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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처럼 새롭게 (고후5: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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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에다 전도 열심히 하던 켈리 박사라고 하는 분은, 늘 양복에다 좋은 장미꽃을 꽂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웬일인지 그 교수가 꽂고 다니는 장미는 항상 시들지를 아니 하고 그저 금방 꺾어서 꽂은 장미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꽃은 그처럼 도무지 시들지 않는 데 무슨 비결이 있습니까" 그러자 켈리 박사는 별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양복 앞섶을 뒤집어 보였습니다. 조그맣게 옆 주머니를 달고 그 속에 물병을 넣었던 것입니다. 장미꽃이 항상 주머니 속 물병에 꽂혀 있기 때문에 자연히 시들지 않고 언제나 싱싱하게 보였던 것이지요. 시들은 꽂처럼 지내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물의 공급이 떨어지 듯이 처음의 감격과 사랑이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새로운 피조 물이 아니라 이미 낡은 피조물이 되어 시들어 있습니다. 언제나 신선하고, 언제나 아름답고, 항상 향기를 나타내는 신 앙인을 우리 주님은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새 술은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 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마9:17) 하루의 새 날은 주님께서 주 신 것입니다. 새 날은 새로운 마음이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새로운 하루, 새로운 시간을 주는데 어제의 그 피곤한 마음 과 찌든 떼를 담아서는 안됩니다. 시각에 따라서 시간도 달라지고 사건도 달라집니다. 가령 강물 을 보세요, 그냥 낙동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수 천년을 똑 같이 흐릅니다. 그러나 변하는 것의 입장으로 보면 전혀 다릅니다. 구미대교 밑을 흐르는 낙동강 물은 몇 천년 동안 한 순간도 같은 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물이 흐르고 있을 뿐입니다. 시간도 하루가 반복되는 것 같고, 사계절은 잔인하도록 지루 하게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하루와 지금의 단풍은 우주적으로 유일한 것일 뿐입니다. 어떻게 대하느냐 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은 매일 새로운 관점에서 늘 새로운 사랑 노 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자 이제 새로운 피조물 된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바울은 미쳤다고 할 정도의 그리스도에 대한 첫 사랑의 열정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 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 시는도다 "(13-14절) 힘으로 강요하는 것도 아니요, 돈으로 매수해서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으로 강요당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요당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뭐 선물을 해주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사랑이 선물을 하도록 강권하는 것이지요. 그런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압도된 것입니다. 바울,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감격 때문에 주님을 위하여 이 웃을 위하여 살아간다고 고백합니다.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15절)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 다시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 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릴 것입니까 우리 주님의 사랑을 경험한 믿음의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와 이웃을 위해서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 권하는 원초적 감격 시대입니다. 전혀 새로와 지는 순간, 참으로 감격에 넘치는 순간입니다. 은총의 강물에 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는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인간이 탄 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 니하노라" (16절) 세속적 표준으로(육체대로)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제일 중 요한 것은 '이제 부터는'입니다. 과거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아닙니다. '이제부터는'의 새로운 출발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주체할 수 없는 사랑, 나를 위해 죽으 신 십자가 대속의 사랑, 이것입니다. 폭포수 같고, 해일 같은 주 님의 사랑이 '이제부터는'의 새로운 피조물, 새출발의 근거가 됩니다. 또 그런즉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원초적인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런즉'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 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7절) 새 것이 된 사람들은 이전 것을 흘려 보내야 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입니다. 이전 것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승리도 패배도 지나간 것입니다. 어제의 승리가 오늘의 승리를 보장해 줄 수는 없습니다. 어제의 패배가 오늘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지나보내야 합니다. 이게 새로운 피조물 된 자의 자세 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자는 이전 것을 흘려 보내야 합니다. 매일 새롭게 주님과의 처음 사랑의 감격에 빠wu야 합니다. 매일 새롭게 도전하는 자입니다. 매일 시작하는 자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에베소 교회에 대한 책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네가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버린 것이다"(계2:4) 처음 사랑을 잊어버린 것에 대한 책망입니다. 사실 부부간에 싸우고 갈등하는 것 처음 사랑을 잊어 버려서 그런 것입니다. 첫사랑, 연애시절을 생각하면 싸울 일이 없어요. 연애를 하면 세상이 새로워진다고 합니다. 사실 세상은 항상 그 대로이지만 마음이 새로워지니까 세상이 새로워지는 거지요. 관 점과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끊임없이 기억하라(Remember!) 고 합니다.
