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위로하시는 예수님 (고후1:3-7)

본문

사람은 밥만 먹고는 살 수 없습니다. 위로도 받아야 삽니다. 위로는 힘이 됩니다. 위로는 용기가 됩니다. 또 위로는 재도전이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더더구나 지금 우리 주변에는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회사를 잃어버린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질병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실패를 자주 당하여 낙담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각박한 경쟁 사회 속에서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이리 저리 시달리고 지쳐서 몸과 마음이 피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에게는 언제나 따뜻한 격려와 위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위로하기보다는 위로 받기를 원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위로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위에 끝없는 사랑으로 돌보아 주는 부모나, 애정어린 친구나 선후배가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위로 가운데서도 때로는 고독을 느끼고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정한 위로, 영원한 위로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과연 누가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이실까 항상 우리의 위로자가 되실 분, 영원한 위로자가 되실 분은 누구실까 이것에 대해 함께 살펴봄으로 위로를 받을 뿐 아니라 위로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알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정한 위로자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외에 누가, 수고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부모가 하실 수 있습니까 공자님이 그렇게 말했나요 부처님이 그렇게 말했나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님, 구세주 예수님, 그 예수님만이 죄악의 짐, 질병의 짐, 가난의 짐 여러 가지 염려, 근심, 불안, 공포의 짐 또 외로워서 눈물짓고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처럼 위로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통 부모나 친구가 우리에게 줄 수 없는 진정한 위로를 가져다주시는 분이십니다. 생활에 지치고, 사람에게 지치고, 일에 눌리고, 억울함을 당해 애통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찾아 오셔서 위로하십니다. 요한복은 5장 2-9절에 보면, 38년된 환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곁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자비의 연못’이라는 의미인데, 이 연못은 가끔 천사가 와서 물을 막 끓어 동하게 합니다. 그 때 들어가기만 하면 어떤 병에 걸렸던지, 어떤 문제가 있든지 치료받고 해결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 물이 끓어 동할 때 들어가서 치료받고 돌아가는데, 38년된 환자는 두 다리가 힘이 없었는지 눈을 똑똑하게 뜨고 보고 있으면서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를 들어서 물이 끓어 동할 때 넣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외롭게 기다리는 겁니다. 인내하고 기다리는 겁니다. 외롭게 기다리는 겁니다. 인내하고 기다리는 겁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했겠어요 얼마나 슬펐겠어요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물이 끓어 동할 때 그를 들어서 물에 넣어주기만 하면 치료받고 해결받고 갈 것인데, 누구도 그에게 관심이 없없습니다. 38년 동안이나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까이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요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 그 말을 듣는 순간 38년된 환자의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야,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분이 계시구나! 나에게 위로해주시는 분이 계시구나!’ 그는 힘을 얻었습니다. 용기를 얻었습니다. 자신이 생겼습니다.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5:8)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 그 말씀을 듣자마자 그는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가지고 자리를 들고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찾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가까이 가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무관심했는데 예수님은 그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에게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는 치료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위로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로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참으로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위로해주는 깊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는 그런 사람도 전혀 위로가 되질 못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69:20)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 사람들로부터 얻는 위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통해 다가와서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시시때때로 희망을 일깨워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를 통하여 들려오던지 환상이나 꿈을 통하여 들려오던지, 성경을 읽다가 들려오던지 상관없이 나에게 와 부딪히는 순간, 우리에게는 힘이 생깁니다.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자신을 갖습니다. 또 위로를 기다리는 고통의 상황은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위로를 기다릴 때, 또 재림의 주를 기다릴 때 환경과 고통 속에서 분명히 위로를 기다리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큰 축복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할 때 비로소 우리가 의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환경이 어렵다구요 고통이라고요 끝장났다구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때가 주님이 찾아오실 때입니다. 위로의 주님은 내가 배부르고, 등 따실 때는 찾아오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넘어지고 쓰러지고 배고프고 헐벗고 세상에서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겼을 때, 의지할 곳 없을 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릴 때, 주님은 지체치 아니하시고 달려와서 우리를 의로운 팔로 잡아주시는 줄 믿습니다. 넘어졌을 때 일으켜 주시고, 슬플 때 기쁨을 주시고, 울 때 눈물을 씻어주시고, 실패 당한 우리를 성공시키시는 주님, 그 주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와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능히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아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성품, 예수님의 성품 가운데 ‘위로하심’이 있습니다. “(고후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고후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 우리의 예수님은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는 ‘하나님의 위로’에 관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네 걱정은 바람에 날려보내라/ 희망을 가지고 기뻐하라/ 하나님은 네 근심 아신다/ 하나님은 네 머리를 들게 하신다/ 폭풍과 파도와 구름을 통해서/ 하나님은 조용히 길을 열어 주신다/ 하나님이 정하신 네 때를 기다려라/ 밤은 지나가고 밝은 날 오리라.” 