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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고전7:10-13)

본문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벽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을 미워해요, 정말 당신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면 왜 나 같은 사람을 그대로 두십니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나에게는 사랑대신 저주만 주십니까 몸을 제대로 움직이게 하시든지, 말을 남들처럼 제대로 하게 하든지, 우리 아버지라도 건강하게 해서 남들처럼 돈을 잘 벌어 제대로 살게 하든지, 아니면 죽을 길을 열어 주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잖아요. 이도 저도 아니라면 내 앞에 하나님의 얼굴이라도 나타내어 보세요. 당신은 정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존재이면서, 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만 만듭니까 하나님 ! 난 어찌해야 합니까 혼자서 학교도 갈 수 없고, 학교를 간다해도 누가 나를 가르쳐 주겠습니까 말도 제대로 못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글씨도 앉아서는 쓸 수도 없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 하늘의 시인으로 알려진, 선천성 뇌성마비 소녀 송명희 자매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 영광 이라는 찬송시집을 비롯해서 여덟 권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송명희 시인이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 이전 비참하고, 불행했던 장애인으로서의 자신의 애환을 폭로한 탄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픔이 있다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길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실패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근심과 걱정이 있다는 것을 고민해서는 안됩니다. 근심 걱정이 있다는 것은 곧 우리가 진정 살아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떠나서 싸늘하게 굳어버린 시체는 결코 아픔을 느끼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인간의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결코 근심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신체 마디마디가 썩어 문드러지는 나병환자들은 병이 깊어지면 감각이 무뎌진다합니다. 한번은 나병환자 한사람이 발이 간질 간질거린다 해서 보니까 굵은 대못이 발에 박혀 있더랍니다. 대못이 발에 깊이 박혔는데도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건전한 정신과 육체를 가진 사람은 조그마한 가시에 찔려도 아파하며, 걱정거리가 있을 때는 잠 못 이루고 고민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고민을 하느냐 고민을 하지 않느냐가 아닙니다. 고민을 하되 무엇을 고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근심을 하되 무슨 문제로 근심하느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고민하다가 비관해서 자신을 포기하게 되고,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급기야는 하나님을 대절하고 저주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과연 무엇을 고민하고 있습니까 정말 고민해야 할 문제를 고민하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진지한 실존적인 고민을 해 보았습니까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생명의 근원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죽음 이후에 있을 영원한 세계에 대해서, 죽고난 다음에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이 신앙적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습니까 문제 해결은 그만두고, 고민 그 자체를 한 번만이라도 진지하게 해보셨습니까 말입니다. 정말로 고민해야할 문제를 고민 하는 사람은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는 결코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께서는 바울사도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 능력이 많으신 우리 주님께서도 고민하셨습니다. 심각하게 고민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을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사생결단의 고민을 하셨습니다. 내가 민망하여 죽게 되었다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베드로와 그 외 제자들은 어떠했습니까 우리 주님처럼 고민하고 근심했습니까 아닙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편안히 잠을 잤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심각함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진정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고난을 아파하고, 고민했다면 주님께서 잡혀가시는 바로 그 밤에 그들은 평안히 잠을 잘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신에 그들은 우리 주님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근심을 하되 어떤 근심을 하는 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두 종류의 근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요, 다른 하나는 세상 근심입니다. 물론 우리의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근심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으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게 합니다. 그러나 세상근심은 사망을 이룹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의 근심은 어떤 차원의 근심이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까 아니면 세상 근심입니까 우리의 근심이 어떠한가에 따라 우리의 삶의 종국이 달라집니다. 하나는 구원이요, 다른 하나는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또한 진지하게 묻고, 대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주석가인 버나드는 말하기를, 세상 근심은 죄에 대한 비통함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비통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근심이란 자기가 하던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잘못의 원인을 찾아서 자기의 잘못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그 일의 결과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세상 근심은 더 큰 근심을 낳게되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어떤 일의 실패에 대한 비통함이 아닙니다. 억울하다는 생각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자신의 죄에 대해서, 근본적인 잘못에 대해서 마음의 옷을 찢으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입니다. 통회하는 심정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어떡하나 구원의 반영에서 떨어져 나가면 어떡하나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두렵고 떨림으로 근심하는 근심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사실 성경에는 근심하는 사람의 모습이 여러번 등장합니다. 가인, 에서, 사울, 다윗, 바울, 베드로, 가룟 유다등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근심을 분석해 보면 오늘 본문처럼 두 종류의 근심으로 나뉩니다. 먼저 가인을 보십시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쳐서 죽였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순간적인 감정으로 동생을 죽인 자기 잘못을 회개해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가인에게 묻습니다. "네 동생 아벨이 어디있느냐 " 이때 가인은 천역덕스럽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니이까 " 가인이 회개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벌을 주십니다.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이때 가인이 하나님께 뭐라고 합니까 내 죄에 대한 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끝가지 자신의 죄는 회개하지 않고, 자기의 죄에 대한 벌만 크다고 하나님께 항변했습니다. 사울은 또한 어떠했습니까 자기는 기름부음 받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울은 이 자리를 빼앗기면 어떡하나 하는 세상근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충신이며, 자기의 사위인 다윗을 죽이는 일에 자신의 일생을 다 소모하고 끝내는 갈보아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가룟유다도 스승을 배반한 일로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대제사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에게서 받았던 은삼십을 도로 돌려주며 끝내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했던 일의 결과에 대해서만 뉘우쳤습니다. 