십계명의 제일 첫 머리는 바로 이 구절입니다. "나는 너를 에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20:2)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 때면 꼭 이 말씀을 먼저 하십니다. 처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첫 사랑을 기억하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잊어버립니다. 주님이 주신 기적도 축복도 감격도 너무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기억하면 큰 축복 이 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기억하고 새로워 지는 믿음만 가졌대도, 방황의 길이 아니라 승리의 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에게 유월절, 초 막절을 꼭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 를 탈출할 때 하나님이 도우신 사건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초막 절은 이스라엘이 시나이 사막에서 40년 동안 떠돌이 생활 할 때 의 도우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법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전 중심의 국가이지요. 성전 중에도 가장 핵심은 법궤입니다. 이 법궤 안에는 만나, 십 계명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다 무엇입니까 이스 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고 광야를 헤매는 동안에 하나님이 쏟아 붓던 그 엄청난 기적과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원초적인 사랑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뜨거운 심장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에 오르면서 제사를 드리면서, 지성소 법궤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뜨거운 심장을 매번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라는 것 입니다. 새로워지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주님과의 사랑의 기억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기억할 것 이 없는 사람은 기억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슴 들끓는 주님과의 사랑의 추억을 만들어야 합니다. 타성과 습관에 빠진 것 보다 더 보기 싫은 것은 없습니다. 과 도하게 말하자면 죄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한 용 인이 더 큰 문제입니다. 오류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 류에 대한 교정의지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베 드로와 가룟 유다는 결정되는 것입니다. 매일 새로워지는 사람에 게는 대적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 매일 새로워지는 사람에게는 사단의 공격이 무기력해 집니다. 의무감에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불행인 것처럼 교회생활 의무적으로 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그저 저주받지 않을 정도의 관계로 유지하는 것은 불행입니다. 파워 크리스챤은 주님의 능력 을 내 능력으로 만드는 신선한 사람입니다. 날마다 새로와 져서, 날마다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처음인 것처럼 도전하고, 날마다 주님과의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절대로 주저앉아 있지 마세요. 절대로 어제를 오늘에 연장하지 마세요. 그것이 패 배이든 승리이든 오늘은 다시 도전할 오늘이 있을 뿐입니다. 전 혀 새로운 날 새로운 관계입니다. 신문을 영어로는 뉴스라고 합니다. 다 새로운 소식, 새 것의 뜻이 있습니다. 지난 신문을 읽는 것처럼 맥 빠지는 게 없지요. 신문은 아침에 막 배달된 인쇄 냄새가 나는 따끈따끈한 것을 읽 어야 제격입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그래요. 신문처럼 새로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가 오늘은 또 어떤 역사를 쓰려고 하느냐, 1면은 어떤 소식으 로 2면은 또 어떤 내용으로 채우려고 하느냐 우리 주님이 날마 다 궁금해 하십니다. 우리에게 신선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은 우선 하나님과 화해하는 전 혀 새로운 인간이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세속적 가치로 살지 않습니다.
셋째는 화목케 하는 직책을 인생의 목표 로 정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욕망과 죄에 굴복 당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 만, 새로운 세계와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더 이상 옛 사람으로는 살지 않습니다. 새로운 가치와 생활방식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에 세속적 가치대로 살지 않습니다. 화목케 하는 복음증거, 사랑 의 실천을 새로운 인생의 목표로 삼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새로 운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늘 새로워지는 사람들입니다. 해 아래 새것은 없습니다. 반복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새 로운 생명의 탄생은 매일 새로운 것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경이 요, 축제입니다. 우리는 매일 스스로 자신에게 매일 아침 물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인가 나는 날마다 신선한가 나는 날 마다 주님이 주신 처음 감격에 빠져 있는가 그러니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다시 시작하세요. 다시 도전 하세요. 최선을 다하세요. 거룩한 기대감, 신선한 기대감을 가 지고 하루를 출발하세요. 절대 어제의 실패를 연장하지 마세요. 절대 거룩한 기대감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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