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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에 풍성하라 (고후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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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현대 한국인의 성격적 특성’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성격 형성에 관한 토론회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이때 주제를 발표한 강사분의 원고에 한국인들이 가지는 여러 장점도 있는 반면에 단점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특별히 현대 한국인들의 부정적 성격, 즉 단점에 대해서 다음 아홉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 거짓말을 죄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2 정직하면 언제나 피해를 본다.
3 공. 사의 구분이 분명치 않다.
4 원리, 원칙보다는 인정이 앞선다. 5 타인의 주장을 존중하기보다는 자기 주장을 앞세운다. 6 큰소리는 잘 치지만 언행에 책임지지 않는다. 7 허영심이 많다. 8 겉모양에 많은 신경을 쓴다. ⑨ 세계 최대 최고라는 말을 잘 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의 양심을 찌르는 듯한 그런 아픔을 느끼게 하는 말들입니다. 이 말들을 가만히 되새겨 보면 현대 한국인들이 어느 정도 양심의 마비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가 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도덕성이 붕괴되고 마비된 현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말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로버트 벨라는 말하기를 ‘종교는 역사를 변화시켜 가는 정신적 동력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사회 뿐만 아니라 종교 그 자체도 몰락하고 만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교회가 오늘 우리 사회에 대해 마땅히 갖추어야 될 책임, 사명이 크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러한 교훈이 오늘 성경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주후 56년경 제2차 전도여행 때에 들러서 교회를 개척해 설립을 하였습니다. 고린도는 헬라 남쪽에 있는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항구 도시입니다.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최대의 항구도시입니다. 국제적인 상업도시입니다. 많은 산업시설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와같은 항구도시이고 보니까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도덕적으로는 타락해 있었습니다. 북쪽 아테네가 문화의 도시라 한다면 고린도는 경제의 도시였습니다. 돈이 있는 곳엔 항상 향락이 있고, 부패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이런 도시에 도덕성을 일깨우면서 복음이 전파되어 고린도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성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장 10절에 보면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 중에 교인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인들 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 사회를 지도할 수 있는 유능한 평신도 지도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전도에 열심히 많았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고린도 교회 교인이었습니다. 회당장 그리스보도 교인이었고, 상당한 재력가인 가이오도 교인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고린도 교회는 성공적으로 부흥해 왔던 교회입니다. 바울이 1년 반 동안 고린도에 머물다가 에베소로 떠났ㅅ브니다.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동안에 고린도로부터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바울이 떠난 뒤에 고린도 교회는 분쟁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아볼로 파, 바울 파와 같이 파를 나누어 분쟁이 생겨서 서로 비난하고 헐뜯고 공격을 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교리적으로도 혼란이 일어나서 부활이 있다 없다 하는 논쟁이 생기고, 교회 안에 세속의 바람이 불어서 우상 음식을 함부로 먹는 교인들도 생기고, 그리고 결혼생활도 문란해지고, 세상적인 여러 가지 타락 현상이 교회 안에 일어났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바울은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린도 도시가 타락한 도시인데 여기다가 교회까지 타락해 있고, 교회가 오히려 세상의 빈축을 사고 있으며 아무런 희망도 아무런 사명도 찾을 수 없다 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고린도 교회를 권면하고 일깨우기 위해서 고린도전. 후서를 써서 고린도에 보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권면하면서 바울이 강조한 것은 “은혜에 풍성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총과 성령님의 은사를 말합니다. 첫 번 믿음을 가졌을 때처럼 구원의 은총을 감격스럽게 받아들이고 성령님의 능력, 성령님의 은사를 드러내면서 상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바울은 은혜에 풍성한 교회가 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은혜에 풍성한 교인이 되고 교회가 되어질 때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고, 이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은혜에 풍성한 교회가 되고 성도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은혜에 풍성해서 이 땅에 정신적 힘을 가지고 빛을 전하면서 살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고후8: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 은혜에 풍성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첫째는 믿음에, 두 번째는 말에, 세 번째는 지식에, 네 번째는 간절함에, 다섯 번째는 사랑에 풍성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우리들 자신도 은혜에 풍성한 성도가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믿음에 풍성해야 합니다. 7절에 보면 은혜에 풍성한 생활의 첫 번째 요소가 믿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맡기는 것입니다. 위탁하는 것입니다. 나를 내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 것으로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살이를 내 것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인생이라고 생각해서 하나님 것으로 위탁하고 사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성도에게 말씀하시기를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옐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명해서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신 백성이 바로 성도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것이 되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자기를 순종시키고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내 생각, 내 포부, 내 욕심, 내 주장, 내 기분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내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 생활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있을 때 은혜에 풍성해집니다.
