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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고후5: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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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사람의 양 도둑이 있었는데 양을 훔쳐간 사람에게는 이마에 양 도둑의 양자인 S.T.(Sheep thief)라는 낙인을 찍습니다. 일생 동안 다른 데 가서도 양 도둑 질을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두 사람이 다 양 도둑질을 해서 이 마에 S.T라는 화인을 받았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더욱 분기 탱천하여 먼 곳으로 도망해서 갖은 못된 짓을 하며 막 살았습니다. 정말 양 도둑의 화인에 걸 맞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또한 사람은 계속 마을에 남아 살면서 이전과 다르게 살 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 면 가서 도와주고 대신 아파해 주었습니다. 죽음의 자리가 있으 면 대신 처해 주고 슬픈 사람 옆에 사흘이라도 같이 있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와 이웃 마을에서는 그 사람이 없으면 살맛 이 없어질 정도로 그는 동네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목사님보다 더 존경을 받았습니다. 나이가 많게 되자 양 도둑질을 할 때 그 에게 낙인을 찍었던 사람들이 다 죽고 그들의 2세들만 남게 되었 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만은 장수를 합니다. 2세들이 자라서 그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국민학교나 중학교 입학식 때에는 으레 훈 시를 하는 유명한 분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마에 낙인을 찍는 풍속이 없어졌습니다. 어린이들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이 마에 어째서 S.T.가 붙었느냐고.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너무 나도 거룩해서 성자(Saint)라는 낙인이 찍었다고. 그래서 이 사람은 양 도둑에서 성자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성자에 걸맞게 나 머지의 삶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도둑이 될 수도 있고 성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한 사람의 신앙적 관점에 따라 도둑의 옛 사람으로 뱅뱅 돌 수도 있고, 성자의 새 사람으로 큰 변화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신앙적 관점에 따라서는 율법적인 신앙 인으로 평생을 쳇바퀴 돌 수도 있고, 복음적인 감격의 사람으로 매일을 살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입니다. 자기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선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관점에 따라서는 똑 같은 일을 저질렀지만, 가룟 유다가 될 수도 있고 베드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관점에 따라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될 수도 있고, 브 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성자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패역한 사람으로 타락할 수 있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주님 안에서 늘 새로워지는 사람은 성자가 됩니다. 주님 안에서 늘 새롭게 태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오늘은 성자이라도 금방 패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장사가 없습니다. 왕도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엄격한 진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진부한 것 같지만 아주 근본 적인 문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을 다시 겸손하게 온 마음을 기울여서 들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육체대로 살지 말아야합니다. 육체대로 살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화목의 직분을 기쁘게 감당해야 합니다.' 이 런 내용입니다. 이렇게 간단 명료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핵심 단어가 두개 있습니다. 그것은 '죽어 야한다'는 것과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두 가지 가 이뤄지지 않으면 화해의 사도도 될 수 없습니다. 자신도 못 추스르는데 어떻게 복음의 사도가 될 수 있겠어요 그러면 먼저 '죽어야 한다'는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바울은 옛 날에는 십자가를 저주의 도구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십자가를 화해와 은총의 도구로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새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십자가는 죽는 것입니다. 옛사람, 옛행실, 어둠의 과거, 죄책과 절망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십자가는 사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요, 이것 이 성만찬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핵심입니다. 사실 일년 쉰 번이 넘는 예배, 평생 신앙인이면 수 천 번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예배는 바로 옛 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평생에 걸쳐 몇 천 번을 반복하는 죽음과 태어남의 반복이 바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여기에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즉 누 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선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주님과 연합이 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것은 무용지물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새로운 피조물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스도 와의 연합이 옛것을 지나가게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화해 의 사도가 되게 합니다. 그러니 제일 먼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어렵기도 하지만 무척 쉽기도 합니다. 왜요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으로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미 계신 주님을 의지하고 선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활 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선언이지요. 이미 사실인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새 것이 이미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힘있게 선포하십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17 절) 새로운 피조물이라 먼저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예수와 함께 우리는 죽은 사람들이 됩니다. 잘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잘 죽지를 못합니다. 과거의 시행착오와 오류와 죄책과 절망들을 얼마나 오래 달고 다니는지 모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토 록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이 미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우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미 옛사람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매번 확인해야 합니다. 우선은 육에 대해서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 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그 다음은 죄에 대해서 죽은 자들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 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 (벧전 2:24) 세 번째는 옛사람에 대해서 죽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 려 함이니 " (롬6:6)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 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 (골3:9-10) 마지막으로 어둠에 대해서 죽은 자들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 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육체, 죄, 옛사람, 어둠에 대해 죽은 사람들 입니다. 신분적으로는 이미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분에 걸맞게 살기 위해서는 매일 육체, 죄, 옛사람, 어둠에 대해 죽음 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겁니다.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대해서는 죽은 자들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존재들입니다. 새로운 존재는 새로운 행동 양식을 계속 입어야 합니다. 이 사 실을 에베소서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 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그리스도인들의 벗고 입는 행위는 일평생 동안 계속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벗고 입는 행위를 강조합니다. 벗고 입는 행위는 그리스도 밖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씀 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안의 사람에게 더 필요한 말씀입니다. 매일 매일 어둠의 일일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 이 말씀입니다. 왜 벗고 입는 것으로 비유했을 까요 매일 옷을 입고 벗듯 이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의 조사에 의하면, 넉 달만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그 사람의 가치관은 완전히 비기독교적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사람은 습관과 반복의 동물입니다. 습관과 반복을 통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매일, 매주 입고 벗어야 합니다. 이것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 운 피조물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17 절) 우리가 이 사실을 확인하고 현실화해야 겠습니다. 적용하고 잘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 맞습니까 여러분 은 새사람 되었습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까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그래서 "이전 것은 지나 같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선포 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을 사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전 것을 지나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 율법적입니다. 사람들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합니다. 전도서 기자도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밖에 있을 때의 이야기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늘 새 로워 질 수 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 보낼 수 있습니다. 다시 시작 할 수 있습니다. 절망 중에 가장 큰 절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절망입니다.
