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육관 (고전13:5-7)
본문
우리가 이미 얻은 구원은 천국 가는 구원입니다. 지금 얻으려는 것은 불 가운데서 얻는 구원이 아니고 영광스러운 구원을 준비합니다. 이미 얻은 구원은 변동이 없고 믿는 그 시간에 천국 가기로 판별된 천국 생활자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유혹을 받습니다. 진리 안에서 살 때는 영육이 천국생활을 하고 범죄하는 것은 부패성입니다. 중생된 영은 항상 천국에서 삽니다. 죄를 지은 것은 죄가 죄를 지었습니다.(롬7:19) 중생자는 범죄하지 않습니다(요일3:9). 악한자가 저를 만지 지도 못한다고 하였습니다.(요일5:18)
그런데 현재 우리가 죄를 짓고 있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까 요 또 롬7:19과 같이 죄가 죄를 지었으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회개를 해 야 할까요 그것은 죄가 죄를 지을 때 나의 이성을 사용했습니다. 즉, 성품, 뜻, 마음, 지혜, 감각, 지식등이 죄의 도구로써 사용되었습니다. 이성이 죄의 이 용물이니 이성에게는 몸이 이용 당합니다. 죄를 자복하는 것은 중생된 영이 합니다. 왜 이성과 몸의 주인인 중생 된 영이 죄에게 자기 것을 빼앗겼으므로 연대적 책임을 져야 하므로 다시 찾기 위하여 회개합니다. 이는 즉 소와 개의 잘못을 주인이 책임지는 것 과 같습니다. 그럼 영 혼자만 회개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과 이성 몸 셋이 단합 해서 회개합니다. 몸은 입술이 회개하고 이성은 죄를 지었구나 하는 후회 의 정도요 영은 그렇게 하지 말자 하는 것입니다. 이성과 몸은 죄를 범했기에 그들끼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어 예수님 의 피로 사죄받은 살아있는 영이 하나님께로 끌고 갑니다. 예수님의 피로 완전히 실상으로 해방 받은 것은 영뿐입니다. 이성은 법적으로 해방 받았 고 또 부분적으로 받으며 한 부분은 한 번에 구원 받습니다.(이성을 총칭 해서 마음이라고 합니다.) 영은 인격입니다. 도구가 아닙니다. 인격은 쪼갤 수 없으므로 단번에 구원받아 영생에 이르렀습니다. 이성과 몸은 영이 사용할 수도 있고 죄가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간절히 주님을 사랑하고 회개하면 영에 속한 것이 더니, 그 다음 시간에 또 바뀌어 죄와 마귀의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성은 영이 사용할 때 그 이성만은 영의 뼈와 살이 되어 부활 합니다. 부활한 이성은 영생합니다. 죄에 사용당한 것은 영원히 소멸됩니다. 즉 사망입니다. 사용 당하지 않고 남은 이성은 누구에게 사용 당할런 지 아직 모릅니다. 몸도 이와같이 과거에 있었던 몸은 없어졌습니다. 사용 안한 것만 남아 있습니다. 죽을 때는 사용할 시간이 없으므로 그대로 남아 썩습니다. 과거 시간 시간에 사용된 것이 의에 사용되었으면 해방 받았으나 중생은 못하 고 원소로 돌아가 있다가 주님 재림시에 부활합니다. 그러나 해방받은 이성은 중생한 영에게 붙어 지체가 됩니다. 이성은 부 분적으로 해방 받으나 의에게 다 이용 당하였을 때에 다 중생합니다. 이 렇게 몸과 이성이 하나도 남김 없이 의에 사용 되었을 때를 순교라 합니다. 제일 귀한 영은 단번에 해방받고 중생하며 이성은 부분적으로 해방 받고 방법은 다르나 해방 받으면 부활합니다. 몸도 이성과 같이 차차 해방 받 으나 즉시 부활하지 않고 재림시에 부활합니다.