결코 자신들이 잘못했던 죄 그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사람들은 사망의 길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여기에 세상 근심가운데 산 사람들의 비참한 종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인간적인 면만 본다면 다윗은 사울 보다 더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충신인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은폐하고, 합법화시키기 위해 우리야를 전방에 내보내 죽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 모든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 나단 선지 자의 책망을 듣고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습니다. 근심합니다. 탄식합니다. 자신의 죄로 빚어진 이 모든 일에 대해 통회, 자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리고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끝내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나님이여 !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근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종족에는 그 근심이 권을 이루어 기쁨으로 변합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섭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는 고린도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사역한 지역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고린도는 여러 민족이 섞여 사는 대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여행자와 상인들이 몰려드는 교통의 중심지였기에 선교 전략상 매우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음란하고, 사악한 환경 때문에 여러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린 도교회는 바울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떠나있는 동안 많은 문제들이 분출되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이름을 내세워 파당을 짓기도 했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분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심한 음행을 행하는 교인도 있었습니다. 이는 이방인중에도 없는 아비의 아내를 취한 그런 추행이었습니다. 우상에 드려졌던 제물을 먹어도 되는지, 안되는지 이것 때문에 머리 터지라고 싸웠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의심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보면서 바울은 비록 몸은 고린도교회를 떠나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그들 곁에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고린도교회의 잘못에 대해 근심하고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을 그저 눈감고 볼 수 없어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모든 악행에서 돌이키라고 눈물로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고린도인들이여 !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도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여러 차례 편지도 보냈고, 찾아가 권고도 했는데, 고린도 교회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바울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디도가 마침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잘 해결됐다는 기쁜 소식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너무나 기뻐서 오늘 본문에 자신의 심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떠났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문제에 대해 무관심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자기에 대해서도 섭섭하게 대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가 어떻게 되든 나 몰라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 대해 부모의 심정으로 자녀를 대하듯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졌습니다. 쏟았습니다. 무관심하거나, 적대감을 갖기보다는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근심하게 함으로 그들을 회개하도록 했습니다. 끝내는 고린도 교회가 자신들의 잘못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깨끗하게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므로 순간적으로는 아픔과 고통이 있었지만, 이런 위대한 복음의 열매가 맺어졌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들이 근심하는 것은 어떤 차원의 근심입니까 우리 복음교회의 장래에 대해 잠못 이루면서 걱정해 보았습니까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직분을 성실히 잘 감당하지 못해서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근심해 보았습니까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그 문제에 대해 통회하면서 근심해 보았습니까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이 문제로 근심해 보았습니까 자녀들의 학교 성적이 떨어질 때 여러분 마음이 어떻든가요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분하고, 화나며 어찌해야 좋을까 근심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근심은 우리의 마음에서 평화를 빼앗아 갑니다. 근심은 우리에게서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근심은 우리에게서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1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전혀 다른 분위기 가운데 서게 합니다. 근심은 우리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제공합니다. 분하게 만들고, 마음을 상하게도 만듭니다. 더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간절하게 만들고, 열심 있게 만들고, 사모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확신에 이르게 합니다. 진리에 도달하게 합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 위로를 얻게 하고, 참된 기쁨을 얻게 하고, 참 자랑이 되도록 하십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이로 인하여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그의 마음이 너희 무리로 인하여 안심함을 얻었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 하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찾고계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구원의 기쁜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상대방에 대해 무관심한 것 아닙니까 자신의 이익과 상관이 없다면 세상이 뒤집히든 곤두박질하든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잘못되어 가는 우리 주변의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합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들은 과연 어떻습니까 근심해야할 자리에서 근심하고 있습니까 헛된 문제로, 세상 근심으로, 참으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리고 믿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바울사도를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죄를 뉘우치고,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근심은 죽음을 가져올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이 근심은 여러분에게 간절함과 자신에 대한 해명과 정의의 분노와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그리워함과 열심과 죄지은 사람을 처벌할 마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여러분은 그 모든 일에서 자신의 깨끗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편지한 것은 잘못을 범한 사람과 그 피해자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 대하여 여러분이 얼마나 열심이었는가를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에게 분명히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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