얼마나 우리에게 힘이 되는 말씀입니까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얼마나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까 시편 “(시94:18)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보혜사되시는 예수님 ‘보혜사’라는 말은 ‘변호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위로자는 위로 받을 사람에게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위로자가 항상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돌보아준다면 어떤 어려운 문제가 닥친다 하더라도 능히 이기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난받는 우리들의 삶의 한복판에 서 계십니다. 그 분은 언제나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함께 해 주는 것, 이것이 위로의 첫 번째 발걸음인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서 ‘보혜사’로 오셔서 우리를 위로해주시기 위하여 우리 곁에 와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목자같이 위로하십니다. “(사40:11)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 시편기자 다윗도 이렇게 말합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 우리를 배부르게 하시고, 우리를 기쁘게 하시고, 우리의 안식이 되시고, 우리의 치료가 되시고, 우리의 축복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한 마리의 양이라도 낙오자가 있으면 끝까지 찾아가서 돌보아주시는 지극히 크신 사랑의 목자이십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를 어머니같이 위로하십니다. “(사66:1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사66: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 원수에게 더하리라 ” 이 세상에 아기를 품은 어머니의 사랑만큼 강한 것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아기를 품고 있는 어머니는 사랑만 많은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바로 그 어머니 같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어머니는 자식의 울음소리 하나만 들으면 배가 고파서 우는지, 배가 아파서 우는지, 오줌을 싸서 우는지 다 아십니다. 우리 예수님도 우리를 너무 잘 아십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으시고,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예리하게 주시하시면서 바른 길로 가도록 이끌어주십니다. 또 예수님은 몸소 고통 당하심으로 우리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은 대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난하시고, 그렇게 매맞으시고, 그렇게 가시관 쓰시고, 그렇게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시고, 그렇게 처참하게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억울하게 극심한 고통을 당하신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는 단순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위로를 받아야 됩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면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나의 삶에 아무리 억울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외로울 때가 있다 하더라도, 슬플 때가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 같진 않습니다. 우리는 죄값 때문에, 욕심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욕심 없는 분이고, 죄도 없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살이에 고통을 당할 때 그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우리는 위로 받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5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 예수님이 고난받으신 것 생각하면 우리에게 어떠한 고통이 다가오더라도 위로받고,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며, 새롭게 도전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후1: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고후1: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 위로자가 되어야 할 우리들 이렇게 위로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유명한 전도 부흥강사이신 빌리 그래함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단지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위로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로하신다.” 훌륭한 전도자요 위로자인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후2: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살후2: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우리는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서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 나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서 우리가 위로자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위로자가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하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분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서 위로자가 되어 준다면, 그것이 곧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다가가서 이런 위로를 줄 때, 사막이 변하여 오아시스가 될 수 있습니다. 미움, 시기, 질투, 원망, 불평이 많은 이 세상을 믿음, 소망, 사랑의 세계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항상 맑고, 밝고, 환한 사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이것인 것입니다. 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용서와 위로를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40: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절망에 처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긍휼과 사랑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을 모신 우리에게 이제 세상에 나가서 위로자가 되어져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위로를 외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배울 때 이웃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또 이웃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서로 위로해주어야 합니다. 이 나라는 지금 정부도 어렵고, 국민도 어렵습니다. 그럴 때 서로 원망하지 말고, 서로 핑계대지 말아야 합니다. 이럴 때 서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살면, 나도 죽고 너도 죽고 몽땅 다 죽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을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교회도 위로하는 교회가 성장합니다. 교회 안에 사랑이 있고 위로가 있으면, 마음이 애통하고 낙심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소망을 얻게 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수가 날마다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행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회함과 성령님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행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위로가 있는 가정은 아무리 물질이 부족할지라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위로가 있는 기업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서로서로 위로하는 나라가 되었을 때, 그 나라는 부강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하고 영원한 위로자가 되십니다. 항상 우리 곁에 보혜사로 와 계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영접하고 의지함으로써 이 세상을 능히 이기며 살아가고,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형통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으며, 나도 잘되고, 남도 잘 되는, 위로받고 위로주는 우리 모두가 되십시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1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