그러므로 몸과 이성은 죽는 날까지 해방 시켜야 합니다. 영과 이성이 구원 받는데 공통점은 부활이 같습니다. 몸과 영과의 공통 점은 없습니다. 이성과 몸의 공통점은 부분적으로 해방 받는 것입니다. 부 활에는 이성은 부분적 부활, 몸은 재림시 부활, 영은 단번 부활입니다. 이 성과 몸이 영과 같이 단번 부활하지 않는 것은 몸은 인격이 아니요 이성도 인격이 아니고 영만 인격이요, 영은 주인이요 그 둘은 피소유격입니다. 인간은 영, 이성, 몸이요. 짐승은 몸과 이성입니다. 왜 이성은 영과 몸 사이에 끼여 있기로 반이성(半理性)입니다. 사람중에 주인과 주격은 영입니다. 이 영이 이성과 몸을 버렸습니다. 즉 영이 이성과 몸을 잘못 사용했 습니다. 에덴동산 범죄 전에 깨어있지 않고 정신차리지 않고 조심하지 않은 것이 영의 범죄입니다. 선악과 먹음은 죄의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영의 잘못으 로 이성과 몸을 죽였으므로 책임져야 하고 또한 살릴 수도 있습니다. 영은 죽어도 스스로 살 수가 없어 하나님께서 살려서 주격의 지위를 주 어 이성과 몸을 다시 살리게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영이 힘을 써서 몸과 이성을 죄의 것 된 데에서 다시 빼앗으려고 합니다. 이 노력이 죽는 날까 지 계속해야 합니다. 아무리 빼앗아도 이성과 몸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제하여지지 않습니다.) 왜 이성과 몸의 지배자가 죄이므로 싸움은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싸우는 목적은 빼앗으려는 것이요. 싸우면 싸울수록 영은 익숙하여 강하 게 됩니다. 또한 죄도 강하여 집니다. 왜 죄는 한 단체이므로 한 부분이 싸워서 지면 응원병이 오므로 점점 강해집니다. 내게 붙은 외부의 죄는 작은 것 같으나 그 배경은 천하의 죄가 뭉쳐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오는 죄만 이기면 천하의 죄 즉 우주의 죄를 다 이 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가리운 것이 있는 것만큼 영계는 자유가 없 습니다. 이런 비밀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극단의 싸움을 하였습니다. 햇볕 이 강할 때에 포도잎이 시드나 뿌리가 땅에 연결되었으면 수분을 흡수하 여 햇볕이 강할수록 더욱 잎이 자라서 강해집니다. 내게 다가오는 죄가 많고 크면 둥치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전지의 능력을 받아 더욱 내가 강하게 됩니다. 전쟁에 대적이 많으면 또 군비를 굳게해 야 하는 것같이 대적인 죄가 많을수록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왜 싸워 이기도록, 또 포도나무 가지가 둥치에서 빨아올린 진액을 다시 내려 보내지 않고 가지가 되는 것같이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충만 한 온전과 성결과 진리와 사랑, 능력, 도덕, 지혜를 사용하면 내 자신이 됩니다. 이들이 자란 것이 내가 자란 것입니다. 즉 내가 진리화 되었다는 뜻입니다. 숯에 불이 붙으므로 불이 되는 것같이 내가 예수의 인격을 받아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떠나시면 또 죄인입니다. 다행한 일 은 중생된 영에게서는 하나님이 떠날래야 떠날 수 없습니다. 죄와 싸움을 시키시는 것은 죄를 멸살하고 나를
첫째로 기르기 위함입니다. 죄도 처음은 단순하고 쉬운 것이 오나 나중에는 의인지 죄인지 모를 사이비하게 옵니다. 타인이 누구나 아는 죄는 저급의 죄이고, 자기만 아는 죄가 고급의 죄입니다. 더욱더 나가서는 죄를 알 수 없으므로 성자라도 꺼꾸러지는 것입니다. 고급의 죄는 알 수 없으므로 범하고도 복음의 운동을 하는 줄로 압니다. 또한 내가 자랄수록 처음은 자기만 책임지다가 나중에는 둘, 한 가정, 한 교회, 한 교계, 세계교회를 책임지게 됩니다. 죄를 강하게 하는 것은 나를 패하게 함이 아니고 나를 강하게 만들기 위 함이니 못 이길 것 없습니다. 이기면 또 주십니다. 강한 죄는 더욱 강한 능력을 섭취하게 합니다. 영을 주격으로 하여 이성과 몸을 맡겨 죽는 날까지 싸워 구원시키는 이 유는