자 보세요. 다 그렇습니다. 우글쭈글 늙어진 사람들은 왜 절망합니까 고운 시절로 다시 돌아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맘만 먹으면 십대의 피부를 가질 수 있다면 왜 젊은이를 부러워하겠어요 잊어버릴 수만 있다면 절망은 반으로 줄어듭니다. 배우자를 잃고 자식을 잃고, 연인을 잃고,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너무 절망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망각을 가져다주면 그 절망은 깃털처럼 가벼워집니다. 절망은 다 그렇습니다. 복원할 수 없거나 다시 시 작할 수 없어서 생긴 것들입니다. 지워버릴 수 없거나 망각할 수 없어서 생긴 것들입니다. 과거의 실패와 시행착오, 과거의 죄책과 오류는 빨리 지나 보내 야 합니다. 과거의 오염된 나는 빨리 지나 보내야 합니다. 빠를 수록 좋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 말을 영어 성경에는 어김없이 전부 완료형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렸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나는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과거 의 나는 사라졌습니다. 과거의 실패와 잘못과 시행착오와 오류는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과거의 무감각하던 나도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과거의 무 기력하던 육체의 나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실패에 집착하지 마세요. 죄책에 집착하지 마세요. 무기력에 집 착하지 마세요. 훌훌 털어 버리세요.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와 연합 만 하세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시 간을 기점으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은총입니다. 자 이제는 이 은총을 활용하세요. 마구 갖다 퍼 쓰세요. 왜 그렇게 과거에 집착하고 있습니까 왜 옛 사람의 모습에서 벗 어나지 못합니까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그것이 소 돔과 고모라라면 뒤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그것이 세겜 땅이라면 과감히 벧엘로 탈출해야 합니다. 특히 그것이 반역하다 가 3천명 명이나 죽은 시내산 아래 땅이라면,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벗어나는 것이 어렵습니까 율법은 그 길이 험하고 멀다고 하지 만, 은총은 그 길이 아주 쉽고 간단하다고 말합니다. 단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무에 어렵습니까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았 습니까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사실을 그냥 선포하고 활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복음의 위력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복음의 위력을 현실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불행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 후서 5:17절을 이렇게 바꿔 놓고 읽어보세요. "누구든지 그리스도밖에 있으면 낡은 피조물입니다. 이전의 실패가 아직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으니 보라 낡고 낡은 구제불능의 인간이야." 이렇게 바꿔 놓고 시작해 보세요. 얼마나 절망입니까 그러나 오늘 바울 사도는 감격스럽게도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7절)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 것이 되어야 합니다.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시작 입니다. 아직도 과거의 어두운 나를 연장시키고 있는 우리들에게 대한 엄중 경고입니다. 동시에 옛 사람 옛 행실, 옛 실패에 가슴 아파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내리는 엄청난 은총의 말씀입니다. 전 혀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를 단절시킬 수 있는 것만도 축복인 데, 새 사람으로까지 만 들어 주십니다. 암이 더 진행되지 않게 해 주는 것만 해도 감사 한데, 암을 깨끗이 치료해서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합니다. 건강하기 이전 보다 더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감격 할 따름입니다. 이제 긴 여름이 다 갔습니다. 이제 가을이 올 것입니다. 지난 반 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제 한해도 넉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20세기는 저물어 것입니다. 이제 새 천년 21세기가 몰려오 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아쉬운 30대, 40대, 혹은 얼마 남지 않은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종말을 알 수 없는 새로운 시간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다시 우리의 시간을 사서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수놓아야 합니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수놓아야 합니다. 패배보다는 승리로 장식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그리스도 안 에서 새로 죽고, 다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보라 이제 새 것이 되었도다.' 이렇게 선포하시고 그대로 살아 새로운 희망 넘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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