2. 말에 풍성해야 합니다. 말에 덕을 쌓는 사람이 은혜에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약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한 사람의 인격과 삶은 말을 통해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말들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짐작할 수 있고 인간 됨됨이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말하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의 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음이 좁고 옹졸한 사람은 항상 남을 비난하고 헐뜯는 말을 잘 합니다. 그리고 은근히 자기를 과시하려고 합니다. 마음이 중간쯤 되는 보통의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잘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깊고, 넓고, 큰 사람은 무엇이 진리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남을 사랑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예수님을 보십오. “원수까지 사랑하라”라는 그 말씀을 음미해 보면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넓고, 얼마나 크고, 얼마나 포용적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은혜에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전10:12)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엡 4:29)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말에 덕을 세우셔야 은혜에 풍성해집니다. 말에 덕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3. 지식에 풍성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과 은혜 안에서 자라가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자라가야 하는데, 즉 우리의 믿음이 자라가야 하는데, 우리의 신앙생활이 자라가야 하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읂몌에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빌 3:8)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세상 어떤 지식보다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라가는 것이 내 인격과 삶을 고상하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알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성경에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배우고 성경을 마음에 샛길 때 그만큼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커지고, 그 커지는 지식과 더불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은혜가 더욱 풍성해집니다. 성경을 읽으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아십니까 시편 119편을 자세히 읽어 보면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마음에 새기면 이런 축복이 있다. 이런 효과가 있다라고 가르쳐 주는 내용이 세 곳 있습니다. “(시 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성경은 죄의 유혹을 막아 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 내 마음속에 주님의 말씀을 담아두나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시 119: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성경은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의 위로와 힘과 희망이 되어 줍니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경은 우리의 앞길을 비추어 주는, 앞길을 인도하는 안내자와 같습니다. 우리 인생의 앞길을 이끌어 줍니다. 이와 같은 성경이기에 우리가 열심히 읽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마음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풍성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4. 열심에 풍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봉독한 개역성경에는 이 열심을 ‘간절함’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번역에나 공동번역, 또는 헬라 원어의 뜻을 보면 ‘열심’ 또는 ‘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일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열심히 있어야 합니다.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하나님은 열심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들이 열심을 내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열심을 내야 합니다. 개미는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근면성이고, 또 하나는 조직성입니다. 개미는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살아갑니다. 개미는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먹이를 물 때 이외에는 가만히 있지 않고 부단히 움직이면서 살아갑니다. 참 부지런하고 근면한 곤충입니다. 또한 개미는 조직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왕 개미와 일개미, 그리고 군대개미, 또 집을 지키는 개미, 또 집을 만드는 개미 등 붕업작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아주 조직적으로 움직입니다. 기가 막힌 조직사회입니다. 현대사회를 자리켜서 개미사회라고 말합니다. 경제학자인 세린스의 글에 그러한 내용이 나타납니다. 현대사회야말로 개미사회와 같이 근면해야 살 수 있는 사회이고, 조직체 속에 사는 사회라고 합니다. 근면하다는 말입니다. 꼭 근면하다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바삐 움직여야만이 살 수 있는 사회입니다. 원시인간, 또는 고대인간, 수렵시대에 살았던 인간은 사냥을 해서 먹이를 찾고, 먹고 나면 배가 부르니까 잠자고 하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그래서 고대 인간들은 하루에 12시간 이상 잠을 잤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의 인간은 먹고 일하고 자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고대 인간들이 하지 못한 다른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니다. 텔레비전도 봐야 하고 또 안 믿는 사람은 유흥장에도 가야 하고, 회의도 있고, 또 자동차도 운전하고 다녀야 하는 등 이런저런 데에 시간을 뺏깁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고대 인간보다도 부족한 것은 수면 시간입니다. 잠자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 그만큼 바삐 움직여야만 살아갑니다. 그래서 개미 같은 사회라고 부릅니다. 그 다음으로 개미와 같은 조직성, 조직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조직 속에 사는 인간입니다. 