(1) 영을 장성시키려고
(2) 영이 주격이 되도록
(3) 개적 독립의 천 국을 이루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기본구원은 심판법에서
(1) 사죄, 칭의 주어 의로운 자를 만들고
(2) 마 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되는 지위를 주시고
(3) 죽은 영이 생명이신 예수님과 진리인 성령님과 말씀이 들어와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 입니다. 이것은 단번이고 또한 정죄할 자 없습니다. 나의 의는 없지만 예수님이 당신을 드려 하나님의 요구대로 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법적으로는 의로운 자이나 실질적으로 전체적으로는 우리는 죄인인 것입니다. 롬8: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사람은 천국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본질과 본성이 사랑, 진리, 선이므로 죄 가운데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못짓는 것같이 이 영은 범죄할 수 없습니다. 이 영이 범죄한다면 하나님보다 더 위면 될 수 있습니다. 영은 이성과 육을 떠나서는 장성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이 있을 때에 자 라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자라려면 잎이 나야 합니다. 가지가 둥치에 서 오는 진액을 잎으로 보내야 가지도 살고 잎도 삽니다. 이처럼 우리 영 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이성에게 주고 이성은 몸에게, 몸은 행동으로 나가서 만물에게 퍼져야 모든 것이 자랍니다. 이처럼 행위구원은 우리가 얻을 것인데 위와같이 하여 영이 자라게 됩니다.(엡1:23) 하나님의 은혜는 나무가 영양을 섭취할 때 같이 2가지 방면으로 옵니다. 땅에서 취하고 공기에서 취하는 것같이 영은 내부적, 외부적으로 받습니다. 내부적은 이미 우리 속에 주어진 진리와 영감이 우리에게 주고, 외부 적은 성경 읽을 때, 들을 때, 배울 때, 깨달을 때, 만물을 볼 때, 거기서 나온 진리를 먹습니다. 이 둘이 합쳐져야 양식이 됩니다. 나무는 위엣 것 취하고 물을 섭취해야 자랍니다. 다시 말하면 내부는
(1) 골3:4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2) 하나님이신 성령님,
(3) 내 속에 들어 와 내 주관화된 진리의 능력, 이 셋이 속에서 나오는 은혜입니다. 외부는 진리의 말씀을 읽을 때, 들을 때, 깨달을 때, 만물을 볼 때에 오는 은혜입니다. 이 둘이 합쳐져야 은혜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이 두 은 혜를 받는 방법은 내부에서 나오는 은혜는 영이 받고, 외부에서 나오는 은혜는 감각이 받습니다. 이 둘이 합쳐지는 곳은 마음 속 양심입니다. 밖에서 온 것이 양심에서 영에, 영에서 이성, 이성에서 몸, 몸에서 행동 사건 일로 나가게 됩니다. 여기서 맺어진 일이 상급이 됩니다. 즉 상급은 자기의 자라난 열매입니다. 이 상급이 귀한 것이 아니고 상급을 만든만큼 영이 자랐으니 이것이 귀합니다. 또 은혜 받은 것이 외부로 나가야 영이 자랍니다. 우리가 자라지 못하는 이유는
(1) 알고 행치 못하기 때문이요, 못 행하는 것은 몸이 막혔고, 행하면서도 모르는 것은 이성이 막혔고 영은 막힐 수 없습니다. 막히는 것은 못 깨닫고 못 행하는 것입니다. 막히지 않고 나가 기만 하면 은혜가 자꾸 나와 자꾸 장성합니다. 자라면 어디가지 자라나갈 까요 예수님까지 자랍니다.(엡4:15) 이런 구원이므로 바울은 요동치 않았습니다. 고후5:2-3에서는 바울이 탄 식했습니다. 왜 이젠 자기의 능력에 모든 것이 달렸기에 두려워서 짐진 것같이 탄식한다 했습니다. 자기가 자라난 것만이 영광이기에 그것에 도 달하려고 탄식했습니다. 또 사람이 영화로우려면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즉 온전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자기의 자란 것만큼 그 선행이 영원한 나라의 재산이 됩니다. 