 해 주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좋은 평 판을 기대 한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평판이 있으면 다행인데 오히려 그런 대우 를 못 받는 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왠지 나는 열심히 헌신하는데 오히려 소외되 고 있다고 느낄 수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내가 이런 대우를 받으려고 저 애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어디있어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부모에게 인정 받지 못하면 공부하고 싶지가 않다. 사람들이 미워진다. 열심으로 가득했던 영혼은 점점 피곤해진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혼자만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상대적인 피해의식이 들게된다. 마음이 지친다. 사 단은 바로 이것을 노리는 것이다. 내가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이것으로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을 낙심케 하려는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의 마음에 소망을 빼앗아가서 산 송장 처럼 그냥 하루 하루를 살아 가게 하려는 것이다. 그냥 될 때로 되겠지. 하며 살아가게 한다. 그래서 어린나 이에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이 참 많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거짓과 그의 존재가 무시되는 것 같은 사단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은 낙심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열심을 지금 고린도에 있는 그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그가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2가 지 때문이다.
첫째, 마음의 바른 동기 였다. 바울은 애초에 자신의 평판이나 마땅히 받을 대우나 인정을 위해서 일한 것이 아 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수고한 동기는 무엇인가 5절, 바울이 수고한 이유는 오 직 예수의 주되신 것과 성도들의 종이 되기 위해서 였다. 자신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과 다른 이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서 였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이 인정을 받든 못 받든, 내가 대우를 받든 못 받든지 마음 이 낙심되지 않았던 것이다. 주님과 교회에만 유익이 되면 됐지 거기에 뭐가 더 필요한가 이것이 사도 바울의 마음 이었다. 유리컵에 진흙을 넣고 10분 정도 있으면 흙이 가라 앉는다. 그러나 흔들면 이내 그 물은 곧 혼탁해지고 만다. 흙을 걸러내지 않고서는 조그만 흔들림에도 물은 더러워져서 마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 마음도 마찬 가지이다. 우리속에 무 엇이 있는지 평상시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움과 갈등에 부딪히면 그 때야 비로서 우리 마음 저 밑바닥에 깔려 있던 것이 드러난다. 때로는 하나님 께서 우리 마음의 동기를 바르게 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갈등을 일으키시고 우리 마음을 흔드시는 것이다. 그러면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대부분 2가지 반응을 나타낸다. 하나는 따지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왜 흔드느냐는 것이다. 나는 성질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줄 아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아예 그 갈드의 대사들에게 서 등을 돌리고 숨어 버리는 것이다. 왜 흔드느냐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따질 것인가 아무도 나를 흔들 수 없게 나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아니면 뒷자리로 숨을 것인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히려 감사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그를 통하여 나를 더욱 온전하게 하시고 훈련 시키셔서 더욱 귀하게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앞에 감사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4절에서 믿음의 시련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한 것이다. 믿음의 시련이란 곧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겪는 오해와 갈등과 어려 움인 것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 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 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둘째, 사도 바울이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인정 받지 못해도 낙심하여 실족 하지 않았던 것은 사람들에 대한 바른 태도 때문이었다. 12절 그런즉 사망은 우리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내가 죽는 태도 이다. 상대가 높여기 위해서 나는 낮아지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친구가 평안해지는 것을 위해서 내가 어려운 일을 택하는 것이다. 친구가 존귀해지도록 내가 비천에 처하는 것이다. 친구의 유익을 위해서 나는 손 해를 택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친히 이 모범을 보이셨고 사도 바울 역시 이 모범 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항상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도 그 러하셨는데 내가 무얼 바라겠는가 주님이 모든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 서 죽으셨 기에 나도 그들을 위해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노라고 고백한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섬기는데 가져야 할 태도이다. 성숙한 사람이 란 다름 아닌 남을 위한 자세를 가진 사람이다. 성숙한 자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낮은 곳, 비천한 곳, 무시 받는 곳에 처한다. 그래야 다른이가 유익을 얻고 성숙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만한자는 성숙한 자의 겸손을 통해서 진정한 겸손을 배우게 될 것이고 희생을 배우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대한 바른 마음의 동기와 바른 자세를 가진다면 내가 무 시당하고 인정 받지 못하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당황하거나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사단은 오늘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들을 거짓과 속임수로 넘어뜨리려고 한다. 그 리고 여러 가지 인정받고 대우 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정욕을 통하여 낙심케 하려 고 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역 사를 이용하셔서 오히려 당신의 일꾼들을 온전케 하시고 성숙시키셔서 더 귀한 그릇으로 사용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대한 바른 마음의 동기와 자세를 가진다면 이러한 시험을 만날수록 더욱 귀한 하나님 의 도구로 사용되어지고 많은 이들을 세우고 이롭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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