공무원 같으면 관료조직 속에 살고 있고, 사업체나 기관이나 어디든지 아주 정밀한 기계처럼 조직체로서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경찰이나 군대나 어디 한 곳 조직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교회도 조직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직 속에 움직이는 사회가 가지는 병폐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조직 속에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저 조직에 얹혀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조직이 가지는 병폐입니다. 개미를 탐구한 한 곤충학자의 보고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수백, 수천 마리의 개미가 땅바닥에 움직여 다니는 것을 현미경으로 잘 보고 특수 비디오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을 하면서, 개미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비디오 촬영으로 검증을 해보니까 그 수많은 개미들이 부단히 움직이고 있는데, 모든 개미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개미는 15%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85% 개미는 그냥 덩달아서 왔다갔다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학자가 열심히 일하는 15%의 개미를 골라서 별도로 모아 살게 하니까 이상하게 15% 그 전체가 다 열심히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그 중에서 또 15%만 일하고 나머지 85%는 그저 당덜아서 왔다갔다 하더랍니다. 또 일하지 않는 개미 85%를 구분해서 따로 떼어 놓으니까 이 85%는 몽땅 놀고만 지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그 중에서 또 15%만 일을 하고 나머지 85%는 놀더랍니다. 미미한 곤충 세계도 이러한데 인간 세계는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모든 사회가 조직화되어지면 될 수록 경직화되어갑니다. 폐쇄회되어갑니다. 그래서 조직 속에서 일하는 사람은 몇 % 안 되고 상당히 많은 사람은 조직 속에 얹혀서 그냥 살아갑니다. 그 전형적인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입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을 보십시오. 관료조직은 굉장히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일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나머지는 그냥 조직 속에 굴러 들어갑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조직화되면 될 수록 개인적, 자발적인 열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다수는 교회라는 조직, 교회라는 울타리 속에 그냥 덩달아 신앙생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그렇지 안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든 성도들이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함께 모여서 예배와 찬미를 드리고 떡을 함께 나누며 사로 물건을 통용하면서 살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는 조직으로 움직이는 단체가 아니고, 개개의 성도들이 자발적인 열성을 가지고 헌신해 가는 곳입니다. 이런 삶의 분위기가 교회에서 조성되어 우리 인간성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런 인품을 가지고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조직에 얹ㅎ려 사는 자가 아니고, 조직 속에서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열심히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런 열심을 품고 사는 사람이 은혜에 풍성한 사람이 됩니다.
5. 사랑에 풍성해야 합니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8절) 바울이 전도여행 중에 예루살렘에 기근이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소아시아와 유럽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하기를 구호헌금을 거두어서 “굶주림 가운데에 있는 예루살렘 주민들을 구제하도록 하자”라고 호소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는 디도를 특별히 파송해서 디도로 하여금 모금하도록 했습니다.0 “이르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6절) 즉 남을 도와 주는 것, 사랑을 베푸는 것이 은혜를 성취하는 길이 되므로 디도의 모금에 적극 참여하라는 말입니다. 사랑을 이루는 것이, 먼저 주는 것이 은혜를 풍성케 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마음에 사랑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이 내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마음에 은근한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헐뜯음을 품고 있으면 내 속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있습니다. 목사는 많은 교인들을 많이 만납니다. 교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떤 교인은 어떻게나 험담을 잘 하는지 그런 사람과 실컷 이야기를 하고난 뒤에 가가 일어나서 제 방을 나갈 때의 뒷모습은 꼭 마귀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봉사를 참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또 “어떤 교인은 이런 봉사를 열심히 참 잘하고 있어서 무척 존경하게 됩니다.”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얼굴은 스데반처럼 환하게 보입니다. 천사의 얼굴처럼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품고 말할 때는 그 마음속에 사랑이 담겨 있고, 그 사랑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남을 비난하고, 헐뜯고, 욕하는 그런 말을 잘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마귀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먼저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접을 받고자 하는 자는 먼저 대접을 하라.” 라고 했지 않습니까 로마서 12장에 보면,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보다는 사랑을 먼저 하는 사람, 무엇을 받기를 기다리는 사람보다는 무엇을 먼저 주려고 하는 사람, 이러한 사람에게 은혜가 풍성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은혜에 풍성한 교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고, 우리의 모든 생활이 다 은혜스러워집니다. 은혜에 풍성한 교인이 되기 위해서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에 열심을 더 내는 정말 자발적인 헌신, 모든 일에 있어서 나를 내던지는 자발적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사랑하는 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이 스스로 은혜를 누릴 수가 있고, 은혜를 더 풍성케 할 수 있고 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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