구원의 순서는 의지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증거 로 나타나시고, 성령님은 추가 역사를 하십니다. 예수님의 나타나심 중 제일 큰 것은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제 2위를 가리켜 말씀이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피조물의 도덕, 지혜, 능력의 완전을 책 임진 자입니다. 그리스도는 영원전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의 태초는 창 세기의 태초보다 앞섭니다. 그리스도는 이것보다도 앞입니다. 만물이 다 우리를 위하여 있고 사용되고 다 우리의 소유물입니다.(고전 3:21-23) 만물의 존재 목적과 사용 목적이 택자를 위함입니다. 만물은 우리를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롬8:19-20에서는 만물이 우리가 해방이 되 어야 그들도 해방되므로 우리의 해방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롬8:23에는 우리도 탄식합니다. 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성도를 해치지 않으려고 해도 마귀가 합니다. 마귀는 인격이며 인격이 있는 자는 하나님이 억제하지 않고 자유를 주며 조절합니다. 롬8:28 ".선을 이루느니라"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방해할 자가 없습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 라." 이는 위의 도리를 아는 자의 말입니다. 시91: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택자 에게 한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은 여호와를 유일의 피난처로 삼을 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자가 이렇게 당당히 말할까요 곧 중생된 영 나입니다. 영, 나 로 사는 자는 하나님을 피난처 즉, 계약 안에 사는 자입니다. 영으로 사는 것은 때려도 죽어도 살아도 모두 유익이나 육으로 산 것은 모두가 손해입니다. 만물이 나를 위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물을 설복시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변해야 합니다. 즉 내가 영으로만 살면 다 됩니다. 만물 이 내 구원 위해 있으므로 누가 내 구원을 방해하리요
그런데 현재 우리가 죄를 짓고 있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까 요 또 롬7:19과 같이 죄가 죄를 지었으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회개를 해 야 할까요 그것은 죄가 죄를 지을 때 나의 이성을 사용했습니다. 즉, 성품, 뜻, 마음, 지혜, 감각, 지식등이 죄의 도구로써 사용되었습니다. 이성이 죄의 이 용물이니 이성에게는 몸이 이용 당합니다. 죄를 자복하는 것은 중생된 영이 합니다. 왜 이성과 몸의 주인인 중생 된 영이 죄에게 자기 것을 빼앗겼으므로 연대적 책임을 져야 하므로 다시 찾기 위하여 회개합니다. 이는 즉 소와 개의 잘못을 주인이 책임지는 것 과 같습니다. 그럼 영 혼자만 회개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과 이성 몸 셋이 단합 해서 회개합니다. 몸은 입술이 회개하고 이성은 죄를 지었구나 하는 후회 의 정도요 영은 그렇게 하지 말자 하는 것입니다. 이성과 몸은 죄를 범했기에 그들끼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어 예수님 의 피로 사죄받은 살아있는 영이 하나님께로 끌고 갑니다. 예수님의 피로 완전히 실상으로 해방 받은 것은 영뿐입니다. 이성은 법적으로 해방 받았 고 또 부분적으로 받으며 한 부분은 한 번에 구원 받습니다.(이성을 총칭 해서 마음이라고 합니다.) 영은 인격입니다. 도구가 아닙니다. 인격은 쪼갤 수 없으므로 단번에 구원받아 영생에 이르렀습니다. 