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다 (고전6:1-2)
본문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시간, 때에 대한 기념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때", "시기시간"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사실 성경말씀의 시작 자체가 시간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이 우리에게 역사의 끝인 종말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여수여, 오시옵소서' 그리고 역사의 중앙에는 역사의 기준점과 내용 자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십니다.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전심으로 귀를 기울이며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들이 서 있는 오늘의 시대적 상황을 바르게 깨달아서, 하나님의 구원의 뜻에 바르게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말씀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보이라고 시험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예수님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을 안타까워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한 줄 알면서 시대적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여기서 우리 모두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섭리, 구원 역사에 대한 뜻은 분별하지 못하면서 육적으로, 세상 적으로 취해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날이 더우면 여름이구나! 비가 계속 내리면 장마철이구나! 피부로 느끼는 것은 아주 민감하게 느끼면서도 오늘도 우리 앞에 거대한 힘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민감하게 응답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오늘도 사도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우리의 귀를 기울여 보십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은혜의 때에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은혜를 받을 만한 때이며 구원의 날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바로 그 때를 가리켜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적으로 유복하고, 평안했기 때문입니까 하는 일들마다 잘 되었기 때문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곳마다 적대자가 있었습니다. 박해자가 많았습니다. 세상 권력이 곳곳마다 적대자가 있었습니다. 박해자가 많았습니다. 세상 권력이 기독교 복음을 억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영적인 눈으로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 어떤 세상 권력보다도 더 강력하게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생생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박해는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기독교 복음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곳곳에 교회를 세웠고, 교회를 중심으로 믿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 갑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오늘 본문은 얼핏 듣기에 은혜스러운 말씀, 축복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헛되이 받고, 거부하면 은혜를 받지 못하고, 구원의 반열에서 멀어져 간다는 심판적 요소도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보라 지금은 …… 분명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나 그 지금을, 바로 이 시간을 우리들이 온전히 붙들지 못하면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흔히들 시간에 대해서 여러 모양으로 구분하고, 정의를 내립니다. 시간하면 먼저 자연적 시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흐르는 물과 같이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이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 늙어갑니다. 고왔던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입니다. 힘이 넘치던 우리의 기력이 점점 쇠약해집니다. 작년 다르고, 금년 다릅니다. 시간의 특성은 정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분명한 목표를 향해 갑니다. 과거만을 고수해서는 안됩니다.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시간의 페이스에 맞추어서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구속사적인 시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지마는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예언을 하나씩 하나씩 성취해 나가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오메가 포인트인 우리 주님의 재림의 시각에 인류의 역사가 점점 다가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든, 안 믿든 우리가 인정하는, 인정하지 않든,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지고 계십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기관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의 시간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할 사건 때부터 재림하시는 그 사이의 시간입니다. 이 긴장관계 속에 서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사하면서 성실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극적으로 구원받은 사람,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간 강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 내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입니다. 우리가 숨을 거둘 때 정신이 맑다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임종 직전에 목사가 그의 영혼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고개를 돌리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로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때, 그것을 은혜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복음교회를 사랑하셔서 내일부터 3일간 은혜의 천국잔치를 배설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지 않은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귀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몇 년 지나고 나면 휴지 조각으로 변해 버린 세상 돈 버느라고 은혜의 시간을 거부합니까 세상 적으로 놀려 다니느라고 하나님의 초청을 외면합니까 은혜를 거부한 사람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심판하실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간도 우리 주님은 우리들에게 간곡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할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전심으로 귀를 기울이며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들이 서 있는 오늘의 시대적 상황을 바르게 깨달아서, 하나님의 구원의 뜻에 바르게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말씀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보이라고 시험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예수님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을 안타까워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한 줄 알면서 시대적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여기서 우리 모두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섭리, 구원 역사에 대한 뜻은 분별하지 못하면서 육적으로, 세상 적으로 취해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날이 더우면 여름이구나! 비가 계속 내리면 장마철이구나! 피부로 느끼는 것은 아주 민감하게 느끼면서도 오늘도 우리 앞에 거대한 힘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해서는 얼마나 민감하게 응답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오늘도 사도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우리의 귀를 기울여 보십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은혜의 때에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은혜를 받을 만한 때이며 구원의 날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바로 그 때를 가리켜서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적으로 유복하고, 평안했기 때문입니까 하는 일들마다 잘 되었기 때문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곳마다 적대자가 있었습니다. 박해자가 많았습니다. 세상 권력이 곳곳마다 적대자가 있었습니다. 박해자가 많았습니다. 세상 권력이 기독교 복음을 억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영적인 눈으로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 어떤 세상 권력보다도 더 강력하게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생생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박해는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기독교 복음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곳곳에 교회를 세웠고, 교회를 중심으로 믿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 갑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오늘 본문은 얼핏 듣기에 은혜스러운 말씀, 축복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헛되이 받고, 거부하면 은혜를 받지 못하고, 구원의 반열에서 멀어져 간다는 심판적 요소도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보라 지금은 …… 분명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그러나 그 지금을, 바로 이 시간을 우리들이 온전히 붙들지 못하면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흔히들 시간에 대해서 여러 모양으로 구분하고, 정의를 내립니다. 시간하면 먼저 자연적 시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흐르는 물과 같이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이 시간 속에서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 늙어갑니다. 고왔던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입니다. 힘이 넘치던 우리의 기력이 점점 쇠약해집니다. 작년 다르고, 금년 다릅니다. 시간의 특성은 정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분명한 목표를 향해 갑니다. 과거만을 고수해서는 안됩니다.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시간의 페이스에 맞추어서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구속사적인 시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지마는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예언을 하나씩 하나씩 성취해 나가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오메가 포인트인 우리 주님의 재림의 시각에 인류의 역사가 점점 다가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든, 안 믿든 우리가 인정하는, 인정하지 않든,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지고 계십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기관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의 시간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할 사건 때부터 재림하시는 그 사이의 시간입니다. 이 긴장관계 속에 서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사하면서 성실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극적으로 구원받은 사람,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간 강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 내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입니다. 우리가 숨을 거둘 때 정신이 맑다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임종 직전에 목사가 그의 영혼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고개를 돌리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로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때, 그것을 은혜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복음교회를 사랑하셔서 내일부터 3일간 은혜의 천국잔치를 배설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지 않은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귀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몇 년 지나고 나면 휴지 조각으로 변해 버린 세상 돈 버느라고 은혜의 시간을 거부합니까 세상 적으로 놀려 다니느라고 하나님의 초청을 외면합니까 은혜를 거부한 사람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심판하실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간도 우리 주님은 우리들에게 간곡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할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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