이성과 몸은 영이 사용할 수도 있고 죄가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간절히 주님을 사랑하고 회개하면 영에 속한 것이 더니, 그 다음 시간에 또 바뀌어 죄와 마귀의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성은 영이 사용할 때 그 이성만은 영의 뼈와 살이 되어 부활 합니다. 부활한 이성은 영생합니다. 죄에 사용당한 것은 영원히 소멸됩니다. 즉 사망입니다. 사용 당하지 않고 남은 이성은 누구에게 사용 당할런 지 아직 모릅니다. 몸도 이와같이 과거에 있었던 몸은 없어졌습니다. 사용 안한 것만 남아 있습니다. 죽을 때는 사용할 시간이 없으므로 그대로 남아 썩습니다. 과거 시간 시간에 사용된 것이 의에 사용되었으면 해방 받았으나 중생은 못하 고 원소로 돌아가 있다가 주님 재림시에 부활합니다. 그러나 해방받은 이성은 중생한 영에게 붙어 지체가 됩니다. 이성은 부 분적으로 해방 받으나 의에게 다 이용 당하였을 때에 다 중생합니다. 이 렇게 몸과 이성이 하나도 남김 없이 의에 사용 되었을 때를 순교라 합니다. 제일 귀한 영은 단번에 해방받고 중생하며 이성은 부분적으로 해방 받고 방법은 다르나 해방 받으면 부활합니다. 몸도 이성과 같이 차차 해방 받 으나 즉시 부활하지 않고 재림시에 부활합니다.
그러므로 몸과 이성은 죽는 날까지 해방 시켜야 합니다. 영과 이성이 구원 받는데 공통점은 부활이 같습니다. 몸과 영과의 공통 점은 없습니다. 이성과 몸의 공통점은 부분적으로 해방 받는 것입니다. 부 활에는 이성은 부분적 부활, 몸은 재림시 부활, 영은 단번 부활입니다. 이 성과 몸이 영과 같이 단번 부활하지 않는 것은 몸은 인격이 아니요 이성도 인격이 아니고 영만 인격이요, 영은 주인이요 그 둘은 피소유격입니다. 인간은 영, 이성, 몸이요. 짐승은 몸과 이성입니다. 왜 이성은 영과 몸 사이에 끼여 있기로 반이성(半理性)입니다. 사람중에 주인과 주격은 영입니다. 이 영이 이성과 몸을 버렸습니다. 즉 영이 이성과 몸을 잘못 사용했 습니다. 에덴동산 범죄 전에 깨어있지 않고 정신차리지 않고 조심하지 않은 것이 영의 범죄입니다. 선악과 먹음은 죄의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영의 잘못으 로 이성과 몸을 죽였으므로 책임져야 하고 또한 살릴 수도 있습니다. 영은 죽어도 스스로 살 수가 없어 하나님께서 살려서 주격의 지위를 주 어 이성과 몸을 다시 살리게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영이 힘을 써서 몸과 이성을 죄의 것 된 데에서 다시 빼앗으려고 합니다. 이 노력이 죽는 날까 지 계속해야 합니다. 아무리 빼앗아도 이성과 몸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제하여지지 않습니다.) 왜 이성과 몸의 지배자가 죄이므로 싸움은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싸우는 목적은 빼앗으려는 것이요. 싸우면 싸울수록 영은 익숙하여 강하 게 됩니다. 또한 죄도 강하여 집니다. 왜 죄는 한 단체이므로 한 부분이 싸워서 지면 응원병이 오므로 점점 강해집니다. 내게 붙은 외부의 죄는 작은 것 같으나 그 배경은 천하의 죄가 뭉쳐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오는 죄만 이기면 천하의 죄 즉 우주의 죄를 다 이 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가리운 것이 있는 것만큼 영계는 자유가 없 습니다. 이런 비밀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극단의 싸움을 하였습니다. 햇볕 이 강할 때에 포도잎이 시드나 뿌리가 땅에 연결되었으면 수분을 흡수하 여 햇볕이 강할수록 더욱 잎이 자라서 강해집니다. 내게 다가오는 죄가 많고 크면 둥치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전지의 능력을 받아 더욱 내가 강하게 됩니다. 전쟁에 대적이 많으면 또 군비를 굳게해 야 하는 것같이 대적인 죄가 많을수록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왜 싸워 이기도록, 또 포도나무 가지가 둥치에서 빨아올린 진액을 다시 내려 보내지 않고 가지가 되는 것같이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충만 한 온전과 성결과 진리와 사랑, 능력, 도덕, 지혜를 사용하면 내 자신이 됩니다. 이들이 자란 것이 내가 자란 것입니다. 즉 내가 진리화 되었다는 뜻입니다. 숯에 불이 붙으므로 불이 되는 것같이 내가 예수의 인격을 받아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떠나시면 또 죄인입니다. 다행한 일 은 중생된 영에게서는 하나님이 떠날래야 떠날 수 없습니다. 죄와 싸움을 시키시는 것은 죄를 멸살하고 나를
첫째로 기르기 위함입니다. 죄도 처음은 단순하고 쉬운 것이 오나 나중에는 의인지 죄인지 모를 사이비하게 옵니다. 타인이 누구나 아는 죄는 저급의 죄이고, 자기만 아는 죄가 고급의 죄입니다. 더욱더 나가서는 죄를 알 수 없으므로 성자라도 꺼꾸러지는 것입니다. 고급의 죄는 알 수 없으므로 범하고도 복음의 운동을 하는 줄로 압니다. 또한 내가 자랄수록 처음은 자기만 책임지다가 나중에는 둘, 한 가정, 한 교회, 한 교계, 세계교회를 책임지게 됩니다. 죄를 강하게 하는 것은 나를 패하게 함이 아니고 나를 강하게 만들기 위 함이니 못 이길 것 없습니다. 이기면 또 주십니다. 강한 죄는 더욱 강한 능력을 섭취하게 합니다. 영을 주격으로 하여 이성과 몸을 맡겨 죽는 날까지 싸워 구원시키는 이 유는
(1) 영을 장성시키려고
(2) 영이 주격이 되도록
(3) 개적 독립의 천 국을 이루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기본구원은 심판법에서
(1) 사죄, 칭의 주어 의로운 자를 만들고
(2) 마 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되는 지위를 주시고
(3) 죽은 영이 생명이신 예수님과 진리인 성령님과 말씀이 들어와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 입니다. 이것은 단번이고 또한 정죄할 자 없습니다. 나의 의는 없지만 예수님이 당신을 드려 하나님의 요구대로 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법적으로는 의로운 자이나 실질적으로 전체적으로는 우리는 죄인인 것입니다. 롬8: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사람은 천국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본질과 본성이 사랑, 진리, 선이므로 죄 가운데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못짓는 것같이 이 영은 범죄할 수 없습니다. 이 영이 범죄한다면 하나님보다 더 위면 될 수 있습니다. 영은 이성과 육을 떠나서는 장성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이 있을 때에 자 라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자라려면 잎이 나야 합니다. 가지가 둥치에 서 오는 진액을 잎으로 보내야 가지도 살고 잎도 삽니다. 이처럼 우리 영 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이성에게 주고 이성은 몸에게, 몸은 행동으로 나가서 만물에게 퍼져야 모든 것이 자랍니다. 이처럼 행위구원은 우리가 얻을 것인데 위와같이 하여 영이 자라게 됩니다.(엡1:23) 하나님의 은혜는 나무가 영양을 섭취할 때 같이 2가지 방면으로 옵니다. 땅에서 취하고 공기에서 취하는 것같이 영은 내부적, 외부적으로 받습니다. 내부적은 이미 우리 속에 주어진 진리와 영감이 우리에게 주고, 외부 적은 성경 읽을 때, 들을 때, 배울 때, 깨달을 때, 만물을 볼 때, 거기서 나온 진리를 먹습니다. 이 둘이 합쳐져야 양식이 됩니다. 나무는 위엣 것 취하고 물을 섭취해야 자랍니다. 다시 말하면 내부는
(1) 골3:4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2) 하나님이신 성령님,
(3) 내 속에 들어 와 내 주관화된 진리의 능력, 이 셋이 속에서 나오는 은혜입니다. 외부는 진리의 말씀을 읽을 때, 들을 때, 깨달을 때, 만물을 볼 때에 오는 은혜입니다. 이 둘이 합쳐져야 은혜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이 두 은 혜를 받는 방법은 내부에서 나오는 은혜는 영이 받고, 외부에서 나오는 은혜는 감각이 받습니다. 이 둘이 합쳐지는 곳은 마음 속 양심입니다. 밖에서 온 것이 양심에서 영에, 영에서 이성, 이성에서 몸, 몸에서 행동 사건 일로 나가게 됩니다. 여기서 맺어진 일이 상급이 됩니다. 즉 상급은 자기의 자라난 열매입니다. 이 상급이 귀한 것이 아니고 상급을 만든만큼 영이 자랐으니 이것이 귀합니다. 또 은혜 받은 것이 외부로 나가야 영이 자랍니다. 우리가 자라지 못하는 이유는
(1) 알고 행치 못하기 때문이요, 못 행하는 것은 몸이 막혔고, 행하면서도 모르는 것은 이성이 막혔고 영은 막힐 수 없습니다. 막히는 것은 못 깨닫고 못 행하는 것입니다. 막히지 않고 나가 기만 하면 은혜가 자꾸 나와 자꾸 장성합니다. 자라면 어디가지 자라나갈 까요 예수님까지 자랍니다.(엡4:15) 이런 구원이므로 바울은 요동치 않았습니다. 고후5:2-3에서는 바울이 탄 식했습니다. 왜 이젠 자기의 능력에 모든 것이 달렸기에 두려워서 짐진 것같이 탄식한다 했습니다. 자기가 자라난 것만이 영광이기에 그것에 도 달하려고 탄식했습니다. 또 사람이 영화로우려면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즉 온전한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자기의 자란 것만큼 그 선행이 영원한 나라의 재산이 됩니다. 구원의 순서는 의지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증거 로 나타나시고, 성령님은 추가 역사를 하십니다. 예수님의 나타나심 중 제일 큰 것은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제 2위를 가리켜 말씀이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피조물의 도덕, 지혜, 능력의 완전을 책 임진 자입니다. 그리스도는 영원전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의 태초는 창 세기의 태초보다 앞섭니다. 그리스도는 이것보다도 앞입니다. 만물이 다 우리를 위하여 있고 사용되고 다 우리의 소유물입니다.(고전 3:21-23) 만물의 존재 목적과 사용 목적이 택자를 위함입니다. 만물은 우리를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롬8:19-20에서는 만물이 우리가 해방이 되 어야 그들도 해방되므로 우리의 해방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롬8:23에는 우리도 탄식합니다. 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성도를 해치지 않으려고 해도 마귀가 합니다. 마귀는 인격이며 인격이 있는 자는 하나님이 억제하지 않고 자유를 주며 조절합니다. 롬8:28 ".선을 이루느니라"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방해할 자가 없습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 라." 이는 위의 도리를 아는 자의 말입니다. 시91: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택자 에게 한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은 여호와를 유일의 피난처로 삼을 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자가 이렇게 당당히 말할까요 곧 중생된 영 나입니다. 영, 나 로 사는 자는 하나님을 피난처 즉, 계약 안에 사는 자입니다. 영으로 사는 것은 때려도 죽어도 살아도 모두 유익이나 육으로 산 것은 모두가 손해입니다. 만물이 나를 위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물을 설복시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변해야 합니다. 즉 내가 영으로만 살면 다 됩니다. 만물 이 내 구원 위해 있으므로 누가 내 구원을 방해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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